구원과 뉴에이지
구원과 뉴에이지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91071035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살후 2:10).
“멸망하는 자들” 중에는 누가 있게 되는가?
어떤 교회에 다녀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또는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기에 충분한지를 알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는 방법은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 왜 구원이 필요한가 하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먼저 지금 시대가 매우 거부감을 느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당신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불의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불의의 조건이 무엇인지 다음을 고려해 보라.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29-32).
이 의미는 당신의 만일 당신의 삶 가운데서
* 탐욕이 있던지
*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든지
* 어떤 이유던 다른 사람을 질투했던지
* 다른 사람이 당신과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화를 내거나 다투었던지,
*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또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지
* 다른 사람을 이용했던지
* 다른 사람에 대한 흉을 보거나 비방을 했던지
* 약속이나 계약을 어겼던지
* 자신에 대해 자랑했던지
* 다른 사람을 멸시했던지
* 어떤 이슈에 대해 고집을 부렸던지
* 다른 사람을 향해 사랑이 부족했던지
이러한 유를 일들을 했거나, 심지어 이런 일들을 하는 자들에게 공감했다면 당신은 불의한 사람이다. 위 내용은 도에 지나친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과 매일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필요 사항을 알려 주셨다. 마태복음 22:37-40을 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이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당신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두 번이 아니라, 또는 노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 평생에 성공적으로 완벽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점은 행위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삼상 16:7).
만일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듯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위의 나열된 죄악들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그리고 지극히 사랑한다. 이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자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선포하며 또한 로마서 3:10절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하고 있다.
선행인가 아니면 은혜인가?
뉴에이지와 기독교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에 대해 절대적으로 의견이 다르다. 형이상학은 환생과 업보(karma)라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교훈에 의하면 사람은 선행을 통해 여러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실현을 하게 되며 이 땅의 노예된 상태에서 자유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으로 믿는 이 우주와 연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 상태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악령의 영역에 들어간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은혜(거저 주시는 사랑)를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제시한다. 로마서 3:24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 6: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선포한다.
“은사”는 수고하여 버는 것이 아니며 정성스런 노력과 착한 동기에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서 2:8-9절을 은혜가 무엇이지 분명하게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인간의 노력이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이다 (엡 2:1). 행위(works)라는 단어의 의미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선행들을 의미한다.
형이상학에서 행위를 ‘카르마’라고 부르며 ‘종교적인 의식’이나 ‘선행들’을 말한다. 당신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당신은 영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카르마를 통해 영적으로 향상되려는 노력은 마치 배터리가 없이 차의 시동을 켜는 것과 같다고 알려준다.
뉴에이지와 기독교의 충돌
기독교와 뉴에이지가 가장 결정적으로 세게 충돌하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또한 그분이 하신 일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예수를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한 위대한 스승으로 본다. 즉, 형이상학 구루(도사)인 셈이며 물병시대의 인류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이 모든 인류를 위한 대속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즉, 주님은 자신의 보혈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다. 주의 보혈이 아니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음을 당하게 되며 하나님과 분리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형벌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 죽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로마서 5:9-10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9-10).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에베소서 2: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당신의 죄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은혜는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 할 수 없는 것을 주께서 하시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은혜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로마서 4:4-5절은 은혜를 설명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4-5).
또한 요한복음 6:28-29절을 보자.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8-29).
이 믿음은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단순함)”을 말한다 (고후 11:3). 만일 당신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라 하나의 ‘본’으로 보고 그가 닿은 경지에 당신도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다 만족시켜야만 한다.
* 처녀에게서 태어나야 한다 (사 7:14, 마 1:18).
*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든 삶을 조금도 틀리지 않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요 4:28-29).
*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마 9:24-25).
* 죽은 후에 당신 스스로 살아나야 한다 (마 16:21, 요 2:19-21).
* 물리적인 우주를 창조하고 보존해야 한다 (골 1:16-17). 또한 구체적으로는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 (골 1:18). 이스라엘의 왕이어야 한다 (행 2:29-30, 눅 1:32).
* 만군의 천사들의 대장으로 이 땅에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의 항복과 경배를 받으며 그들의 입술로 “당신은 주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받아야 한다 (빌 2:10-11).
* 그리스도의 본을 참으로 따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온 인류의 죄악들을 위해 죽어야 하고, 당신의 죽음에 의해 온 인류가 당신의 피를 통해 구속을 받아야 한다.
뉴에이저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들”이라고 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피로 다른 사람을 구속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그들의 피로 구속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상 체험을 통해 접신을 하게 되면서 악령들에게 속았다. 즉 그들이 접한 존재들을 그들은 ‘그리스도-자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인 내 친구 하나가 부모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크게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교외 근처의 개신교의 장로였는데 아들에게 돈을 저축하고 있는지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친구는 어머니에게 주님이 곧 재림할 것이기 때문에 돈을 저축하는 것이 그의 삶의 최고 목표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매우 언짢아 하시면서 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에게 묻기를 “어머니, 도대체 무엇을 믿으시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도 믿음이 있다. 믿음이, 래리” 라고 대답했다.
“무엇을 믿습니까, 어머니?”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교회와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어머니는 슬프게도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지만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처럼 벌써 뉴에이지에 발을 들여 놓고 있었다.
위의 관찰은 다음 연구 자료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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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미국에서 매우 대중적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피상적이다. 종교로 인해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들이 고백하는 믿음도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즉,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믿는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마저 없다. 이는 믿음과 믿음의 내용에 대한 “지식의 간격(knowledge ga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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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 뉴욕 대학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한 자료를 공개했는데 모든 미국인들 중에 86%가 자신들을 기독교 신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연구 자료에 의하면 미국인들중 오직 19%만이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임을 알고 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주와 구세주로 여기는 것인데,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관상을 통해 더 높은 자아를 포용하는 뉴에이지 관점을 거절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만일 예수님을 단지 그들이 본으로 따라야 할 박애주의적 종교 지도자로 본다면 그들은 이미 뉴에이지 사상에 그들의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예수님을 그들의 개인적인 주와 구세주로 삼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의식에 도달한 초인으로 보기 쉬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음”을 정확하게 붙들지 못하고 있다. 구원의 복음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 5:15)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고 그분의 완성된 사역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롬 5:1), “죄사함을 받았고” (엡 5:4), 하나님과 “돌아가게” 되었다 (고후 5:18).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과 신뢰의 내용이다.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한다는 개념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을 받는다는 개념과 전혀 상반된다.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다. 로마서 5:6절을 보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6).
‘의식’이 누구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성경대로 영원한 멸망에 임하게 될 것이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9-12).
여러분들이 위 구절의 심각성을 깊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하나님의 소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 그분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원하실까? 그분은 그분없이 사람들이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하실까? 성경인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시며 그들 모두에게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주시고 있다. 아무도 영원히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유일하고 완전하게 대속할 수 있는 희생 제물로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8).
이제 결론은 더 높은 자아를 전하던지 아니면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하나님의 인간 안에 있는 더 높은 자아라고 하며 관상을 통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인간이 가치없는 죄인이라고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멀리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악함을 (분명한 사실이다) 가르치지만, 그러나 가치가 없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시고 그를 하나님께로 회복시키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카르마와는 대조적으로, 만일 당신이 은혜의 복음이 주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
기독교는 이 부분에서 견고하다. 만일 어떤 믿음의 시스템이 십자가를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다 (고전 1:18). 만일 다른 길이 옳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이요, 그의 피는 전혀 필요없게 된다.
경고와 권고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신다. 참으로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믿음으로 그를 영접하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매우 오래 참으시며 “주의 날”이 가까이 올수록 주님은 계속 인류를 자신에게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인내가 계속 진행되고 있더라도 이 땅에 임하게 될 무서운 심판에 대한 주님의 경고는 매우 무겁다. 그 경고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분명히 그 날은 온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7).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시길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마 24:36). 그러나 주님은 또한 우리가 주의 재림의 정확한 날과 시간을 알 수 없어도 우리는 대환난 시기를 알 수 있는 징조들에 대해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연 재난들, 전쟁, 난리, 악독한 폭군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 역사 가운데 사교와 신비주의가 지금처럼 고삐 풀린 적은 없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2-6).
많은 사람들은 뉴에이지 운동이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미 그 당시에 뉴에이지 영성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사야는 고대 지혜를 시대의 종말에 연결시키고 있다. 이사야는 엄중하고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다.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사 47:12-13).
그 다음 구절은 이들에게 임할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사 47:14).
계시록 9:20-21절은 상세하게 심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 9:20-21).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음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말한다 (계 16:9).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다” (계 16:11).
“복술(sorceries)”은 말하는 구절들은 “불법의 비밀”을 묘사한다 (살후 2:7). “불법의 비밀”은 대환난 중에 심판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불법의 비밀을 추종하는 자들은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들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이때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서 사용된 “복술”이라는 용어는 헬라어 “파르마카이아”에서 왔다. 이 헬라 단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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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사용
* 독을 주입함
* 마술, 마술 요법. 종종 우상 숭배와 연결되어 사용하고 우상 숭배에 의해 지원을 받음.
* 형이상학적으로 우상의 속임수 및 유혹
>
나는 당신이 이 단어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 성경은 마술이 “주의 날” 동안에 전염병처럼 온 세계에 가득 퍼질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소위 고대 지혜를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앨리스 베일리는 새로운 생동력을 지닌 세계 종교의 뿌리에 고대 지혜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우주적으로 퍼지게 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술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또한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마술은 수세기를 걸쳐 최근까지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밀교(비밀을 지킴)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술이 여러 다양한 실행들과 선전에 의해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사도행전의 신들린(악령들린) 여종처럼 온세상이 신들리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의 모든 페이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가득차 있다. 오직 주만이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메신저들이 전해준 경고를 조롱하고 비웃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말, 대환란의 기간에 대한 경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관상을 하며 더 높은 권능을 사용하여 행복과 계몽에 이르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높은 자아 의식을 추구하겠는가?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부름에 겸손하게 엎드려 주의 은혜의 구원과 영생을 받겠는가?
아직 복음을 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이 더 늦기 전에 참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기도한다. 다음 구절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매우 귀한 구절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9).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우리가 신비적 의식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당신에게 맡긴다. 아래의 네 가지 관점을 비교한 것을 고려해 보라. 수년 전에 내가 발견한 차이를 당신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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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 이것이 형이상학적 영적 깨달음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이다. - 어떤 형이상학 교사
당신은 신체적 몸 안에서 신이다. … 당신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 … 당신은 전지하다. … 당신은 창조주다. - 시크릿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 45:21-2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더 높은 의식을 가진 자가 아니라)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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