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과 공공신학
양성평등과 공공신학
양성평등과 공공신학 **교회/신앙2008. 8. 25. 15:56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8834양성평등과 공공신학김 은 혜 교수숭실대 교양학부I. 들어가는 글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기독교의 공적(public) 성격과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삶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기독교의 신앙을 개인적이거나 사(private)적인 영역이나 차원으로 한정하지않고 사회전반과 연관된 공적인 차원의 논의들이나 사회의 여러 영역들인, 경제, 정치, 문화, 가족, 과학기술에 관련된 제 문제들을 그 과제로 다루려는 신학적 시도로 근본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신학 분야이다. 최근 통계청의 종교인구 발표 후 종교인구 증감 현상을 분석하는 많은 글 중에 가톨릭 공보기획부의 발표를 보면 가톨릭성장 원인 중 첫 번째가 신뢰할만한 종교라는 분석이다. 즉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공적 기능과 역할을 다양하게 실현하여 온 것이 성장의 기초가 되었다는 자체 분석이다.개신교의 성장둔화문제 역시 신앙이 사(私)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영역과 교회 내적 원리로만 축소되어온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할 수있다. 공공신학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5:13-16, 막 9:50, 눅 14:34-35)라는 예수의 말씀을 순종하여 공적 영역에서도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고백적 삶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기능을 다하려는 신앙과 신학을 말한다. 기독교와 신학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될 때, 교회는 쉽게 인간의 이기적 행복과 성공을 획득하려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이 신학은 예수의 복음을 신앙의 본질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나라와 세상 그리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 안에서 역사현실에 대한 책임성과 사회윤리의식을 가지고 세계현실을 하나님나라의 비젼을 향해 변혁해가는 신앙을 추구한다.그리스도 신앙을 깊은 인격적 차원으로 ‘내면화’(interiorization)하는 일과 ‘사사화’(privatization)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인격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공적 영역에서‘겨자씨와 누룩’으로서 창조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창의적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사랑의 구체성을 이웃사랑으로 실천해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사사화될 수 없는 특징을 갖는다.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독교는 그 물리적 성장이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평가나 이미지는 공적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실천과 교회의 역할에 의해 결정되어진다.이글에서의 지면이 한계로 나는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는 본인이 이해하는 공공신학을 기초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공공성을 회복하기위해 여성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기윤실의 실천적 방향을 모색해보겠다.공공신학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주체보다 혹은 교리적 문제와 그것에 대한 해명에 치중하는 교회의 내적 담론에 관심하기보다는, 공적신학은 회개와 개종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신학이라기보다는 그리고 교회의 이익을 보호하기위해서 보다는 사회공동체의 복지를 추구하는 신학이다. 즉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사회의 건강함을 추구하는 신학이다. 따라서 공적신학은 종종 세상의 문제 혹은 세상의 한 부분을 자신의 문제로 취하며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 악을 억제하고 폭력을 통제하고 불평등을 해소하여 공적 영역에서 사명을 실천한다. 공공신학은 신학과 교회를 통해 신앙의 지혜로 부터 특수하고 건설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사회참여의 신학이다. 공공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미 말하고 있는 관점에 대해 신학적 입장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고 특수하고 더욱 복음적인 것을 제안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더욱이 공공신학은 급진적인 악의 현실 안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모호한 혹은 낙관적 이상주의 보다는 공적토론 안에서 신학을 전개하는 것을 추구한다.신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성서와 전통 그리고 상황과 경험이다. 특별히 근대신학의 중요한 기여 중에 경험을 신학 구성의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여성신학적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서에 대한 규범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여성의 경험에 비추어 전통과 여성의 관점에서 상황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는 많은 논쟁을 가져왔다. 성서는 세기를 전해오면서 다양한 예배의식과 신조, 교리, 그리고 영성 등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의 삶을 형성하여왔다. 공공신학은 그 정의에 있어서 아직도 모호한 면이 없지 않지만현재의 특수한 상황과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상호관계에 관심하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공공신학이 세상을 향한 비판의 도구를 발전시키기 보다는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하게하는 신학적 역할에 관심한다. 공공신학은 사회에서 책임적이고 대안적 윤리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특수한 정체성을 끊임없이 회복하고 이것이 공적 담론의 출발점임을 인식하는 신학이다.II. 공공신학을 위한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변화 인식따라서 공공신학은 항상 상황적이다. 여성문제에 대한 상황은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변화인데 성 평등에 대한 법적이고 정책적인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이다. 1990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시민운동의 활성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변화과정에서 새로이 시민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가장 드높인 것은 여성일 것이다. 해방 이후 60년의 역사 속에서 여성운동이 발전되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여성정책이 집행되고, 여성의 지위가 개선된 것은 지난 10여 년의 일이고 보니, 한 세대 안에 일어난 변화로는 숨 가쁜 속도감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해방이후 우선 한국여성에게 주어진 일차적 과제는 전근대적 성 불평등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었다. 1950년대 이래 계속된 가족법 개정운동은 1977년의 1차 가족법 개정을 거쳐, 2005년 3월 2일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그 최종적인 결실을 보게 됐고 이는 전근대적 성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한국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1987년‘남녀 고용 평등법'과 1993년‘성폭력 특별법'이, 1999년‘남녀 차별 금지 및 구제법'시행되면서 많이 향상되었다.특별히 교회의 문화는 이러한 사회변화와는 괴리되어 시대착오적 성차별적 언행이 교계의 지도자들 사이에 난무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몇몇의 사건은 적어도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개신교는 사사화를 넘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왔다.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수위의 형편없는 수준의 여성폄화가 기독교전통과 상서의 권위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 적어도 여성에 대한 한국개신교의 공적 담론의 참여는 부분적 교회와 교계지도자들의 의식을 가지고는 불가능해보인다. 교회에 있어서 양성평등교육의 핵심은 목사님의 의식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양성평등의식이 없는 목사가 교인에게 양성평등의식을 함양하는 설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혹 설교를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독교 양성평등 문화의 정착을 위한 그래서 세상과 소통이 막혀있는 교회의 성평등문화의 확립을 위해 다양한 신학교육과정을 통하여 양성평등의식을 확산과 여성평등 신학의 정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에 개최되는 창의 여성리더쉽위원회의 여성아카데미는 매우 상징적 의미기 있다. 따라서 기윤실의 향후 사업은 교회양성평등지수을 분석하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을 다시 재정립하여 여성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공적 담론에 건강하게 기여 할 수있어야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공적신학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여성문제는 교회가 시급히 풀어야할 공적 신학의 내용이다,III. 공공신학과 21세기의 여성성의 신학적 의미공공신학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최근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최근에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 중의 하나는 남성 스스로가 남성에게 부과되는 가부장적인 가치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쟁과 힘이 지배하는 남성의 관계 맺기 방식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외롭게 만든다고 자각함으로 소통, 돌봄, 평화, 공존의 가치들과 관계 중심적 사고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 절하되었던 가치를 재발견함으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권력과 정치적 구조 속에 편입된 여성들이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남성적 권위와 계층성을 가치화하고 그들 속에 내재하는 여성적 가치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또 하나의 새롭게 부가되고 있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대안적 리더쉽으로 여성 리더쉽을 다양하게 추구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지휘력을 발휘하는 권력형 리더쉽을 비판하면서 여성적 대안을 찾고 기업에서도 상명하달의 기계적 관계 보다는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을 통해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내는 관계 중심적 리더쉽이 각광을 받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리더쉽 교육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리더쉽의 대안적 모델들을 창출하려는 과정 속에서 여성적 리더쉽이 주목을 받고 있다. 즉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수평적 리더쉽으로 일들을 지시 명령하고 머리로만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고 반복하므로 좀 더 민주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끄는 섬김의 리더쉽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새로운 가치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여성성에 대해 적극적 평가를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21세기 모든 것들이 다양화되고 모든 가치들이 상대화되며 개성화를 추구하는 시대에 여자는 남성적 옷을 입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렇게 여성성에 대해 경직되어 있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반면에 남자답게 라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벗어나 편안하다는 남성들의 주체적 고백이 이젠 부끄럽지 않을 만큼 문화적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위계와 서열을 따지는 가부장적인 남성성이 여성은 물론 남성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있다. 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 소장은 “여성에게서 태어나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인간은 누구나 경쟁적. 공격적인 남성성을 벗어나 따뜻하고 포용적인 여성성을 획득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즉 여성을 긍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억압받은 남성성을 벗어 던지고 여성성으로 회귀하려는 현상이 과거보다는 쉽게 나타난다. 마음사랑 상담센터 이민식 대표는 남성들은 힘과 지배가 통용되지 않음을 깨닫고 비폭력, 대화, 유대감, 상호의존, 평화 등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21세기에 새롭게 나타나는 여성성에 대한 아직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남성들의 반응이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이다.이러한 현상은 이제까지 열등하다고 평가 절하되어 온 여성적 가치들과 여성성에 기반한 원리들을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담론으로 공론화시키고 사회적 그리고 공공적 가치로 전환시킨다면 훨씬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긍정할 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만의 일로만 생각하던 생명살림의 실천에 자유롭게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명살림의 일상적 생활에 참여하는 남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생명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훨씬 빠르게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21세기는 새로운 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여성이 남성적인 조직과 문화에서 살아남고 남성 중심적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리더가 되고 주체가 되기 위해 여성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개발하고 관심해할 필요를 느낀다. 소위 문화적으로 여성적 가치를 말할 때 다양성, 상호성, 공존, 공생, 관계성, 조화와 균형, 수용, 포용, 대화, 비폭력, 감성, 보살핌 등의 가치를 주로 표현한다. 이제 이러한 토론을 정리하면서 여성성을 대안적 가치로 규정할 때 남성성과의 대립적인 관점을 주의해야 한다. 여성문제의 해결은 양성 평등적이며 동시에 균형 잡힌 부드러운 화해의 힘으로써 여성성에 의해 문명이 전환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자와 남자가 아주 기계적으로 똑 같고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상호에 대한 배려와 차이와 다름에 대한 자연스러운 수용으로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속에서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사이의 분열, 갈등 그리고 투쟁을 넘어 생명 친화적 지평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another world is possible)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관계 속에서만이 이 둘은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낸다.이러한 움직임을 가지고 새롭게 전개되는 사회변화와 국제질서 그리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은 한국사회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응답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로서 많은 영역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은 여성성에 대한 본질적 우열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동안 남성적 특성들 즉 독립성, 자율성, 자립성, 정신, 이성, 문명, 초월성, 그리고 전쟁과 죽음 등을 지나치게 가치화 하고 여성적 특성들, 몸, 감정, 자연, 내재, 평화와 생명 등 문화적으로 표현되는 여성적 특성들을 가치절하하여 온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통찰은 인간과 자연의 억압과 상처의 회복은 남성과 기술문명이 지배한 사회에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부정적으로 그려진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평가들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성과 함께 감수성이, 지식과 함께 지혜가 필요한 시대, 논리적 사고와 함께 영적인 각성을 통한 감동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은 논리와 이론에 근거하여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시도와는 다르게 여성들의 영적 각성, 모성적 실천, 여성성의 재발견 등을 통하여 병든 사회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여성은 생명을 기술적으로 조작하고 인위적으로 생성시키려는 남성 중심적 사고와는 다르게 생명을 온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교감하는 살림꾼들이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남성이 진화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냥꾼과 전사의 아들로 머물러있다면 오랜 전쟁의 세월을 숨죽이고 숨죽이면서 지켜온 살림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없다. 따라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가치로서 평가 절하되어온 여성적 가치 특별히 생명을 살리는 에너지를 생득적으로 그리고 문화 사회적으로 가깝게 생활해 온 여성이 생명문화의 주체로 떠오르는 것이다. 특별히 여성가족부의 출현을 보면서 양적인 여성 비율의 증대가 국가 관료정치를 살림의 통치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여성운동의 결실로 획득된 여성가족부의 행정조차도 너무 남성적이고 관료적이며 거칠다. 아무 여성이나 공직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남성 관료주의 문화가 변화되지 않는 것을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성과 생명에는 생물학적인 결정주의에 기초하기보다는 생명과 살림의 생활방식과 가치를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그러므로 여성들도 모성과 생명에 대한 신비를 수유하고 있는 이러한 원형적 생명 감수성을 거세하려는 현실을 피하고 오히려 자기의 몸으로 손수 보살피고 돌보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생명살림의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김정희에 따르면 “임신 출산은 여성의 배타적인 체험이 아니라 태아가 훗날 의식 수준에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궁에서 어머니의 공생관계를 지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여자에게 남자에게 출산을 체험한 여성이나 그렇지 않은 여성이나 자궁에서 어머니와의 공생은 공유체험으로 우리의 무의식에 내장되어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이나 남성이나 생명주의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낳지 않았지만 기르고 생명을 영육하며 생명을 살리는 여성들은 그래서 생명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 돌봄과 보살핌을 받았던 만큼이라도 어떤 생명을 돌보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이 갖추어야할 보편적 의무가 되는 것이다. 돌보고 길러보는 체험을 위해 꼭 생물학적인 부모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주변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왔다. 최근 서구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대안 윤리로서 여성윤리를 돌봄과 보살핌의 윤리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대안적 가치로 고려한다.우리사회에는 도움과 돌봄을 요구하는 아이들, 연로한 노인들, 장애인, 노숙자, 가출 청소년 등 돌봄의 지원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돌봄을 지원하는 활동과 상담과 쉼터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적인 영역에서 사랑을 실현하는 좋은 통로가 된다. 특별히 구체적인 몸으로 체험하는 살림의 경험은 여성들의 몸에 체현된 생명의 영성으로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도 타인의 먹거리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본적도 없고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며 돌봄의 경험이 결핍되거나 살림에 참여한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는 이러한 생명살림의 정신이 결핍될 수밖에 없다.가부장제라고 하는 오랜 역사적 현실이 여성을 생명을 이어가는 전달자, 생명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회에서 남성보다 더욱 친화적이고 전일적이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소유하게 하였다. 21세기 이러한 여성의 경험이 현재의 생명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경험이 여성보다 크게 부족한 남성으로서는 이러한 총체적 반생명위기를 극복할 역량이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나라들이 여성이 지닌 자연친화적 사고방식과 생명 존중의 행동양식의 지혜로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글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여성이 생명문화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보편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기윤실은 향후 한국교화와 그리스도인들을 이러한 시대정신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들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IV. 여성의 관점에서 보는 앞으로 20년 기윤실의 실천원리와 시대정신이러한 신학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 속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과제는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이해이다. 선교 초기만 해도 교회는 사회보다 여성의 문제에 대하여 앞서 갔기 때문에 여성을 존중하고 남녀평등을 전해 준 기독교의 복음은 진정으로 한국여성에게 해방의 복음이었다. 더욱이 기존에 여성을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전통문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는 여성문제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어느 사회 조직보다 뒤쳐지게 되었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 할 수 있지만 간단히 언급하면 기독교문화는 여성을 원죄와 관련시키면서 여성이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자제력이 부족한 사탄에 유혹 받기 쉬운 죄악의 원인 제공자로서 남성 보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열등한 존재로서 이해한 잘못된 기독교의 전통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더욱이 한국기독교 여성의 올바른 자기이해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것은 이러한 서구 기독교 관점에서 여성을 일차적 죄인으로 악의 상징으로 이해하여 온 남성 중심적 이원론적 신학 전통이다.기독교의 왜곡된 여성이해는 남존여비의 한국유교문화와 만나면서 열등한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잘못된 기독교정신을 강화시켜왔다. 기독교 신학전통 속에 면면히 흘러온 여성증오에 대한 사상은 하나님-영혼- 남성-여성- 비인격적 자연물질 순으로 계층적이고 차별적, 권위의 서열을 교회 내에 만들게 하였고 그것이 곧 신적질서가 되어서 여성은 이러한 권위에 복종 할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기독교에 큰 영향을 준 희랍철학에서도 남성은 정신과 이성에 타고 난사람으로 성직의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하고 여성은 도덕적으로 열등하여 천박한 육체와 감정의 대표로 이것은 머리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성을 이해하여 이러한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처럼 논의되어왔다. 또한 한국 개신교 기독교 전통은 남성 중심적 성서해석에 기초하여 여성에게 순종을 최대의 덕으로 간주하고 여자가 교회에서 성서를 가르친다거나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으므로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도력은 근원적으로 자격미달이 되어 있는 현실이다.따라서 교회여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사회를 봉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하는 신학전통과 사회구조적인 부분들을 비판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러한 분석의 도구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여성신학적 이론의 새로운 정리가 기윤실의 방향성을 설정하기위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20년 기윤실은 젊은 청년들을 양성평등의 신학적관점으로 훈련하고 교육하므로 21세기 하나님께서 교회여성에게 주신 아름다운 본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생명문화형성이라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 사회와 역사에서 괴리되지 낳고 그것을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적극적 공공성을 실현해 나갈 수 있 주체가 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러한 의미에서 교회 여성들이 개 교회에서 실천하는 신앙적 경험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의미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책임 있는 인간으로 참조된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신학적 영역에서 교회와 사회내의 여성과 남성의 공동체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가정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교회 내의 여성과 남성은 창조와 구속의 이야기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성서본문을 자세히 검토해야한다. 특별히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여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한계를 인식하고 모든 메타포와 하나님의 상징적 언어는 하나님의 신비의 깊이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언어는 보다 포괄적이고 특별히 예배의식에 나타나는 성차별적인 언어적 관행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기윤실은 여성의 경험과 눈으로 다시보는 성서이야기와 해석에 깊은 관심을 보여야한다.교회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교회들로 하여금 교회의 구조를 재성찰하고 힘을 균등하게 분배하고 사용하므로 여성들이 보다 더 온전한 실천을 통해 교회와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여야한다. 구체적으로는 여성들이 교회 내에 현존하는 차별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리더쉽과 의사결정, 그리고 신학과 영성을 공유하므로 교회에서 여성의 영적인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도 활동하는 여성들의 관점과 행동을 가치화하고 교회가 성차별주의에 기초한 성성해석과 교회의 전통을 통해 여성을 차별하는 관행과 가르침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이러한 세계현실을 깊이 인식하면서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며 존엄성과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하나님 형상의 충만함을 깨닫고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교회론적으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근거하여 평등공동체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의 변화는 교회의 모든 활동에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여성의 자유와 능력이 응답하기위한 요청이다. 온전한 참여의 의미는 첫째 정의의 문제이고 둘째 교회의 자기이해라는 오래된 물음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 있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이러한 물음은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응답을 교회로부터 듣기를 원하는 것이다.교회내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교회와 사회 속에서의 여성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역할은 교회여성들에게 중대한 논쟁 중에 하나이다. 교회와 사회에 존속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지적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교회의 일치를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동조하고 묵인하는 혹은 신학적으로 승인하는 교회의 태도가 진정한 일치를 가로막는 것이다. 21세기 한국교회의 공적능력의 회복은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연대와 조화로운 관계 그리고 교회가 책임 있는 실천을 통해 성정의를 실현 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IV. 나가는 말한국교회는 개혁과 변혁의 주체로서의 시대를 지나 21세기는 자기 성찰을 통한 치유와 회복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특별히 여성들의 지혜와 여성적 경험에 기초한 영성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한다.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여성들의 헌신과 봉사가 올바른 정체성의 형성을 통해 병든 사회에 건강한 영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앞으로의 여성문제는 남성과의 파트너쉽이 중요하다. 앞으로 여성 운동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여성들만의 운동의 범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21세기 여성의 문제는 특별히 교회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과의 파트너쉽이 그 어느때 보다도 필요하다. 생물학적인 범주로서의 여성주의는 이제 그 한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남 녀 모두가 여성적 가치를 실현하고 여성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남성도 여성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여성의 참여와 여성의 실천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을 회복하는 길이며 공존과 화합을 위한 시대의 요구임을 인식하고 교회여성들이 세사의 생명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체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마지막으로 교회여성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여성연합이 보여주었던 사회적 책임을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감당하기위해서 교회여성들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다. 교회여성들의 억압의 경험과 차별의 역사가 자동적으로 평등과 평화를 위한 생명운동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건강한 자기회복의 과정을 가지지 못 한다면 우리보다 힘없는 자들의 향한 억압자로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교회여성들의 내적인 회복과 내면적 영성을 위해 먼저 회개하고 다시 서야 한다. 교회여성들이 이 사회에 과소비의 주체이고 과도한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물질 만능주의를 숭배하며 가족 이기주의의를 부추기는 주체임을 인정하고 교회여성들의 신앙회복을 위해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회여성들 역시 이 사회에 생명과 평화의 에너지를 주지 못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것은 교회여성이 한국교회 구조 속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신학적으로 피억압자의 자리에 있었던 역사가 그리고 그들의 고통의 삶의 현실이 여성들의 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여성들이 진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거울삼아서 자신들보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나눔과 배려를 보여주었는지 자신의 아픔과 억압이 또 하나의 굴레가 되어 더 낮은 사람을 향한 억압의 도구로 변하였는지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받아온 심리적 정신적 억압으로 인해 건강한 자아 형성과 건강한 삶의 모델을 제공하지 못한 것을 사회현실과 환경 탓으로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여성은 자신이 격어 왔던 고통과 억압 자리를 피해자의 정서로만 해석 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믿고 교회여성 우리는 누구인가 정체성 혹은 주체성의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 한다. 여성들도 스스로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고 철저하게 자기 반성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교회이기주의 교파이기주의, 종교적 독단주의, 종교적 폐쇄주의, 종교적 배타주의 등 온통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의 부정적 현실을 헤쳐나 갈 수 있는 주체로 서야한다. 교회여성운동도 이제는 21세기 객관적 진보와 여성운동의 발전을 바르게 평가하면서 더 이상 피해자의 자리에서 운동을 전개하기보다는 그 자리가 또 하나의 인식론적 특수성과 대안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자리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하는 전환의 시대임을 인식해야 한다.*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 전문가 집담회 2-일시 _ 2007. 10. 6(토) 오전 10시~오후 3시-장소 _ 명동 청어람 5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출처] 양성평등과 공공신학|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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