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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공공신학

기업과 공공신학


기업과 공공신학  **경제/기업   
2008. 8. 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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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공공신학
강 원 돈 교수

한신대 신학과(사회윤리)

1. 오늘 국민경제의 운영과 기업 경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이다. 생산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를 전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하고, 노동절약적 합리화와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를 서슴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자연 환경의 보호를 위한 국가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서 맡아야 할 공적인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거침없이 구현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주주자본주의는 오늘날 매우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극단성이 발현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장경제에서 기업에 부여된 역사적 조건들 때문이다.


2. 근대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발전은 영리와 가계의 분리를 역사적 조건으로 하였다. 시장경제에서 가계는 소비와 노동력 제공을 맡고 기업은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판매를 맡는다. 그리고 가계와 기업은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을 통해 서로 연관을 맺는다.

기업은 이러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다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며 생존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업은 비용절감 압력 아래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윤 추구와 합리성의 추구는 기업의 생존전략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목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성공은 채산성으로 판가름나고, 채산성은 경제적 효율성을 가늠하는 준거가 된다.

이와 같은 효율성 추구의 압력 아래서 수행되는 기업활동은 생활세계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체제로 발전하고, 경제적 합리성은 생활세계의 규범적 합리성과 질적으로 구별되기에 이르렀다.

 

3. 위의 2항을 염두에 둔다면, 기업이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수익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을 무조건 당연시할 수는 없다. 기업의 합리성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여 그 합리성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식을 논의하는 것은 기업의 공적인 책임을 논의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스위스의 경제철학자이자 경영학자인 페터 울리히(Peter Ulrich)의 담론이론적 기업 이론은 이 문제를 푸는 데 참고할 만한 통찰을 제공한다.

 

3.1 페터 울리히는 채산성 개념으로 축소된 기업의 합리성 개념을 비판하면서 질적으로 더 높은 합리성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의 기업 이론은 칼 오토 아펠(K.-O. Apel)과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의 담론윤리에서 출발한다. 울리히는 기업의 사회경제적 합리성을 실천이성의 빛에서 살피는 것을 핵심 과제로 설정한다. 아펠이나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전략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구별하고, “합의지향적인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대화의 경제”를 추구한다. 그는 기업자본이 “중립화”될 때 비로소 이러한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기업자본의 중립화와 관련하여 그가 주목하는 것은 주식회사가 발전하면서 경향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의 “의사공기관”(pseudo-oeffentliche Institution)으로서의 위상이다.

 

3.2 “의사공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할 의사소통적 경영은 두 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탈한계적인” 의사소통공동체의 규제적 이념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 안에서 활동하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도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일이다. 기업의 사회정책,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을 위한 사회계획, 시민사회를 위한 봉사 등 기업 활동에서 비롯되는 외부효과를 내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울리히는 생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기업의 존재이유와 관련된다. 비록 기업이 탈한계적인 의사소통공동체의 이념에 따라 경영의 사회경제적 우선순위에 충실하다 하더라도, 기업은 중립화된 기업 자본을 투입할 때 “전략적 효과의 달성”과 “공정의 효율성 실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것과 뒤의 것은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합의도출의 합리성은 전략적 목적합리성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 이것과 꼭 대립할 이유는 없다.”

 

3.3 따라서 담론이론적 기업이론은 기업의 성공을 측정하는 기준을 세 가지로 설정한다. 의사소통적 합리성, 전략적 효과, 공정의 효율성이 그것인데, 기업은 이 기준들을 서로 다른 차원들에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생산요인들을 효율적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비용 압력이나 기술 진보를 고려하면서 생산 공정의 “생산성잠재력”을 최대한 구축하여야 할 것이고, 생산요인투입공정의 도구적 합리성에 입각하여 효율성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둘째, 기업 체제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경영혁신 압력과 구조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전략적 “성공잠재력”을 최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는 기업체제의 전략적 합리성에 의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셋째, 기업정책을 “이해”시키는 차원에서 기업은 규범적 경영을 시도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정당화의 압력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대응하여 기업정책의 “이해잠재력”을 최대화하는 일이다. 기업경영의 정당성을 시민사회에 설득하고 기업 활동을 위한 시민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기업은 의사소통의 합리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기업 활동에 대한 시민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면 기업은 의사소통에 성실하여야 한다.


3.4 페터 울리히의 제안은 자원할당의 효율성이나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둘 뿐, 노동의 인간화와 기업 지배구조의 민주화, 기업 활동의 시민권 확보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 기업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시민사회도 울리히의 제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서 기업의 공적인 책임을 다각적으로 물을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3.5 물론 울리히의 제안은 몇 가지 점에서 보완될 필요도 있다.

 

3.5.1 우선, 주식회사의 발전사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경향으로부터 기업자본의 중립화 논리를 도출하는 그의 입장은 주식회사를 “의사공기관”으로 분식하고 있을 뿐, 거대주식회사가 시장경제체제에서 공익에 앞서 사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모호성은 울리히가 자신의 요청을 마치 현실인 양 전제하고 자신의 이론을 규범적으로 구성하였기 때문에 나타난다. 자본가의 이해관계로부터 자본의 운영을 분리시키는 것을 자본의 중립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본가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의 중립화는 그것을 이루게 하는 제도적 강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이 제도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고서는 자본가의 이해관계에 대해 중립성을 취하면서 자본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길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3.5.2 울리히의 기업이론과 관련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한 가지 점은, 이윤의 최대화를 추구하여야 할 기업의 현실성을 고려해 볼 때, 경영이 앞에서 말한 작업상의 효율성과 전략적 성공을 의사소통적 이해잠재력과 대립시키지 않고, 그 아래 놓고 통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의사소통적 이해잠재력을 향상시킨다 해도, 그것은 기업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광고정도에 그치지는 않을까?

 

3.5.3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울리히의 사회경제적 합리성 개념에는 유감스럽게도 기업활동의 생태학적 차원과 미래를 위한 책임의 차원이 고려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기업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로 설정한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사람들만이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초대될 수 있다. 자연은 논외다. 자연은 의사소통능력이 없다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후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의사소통의 현장에 부재하기 때문이다.

 

4.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기업의 문제를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티프는 청지기 사상이다. 청지기 사상은 하나님이 맡긴 재물을 잘 관리해서 살림살이를 잘 꾸려야 한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청지기 사상을 하나님과의 관련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청지기 사상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도 있다.


4.1 청지기직은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자기의 소유로 고집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 재물을 잠시 맡아 관리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은 로마의 물권법에 뿌리를 둔 근대적 소유권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근대적 소유권은 재물에 대한 소유자의 절대적 지배권을 의미하는데, 오늘처럼 기업의 자산규모가 커지고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근대적 소유권 사상만 가지고서는 기업활동의 공적인 책임을 뒷받침할 수 없다.

청지기 사상은 소유의 절대성 요구를 제한할 것을 요구하며, 이것이 오늘의 상황에서 공공성을 중시하는 기업윤리의 출발점일 것이다.

 

4.2 기독교 기업윤리는 청지기 사상에 기대어 기업의 공적인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업의 생산자산을 “중립화”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의 생산자산을 중립화하는 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와는 다르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자산에 대한 국가의 소유를 뜻한다. 이것은 소유의 주체가 개인에서 국가로 바뀌었을 뿐이지 소유권의 본래적 의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소유물에 대한 국가의 절대적 처분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소유권의 행사가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생태학적 안정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기업자산의 중립화는 노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거시균형 및 미시균형에 이르도록 하고, 경제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그것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동의 이해관계와 생태계의 이해관계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다. 오직 생산자산의 중립화가 이루어지는 조건 아래서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완성되고, 생산자산을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고려 아래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 전문가 집담회 2
-일시 _ 2007. 10. 6(토) 오전 10시~오후 3시
-장소 _ 명동 청어람 5실
-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출처] 기업과 공공신학|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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