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맞습니까 ?
자료출처http://blog.naver.com/ikstudd/12780439
오늘 아침, 운전 중에 라디오 다이얼을 기독교 채널에 맞추자 “이번엔 영어 찬양 한곡 들려드립니다.”란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I can see clearly now the rain is gone..." <I can see clearly now>란 흘러간 팝송이었다. 이 곡은 1970년대 초 지미 클리프(Jimmy Cliff)란 가수가 처음 불러 알려졌고, 뒤를 이어 자니 내쉬(Johnny Nash)라는 흑인 가수가 불러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던 팝의 고전이다. 역경과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행복한 날을 맞이한 기쁨을 노래한 곡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정확히 말해 우리 기독교의 찬송(복음성가 혹은 CCM)이 아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리틀 페기 마치(Little Peggy March)의 노래 <I will follow him>이 있다. 이 곡은 영화 <시스터 액트>에 등장한 가톨릭 수녀들이 부른 뒤부터 일부 교인들이 복음성가로 인식하고 있다.(단지 수녀들이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1963년에 나온 이 노래의 가사 ‘나는 당신을 따르겠어요(I will follow him)’에서 'him'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 ‘그대’를 말한다. 얼마 전 나온 CCM 스타 마이클
W. 스미스의 새 앨범 <Healing rain>에는 1970년대에 나온 사이먼과 가펑클의 대표작<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수록돼 있다. 이 노래는 아다시피 우정을 그린 노래다. 스미스는 아마도 이 노래가 희생적 우정을 그린 곡이므로 기독교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앨범에 넣은 것 같으나, 정확히 말해 이 노래는 기독교 찬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팝송일 뿐이다. CCM의 여왕 에이미 그랜트(Amy Grant)가 팝 역사상 여성으로 가장 많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던 캐롤 킹의 전설적 빅 히트곡 <It's too late>를 부른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해외 CCM 유명 가수들의 앨범을 보면 종종 이런 식으로 가사가 좋은 대중음악의 히트곡을 자신의 찬양 앨범에 삽입하곤 한다. 이런 노래들은 가사가 괜찮은 노래, 잘 만든 노래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노래들이 버젓이 '찬양 앨범’에 수록돼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찬송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서두의 <I can see clearly now>도 아마 앤 머레이(Anne Murray)의 찬양 앨범에 수록돼 있기 때문에 찬송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근년, CCM 밴드인 식스 펜스 넌 더 리처(Six pence none the richer)는 기독밴드가 아예 자신들이 만든 팝 음악을 앨범에 넣어 히트를 친 케이스다. 이들의 히트곡 <Kiss me>는 CCM계가 주는 유명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과연 이 노래를 기독음악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돼 물의를 빚었다. 찬양의 정체성이 걷잡을 수 없이 와해되고 있는 미 CCM계 내부의 당혹스런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소동으로 비친다.
음악적 내용이나 가사가 조금만 종교적 분위기를 풍겨도 ‘기독교 찬양’으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비틀즈의 대표작 중 하나인 <Let it be>를 기독음악인 것으로 알고 연주하려다가 확인 차 물어온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곡은 노래 전체에 흐르는 종교적 분위기와
노래에 등장하는 ’Mother Mary'란 가사 때문에 기독교적 작품으로 자주 오해됐다. 그러나 ‘Mother Mary'는 흔히 알려진 대로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이 노래를 만든 폴 메카트니 자신의 어머니 ‘매리(Patricia Mary)’를 지칭한 것이다. 메카트니가 자신의 세속적 노래에 거룩한 기독교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불경스런 장난을 친 개연성이 있다. 메카트니를 비롯한 비틀즈의 전 멤버는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동양종교와 인본주의 사상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었고 멤버 중 조지 해리슨은 힌두의 ’크리슈나교‘에 심취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이 종교를 믿었다. 오랫동안 국내 팝 팬들의 사랑을 받은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히트곡 <Morning has broken>은 종교적 가사로 인해 국내 복음성가 가사집에 올라 있기도 한데, 이 노래 역시 잘못 알려진 케이스다. 캣 스티븐스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회교 식으로 바꿀 만큼 독실한 이슬람 교도였다. 아침과 창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는 이 노래는 기독교의 찬송이 아니고 ’이슬람 찬송‘이다. 종교적 영성 추구를 중요 요소로 채택하고 있는 현대의 많은 뉴 에이지 음악들도 즐겨 기독교 성가나 기독교적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지만, 이런 음악들은 오히려 기독교를 대적하는 어둠의 음악일 뿐이다.
<Yesterday once more>등의 히트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남매 그룹 카펜터즈(Carpenters)의 데뷔작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는 카펜터(목수, 예수님의 직업)라는 이름과 ’당신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close to you)'라는 가사 내용이 주는 기독교적 분위기로 인해 한 때 기독교적 노래로 알려졌으나 (이로 인해 미 기독교인들로부터 인기를 끈 것으로 안다) 노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기독교 음악이라 보기 힘들다. 대표적인 기독교인 팝 가수였던 팻 분의 딸 데비 분(Debby Boone)이 부른 노래 <You light up my life(내 인생의 밤을 밝혀준 당신)>은 동명의 영화주제가 이면서 무려 10주간 빌보드 차트 정상을 지킨 명곡이었다. 이 노래 역시 기독교적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노래에서 ‘you’는 하나님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은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가사 중 어디에도 ‘you'가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확정적 표현이 없다. 이 노래가 잘 만든 건전한 노래이기는 하나 이 노래를 기독음악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여기서 소위 ’크로스오버‘의 논리가 등장한다. 직접적 표현이 아닌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들을 때는 그저 ’사랑노래‘로 들리게 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기독교적 메시지를 들려주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표현이 세속의 사랑으로 이중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 수 있을까 ? 과연 하나님은 그런 식의 찬양을 기뻐 받으실까 ? 두 마음을 품은 노래로 생각하시지 않으실까 ? 또 그런 식으로 과연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 최근 한국 가톨릭 쪽에서 나온 음반을 보니 성가곡들과 함께 가요와 팝도 함께 수록돼 있다. 미국과 서구 CCM을 열심히 답습하고 있는 한국 찬양계에서도 앞으로 이런 식의 시도가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더 이상 혼잡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05.5.12 등대지기 워낙 빅 히트곡이다 보니 이 노래에 얽힌 얘기가 많다. 그 중 기독교에서 나온 대표적인 얘기가 이 노래의 후렴부에 등장하는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부분이 마약사용을 찬양하고 부추기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폴 사이먼의 시적(詩的) 감수성이 돋 보이는 가사이나, 혐의가 없지 않다. 그리고 필자가 알고 있는 또 하나, 소문이 아닌 얘기로는 이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 노래가 한창 유행할 당시 이 노래를 듣고 자살한 서양의 청년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처럼 이 노래, 특히 피날레 부분의 강렬한 ‘감정의 북받침’과 ’황홀함‘을 익히 맛보아 아는 나는 이 얘기를 진실로 믿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감정 상태에서도 자살의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정을 북받치게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강한 서정풍의 발라드'가 노골적으로 죽음을 찬미하는 과격한 록 음악보다 한편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기에 있다. 한편, 사이몬과 가펑클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많은 노래들로 인기를 모았는데, 그 중에는 <A Most Peculiar Man>, <Richard Cory> 등 자살을 소재로 한 곡들도 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 방송국들이 <틀지말아야 할 노래 목록>에 이 '위대한 팝의 걸작'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이 노래가 충격과 좌절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새 힘과 희망을 주는 ‘건강하고 긍적적인’ 노래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울하거나 감상적인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위험한’ 노래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 위의 DJ가 이 노래에 붙인 "거룩하다“라는 종교적 수사(修辭)는 오늘날 인본주의와 허무주의라는 거대한 ‘현대 종교’의 성가로서 기독교적 내용이나 분위기를 차용, 왜곡한 대중음악이 즐겨 동원되고 있는 현실( 존 레논의 <Imagine> 등)을 상징한다. 자신이 ”친구로 험한 강물을 건널수 있는 다리가 되겠다는“는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달리심으로 몸소,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다리’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의 인본주의적 모조품에 불과하다.
(追記 06.7.4) : 사이먼과 가펑클의 대표작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무려 30년 가까이 사랑을 받고 있는 팝의 고전이다. 최근 기독교 방송이 아닌 일반 유명 FM 팝 프로에서 DJ가 이 노래를 소개하면서 다소 감격적인 어조로 서너차례나 ‘거룩한 노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걸 들었다. DJ는 아마도 이 노래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즉흥적으로..)동원하려 한 것인데, 그 표현이 “거룩하다”였다. 실제, 피아노 반주를 비롯해 이 노래가 음악적으로 가스펠적 분위기를 띠고 있기는 하다. 리드 보컬을 맡은 아트 가펑클의 목소리도 성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노래는 매우 세련되게 만들어진 하나의 세속 팝송일 뿐 결코 ‘거룩한 노래’(聖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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