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해야할운동

모든 것이 하나가 되도록

7. 모든 것이 하나가 되도록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87088682
 
기독교 교회사를 검토해 보면 역사 속에 왔다 사라진 여러 다양한 사상들과 믿음들을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어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렇게 빠른 변화가 있었던 때는 없었다.
 
이 과를 준비하면서 과거에 들었던 예화가 기억이 났다. 모든 나리 연못은 하나의 나리 부엽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연못에 첫번째 나리 잎사귀가 생길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곧 첫번째 나리 잎사귀는 둘로 나뉘고 그후 넷이 되고 여덟이 되고 열 여섯이 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연못은 나리 잎사귀로 덮이게 된다. 연못이 가득 메우는 마지막 분리가 있기 전, 연못의 반 정도만이 나리 잎사귀로 싸인다. 그러나 마지막 분리와 함께 연못은 나리 잎사귀로 가득찬다. 처음에 거의 보이지 않았던 나리 잎사귀 하나가 이제는 이렇게 가득차게 된 것이다. 우리가 보다시피, 나리 잎사귀의 확장은 일직선의 비율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거듭 제곱으로 확장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에 기독교 내에 발생한 패러다임 전이는 연못의 나리 잎사귀 같이 확장되었다. 패러다임 전이를 겪는 사람들이 기하학적으로 증가한 반면 거꾸로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염려하는 사람들도 기하학적으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분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교회가 좋지 않게 여긴다. 복음주의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하여 염려를 표현하는 사람들을 “분리주의자,” “냉소주의자,” “위험 분자,” “비판주의자” 라고 딱지를 붙여 놓는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생하게 될 강력한 미혹에 대하여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통합이 목적인 통합?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이상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회는 회개보다는 화합을 부르짖고 있다. 이들은 “지금은 서로 용서할 때이다” 라고 말하며 특히 다른 기독교인들이 믿는 믿음에 대한 불만들에 대해서는 더욱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점들을 양보하고 서로 연합하고 있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만 동의하자. 중요한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독교의 통합은 매우 중요한 성경적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기독교 통합을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을 받아들일 때 어느 선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통합이라는 명목 하에 너무 멀리까지 갈 가능성은 없는가?”
 
오랜지 카운티 레지스터  잡지의 1997년 11월 호의 “종교” 란에 실린 기사가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줄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인디안들에게 용서하라고 요구하는 교회” 라고 되어 있다. 뉴포트 버지니아 뉴스 에 글을 쓰는 저자 데이브 슐렉(Dave Schleck)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1606년 국왕 제임스 1세는 영국의 사업가들이 버지니아를 식민지로 삼고 어둠과 무지의 비참 가운데 살아가는 야만인들에게 기독교를 선포하는 것을 허락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약 3세기 이상 지난 후 미국에 정착한 영국 성공회는 제임스 타운 섬의 정오 예식에서 아메리칸 인디안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부탁했다.[1]
>
 
비록 성경이 화해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새로운 제임스 타운 언약은 성경의 경계를 넘어서는 화해를 가져왔다. 다섯 페이지가 되는 서약 내용은 미국 성공회와 인디안들이 “사회 및 정치적인 도전에 새로운 해결점을 찾기 위해 함께 일하자”는 것이며 “우리의 고향, 지구를 보양하고 보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인디안들의 노래와 기도들과 춤들이 이 예식을 주도했고 인디안들의 드럼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기사에 의하면, 새 제임스 타운 계약은 1997년 7월 미 성공회의 70번째 총회에서 승인되었으며 미국에서 성공회 믿음 400주년을 이끄는 기념과 화해와 인정의 시대를 열었다.”[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통합을 강력하게 가르치고 있다. 신자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한다. 우리는 요한의 말씀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복음을 양보하고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사랑일 수 있을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서로 사랑하며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들 간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0-21).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은 언제나 진리 위에 서야 한다. 만일 우리가 연합하려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 아니라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기독교의 통합은 반드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것으로 통합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형제애
 
1997년 10월 4일, 나는 프라미스 키퍼스(Promise Keepers)들이 워싱턴 디씨의 캐피톨 몰(Capitol Mall)에 모여있는 것을 중개하는 장면을 보았다. 많은 남성 그리스도인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 나은 남성들이 되고자 더 좋은 남편, 아버지, 교회 회원, 미국의 좋은 시민이 되기를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빌 맥카트니(Bill McCartney)에 의해 창설된 프로미스 키퍼스는 남성들을 위한 초교파 조직이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한 이 조직은 몇 년 내에 수백만에 달하는 조직이 되었다. 이 모임은 미국 전역에 걸쳐 유명한 야구장이나 농구 경기장에서 모였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남성들이 교단을 초월하여 함께 모였다.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동기를 부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면 참여한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였다.
 
1997년 10월 4일 워싱턴 디씨에서 창설자 빌 맥카트니에 의해 제시된 목표와 목적에 따르면 프라미스 키퍼스는 미래에 더 많은 약속을 가지고 있었다. 7시간에 걸친 프라미스 키퍼스의 모임 중에 후반부에서 맥카트니는 강단에 서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
할렐루야! 우리는 지금 특별한 소망에 대하여 언급하는 프로그램 진행의 한 부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저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섬세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계획이 있습니다![3]
>
 
과거에 대학 풋볼 코치였던 맥카트니는 뛰어난 전략가요, 동기 부여에 능숙한 연설가이다. 그는 분명히 성공을 이끌기 위한 계획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워싱턴 집회에서 제시한 계획은 풋볼과 관련이 없다. 그가 말하는 계획은 프라미스 키퍼스 모임을 구성하는 힘들을 움직이고 모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날 워싱턴 집회에서 성취된 형제들의 연합에 대해 맥카트니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분열되어 있으면 문제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연합되어 있고 이 연합은 다양함 가운데의 연합이기에 우리의 미래는 낙천적입니다. 우리는 분열이 없는 다양함 가운데 연합되어 있습니다![4]
>
 
무엇을 약속한다는 것인가?
 
프라미스 키퍼스가 그렇게 강력하게 추구하는 일치에 대하여 누가 조금이라도 우려를 표명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누가 감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치를 추구하는 남성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프라미스 키퍼스가 추구하는 일치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 집회에서 언급된 여러 내용들이 우려를 자아내었다. 7시간 프로그램의 중간 정도에 잭 해이포드(Jack Hayford)라는 목사가 단에 섰다. 그는 이 집회의 주관자로서 남성들이 고려해야 할 전략이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작은 두 발걸음입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쉽지 않습니다. 그 효과는 인류에 거대한 도약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행한다면 오늘 두가지 안건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언약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에 서명을 해야 합니다. “경건한 남성이 되기를 추구하는 여러분들은 이 언약을 해야 합니다.”[5]
>
 
해이포드 목사는 왜 언약이 필요한지 설명했다:
<
그리스도의 몸을 가르는 무서운 분리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교회를 추구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고 말할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정에 속하였고 다른 생각과 다른 관습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제 말씀을 들어 보세요. 우리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의심하도록 배워왔습니다. 우리는 교리와 의식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도록 배워왔습니다.
>[6]
 
이때 저자요 설교자인 맥스 루카도(Max Lucado)가 단에 섰다. 그의 메시지는 다시 한번 화합의 필요에 대해서 해이포드가 말한 것을 분명하게 재강조하는 것이었다. 루카도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이 오후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 날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눈으로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일 때 전세계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7]
>
 
비록 루카도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의 중요성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긴 했어도 한 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기본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프라미스 키퍼스가 워싱턴 집회에서 추진하려는 일치에 대해 루카도는 그곳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으로 더욱 분명하게 하였다:
<
혹시 여러분 중에 다른 종교 그룹이나 교단에 대하여 간단한 요약을 한 후에 무차별하게 대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고백합시다.[8]
>
 
그후 루카도는 회개의 단계로 인도하였다. 그는 말하길 누구든지 프라미스 키퍼스에 대해 반대하는 말을 했다면 회개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9]
 
프라미스 키퍼스가 내린 회개의 정의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른 것을 믿고 또한 서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도 서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된 복음이 아니라 거짓 복음을 포용한 사람들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거짓 가르침과는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 가르침을 교정하도록 권하며 이러한 잘못된 자들을 사랑 안에서 진리로 인도하라고 가르친다 (참조, 딤후 4:1-5).
 
비밀스런 계획
 
참된 회개는 하나님께 우리의 지은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구하는 것에 근거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형제나 자매에게 잘못을 행하였다면 우리는 회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짓 가르침, 교리, 비성경적 교훈들에 대해 지적한 것을 회개하라고 한다면 이는 불합리한 것이다. 성경은 거짓 복음으로 이끄는 오류들에 대하여 지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오류를 무시한다면 이는 그러한 오류를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장려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맥스 루카도의 뒤를 이어 프라마스 키퍼스의 운영팀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가 단에 섰다. 그는 로마 카톨릭 은사 운동의 지도자이다. 그도 또한 분리주의의 악에 대하여 계속 언급하였다. “분리는 연합을 깨는 것입니다. 이는 마귀의 씨앗입니다. 연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불화는 사람으로부터 옵니다.[10]
>
 
그후 마이클 티미스는 불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분리시켰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속의 불일치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주님의 신부가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주님께 결혼할 정결한 신부로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일치의 상태는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11]
>
 
티미스와 루카도가 언급한 내용들은 표면적으로 볼 때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에게 옳아 보여도 하나님께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잠 14:12).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실은 비밀스런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계획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한 교회로 모으는 것이다. 이 교회의 지붕의 본부는 로마에 있다. 그 비밀스런 계획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룰 전우주적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교황의 권력
 
잭 해이포드, 맥스 루카도, 마이클 티미스가 워싱턴 집회에 모인 남성들을 향해 분리주의는 무너져야 하며 부흥을 위한 하나됨을 가져오기 위해 회개가 필요하다고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반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프라미스 키퍼스가 추진하는 기독교 연합의 종류가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 카톨릭 신문 우리 주일 방문자 (Our Sunday Visitor) 의 1997년 7월 20일호의 기사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워싱턴 집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분별력을 제공하며 또한 프라미스 키퍼스가 어떤 종류의 연합을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이 기사의 다음 부분은 내가 지적하려는 바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프라미스 키퍼스의 3월 집회에서 프라미스 키퍼스의 이사회는 마이크 티미스를 새로운 회원으로 환영하였다. 디트로이트 지역의 변호사이며 사업가인 티미스는 카톨릭 은사 운동의 오랜 지도자이다. 올해 여러 집회에서 프라미스 키퍼스는 카톨릭 전도자 짐 벌루치(Jim Berlucchi)에게 조명을 비추어 주고 그를 설교자로 세웠다. 6월에는 프라미스 키퍼스가 덴버에 있는 본부에서 “카톨릭 정상 모임”을 주관하여 전국으로부터 카톨릭 지원자들과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올해 초에는 프라미스 키퍼스가 믿음의 내용을 수정하여 카톨릭 교도들이 볼 때 전혀 불쾌한 내용들이 없게 하였다.[12]
>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프라미스 키퍼스는 기독교 믿음의 방대한 폭을 수용한 가운데 여러 다양한 배경의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톨릭 남성들도 이미 이 조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 내에는 카톨릭 교도들이 불쾌해 할 수 있는 그러한 요소들이 있었다. 그 기사는 계속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프라미스 키퍼스의 창설자 빌 맥카트니는 최근에 우리 주일 방문자 에서 말하길 모든 카톨릭 신자들이 그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부터 자신의 의도였다 라고 하였다. “처음 집회였던 1992년을 돌아볼 때, 우리는 분명히 진정으로 로마 카톨릭의 참여를 환영한다고 단에서 선포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 우리 집회에 참여했으며 흥분된 상태로 자신들의 교회로 돌아갔습니다.”[13]
>
 
그러나 우리 주일 방문자 는 조심스럽게 별로 흥미가 없었던 카톨릭 교도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었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다:
<
프라미스 키퍼스가 복음주의 개신교의 혁신적인 현상이라고 할 지라도 많은 카톨릭 교도들은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어떤 카톨릭 신도들은 부흥을 위한 예배 스타일에 불편을 느꼈고 다른 이들은 카톨릭 믿음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즉 성찬,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 결혼과 성(sex)에 대한 카톨릭 교리등을 생략한 부흥의 노력에 우려를 표명했다.[14]
>
 
이 기사는 어떻게 오하이오 스투벤빌(Steubenville)의 프랜시크칸 대학의 기독교 구제 활동 총 책임자인 존 센젠버거(John Sengenberger)와 프라미스 키퍼스를 지원하는 카톨릭 신자가 프라미스 키퍼스가 카톨릭의 관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는지 설명하였다. 우리 주일 방문자 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왜 그가 1995년 이후 자신의 카톨릭 남성들의 집회를 지원하였는지 설명하였다. 센젠버거의 말을 들어보자:
<
그 당시 프라미스 키퍼스가 전국적으로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산불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집회는 우리 카톨릭 교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15]
>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센젠버거는 프라미스 키퍼스의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프란시스칸 대학을 방문하게 하였다. 센젠버거는 “우리는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우리는 그들의 지도층에 카톨릭이 관여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16]
 
1995년, 프라미스 키퍼스의 두명의 지도자가 초대에 응답하였다. 경영진의 의장이었던 데일 슐라플러(Dale Schlafler)와 프라미스 키퍼스의 부회장인 글렌 와그너(Glen Wagner)였다. 센전버거에 의하면:
<
카톨릭 교회의 전도 입장에 그들은 처음 서 보았다. 프라미스 키퍼스의 대표자들인 그들은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떠날 때 우리는 그들을 초청하여 우리의 책방을 보게 하였고 그들이 원하는 책들을 가져가게 하였다. 그들은 바티칸-2 공의회의 모든 가르침과 온갖 종류의 신학 서적들을 가져갔다.[17]
>
 
이 두 사람은 1996년 남성 컨퍼런스를 위해 스투벤빌로 다시 돌아왔으며 이때 센젠버거는 그들을 성체 성사 예식에 참여케 하였다. 프라미스 키퍼스가 카톨릭에 맞는 버전으로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프라미스 키퍼스 내의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교도들 간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차이가 남아 있었다. 우리 주일 방문자 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
지난 해 1996년은 프라미스 키퍼스는 “믿음의 진술서”를 발행하였는데 카톨릭을 배제하는 듯한 내용이 있었다. 또는 프라미스 키퍼스 회원들로 하여금 카톨릭 믿음을 거절하도록 강요하는 듯 했다. 프라미스 키퍼스의 신조의 제 5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음을 믿으며,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음을 믿는다. 그러한 분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게 된 하나님의 선물을 오직 믿음을 통해서 받아들임으로 제거될 수 있다.[18]
>
 
우리 주일 방문자 로부터 취한 마지막 문장은 마이클 티미스가 1997년에 프라미스 키퍼스의 이사진이 된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설명한다. 개신교의 종교 개혁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면서 그 기사는 짧은 세 문장을 말하였다:
<
“오직 믿음”은 개신교의 종교 개혁의 핵심 교리이다. 이 표현은 성경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성경에는 마틴 루터에 의해 이 표현이 삽입되었다. 프라미스 키퍼스에서 이러한 교리가 발전하게 되는 것을 염려한 센젠버거는 여러 카톨릭 신학자들로 하여금 이 진술을 검토하게 하였으며 지난 여름에 와그너에게 그들의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올 초에 프라미스 키퍼스는 카톨릭 신학자들을 모아서 이 표현을 교정하도록 하였다: “믿음을 통해서만,”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가능하게 된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과의 분리가 제거될 수 있다.”[19]
>
 
깨어라, 잠자는 자들이여!
 
이 표현은 카톨릭 신문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오늘날 기독교에 발생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잠잠한 계획이 아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마지막 때에 깨어 경성해야 한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6-16).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라미스 키퍼스의 과거의 믿음의 진술과 카톨릭에 잘 맞게 고친 새로운 버전의 믿음의 진술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두 진술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알버트 제임스 대거(Albert James Dagger)가 그의 글 “프라미스 키퍼스가 바티칸에 팔리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
프라미스 키퍼스가 그들의 믿음의 진술서를 “믿음만을 통하여”에서 “믿음을 통해서만”으로 고쳤을 때 그 차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교리의 순수성에서 볼 때 엄청난 차이다. 새로운 진술이 의미하는 바는 교황 제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된 교황 제도만이 역사 속에서 교회를 인도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교황 제도를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프라미스 키퍼스의 배교자들은 이에 대하여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20]
>
 
이 과에서 나는 어떻게 기독교가 “하나의 교회”로 되어가는지 그 흐름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십년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통합 운동은 전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과를 위해 연구를 하면서 나는 나리 잎사귀 비유가 매우 잘 맞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현재 교회 내의 이러한 변화는 아무 통제가 없이 급격하게 번져가고 있다.
 
한가지 답변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몸으로 연합될 가능성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종교들과 통합하려는 기독교의 통합 운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독교가 많이 변조되어 다른 종교와 공통된 부분이 많아지는 것이 옳은 것일까?
 
 
--------------------------------------------------------------------------------
[1] Dave Schleck, “Church to Ask Indians to Forgive”, Orange County Register, November 1, 1997, 14.
[2] Ibid.
[3] Promise Keepers, Washington, D. C., October 4, 1997, Trinity Broadcasting Network, transcript of live broadcast.
[4] Ibid.
[5] Ibid.
[6] Ibid.
[7] Ibid.
[8] Ibid.
[9] Ibid.
[10] Promise Keepers Rally, Washington, D. C., October 4, 1997, Trinity Broadcasting Network, transcript of live broadcast.
[11] Ibid.
[12] “Making New Catholic Men? Promise Keepers’ ‘gospel for guys’: Is it just the thing Catholic men need? Or is it bound to loosen bonds to the Church?,” Our Sunday Visitor, July 20, 1997, 10.
[13] Ibid.
[14] Ibid.
[15] Ibid.
[16] Ibid.
[17] Ibid.
[18] Ibid.
[19] Ibid.
[20] Albert James Dagger, “Promise Keepers Sells Out To Vatican,” Media Spotlight, Volume 20, No. 2, 7.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