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공공신학 최한빈교수
철학과 공공신학 최한빈교수
철학과 공공신학 **교회/신앙2008. 8. 25. 15:57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8892철학과 공공신학최 한 빈 교수백석대 기독교철학1. 공공신학은 개신교 정치철학인가?공공신학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철학이 목소를 낼 수 있는 부분은 공공성(publicity)에 대한 것입니다. 공공성에 관련된 철학적 논의는, J. 롤즈가 1971년의 『정의론』을 발표하고, 마이틀 샌들이 1983년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통해 이를 비판함으로서 전개되었습니다. 이 후 샌들과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에 대응하여 롤즈는 1993년 『정치적 자유주의(Polictical Liberalism)』을 발간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롤즈는 공적 합리성(public rationality),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샌들은 1994년 “정치적 자유주의”란 논문을 통해 또다시 롤즈를 비판합니다.이처럼 철학 진영은 공공성에 대한 논의 경험을 통해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정치철학적 지평에서 바라봅니다. 따라서 공공신학을 모색하는 신학자들이 무엇으로 공공성을 다루든 철학 진영은 그것을 개신교의 정치철학적 담론으로 이해할 것입니다.신학이 공공성 제기한다고 할 때 이에 대하여 정치철학 쪽에서 제기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는 기독교철학이 공공신학에 줄 수 있는 일종의 철학적 예방주사가 될 것입니다.2. 공공성에 관련된 현대 정치철학적 논의공공성에 관련된 현대 정치철학은 롤즈로부터 제기됩니다. 롤즈는 노직, 드워킨, 래즈 등과 함께 현대 정치철학의 논의에서 자유주의 진영을 형성합니다. 이에 반해 샌들, 메켄타이어, 테일러, 왈쩌 등은 공동체주의 진영을 형성하여 이에 맞서 있는 형국입니다. 이 두 진영을 긴장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선 주의해야 할 것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란 개념이 갖는 다양한 함의입니다. 특히 자유주의란 개념을 주목해야 합니다. 보통 고전적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영국의 로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소위 로크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 특히나 소유권을 자연권과 동일 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리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자유주의가 개인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사상이라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자유주의 진영을 고려할 때 지나친 단순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인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한 신념을 중시하지만 평등주의에 입각한 기회균등, 재산이나 소유의 재분배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상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자국을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유주의국가라 했을 때 이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함께 평등주의적 복지국가를 지향함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롤즈의 1971년의 논쟁적 저작이 『정의론』이란 제목을 가지고 등장한 것도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적 평등정책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상황이 보다 재화의 불평등 배분 문제가 그에게는 좀더 우선적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롤즈의 『정의론』에서 제시하는 ‘원초적 상태’, ‘무지의 장막’ 같은 개념은 개인의 자유와 그리고 부의 재분배라는 두 관점을 모두 전제합니다.롤즈에 대한 비판은 크게 자유주의 진영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과 공동체주의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나뉩니다. 자유주의 내부에서는 롤즈의 부의 재분배 시도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라며 그 정당성을 비판합니다. 공동체주의자는 롤즈를 포함해 자유주의자들의 취하고 있는 일반적 방법론을 비판합니다. 즉 사회 또는 공동체에 앞서거나 그것과 독립하는 자율적 개인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관점은 시작에서부터 허구라 비판합니다. 공동체주의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혹은 공동체적 맥락 또는 일정한 가치 체계를 떠나 개인을 전제하는 것을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중립적이지 않다 합니다. 따라서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삶을 각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 할 수는 있는 조건을 형성을 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중립성을 주장하지만 공동체주의의 비판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도 사실은 옳음, 혹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일정한 방식을 전재합니다.롤즈는 1992년의 작품에서 자유주의를 ‘포괄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구분하고 자신을 후자의 입장으로 정리합니다. 포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주장과 함께 그것을 지향하는 일정한 신념이나 가치 또한 전제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주의는 정치를 종교 혹은 도덕 논쟁이 성립되지 않는 중립적 영역으로서 보며, 때로는 그것들이 중첩되는 영역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신념이나 가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영역에서는 공적 합리성에 따라 재 영역 간에 ‘합당한(reasonable)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주장합니다. 이러한 일치를 위한 능력으로서 롤즈는 공적 이성을 제시합니다.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스테판 뮬홀, 애덤 스위프트, 한울아카데미, 2001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철학에 나타난 공적합리성 논쟁』, 임홍빈외, 철학과 현실사, 2005년이란 단행본은 다양한 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3. 공공신학에 대한 정치철학적 질문들간단히 현대 정치철학적 소개를 통한 필자의 의도는 공공신학이 정치철학적 담론이 될 경우, 신학진영은 고려해야 할 무수히 많은 주제들을 갖게 된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가장 원론적인 것부터 시작하면, 당장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공공성이 주제화 되어야 할 이유 또는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공신학을 통해서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곧이어 제기되는 질문은 옳은 삶에 대한 기준 또는 가치 있는 삶의 기준(삶의 목적),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개인과 공동체 또는 국가 간의 관계와 역할에 대한 개신교의 이해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 영역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좀 더 세부적으로는 정치적 인간 혹은 인간의 정치성 혹은 사회성에 대한 개신교 입장에 대한 질문은 반드시 제기될 것입니다.공공신학은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입장 또는 신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공공신학의 이론적 정초 작업에서 아주 근본적인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폭넓은 전거와 세심한 논증이 필요할 것입니다.그 다음 문제는 만약 공공신학에서 전제하는 개신교적 신념이 공유되지 못할 경우(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많은데), 차선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롤즈의 지적대로, 정치가 여러 이유에서 재 영역들이 개입되어 있는 중첩 영역이라면, 기독교는 기독교적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진영과 어떤 명분 또는 이유에서 정치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공공성 또는 공동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4. 공공신학의 현실적 고려 사항들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 진영에서 공공성(公共性)을 지적하는 것은 역으로 우리 사회, 특히나 개신교계의 사사로움(私事性)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한국 교회의 개신교회의 사사성의 성격과 근원은 진지하게 다루어 볼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사성에 대한 우리의 용례를 고려하면 그것이 서양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의미하는지, 그 의미의 일치 여부가 분명치 않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단어의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있어 공과 사는 양립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용례의 배경에는 개인과 사회 또는 국가에 대한 “국가유기체설”에 기인합니다. 이러한 국가 유기체설은 제 1공화국 이래 현재까지 국정 사회교과서나 윤리(과거 국민윤리)교과서의 주요 전제입니다. 그러나 이미 인정하다시피 국가유기체설은 더 이상 국가와 개인을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타당한 이론이 아닙니다. 교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일단은 이를 대체하는 이론을 제시해야 하고, 실제 여론화 및 사회 교육이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시 하고 이에 개인의 권리를 종속시키는 이분법적 구도를 공공성의 논의에 개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서양의 정치철학적 담론의 경우, 이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나 혹은 전체주의들의 주장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서양은 이를 일찍이 극복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공공성, 공동선의 논의는 자칫 전체주의 또는 국가주의로 전도될 소지가 많습니다.현대 사회의 공공성 혹은 공동선은 서양의 경우(특히나 자유주의자들의 경우),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표현의 권리를 유효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성은 소위 현대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를 유지해야 할 정당성은 (여기서 일정한 가치가 개입되지만) 그것이 옳은 삶을 추구하는 데 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합니다.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시민 혹은 시민사회는 어떤 의미입니까?시민은 하나의 계층입니다. 그렇다면 시민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소위 시민운동일까요? 시민운동이란 시민사회가 자신의 존립 근거로서 공공성 수호하려는 활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시민 없는 시민사회운동” 운운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에서 공공성이 탈각된, 일종의 이익단체의 운동에 불과함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 공공성을 주제화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아마도 시민사회의 구성원인 교회 또는 성도들의 사회적 활동이 여느 이익활동과는 다르다고 할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무엇이든 간에, 철지난 사조처럼 여겨지지만, 1980년부터 전개된 한국의 시민사회의 성격, 특히 IMF를 거친 후 전개된 한국 시민사회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으리라 봅니다. 이는 개신교 진영에서 제기할 수 있는 기독교 시민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 전문가 집담회 2-일시 _ 2007. 10. 6(토) 오전 10시~오후 3시-장소 _ 명동 청어람 5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출처] 철학과 공공신학|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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