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은 무엇인가?
| 뉴에이지 운동은 무엇인가? | |
| 비 기독교영성과 세속주의 이완재 (목사 퓨리탄개혁신앙연구회) 현대성의 역사적 돌입 | |
|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8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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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의 역사적 변천을 여섯 시대로 분류할 수있다. 첫째, 프톨레미의 이원론적 세계관(예수 그리스도 시대부터 16세기 이전까지: 아리우스주의와 영지주의 이단의 출현이 뉴-톤시대 이전까지의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것으로, 초대 교부와 중세 시대까지 이단과 잘못된 사조의 전체적 흐름이 프톨레미의 이원론적 사상의 영향이다). 둘째, 뉴-톤적 세계관(17세기의 계몽주의에 새로운 세계관이 대두되어 18세기의 이성주의, 예컨대 불란서 혁명 등으로 무르익었는데, 프톨레미나 뉴-톤 세계관들의 실체는 모든 사물을 과학적 시각으로 관찰하는 이성주의이다. 그 이성주의가 19세기 교회에 원대한 악 영향을 끼쳤다). 셋째, 아인슈타인 세계관(20세기에 들어온 새로운 세계관: 핵물리학 세계관으로 그를 통한 오늘날의 세계에 지대한 변함을 감지하게 하였다). 넷째, 현대적 세계관으로 19세기는 기계화적 합리의 의미에서 사회적 변화를 좀더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관료주의적(Bureaucratic) 사상. 다섯째, 현대성은 1905년부터 일어난 새로운 전제로 기계적 합리에서 인간의 도덕성으로 전이하여 예술 속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찾고자 하였다. 여섯째, 후-근대 세계는 1972년에 지적 조명을 정점으로 한 비역사성의 지적 혁명으로, 영적 불행을 맞게 됐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인류의 역사는 객관적인 합리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면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충족을 위하여 인간의 감정 내면에서부터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정신분석학적 세계와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 해 왔던 결과이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비역사적이며 비인간적인 영적 불행을 걸머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후-근대의 지적인 토질은 문화의 크나큰 다양성과, 엇갈린 지능적 현행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이러한 형성은 현실주의, 실존주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막스주의, 남녀 동권 지향주의, 변형주의 등 많은 사상에 의해 인간 지식이 주관적인 성향으로 굳어졌다. 그들의 다원론, 혼합성, 상대성 이론, 그리고 모호함 등은 그들의 정신 착란과 자기도취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후-근대주의는 종교적인 것들, 과학적인 면들 혹은 철학적인 면들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무한한 개방적인 대범성은 초대 시대의 제설 혼합주의나, 고전 세계의 영지주의나 이교도주의, 문예부흥 시대의 연금술사와 술수사들, 그리고 신석기 시대의 산출력 있는 여신 숭배 등의 흥미로운 것들을 전수하고 있다. 그들의 객관적인 사회적 면과 인격적 가치의 결핍들은 환각에 몰두하게 하며 남녀 동권주의, 개인주의 예찬자의 새로운 실지훈련 등으로 보여지는 등 무당이나 신비스러운 술수 등을 향하여 더 알고자 접근하는 후-근대의 도전적 작태를 볼 때 기독교인에게 새로운 각성을 요구해 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 인간 마음을 헤아리는 특징적 모범들의 개념이나 정신적 모형은 토마스 쿤(Thomas Kuhn)에 의하여 대중화되었고, 토마스 토렌스(Thomas Torrence)는 이를 역사신학 입문에서 소개하였고, 데이빗 바쉬(David Bosch)는 이를 선교학에 새로이 적용했다. 이러한 전례들은 그들 고유의 역사적 가치에 접근하며 또한 접근하고자 하는 정황적 조명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고무적이었으나 진리를 위한 심사숙고에 대해서는 느슨했음을 볼 수 있다. 서구 사상은 이렇게 자신의 문화적 관습과 상호 관계가 이뤄져서 진리의 실체인 것 같이 오인되었다. 이에 대해 리챠드 타안스(Richard Tarnes)는 인간은 현재 그의 유아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또한 급진적으로 변하며 대적하는 세상을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움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반박했다. 현대인들은 지금 방향 감각을 잃고 허공에 떠 있으며 토대가 없는 세계에 새롭게 등장하여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하나가 바로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다. 2-3 세기의 아프리카 신학자 터툴리안(Turtulian: 160-225)은 말하기를 "예루살렘과 아덴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신앙과 이성은 무관하다" 고 했는데, 이는 신앙과 세속적 문화의 관계가 무관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신앙과 이성주의가 무관하다고 하듯이 힌두교와 관계된 뉴-에이지 운동과 우리 기독교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커다란 질문을 던져 봐야 하겠다. 1960-1970년대에 있어서 미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은 자기도취주의(Narcissism)와 동방 종교를 합성하여 힌두교 지도자 구루를 중심으로 착안해 "자기 자신을 믿으라" 하는 새로운 혼합 종교의 유혹을 받아왔는데 이것은 사람들 각자가 하나님이라는 힌두교 정신을 개발시켜 영혼의 전이를 통해 뉴-에이지 운동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냉소적이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뿌리가 깊이 박힌 서구 젊은이들은 큰 도전을 받았다. 이 운동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완전한 과학자는 아닐지라도 신경 정신학적 면에서 볼 때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다루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적 기술이라 일컫는 현대성의 무서운 기생충으로서 후-근대성과 더욱 더 깊은 연관성이 있는 현대성(Modernity)이 낳은 가장 큰 영적 불행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는 전 우주적인 이기주의적 실체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부유층을 위한 이교도적 종교집단이라 말할 수 있다.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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