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해야할운동

리차드 포스터, ‘신비주의’가 들통나다

리차드 포스터, ‘신비주의’가 들통나다
한승용 편집장    
 
한국 교인들에게 <기도>(두란노)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신비주의 퀘이커교도” 리차드 포스터가 한국을 방문했다. 리차드의 이번 방한은 레노바레 코리아가 주선한 것으로,  S대학교 등에서 영성훈련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리차드 포스터는, 신문에 따르면, “어제 오늘 두세 명에 대해 관찰한 걸 나누고 싶다”며 단상 아래의 중년 남성을 세우고 “이분은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고, 또 다른 남성에게는 “지혜의 영이 함께함을 느낀다”고 했으며, 다른 남성에게는 “삼손 같은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한다.
리차드는 마치 자신에게 특별한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이와 같은 ‘영웅적인’ 행위를 왜 한 것일까? 회중 앞에서 영적 거장(?)의 ‘영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그의 행위는 은사가 철철 넘쳐나는 은사주의 목사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그의 ‘영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성 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성령충만과 진리의 실행이 있을 뿐이다.
비성경적인 레노바레 영성운동은 마귀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귀 들린 무당들도 리차드처럼 상대방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고 말씀한다(요일 4:1).
그 사람의 입에서 진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며,
그의 “신비주의적 영성” 역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악한 영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리차드 포스터는 테레사 수녀의 <기도의 궁전>이라는 책을 읽다가
기도하던 중 상처가 많이 나 있고 열려 있는 ‘하나님의 심장’을 환상으로 보았다고 고백했다.
신문은 그와 동시에 그가 “나는 네가 이 사역을 멈추길 원치 않는다.
대신 내 말씀을 전하라. 내 자녀들에게 내 심장이 부서져 있다는 걸 말해 주지 않겠니.
그들은 너무 번잡한 일에 붙잡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전했다.
테레사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테레사는 구원받지 못한 카톨릭 수녀에 불과하며,
평소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거듭나지 못한 죄인이었다.
그녀가 전 세계적으로 ‘선행’을 하며 돌아다닌 것은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아보려는 비성경적인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신의 걸레 같은 의를 신뢰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현재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고 주장하던 그녀가 <기도의 궁전>이라는 책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것은 진리에 관해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리차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책을 영의 양식 삼아 탐독했고,
그러던 중 환상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환상이나 환청(하나님의 음성)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근거는 기록된 말씀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신약교회 사역의 철칙이다.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성경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아닌 리차드의 명성에 권위를 두고 그의 말을 따르는 이들은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 마귀의 교리를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신문은 리차드가
“하나님은 마음을 활짝 열고 여러분을 초청하신다.
그분의 집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식탁으로 초청하신다.
그분이 베푼 잔치상(한국 음식도 차려져 있는)으로 부르셔서 힘을 얻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길 원하신다.
그리고 나서 지혜가 가득한 도서실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궁금한 모든 것을 물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를 침실로 초대하신다.
긴밀하고 친밀한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곳으로 초청하신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가 원할 때 우리를 만나주신다.
철학자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마리아, 나오미, 룻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여기 함께하시는 걸 믿으라.
이것이 위대한 초청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리차드는 꿈과 환상에 젖어 사는 영적 어린 아이이다.
그가 늘어놓은 말들은 일말의 가치도 없는 ‘잠꼬대’에 불과한 것이다.
리차드는 하나님의 집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 보았는가?
그곳 식탁에 차려진 한국 음식을 보았는가?
그분의 침실에도 들어가 보았는가?
도대체 이런 것이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리차드는 그의 책 <기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곳을 ‘하나님의 마음의 거실’이라고 했다.
우리가 초청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우리 몸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되
“그리스도의 몸”에 영원히 들어가 있다고 말씀한다(고전 6:19, 롬 6:3, 고전 12:13, 갈 3:27, 롬 8:35-39).
또한 우리가 궁금한 것을 여쭐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의 마음의 거실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이 말씀이 바로 영적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식탁이요 잔치상이다.
리차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이용해 “삼류 감성소설 신학”을 정립하려 한 것 같다.
누가 리차드 포스터를 ‘영성의 거장’이라고 칭했던가?
‘영성’ 하면 뭔가 대단한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지만,
그런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영성’이라는 말은 로마카톨릭이 지어낸 용어로,
금식과 고행 같은 육신적인 수행의 결과로 하나님께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막에서 고행하던 고대 수도자들이나 수도원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그들은 육신의 고통을 통해서 ‘영성’을 키우려고 했던 어리석은 죄인들이었다.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