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토론 中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토론 中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토론 中 **교회/신앙2008. 8. 25. 16:18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630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토론 中성 현 창 박사와세다대 동양철학 전공1.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 - 공공성과 연관된 동양철학의 세 가지 장면을 중심으로-」을 읽고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을 위한 시도는 동아시아의 전통과 서양 전통의 만남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교 문화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현존재’의 실존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사상사에서 서로 대립되는 사상(유가와 도가)과 종교(유교와 도교‧불교)가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 양상을 소개하면서 작금의 교회와 기독 시민운동 단체가 지향해 나갈 바를 제시한 본 발표는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동양철학적 통찰이 무엇인지 시대를 종횡하면서 더욱 예를 곁들어 장면 장면들을 상세하게 소개한 본 발표문에 대해서는 중국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본인도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다만 몇 가지 지엽적인 사항을 짚어보고자 한다.유가뿐만 아니라 도가에 있어서 인간의 이상형은 성인(聖人)이다. 성인의 심경은 중용의 “힘쓰지 않아도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고”와 논어에서 “일흔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고 하듯이, 일상의 의식 작용이 자연스럽고, 게다가 결과적으로 규범에서 일탈하지 않는다고 하는 상태이며, 마음이 최종적으로 외계에 대한 반응의 자연스러움을 항상화함으로써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본 발표문의 버스 비유를 관점을 바꾸면 성인에 해당하는 사람은 운전사와 잠이 들어 있는 승객이 될 수도 있다. 능변(能變)할 수 있는 운전사는 유교적 성인이고 잠이 들어 있는 승객은 노장적 성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사회개혁에 소극적이고 은둔적인 노장의 모습은 선잠에서 깬 사람이 아닌 듯하다. 유가의 이상적인 국가 통치론은 내성외왕(內聖外王)으로 논어에서 "무위하면서 잘 다스리신 분은 아마도 순(舜)임금인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였는가? 자기 몸을 공손히 하여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처럼 순임금을 표창하고 있다. 운전사는 갈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핸들과 속도 조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성인의 모델인 공자는 마이크를 잡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하지 않는다.도학(道學)에서는 유교 경서의 용어를 사용하여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수양법을 고안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경(敬)이다. 거경(居敬)은 좌선과 같이 무념무상이 되거나 공안(公案)을 생각하거나 존사(存思)와 같이 눈앞에 없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형태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눈앞에 있는 현실의 대상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즉 마음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의식을 기울이고 있는 사물이 보이는 방식의 선명함의 정도에 의해서 그 정도가 측정되는 것이다. 물론 대상이 없는 경우에는 안정된 심경을 유지하는 것도 경인 것이고, 따라서 경은 정좌(靜坐)를 포함한다. 그러나 경을 실천하기 위해서 정좌만 강조한다면(11쪽) 일상을 떠난 반쪽짜리 경 실천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전한 기도를 할 때의 하나님을 향한 순결하고 청결한 마음이 그대로 유지가 되어 일상생활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기도는 빈 수레와 같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발표자가 언급하듯이 정좌와 기독교의 기도가 유사하기보다는 기도는 경과 같아야 할 것이다.참고로 말하면 일본의 공공철학 연구회에서 제창한 활사개공(活私開公)을 주자학의 공사(公私)개념에서 찾으면서 거경을 사를 공으로 여는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수양임을 암시하는 난바 유끼오(難波征男)의 「朱子學における公と私と公共(주자학에 있어서의 공과 사와 공공)」이 있다.주자학과 공공철학과의 관련여부에 관심이 있었던 차에 본 세미나의 지정토론자로 부탁을 받고는 본 발표의 내용에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인지 본 발표문이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공공성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번외로 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2.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영어에서 public이란 형용사를 생각할 때,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public school는 사립학교이고, 미국에서는 공립학교를 의미하듯이 영어권에서도 public의 의미는 다의적이고, 그것을 context에 응해서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영영사전을 살펴보면, 세 개 정도의 의미가 있다. 먼저, 일반사람(people)과 관련한 이라는 의미. 다음으로 감추어져 있지 않는, 공개의 (not hidden, open)라는 의미. 독일어의 öffentlich는 바로 이런 의미이다. 거기에서 또 하나는 정부의(governmental, official)라는 의미. public center(공공부분)을 일컫었을 경우는 그런 의미이다. public center라면 바로 정부가 돈을 냈다고 하는 의미이지만 public company라고 말할 경우는 영국에서는 국영회사가 아니고 공개주식회사이라는 의미이다.이와 같이 public이라는 형용사는 다의적이지만 publicness이라는 명사형의 영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명사를 명확히 정의하여 사용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유명한 한나 아렌트라는 유대계 독일인 여성철학자이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에서 다음의 두 의미로 publicness를 정의하고 있다. 그 하나는 “만인에 의해서 보여지고 개방되어 가능한 한 가장 널리 공시되어 있는” 즉 공개성이라는 의미, 또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하는 세계”라는 의미이다. 공통하는 세계(common world)를 publicness(공개성)이라고 그녀는 정의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정의는 영영사전의 정의 관계지우면 “일반사람에 관한”이라는 의미와 “공개의”라는 의미에 상당할 것이다.아렌트와 함께 공공성의 의론을 생각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위르겐 하바마스이다. 그의 경우도 öffentlichkeit를 공개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렌의 경우, 공개성이 그리스의 폴리스를 모델로 삼았던 것에 비해 하바마스는 18세기 유럽의 시민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다.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종래의 공사이원론을 대신하여 새로운 파라다임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공공철학의 하나의 큰 과제이다. 공사이원론은 주로 정부나 국가, 사법을 공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것 이외를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고에 따르면 경제와 종교도 모두 사적인 레벨로 한데 묶어지고 만다. 이것에 대해서 governmental, official이라는 의미에서의 「정부의 공」, 시민 국민, 주민의 총칭으로서의 「민의 공공」과 사유재산이나 영리활동이나 프라이버시 등의 「사적 영역」을 구별하면서 그 상호작용을 고찰하고자 한 삼원론적인 파라다임을 실체개념으로서가 아니라 관계개념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견해가 필요하며, 그에 대해서는 졸저 公共哲学とは何か에서도 주장하였다.- 이상은 山脇 直司 「公共哲學とは何か」(보고서)에서 발췌이나가끼 히사카츠(稲垣久和)입장과 관점에 따라서 Public은 국가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시민적인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Public을 공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회피하여 공적을 official에 대응시킴. 그리고 Public을 사람들의, 시민적인, 공유의, 열린 사항에 중점을 두어 해석하여 「공공적」으로 표현하는 입장을 취함.공과 사에는“사이(간격)”가 존재하고, 사에서 공으로 매개하는 역동적인 개념이 공공이다. 사는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이며, 타자가 아닌 바로 나의 인격이고 법률적으로는 권리의 주체이다.사회구조를 개인-집단이라는 지표가 아니라 자기-타자라는 지표로 이해하고자 한다. 즉 타자와 인격적인 관계를 고려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사를 살림과 동시에 타자도 살리며, 거기에서 공공성이 달성된다.(영성=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care)- 이상 稲垣久和 国家‧個人‧宗教에서 발췌3. 중국에서의 공(公)개념중국에서 공의 개념은 이미 주역, 상서, 시경 등에 나타나는데, 공동체의 수장, 관청, 소유물 등을 설명하는 용어이었지만 세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주공(周公)‧소공(昭公)과 같은 존칭과 조정, 정부, 국가와 같은 수장이다. 그리고 둘째는 공전(公田)‧공당(公堂)‧공개와 같은 공동의 의미이다. 특히 선행 연구의 지적과 달리 섯째로 공평‧공정‧平分과 같은 윤리적인 의미도 보인다. 공에 윤리적인 의미가 함축된 근거는 만물의 생성 조화이며 근원인 천(天)의 무사심(無私性)에 있다. 한편 사는 그 용례가 주역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공만큼 빈번히 보이지는 않지만, 공평‧공정에 반대되는 사정(私情)‧사의(私意)와 사전(私田)‧사가(私家)와 같이 개인적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공과 사는 영역론적뿐만 아니라 가치론적으로도 구분된다. 그리고 공과 사의 관계는, 혈연적 연대 의식을 중시한 시대이든 사회적 신분적 연대 의식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이든 국가체계가 완성된 시대이든, 또한 순자와 법가에 있어서, 선고후사(先公後私)를 유지한다. 적어도 개인의 욕망이 긍정되는 명말(明末)까지는.송대(宋代)에 이르러 공‧사 개념은 천리(天理)의 공과 인욕(人欲)의 사와 결합됨으로써 윤리적 영역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래서 주희는 비록 조정(=공)일지라도 공정성을 가지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특히 주희에 있어서 공은 내적 실감을 동반하는 의식의 장에 적용된다. 공이 의식의 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공으로 여겨지는 의식의 움직임이 본래 만인에게 공통한다는 의미이다. 즉 의식이 공이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활동도 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희는 상소문에서 정치의 근본으로 황제의 正心을 제일로 강조한다. 그리고 주희는 공을 仁(사랑의 원리, 마음의 덕목)의 본질적 원리로 파악하여 인간 상호간의 사회적 윤리적 소통이라고 한다. 한편 사는 공동체와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적인 자세로 관계의 단절로 부정되고 있다. 그래서 공‧사 개념은 마음의 문제(道心=공, 人心=사)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어쨌든 주희에 있어서 사는 자기의 사사로움으로 공과 공존할 수 없는, 대동(大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장애 요인이다. 이처럼 사회적 조화를 가로막는다고 부정되었던 사의 긍정, 즉 개인의 욕망긍정이 명나라 말기의 이시와 청나라 중엽의 대진에게 나타나면서 중국의 공사론은 대전환을 맞이한다. 특히 고염무는 “천하의 사를 합하여 천하의 공을 이룬다”고 하여 공이 민의 입장에서 주장되었고, 공은 더 이상 지배자의 독점물이 아니고 천하의 민 상호간의 원리가 되었다. 따라서 명나라 말기의 공은 사와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 사를 내포하고 황제만이 아니라 민까지를 포함해서 함께 충족시키는 공으로, 황제와 민 사이의 사회적 관련을 일컫는 공(共)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대중이라는 집단성을 “인심(人心)의 공”이라고 한 고염무의 의식은 중국의 시민운동의 맹아로 평가받는 동림당과 복사의 공론 형성의 근거가 된다. 중국의 공론은 중국의 공이 사회의 수평적인 의사형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서구의 공공성(public)과 일맥상통함을 시사한다. 그것은 중국의 공의 자의에 공개성이 함축된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동양에서의 공론이 서구의 공공성의 개념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청조(淸朝)의 집권에 의해서 공론성의 싹이 잘려 중국에서의 시민사회의 형성이 좌절되었다는 지적은 동아시아의 공공성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 양
동 양
public
公
일반인(people)에 관한
×
공개한, 개방된(not hidden, open)
公田‧公堂‧公開와 같은 공동
정부의(governmental, official)
조정, 정부, 국가와 같은 首長
×
공평‧공정‧平分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세미나 4철학에서 본 공공성의 문제-일시 _ 2008. 4. 26(월) 오전 10시~12시-장소 _ 여전도회관 8층 회의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출처]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토론 中 |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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