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시스템의 지배적 원리와 공공성의 사회윤리
한국 사회시스템의 지배적 원리와 공공성의 사회윤리
한국 사회시스템의 지배적 원리와 공공성의 사회윤리 **교회/신앙2008. 8. 25. 16:22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765한국 사회시스템의 지배적 원리와공공성의 사회윤리신 진 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1한국사회에서 공공성(publicness)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우리가 공공부문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조직과 제도를 방어하거나 확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행위 범례를 정의하고 이들의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원리를 공공성의 철학에 입각해서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규칙과 사회제도의 작동양식을 표현하는 이념적․제도적 조직 원리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 조직의 원리들은 문화적 심층구조의 상징적 저장소에 터하고 있지만 이는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지향점을 명시하는 문화적 코드들로 변형되며, 나아가 그것은 사회 멤버십에 대한 정의, 자원분배의 원리, 정당성의 원천 등을 규정하는 세부적 지침들로 구체화됨으로써 실제적인 제도적 원리로서 작동하게 된다.현실 속에서 한 사회를 조직하는 지배적 원리들은 구성원들 간의 합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사회질서의 상을 추구하는 집단들 간의 특수한 세력관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어떤 지배적 원리가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규제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사회내적 갈등과 투쟁을 해소해주는 ‘통합력’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사회를 ‘사회’로서 유지시키는 규제력과 더불어, 사회를 ‘만인에게 좋은 사회’로 만들어주는 통합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성의 원리는 한국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을 재조직하는 철학적 가치로서 실천적 의의를 갖는다.2많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공성 의제가 부상한 국제적 맥락은 복지국가적 타협의 붕괴와 그것의 방어 내지는 복원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방어하거나 복원해야 할 공공영역 자체가 지극히 저발전 되어왔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의식 속에 공공성의 관념 자체가 대단히 낯선 것으로 남아 있다. 전력․가스․교통․수자원 등 몇몇 분야에서는 부분적으로 공공적 소유와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교육․환경․주택․의료․사법 등과 같이 강한 공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다른 영역들에서 한국인들은 주로 사적인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부동산 재테크를 통한 세대내 계급이동, 사교육을 통한 세대간 계급이동, 사적인 관계망에 의사․판사․검사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그토록 절박한 열망이 되게끔 하는 구조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오늘날 많은 이들은 한국현대사를 산업화의 시대와 민주화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러한 구분방식은 권위주의의 점진적 약화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대 이래로 한국사회에 점점 더 깊이 뿌리내려 온 ‘소유적 시장사회’와 ‘수동혁명적 발전주의’의 원리가 민주화 이후에도 결코 근본적으로 도전받지 않았거나, 혹은 오히려 더욱 철저히 관철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소유적 시장사회는 노동력의 상품화를 포함하여 시장관계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로 깊이 침투하는 사회모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투쟁한다. 수동혁명적 발전주의는 지배집단이 종속적 집단의 이익과 지향을 실질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채, 지배집단이 규정한 사회 전체의 변화 방향에 모든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는 발전논리다. 한국에서 이 두 가지 사회조직의 원리는 오랫동안 전통적 신분질서 혹은 군사주의적 원리와 공존해왔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성숙과 민주화의 진행과정 속에서 이 중 가장 지배적인 원리가 되고 있다. 1992년 이후의 민간정권들은 군사주의와 권위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사회를 더욱 철저한 시장사회로 만들었으며 종속집단의 사회적 비전을 체계적으로 배제해왔다.오늘날 한국에서 공공성의 이념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곳에서 공공성을 지향하는 운동은 단지 공공부문이라고 불리는 몇몇 조직과 제도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더 많이 갖기 위해 모두와 투쟁하고,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전체의 역사를 주도하는” 지배적 사회조직의 원리를 이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주요한 집단들이 공공성의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러한 이상(理想)과 거리가 있다. 먼저 우리는 정치 엘리트와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시장 메커니즘의 체계효율성과 공리주의적 피드백 효과에 대한 믿음이 꾸준히 확산되어왔음을 관찰할 수 있다. 민주화 과정이 개시되기 전까지 한국의 권력중심부와 정부 관료들은 권위주의적 공공성 관념을 갖고 있었다. 즉 이들은 권력기구, 정부기관, 그리고 군부․경찰 등의 국가강제기구를 ‘공적 영역’과 동일시하여, 이들 조직과 인력이 공공성을 배타적으로 담지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관념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데 필수적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 성장하고 있던 공무원 집단을 군부정권의 정치적 기반으로 만드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 권위주의 세력은 그들이 추진한 근대화 전략의 성공에 의해 그들 자신을 위협할 부르주아지를 성장시켰고, ‘국가=공공성’의 등식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시도는 이미 80년대부터 자본의 불쾌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정당 지도자들과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 과연 훌륭히 적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정당․정부 세력 자신이 경쟁․시장․효율을 앞세워, ‘경쟁력’을 정치공동체의 유일한, 혹은 최소한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은 시장사회 속에서의 경쟁이 공공적 결과를 낳으리라는 믿음을 표방하지만, 전체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거부하는 시장중심주의는 경쟁적 상호작용이 공공선이라는 특정한 발전방향으로 전개되리라는 것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한다.또한 전경련 등의 기업인 단체와 자유기업원․자유주의 연대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은 정당․정부 인사들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공성의 이념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경쟁․효율이라는 핵심 상징을 중심으로 현실해석과 미래비전을 프레이밍 하면서, 복지․평등․분배 등과 같은 공공성의 가치들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자유주의의 이념은 군사화된 사회다윈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 프레임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한경쟁’의 시장 은유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전쟁 은유와 결합시킨다. 세계는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터이며,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논리다.이들은 지구적 경쟁체제 안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아야 함을 역설하지만, 그것을 위해 먼저 우리 안에서 죽고 사는 싸움을 해야 함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그러한 생존 전략을 통해 살아남는 자가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이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전체의 이익’이란 살아있는 인간들의 이익이 아니라 추상적인 체계효율성이다. 문제는 체계효율성이 곧 사회적 통합의 정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일방적으로 체계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집단 간의 이익조정과 상호이해를 약화시켜서, 그 사회를 영구적 갈등상태로 만들고 나아가 체계효율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3한국 사회시스템을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게끔 만들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공격대상은 바로 국가다. 왜냐하면 국가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과도한 경쟁, 사적 이익추구의 제어, 사회적 양극화 등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공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먼저 세계사적 맥락을 짚어보자.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의 시장화․상품화․사유화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기 위한 논거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것이 바로 “글로벌 트렌드”라는 미래학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이래로 진행되어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 속에서 국가의 공적 기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두 가지 접근방식이 있다. 그 하나가 이른바 국민국가의 약화라는 거대담론이라면,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의 위기 담론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국가의 공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자본의 이익과 시장기제에 굴복시키려는 기획을 포괄적으로 시도해왔으며, 또한 그 시도는 다양한 정도로 관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우리는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시켜 마치 단 하나의 트렌드만이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듯이 묘사하는 거대담론을 경계해야겠다. 이러한 담론들은 종종 정치적 기획을 위한 인식기반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기획인 경우가 많다.먼저 ‘국민국가의 약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보자. 이 거대담론은 자유주의적 최소국가의 이념이 거역할 수 없는 글로벌 메가트렌드인 듯이 역사를 재구성하는 담론적 실천의 일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제적 세계화와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국민국가의 행위능력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차별적이며, 어떤 측면에서 국민국가는 세계화 또는 초국가주의에 의해 위협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선도하고 추진하는 핵심 주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국민국가의 강화/약화 경향이 공존하는 현실의 양면성이 지구적 수준에서의 국가간 권력불평등의 심화 경향과 밀접히 관련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남미의 취약한 국가들이 세계화의 시련 속에서 심각한 국가능력의 침식, 혹은 심지어 국가조직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의 국가기구는 이제 지구적 범위에서 신속하고 포괄적인 경제적, 행정적,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가의 국제화’는 지구적 갈등과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긍정적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주되게는 중심부 국가의 국민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국에 근거지를 둔 자본의 세계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국민국가의 약화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물결인 것처럼 말하는 거대담론은 국가능력의 국제적 불평등 심화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현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우리는 이 이데올로기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복지국가의 문제로 들어가 보자. 흥미롭게도 신자유주의자들과 그에 대한 급진적 반대자들은 그 이념적 지향의 날카로운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가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세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를 마감하기까지의 반세기 동안 국가재정은 EU와 OECD 국가들 대부분에서 비약적으로 증대했으며, 이 증대된 국가의 공공지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공적 사회복지 지출이었다. 20세기말에 대부분의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에 의한 복지 지출은 군비 지출의 10배가 넘고, 국가의 연구개발 투자의 10~12배에 달하며,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지출의 5~6배에 달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은 억압 기능을 주로 하는 국가형태로부터 사회체계의 효과적 작동과 구성원들의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국가형태로 변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전된 두터운 복지국가의 제도적 앙상블은 강한 제도적 생존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복지국가의 축소는 그러한 역사적 토대를 갖지 못한 나라들이 아직까지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한 복지수준으로의 축소를 의미한다. 우리는 지구상의 여러 국가들의 조직체계와 재정편성에 구조적으로 각인된 이러한 역사적 차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그렇다면 세계자본주의의 짧은 황금기를 지난 1980년대 이후 서구 복지국가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2차 대전 이후 포괄적으로 발전했던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이 치열해진 국제경쟁의 환경 속에서 과거의 형태를 보존한 채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위기와 제도적 수정을 계속해서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기의 성격과 정도와 원인, 그리고 그 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방식은 지역별, 국가별로 몹시 다양하다. OECD나 EU의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맹공을 펼쳐온 지난 20여 년 동안 국가의 복지규모가 변화해 온 양상은 상당히 복잡하다.복지국가에 대한 우익의 반격이 개시된 1980~1995년 시기에도 EU와 OECD 가입국들에서 국가의 공적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놀랍게도 대부분 증가 추세를 보여주며, 오직 네덜란드만이 이 시기 동안 약하게 감소했을 뿐이다. 한편 국가의 실질적 사회보장비율, 즉 실업과 고령인구 증가로 인한 수혜 대상자의 증가에 대해 국가의 공공정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했는지를 보더라도, OECD 국가 중 실질적 지원이 감소한 국가는 뉴질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10개국뿐이었다. 2000년대를 포함한 변화 추세를 보더라도,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공적 사회보장 지출의 비중은 전반적인 하락 추세라기보다는 국가간 수렴 경향을 보여준다. 즉 전통적으로 국가의 복지지출 규모가 매우 컸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1993~94년경부터 하락 추세를, 대륙 유럽 국가들은 약한 상승 또는 하락 추세를, 그리고 일본, 한국, 호주 등 전통적으로 국가의 공적 지원이 매우 약했던 나라들은 완만한 상승 추세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국가군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대단히 크다.4‘국민국가의 약화’라는 거대담론이 국가 간 권력불평등의 심화라는 현실을 왜곡하고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지국가의 위기’를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관점 역시 오늘날 복지국가가 다양한 위기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버텨낼 저항력을 갖고 있을뿐더러, 가속화된 국제경쟁의 환경 속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보수 세력들은 복지국가의 위기와 위축이 지구적 트렌드인 것처럼 현실을 오도한다. 이들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국가의 공적 역할이 축소되는 측면만을 선택적으로 부각시키며, 그것이 강화되거나 복원되는 측면은 체계적으로 은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세계상은 우리에게 메가트렌드에 적응할 것이냐 정면으로 거역할 것이냐, 시장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냐 패자가 될 것이냐라는 무리한 선택을 강요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시장경쟁의 원리를 내면화시키는 강력한 사회통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그것이 승리한 것 이상으로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며, 사람들은 실제적 패배 이상으로 패배에의 불안 때문에 시장행위자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완벽하게 육화하고자 애쓴다. 우리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담론적 환경을 만들어내야 하며, 또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체험의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한국에서 국가기구와 그 관료집단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발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며, 폭넓게 성장해왔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십여 년 동안 확장시킨 국가관료 조직은 단지 양적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군사주의적 위계와 명령체계, 그리고 조직 내적 결속으로 강력한 정책관철 능력을 발휘해왔다. 이 때문에 국민들에 대한 책임성보다는 관료집단 내부의 결속과 보호가 우선시되어왔으며, 그에 상응하여 국민을 위해, 국민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집단이라기보다는 국민 위에서 강제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어왔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형성된 관료엘리트 집단은 국가의 공공성을 약화시킨 주범이다. 이들은 국내 명문대학 졸업, 미국 유학, 고시 제도 등의 선별장치들을 통해 특권화된 엘리트 카르텔을 형성해왔으며,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권력과 관료조직 전체에 대해 강한 영향과 비토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는 독재권력에의 충성으로 권위주의적 국가자율성을 관철시킴으로써, 이후에는 재계와의 유착으로 국가의 계급적 편향을 강화함으로써, 국가의 공공적 성격을 퇴색시켰다.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때문에 한국의 국가는 국제비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가에 요구되는 공공적 기능을 포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규모와 형태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가재정 규모, 예를 들어 GDP에서 국가의 세입과 세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들 중 일본과 더불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가의 복지 지출 규모의 측면에서도 한국은 OECD 가입국들 가운데 최하위권이며, 노무현 정권 하에서 국가의 복지지출이 적잖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은 매우 약한 복지국가를 갖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점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간의 조응성 문제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을 펼치면서, 그것이 양산한 사회적 문제들을 봉합하기 위한 대책으로 복지예산을 증가시켜왔다. 즉 공적 복지 수혜대상자를 대폭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복지지출을 높여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공적 사회보장비율을 따져봤을 때, 한국 국가의 공적 복지기능이 과연 강화되었는지 몹시 의문스럽다. 공공부문 고용 추세 역시 최근에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국민의 복지수준 향상과 고용창출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공적 복지 부문의 종사자 규모는 여전히 대단히 작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의 국가는 권위주의의 유산을 너무 많이 떠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에 부합하는 공적 기능을 너무 적게 수행하고 있다.지금 한국 국가의 공공성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공공부문을 축소하느냐 보존하느냐, 비판하느냐 방어하느냐의 일반적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한국 국가의 조직편성, 재정구조, 행위패턴을 지배해 온 억압적-발전주의적인 원리를 약화시키고,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공적 국가의 성격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즉 사회 위에서 군림해 온 권위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부패한 관료조직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 통합과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강박적 국가혐오증에 빠진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작고 효율적인 국가’라는 앙상한 슬로건밖에 알지 못한다. 만약 진보 진영의 대응이 이들의 거울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귀결은 ‘비효율적이더라도 큰 국가’라는 괴상한 해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중요한 것은 국가가 ‘얼마나’ 커야 하느냐가 아니라, 국가를 ‘어떤 관점에서’ 개혁하고 재편성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 관점이란 바로 ‘국가를 경유하는 시민적 연대’라는 공화주의의 이념이다. 이 측면에서 수십 년 동안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역할을 해 온 한국 국가는 자신의 공공적 역할을 더욱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구 복지국가 모델들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도입하는 ‘추격혁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세미나 5사회학에서 본 공공성의 문제-일시 _ 2008. 7. 5(토) 오전 10~12시-장소 _ 여전도회관 8층 회의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와사회연구원,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출처] 한국 사회시스템의 지배적 원리와 공공성의 사회윤리|작성자 e_library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