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 문제는 없는가 Ⅰ - 개념과 용어
CCM, 문제는 없는가 Ⅰ - 개념과 용어
(이하 글에서 CCM은 가요, 팝, 록 등 일반 대중음악 양식을 차용하고 있는 기독 음악을 지칭함)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교회의 찬양 문화에 있어서 꾸준히 ‘지분’을 확대해 온 CCM은 이제 교회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중심적 찬양 음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회 입장에서도 청소년·청년층 부흥, 문화선교 등 교회 성장과 관련하여 CCM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분위기는 이미 확실히 정착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근래 CCM은 음악적인 면에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다양한 대중음악 스타일의 도입을 시도하는 한편, 근년 신학대를 중심으로 CCM 학과들이 신설되는 등 양적 성장과 더불어 그 위상과 지위(?)도 격상하는 변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 문화에 대한 수용, 옹호론을 넘어 예찬론이 대세를 이룬 지금, ‘CCM 득세’에 대한 교회 내 불만의 목소리와 비판적 시선은 점점 수그러들고 있다.
그러나 한편, 교회 안에는 여전히 이 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토로하거나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지난 10년간 강의를 통해 만난 전국의 의식 있는, 다양한 연령층의 성도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CCM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이 음악에 문제가 없는가라고.
CCM의 시작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은 현대음악 양식의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현대음악 양식이란 그 시대에 유행하는 ‘대중음악 스타일’을 지칭한다. 간단히 말해 CCM은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탄생한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인 로큰롤에서 발전한 다양한 팝·록 스타일의 기독음악을 말한다. 일반 팝·록 스타일을 차용한 교회의 혁신적 찬양 문화는 1965년 미국의 한 가톨릭 교회에서 포크 음악을 미사곡으로 사용한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신교 CCM의 시작은 1969년 개신교 가수인 ‘래리 노먼(Larry Norman)’이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로큰롤(록) 음악에 신앙적 메시지를 붙여 내놓은 앨범 <Upon this Rock>으로부터다. 래리 노먼의 생각은 단순했다. 당시 히피 운동에 휩쓸렸다가 회의(懷疑)에 빠진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사로잡은 음악이자 사실상 그들의 내면에 이미 체화(體化)한 문화 코드인 로큰롤(록)음악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오늘날 CCM의 탄생이다. (로큰롤의 제왕이 엘비스 프레슬리라면, 래리 노먼은 CCM의 왕이다. 래리 노먼의 행적은 매우 이채롭고 복잡다단한데, 이 사람 안에 오늘날 CCM의 여러 가지 문제가 이미 다 들어 있다)
이 문화에 불을 지핀 또 하나의 주도적 인물은 70년대 초 히피 전도 사역으로 유명한 미 캘리포니아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로, 이들에 의해 시작된 CCM은 6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 예수운동(Jesus movement)과 합쳐지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CCM의 형식 파괴와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날로 가속화하였고 음반, 콘서트 등 연예 산업과 본격 결합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90년대에는 표적과 기사와 치유를 강조하는 독특한 오순절 은사주의로 세계 교회의 주목을 끌었던 존 윔버(John Wimber : 60년대 팝 듀오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편곡자. 1994년 사망)가 이끈 빈야드 교회 음악 등의 영향으로 CCM은 한층 더 자유분방한 모양으로 변화했다.
CCM이란 용어는 70년대 초 흑인영가(negro spiritual)와 가스펠(gospel music)을 주축으로 한 전통적 복음성가와 차별화한 용어인 Jesus Music, Jesus Rock이란 이름을 거쳐 70년대 말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대표적 대중음악 전문지 빌보드(Billboard)가 1984년 Inspirational이란 장르로 통칭하던 기존의 대중적 기독교 음악을 CCM과 Gospel로 분리하면서 일반화 됐다. 한국 기독음악계는 미국으로부터 80년대 중반부터 이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CCM이란 용어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기독음반 업계와 함께 이 문화를 적극 주도한 기독교 방송(CBS)이 CCM 전문 프로그램 등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한국인에게는 다분히 낯설고 애매모호한 CCM이라는 미국 용어가 그대로 한국에 정착됐다. 한편, CCM이 널리 확산되면서 과거 대중적 찬양을 일컫던 ‘복음성가’라는 용어는 ‘CCM’(현대 기독음악)이라는 세련된 외래 용어에 아예 흡수되거나 변두리로 쫒겨난 신세가 됐다.
CCM의 개념
CCM이 기존의 복음성가(gospel)와 구분되는 점은, 복음성가가 전통적인 기독음악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제한된(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적 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댄스는 물론 나아가 힙합, 헤비 메틀, 뉴 에이지 등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 대중음악의 모든 양식을 무제한으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음악 형식에 관한한, 교회 음악과 세속음악의 구분이 철폐됐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다. 또한 이 말은 기독교 음악에 세속 대중음악의 연예(entertainment).오락(amusement)적 요소의 자유로운 유입이 가능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CCM은 기존의 복음성가보다 음악적 다양성과 오락성(여흥요소)이 대폭 강화되어 일반 (세속)대중음악과 음악 형식면에서 ‘차이가 없는’ 대중적 기독음악이란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CCM 사역자인 H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CCM을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모든 대중음악’으로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이 좀 추상적이기도 한데, 아무튼 이 경우 CCM이 음악 형식은 물론 노랫말에 있어서도 기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로, 한층 더 확장된 포괄적·개방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필자는 CCM이 노정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이 용어가 가진 다소의 모호함과 지나친 개방성 혹은 포괄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념의 울타리가 지나치게 열려 있고 경계선이 느슨하다 보니 CCM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오거나 딴 청을 필 수 있는 여지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늘의 음악으로 복음을 표현한다”는 CCM 예찬론자들의 ‘듣기 좋은’ 슬로건에 현혹하여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마구’ 뒤섞어 버린 오늘날 교회의 찬양 문화가 혹 CCM은 아닌가? 차제에 CCM의 득세로 주객이 전도돼, 변두리로 밀려난 복음성가(이 말도 gospel song을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복음을 담은 거룩한 노래라는’ 개념이 ‘분명한’ 용어다)를 되찾아와 그 신분과 위상을 회복하는 한편, CCM은 그 용어의 개념에 걸 맞는 위치와 신분에 머물도록 조정하는 교회적 논의를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등대지기
출처:그리스도인과 대중문화
(이하 글에서 CCM은 가요, 팝, 록 등 일반 대중음악 양식을 차용하고 있는 기독 음악을 지칭함)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교회의 찬양 문화에 있어서 꾸준히 ‘지분’을 확대해 온 CCM은 이제 교회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중심적 찬양 음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회 입장에서도 청소년·청년층 부흥, 문화선교 등 교회 성장과 관련하여 CCM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분위기는 이미 확실히 정착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근래 CCM은 음악적인 면에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다양한 대중음악 스타일의 도입을 시도하는 한편, 근년 신학대를 중심으로 CCM 학과들이 신설되는 등 양적 성장과 더불어 그 위상과 지위(?)도 격상하는 변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 문화에 대한 수용, 옹호론을 넘어 예찬론이 대세를 이룬 지금, ‘CCM 득세’에 대한 교회 내 불만의 목소리와 비판적 시선은 점점 수그러들고 있다.
그러나 한편, 교회 안에는 여전히 이 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토로하거나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지난 10년간 강의를 통해 만난 전국의 의식 있는, 다양한 연령층의 성도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CCM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이 음악에 문제가 없는가라고.
CCM의 시작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은 현대음악 양식의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현대음악 양식이란 그 시대에 유행하는 ‘대중음악 스타일’을 지칭한다. 간단히 말해 CCM은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탄생한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인 로큰롤에서 발전한 다양한 팝·록 스타일의 기독음악을 말한다. 일반 팝·록 스타일을 차용한 교회의 혁신적 찬양 문화는 1965년 미국의 한 가톨릭 교회에서 포크 음악을 미사곡으로 사용한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신교 CCM의 시작은 1969년 개신교 가수인 ‘래리 노먼(Larry Norman)’이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로큰롤(록) 음악에 신앙적 메시지를 붙여 내놓은 앨범 <Upon this Rock>으로부터다. 래리 노먼의 생각은 단순했다. 당시 히피 운동에 휩쓸렸다가 회의(懷疑)에 빠진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사로잡은 음악이자 사실상 그들의 내면에 이미 체화(體化)한 문화 코드인 로큰롤(록)음악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오늘날 CCM의 탄생이다. (로큰롤의 제왕이 엘비스 프레슬리라면, 래리 노먼은 CCM의 왕이다. 래리 노먼의 행적은 매우 이채롭고 복잡다단한데, 이 사람 안에 오늘날 CCM의 여러 가지 문제가 이미 다 들어 있다)
이 문화에 불을 지핀 또 하나의 주도적 인물은 70년대 초 히피 전도 사역으로 유명한 미 캘리포니아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로, 이들에 의해 시작된 CCM은 6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 예수운동(Jesus movement)과 합쳐지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CCM의 형식 파괴와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날로 가속화하였고 음반, 콘서트 등 연예 산업과 본격 결합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90년대에는 표적과 기사와 치유를 강조하는 독특한 오순절 은사주의로 세계 교회의 주목을 끌었던 존 윔버(John Wimber : 60년대 팝 듀오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편곡자. 1994년 사망)가 이끈 빈야드 교회 음악 등의 영향으로 CCM은 한층 더 자유분방한 모양으로 변화했다.
CCM이란 용어는 70년대 초 흑인영가(negro spiritual)와 가스펠(gospel music)을 주축으로 한 전통적 복음성가와 차별화한 용어인 Jesus Music, Jesus Rock이란 이름을 거쳐 70년대 말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대표적 대중음악 전문지 빌보드(Billboard)가 1984년 Inspirational이란 장르로 통칭하던 기존의 대중적 기독교 음악을 CCM과 Gospel로 분리하면서 일반화 됐다. 한국 기독음악계는 미국으로부터 80년대 중반부터 이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CCM이란 용어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기독음반 업계와 함께 이 문화를 적극 주도한 기독교 방송(CBS)이 CCM 전문 프로그램 등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한국인에게는 다분히 낯설고 애매모호한 CCM이라는 미국 용어가 그대로 한국에 정착됐다. 한편, CCM이 널리 확산되면서 과거 대중적 찬양을 일컫던 ‘복음성가’라는 용어는 ‘CCM’(현대 기독음악)이라는 세련된 외래 용어에 아예 흡수되거나 변두리로 쫒겨난 신세가 됐다.
CCM의 개념
CCM이 기존의 복음성가(gospel)와 구분되는 점은, 복음성가가 전통적인 기독음악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제한된(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적 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댄스는 물론 나아가 힙합, 헤비 메틀, 뉴 에이지 등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 대중음악의 모든 양식을 무제한으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음악 형식에 관한한, 교회 음악과 세속음악의 구분이 철폐됐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다. 또한 이 말은 기독교 음악에 세속 대중음악의 연예(entertainment).오락(amusement)적 요소의 자유로운 유입이 가능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CCM은 기존의 복음성가보다 음악적 다양성과 오락성(여흥요소)이 대폭 강화되어 일반 (세속)대중음악과 음악 형식면에서 ‘차이가 없는’ 대중적 기독음악이란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CCM 사역자인 H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CCM을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모든 대중음악’으로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이 좀 추상적이기도 한데, 아무튼 이 경우 CCM이 음악 형식은 물론 노랫말에 있어서도 기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로, 한층 더 확장된 포괄적·개방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필자는 CCM이 노정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이 용어가 가진 다소의 모호함과 지나친 개방성 혹은 포괄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념의 울타리가 지나치게 열려 있고 경계선이 느슨하다 보니 CCM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오거나 딴 청을 필 수 있는 여지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늘의 음악으로 복음을 표현한다”는 CCM 예찬론자들의 ‘듣기 좋은’ 슬로건에 현혹하여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마구’ 뒤섞어 버린 오늘날 교회의 찬양 문화가 혹 CCM은 아닌가? 차제에 CCM의 득세로 주객이 전도돼, 변두리로 밀려난 복음성가(이 말도 gospel song을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복음을 담은 거룩한 노래라는’ 개념이 ‘분명한’ 용어다)를 되찾아와 그 신분과 위상을 회복하는 한편, CCM은 그 용어의 개념에 걸 맞는 위치와 신분에 머물도록 조정하는 교회적 논의를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등대지기
출처:그리스도인과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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