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 문제는 없는가 Ⅲ - 선교적, 대안음악적 가치
- 선교적, 대안음악적 가치
CCM에 대한 긍정적 입장의 주된 근거 중 하나는 CCM이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기독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대중음악을 대신하는 대안음악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화의 종주국인 미국을 보자. 사실 미국에서 그간 CCM이 성장을 거듭해 올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날로 퇴폐·오염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교회의 ‘방어적 대책’의 일환으로, 교회와 가정에서 청소년들에게 CCM을 장려한 측면이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하나의 현실적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중음악에 심취한 청소년들의 음악적 취향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
해 대중음악의 감각적·오락적 성분을 복음적 메시지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음의 내용이 변질될 수밖에 없었고 찬양의 세속화가 가속화됐다. 음악소비자의 귀를 붙잡기 위한 기독음악의 ‘대중음악 흉내내기’도 심화됐다. 세속음악을 ‘초월’해야 할 기독음악이 세속음악의 ‘아류’로 전락한 것이다. 기독음악이 대중음악을 모방·답습하면서 단지 대중음악보다 가사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기독음악의 정체성을 말해주는가? 도덕적으로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음악,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감동시키는 음악이 기독음악 아닌가.
대안 음악적 가치
교회에서 기독청소년들을 위한 대중음악의 대안으로써의 CCM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면에는 일반(세속)음악 세계를 기독교인들이 가서는 안 될 적대적 영역으로 보는, 문화에 대한 일종의 이분법적 사고도 깔려 있다. 이러한 문화관은 CCM 애호가와 사역자들, 나아가서는 일반 성도들의 사고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모든 예술의 표현 내지는 향유 욕구를 해결하려는’ 세속문화에 대한 막연한 배타적·도피적 입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기독교 음악만을 듣거나 연주해야 하고, 일반 음악은 안된다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이러한 문화관의 영향으로 대중음악의 대안으로서의 CCM에 대한 ‘과대평가’가 이루어 진 부분이 적지 않다.
세속 대중음악에 문제와 탈이 많으나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천 청소년들에게 CCM만을 듣도록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술적으로, 영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CCM은 물론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예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기독음악과 더불어 우리 크리스천들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예술적 선택으로 본다. 클래식은 오늘날 대중음악에 심취한 (기독)청소년들에게도 훌륭한 대안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일반 (세속)대중음악 속에 우리 기독교인이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적 가치
다음은 CCM의 선교적 가치에 대해서다. 서두의 탄생 배경에서 보듯, 이 문화는 처음부터 불신자(히피 세대)들을 위한 전도용 음악으로 시작됐다. 한 마디로 교회의 전통 예배와 찬양에 이질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를 겨냥하여 음악의 형식과 메시지에 파격을 가한 일종의 ‘패스트푸드 식’ 찬양이 바로 CCM이다. 때문에 십자가, 보혈, 고난 등의 부담스런(?) 내용은 아예 제외되거나 최소화 됐다. CCM은 이렇듯 교회가 초청한 불신자들을 위한 예배(정확히는 ‘전도 집회’)를 일컫는 이른바, 구도자 예배(seeker service)용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급속히 활성화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믿는 성도들의 찬양으로 ‘슬며시’ 탈바꿈하였으며, 근래에는 예배음악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사실, 오늘날 CCM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음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자들을 위한 찬양’이 됐다. 불신자들의 음악적 취향과 교회음악에 대한 부담을 배려해 음악에 오락성을 높이고 ‘복음의 내용을 각색한 눈높이 찬양(?)’이 어느덧 믿는 성도들의 정식 찬양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온 CCM은 교회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성도들의 영혼을 감동시켜온 찬송가를 위시한 전통적 찬양문화에 위협(?)을 가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CCM을 전도용 음악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과연 불신자들을 교회로 인도했을 때 그들이 전통적 예배와 찬양에 그렇게까지 이질감을 느낄까’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취향에 익숙한 대중음악 스타일의 CCM으로 선교하는 것이 응당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면에서 불신자들은 우리로부터 은연중 세속음악과는 ‘뭔가’ 다른 스타일의 교회음악을 기대하거나 선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불신자가 ‘악착같이’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기독교인에게 호감을 가지듯) 컨템퍼러리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교회일수록 잃어버린 자,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을 대단히 강조한다. 불신자의 영혼 구원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가 불신자 전도에 있어서 섣불리 세속적인 것들을 너무 과도하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전도를 위해 세상이 미련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분이 아닌가?(고전 1:21)
더구나 성경에 음악을 전도 목적으로 사용한 예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CCM이 선교적 도구로서의 활용 가치가 있다고 본다. 불신자들이 복음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접촉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서다. 이런 여러 가지를 볼 때, CCM은 성도들을 위한 공식 예배에는 삼가고, 본래의 역할을 되찾아 예배가 아닌 불신자 초청 전도 집회나, 미성숙한 나이 어린층 등을 배려한 ‘제한된 영역’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등대지기
출처: 그리스도인과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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