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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토에 관한 글

네비게이토에 관한 글
자료출처 http://nations0675.com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도움이 될것 같네요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문제점 - 교회관과 근본적 문제들  | 안오성

아래 글은 저희 교회 한 선교사님이
네비형제의 교회관에 대한 문제건으로 문의하여 작성했습니다.

네비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하는 형제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이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도 많고
또 이 문제를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치우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되어
두서 없이 정리된 부족한 글이지만, 이곳에 싣습니다.
=============================
조 선교사님,
좋은 문제(?) 입니다.
저도 네비에 있어 보았지만,,
네비의 치우침을 알고 있고,,
그들의 지식폭력를 극복하는 것도 어려웠고,
그 단체에 속한 이들에겐 특히 어려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순수한 열심이 있으나,
우리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에 대한 비하 의식, 우월의식,,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들의 "오해"를 입증해 주는 듯한
기성교회의 무기력한 듯한 모습과 여러가지 문제점들...

그래서 이 단체의 치우친 사상에 물든 젊은이들은
쉬이 헤어나오질 못하고 외골수적인 신앙으로
신앙의 인격화나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 내면의 깊은 이해와 겸손함을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삶보다는

자신의 열심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알아가고
있다는 "주관적 느낌"과
젊은이들 특유의 단기간에 뭔가 변화와 열매가 보이는 것으로 인한 성취감에 사로잡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은 생명임을...

훈련된 Activity, 암송귀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의 진실성과

자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진정 자신의 자존감과 안정감을 하나님은 은혜의 기초위에 두고
진정 낮아지고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격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암송귀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성경공부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진정 다양한 신앙의 모양을 가진 형제들을 품고 하나됨에 힘쓰며
또 그들의 반영과 도전으로 나의 치우침을 바로잡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또한, 다양한 모양과 연령층, 삶의 모양 가운데
한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감격을 맛보는 가운데
조금씩 깨달아가고 체득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비와 네비에 마음을 앗긴 청년들의
"단기간에 동질의 많은 제자 양산"에 대한 환상은

단기간에 조직을 키우고, 무언가 이룬듯한 자기로 말미암는 성취감을 주고
배우는 이들에겐, 훈련된 경건의 모양을 체득하게 해주는데 효과가 있지만,

결국, 개인이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건의 모양을 훈련하는 것이 아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또
개인의 일상 가운데, 리더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에 자라야 합니다.

참된 훈련은 리더와 조직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다양하고 혼란스런 상황에서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성의
훈련입니다. (요일2:27,28 ; 고후1:24)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진정으로 발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쉬이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와, 다른 사람에 대한 몰이해를 아파하며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마18:6,7, 약3:1)


특별히, 네비의 훈련방식은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와 혼합되어
"그리스도께 복종을 훈련한다는" 명분하에
리더가 절대 권위를 제자 위에 갖게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조직에 오래되고 깊어질수록
리더가 기어라면 실제로 땅에서 기는 훈련까지 합니다.
"복종의 맘을 배우기 위해서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비 출신 형제들은 오래될수록,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됩니다.

경건의 모양, 특이한 라이프 스타일로 첫인상은 매력과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다른 사람을 진정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관계가운데
자신의 생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인격으로 자라가는 그러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워내는 데에는 많은 실패를 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정죄와 배타로
실로 많은 상처를 주고
그들을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일면 분명히 치우친"
지식의 폭력으로 그들을 압도합니다.

네비에 오래있던 형제들이 네비를 떠난 후
많은 경우 아주 흔들리게 되는 근본 이유중의 하나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 기초한 신앙의 내면화보다는

단기간에 외양적 훈련, 지식에 치중하고
리더가 하나님과 당사자 사이에 항상 중재자로 있었기 때문에
자생력있는 신앙이 자랄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이끌어 간 것은 다분히,
하나님의 생명으로 변화된 내면보다는
리더의 권위요, 죄책감을 자극하는 지식의 폭력이었기 때문입니니다.

그래서 네비를 제대로 하다 떠난 형제들은
교회에 적응도 못하고 헤메거나
다시 네비로 가서 분열적인 생활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순수한 열심을 가진 청년들의 맑은 마음을 질식시키고
오히려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기능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 형제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네비를 잘 알고,
한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따르는
많은 지체들의 한결같은 의견임을 그 형제는 알아야 합니다.

네비는 그 폐쇄성으로 성경과 자신의 단체에서 출간한 책에외는
읽지도, 책상에 꽂아두지도 못하게 하는
"지도층의 자기 조직 보호를 위한 고의적이고도 못된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제자훈련이 제자들의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 맡기는 섬김이 아닌,
조직의 세를 불리기 위한 인간적인 성취욕으로 물들어 있음을 입증합니다.

기존 교회에 참여를 말리는 "조직의 지침"도
그 시간에 성경공부를 통해 형제들을 믿음위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조직의 세를 유지하고 조직원을 교회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간적 의도로
다분히 오염되었음을 그들은 인정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은 선한 동기로 열심을 내지만,

누구나 자신으로 말미암는 선한 동기는

자기 안의 있는 무지와 죄성으로 쉬이 오염됨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네비가 지향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용기를 내어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훈련과 실천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를 찾고 알기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등한시 합니다.

왜?
기성교회는 네비가 헤게모니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네비가 지향하는 스타일의 제자들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만이라고 하겠습니까?

단지 이것만이 이유라면,
네비는 기성교회를 전면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네비는 자신들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신앙성장을 돕는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유일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앙하고 섬김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게 할까요?
이 또한 자신들의 조직의 세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적 의도로
물들었기 때문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적략을 보면,
사도바울은 구약의 수건에 가리워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못박아 죽인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이끌어가는 회당을 제일 우선순위로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비의 논리대로라면 그곳은 이미
바울이 원하는 "바른 복음"을 심을 토양이 못될 터인데도
바울은 그곳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곳이 오해와 무지와 편견, 그리고 많은 문제가 있을지언정,
하나님을 찾는 마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있다해도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를 핍박하던 유대인들의 회당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다가
그들을 필요를 알아보고 제대로 섬길 일꾼의 부족으로 스쳐지나 갑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선교의 일선에 서려는 사람은 어떠해야겠습니까?

저는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조직의 세를 불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자신들이 키운 일꾼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교회를 튼튼히 하는 자로 서게 됨을 기뻐하며,,

세례요한의 기쁨으로 선교회를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얼마전 10년이 넘게 보관하여오던 창고에 있던 책들을 정리하며
네비책들은 90%를 다 버렸습니다.

제가 실제 삶을 살아보며 느낀것은
정작 영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나의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관계의 부족함,
나와 다른 스타일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 방식을 품지 못함...
등인데 그 책들은 그런 면에서 별도움이 못되고
지금 저도 쓸 수 있는 깊이 없는 성경지식에 근거한
자기 주장의 나열에 지나기 않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나의 열심을 자극하고 나를 이끌어 가던 그 책이
지금은 아무 도움도 못되고 앞으로도 다시 보고 싶지도 추천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책이 되고 말았죠...

참 씁쓸하면서도
부족하지만, 네비의 지식폭력에서 벗어날 만큼의
저의 성장을 잠시 뒤돌아보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그 형제에게 한가지 책을 소개하여 주십시요...

Inside Out이란 책으로서
한글 번역본 제목을 곧 알아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학에는 박식하면서도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에는 맹인일 수 있다."

이 책에서 인용한 한 귀절입니다.

그 형제뿐 아니라 제자 삼고자 하는 우리 모두가 새겨 들어야할,
네비의 성경책에서는 "지워진" 다음의 말씀을 인용하고 글을 맺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23:8-10)

그러나 위와 같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네비에 대한 반론도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상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교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멀리하게 하는 네비의 선택은
한국교회의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 기초한 고육지책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비는 교회와의 연대 유무를 떠나
그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조직운영의 폐쇄성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넓지 않은 구덩이는 깊이 파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느린 듯 해도 넓게 파기 시작해야 깊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기간에 제자가 되려는 욕심,
단기간에 리더가 되어 보려는 욕심,

단지 성경구절 몇 백 구절 외운다고,
사람의 인생과 선택들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다고 보는
위험하고 무지한 생각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존하신 예수와 3년을 동행하고도
결국 도망가고 흩어질 수 밖에 없었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소식을 듣고,
부활하셔서 다락방에 찾아오신 것을 무리와 함께 보고도
예수를 부인한 자신으로 인해 낙심하여
갈릴리 어부생활로 돌아간 베드로를 예수께서 어찌 회복시키셨는가를 보면서

우린 자신에게 철저히 실망할 때 까지,
자신의 의지와 결단과 경건의 모양으로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길을 갈 수 없음을 알때까지
그리고 거기서 회복시키시는 그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을 맛볼 때 까지는

그 때까지는 아직 제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까지는 "내 양을 먹이라"는 온전한 위임을 받기에는
위험한 상태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는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가운데

자신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며,

우리가 붙들고 있는 모든 거짓과 세상적 가치관, 왜곡된 자아상과 인간관, 세계관

이러한 것들로 부터 자유하며,

생명되신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된 삶에 자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리더되기를, 교사되기를
자신의 중요감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두렵고 떨림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네비를 더 오래하면 이상에 언급한 것 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물론 그 문제는 알아도 덕이 안되는 더러운 문제요,
거짓으로 포장된 문제입니다.
쉽게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지요...

결국 선교단체의 문제중 가장큰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피로 값을주고 사신곳이기에 이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겨야하는데 선교단체가 교회를 소홀이 했습니다.또 그들만이 갖는 잘못된 우월주의가 문제이구요-그리스도인은 균형이있어야 합니다.상대를 무시해서도 않되고 존중해야 하구요 그래서 이단의 특징이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이거든요
비판은 죄입니다.그리스도의 몸인데---결국 그리스도를 비판하는것인지 모르는 무지입니다.
이제 많은 선교단체들이 교회와의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론에 관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될것 같네요 필요하면 자료를 드릴께요--- 글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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