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모색
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모색 **교회/신앙2008. 8. 25. 16:01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014기윤실 운동의신학적 토대에 대한 모색- 윤리적 공공성(ethical publicness) 개념을 중심으로 -양 세 진 사무총장기윤실0.공공성(公共性, publicness)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 설명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Public(공적, 공공)’이라는 용어는 두 현상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먼저는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common)'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사적 소유와는 온전하게 구별되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아렌트는 사적인 삶이란 ‘한 개인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자기 보호 지향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연관된 공적인 삶이 결여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점에서 공공성은 주체성과 일정 정도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시인 테레니시우스는 ’모든 사람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고 말하면서 인간 삶의 공공성에 대한 존재론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그렇다면 20년전 한국 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설립된 기윤실은 오늘 현재 어떤 사회, 어떤 교회를 꿈꾸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1990년 5월28일자 조선일보는 ‘윤리실천의 시민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게재했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우리가 감명을 받는 것은 그것이 자기반성을 기초로 한 구체적 실천운동이라는 점이다. 이 모임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 한국기독교는 다른 아무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으며, 사회와 국가의 모든 부조리가 기독교인들 자신의 불의 때문에 비롯됐다"고 자책적인 고백을 하고 있다. … 종교인이 신앙의 양심에 기초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외면할 수 없어 작으나마 결의에 찬 윤리적 결단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운동이 다른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 까지 옮겨져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 확산될 때 아마도 우리사회의 난국해소는 물론 도덕적 건강은 훨씬 다져질 것이 분명하다.사설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기윤실 운동이 20년 전 당시 시대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주목을 받았던 것은 국가 공동체의 도덕적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오늘 우리가 모색하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20년 전 기윤실은 공화국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건강하게 다지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20년이 흐른 오늘 기윤실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어떤 기대감을 주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색은 비단 지금 이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적어도 올 하반기 동안 지속되어야할 탐구 과제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전국 기윤실 간사들이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토대로서 "Public Theology(공공신학, 공적신학)“을 탐색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Public(공공성)’의 의미에 대한 개념적 탐색을 시도하고자 한다. Public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왜 굳이 Public Theology라는 새로운 개념과 이론을 제시하느냐에 대한 설명이 되며, Public Theology의 규범적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작업을 통해 지금 이 시대뿐만 아니라 시대를 가로질러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보편적으로 추구되고 지지받을 수 있는 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기초와 근본을 정립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도전은 대단히 야심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될지도 모른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진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그 다양성과 다원성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는 공공성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맥락을 보게 된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 보도의 공공성 강화, 공기업의 공공성 강화, 금융의 공공성 회복, 환경권의 공공성, 교육의 공공성 강화 등 우리 사회에서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공공성 담론에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단순히 사회과학적 차원을 넘어서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아주 중요한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공성의 문제는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거짓말하는 자를 낱낱이 밝혀 지도자라면 관직을 박탈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 발전은) 단순한 구호이자 형식이며 GDP 성장일 뿐이다. ”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위시한 중국 4세대 지도부의 등장과 함께 중국 인민들이 갈수록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시사잡지 신문주간은 최근호에서 이 같은 민주화 바람을 소개하면서 “과거 응급형·전능적 정부가 정상적인 공공성 정부로 점차 바뀌고 있다”며, “민주화는 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이미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는 논쟁이 무의미할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공공성의 관점에서 지난 2006년 12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 갤럽과 함께 조사한 한국의 각 사회기관에 대한 상대적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사회기관에 대한 상대적 신뢰도사회기관에 대한 상대적 신뢰도
문)
귀하께서는 다음 사회 기관이나 사회지도층에 대해 신뢰하고 계십니까? 혹은 신뢰하지 않으십니까?
구분
전혀 불신
보통
전적 신뢰
평균
(표준편차)
신뢰도순위
1
2
3
4
5
6
7
대통령
400(33.3)
246(20.5)
159(13.3)
288(24.0)
53(4.4)
35(2.9)
19(1.6)
2.61(1.523)
16
행정부
264(22.0)
276(23.0)
196(16.3)
370(30.9)
62(5.2)
29(2.4)
2(0.2)
2.82(1.357)
15
입법부
419(34.9)
324(27.0)
212(17.7)
214(17.8)
21(1.8)
9(0.8)
1(0.1)
2.27(1.211)
20
사법부
208(17.3)
237(198.8)
212(17.7)
422(35.2)
83(6.9)
31(2.6)
7(0.6)
3.05(1.358)
14
교육기관
163(13.6)
189(15.8)
222(18.5)
469(39.1)
108(9.0)
43(3.6)
5(0.4)
3.27(1.332)
12
시/군/구청
102(8.5)
99(8.3)
164(13.7)
513(42.8)
190(15.8)
116(9.7)
16(1.3)
3.83(1.368)
7
지방의회
189(15.8)
238(19.8)
239(19.9)
413(34.4)
90(7.5)
27(2.3)
3(0.3)
3.06(1.309)
13
정당
390(32.5)
346(28.8)
202(16.8)
226(18.8)
23(1.9)
8(0.7)
5(0.4)
2.32(1.235)
19
민간기업
80(6.7)
95(7.9)
164(13.7)
560(46.7)
193(16.1)
89(7.4)
19(1.6)
3.86(1.279)
4
시민단체
88(7.3)
117(9.9)
163(13.6)
524(43.7)
177(14.8)
101(8.4)
30(2.5)
3.84(1.368)
5
노동조합
137(11.4)
172(14.4)
200(16.7)
496(41.4)
118(9.8)
63(5.3)
12(1.0)
3.44(1.361)
11
신문사
105(8.8)
121(10.1)
182(15.2)
468(39.0)
196(16.3)
109(9.1)
19(1.6)
3.78(1.401)
9
TV방송사
78(6.5)
103(8.6)
164(13.7)
492(41.0)
207(17.3)
128(10.7)
27(2.3)
3.95(1.366)
3
인터넷매체
90(7.6)
111(9.3)
160(13.4)
519(43.5)
184(15.4)
102(8.6)
26(2.2)
3.84(1.362)
6
의료기관
61(5.1)
89(7.4)
150(12.5)
472(39.4)
255(21.3)
148(12.3)
24(2.0)
4.09(1.326)
2
종교기관
107(8.9)
140(11.7)
175(14.6)
443(36.9)
157(13.1)
124(10.3)
54(4.5)
3.83(1.528)
8
정치인
516(43.0)
347(28.9)
157(13.1)
135(11.3)
27(2.3)
13(1.1)
4(0.3)
2.05(1.212)
21
정부기관장
333(27.8)
296(24.7)
214(17.9)
277(23.1)
55(4.6)
19(1.6)
4(0.3)
2.58(1.340)
17
고위관료
379(31.6)
311(25.9)
198(16.5)
251(20.9)
42(3.5)
15(1.3)
4(0.3)
2.44(1.313)
18
기업지도자
103(8.6)
152(12.7)
152(12.7)
532(44.4)
161(13.4)
83(6.9)
16(1.3)
3.69(1.354)
10
일반적인간관계
40(3.3)
57(4.8)
64(5.3)
483(40.3)
269(22.4)
228(19.0)
59(4.9)
4.50(1.311)
1
[출처] 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모색|작성자 e_library
1.대한민국을 영어로 표기하면 “Republic of Korea”이다. 여기서 Republic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온 것으로 로마 시대 정치사상가인 키케로(Cicero)의 손을 통해 개념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Res publica는 키케로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핵심 개념이다.res publica의 res의 의미는 ‘affair' 일, 업무, 사무, 사건 등의 뜻을 갖고 있으며, publica는 국민, 공공의, 공적인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두 단어의 결합을 통해 산출되는 의미는 ‘국민에 관련된 일, 공공에 관련된 일, 공적인 일, 국민을 위한 공공의 일’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공성의 회복, 공공성의 문제를 논할 때 republic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키케로는 [공화국 republic]에서 ‘공공의 복지를 위한 국가(res publica)는 국민들의 소유(res populi)이다. 그리고 국가는 정의를 존중하고 공공선을 위해 참여하기로 합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화국으로서 국가를 의미할 때에 중요한 것은 통치체제일 수도 있지만, 그 구성원들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공공성의 가치를 갖고 있느냐, 어떤 시민의식을 갖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키케로가 정의하는 국가로서의 res publica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도시국가-polis, πόλις)와 유사한 전통에 서 있는 개념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폴리스(도시국가)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결사의 일종이며, Good Life를 달성하기 위해 형성하는 것이다. 폴리스는 사람들의 모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중요한 결사로서 정치적 결사이다. 폴리스는 또한 자급자족이라는 최선의 목적을 추구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를 이루며 살도록 되어 있는 동물이다’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국가는 어떤 선한 목적을 갖고 구성된 사람들의 결사체로 보았다. 다만 여기에서 차이를 구분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모임인 국가 자체가 어떤 선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선한 목적을 위해 국가를 결성한다고 본 반면에 키케로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대화하고 토론하여 어떤 목적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국가를 보았다는 점이다.키케로는 공화국의 존재는 사람들 간의 계약이나 협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인간 삶의 본질적인 측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결과물로서 국가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키케로는 인간은 본성상 이성과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자연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들이 더욱 선한 목적과 정의에 대한 존중, 평등한 권리 그리고 공공선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며 협력하여 국가를 이루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인 것이다. 비록 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일상생활의 필요를 채운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연적 욕구에 의해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적인 협력을 추구하게 된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협력을 통한 공동체로서의 국가 형성에 있어서도 개인의 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했다.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즉 근대의 홉스나 로크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처럼 도구적인 목적으로 국가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공공의 선과 공공의 복리증진을 위한 국가는 개인의 사적 재산권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이 기본적인 가치였다.키케로는 사적 소유권은 천부적으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적인 직업과 노동, 그리고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개인의 사적 소유권에 대한 보호는 시민권의 옹호,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의 협력 및 연대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키케로는 공화국이란 나쁜 사회와는 분리된, 그리고 정당성이 없는 정치체제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공화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당한 정치체제의 성립이 전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화국의 구성원들인 국민들의 동의와 합의에 의해 공화국의 정치지도자가 세워져야 한다. 아울러 정치지도자들은 정의에 대한 존중감을 갖고 있어야 하며, 국민들 공통의 이익, 공공의 이익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이것을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만약 한 공동체가 공화국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① 사람들은 정의에 대한 존중감을 가져야 한다.② 사람들은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해서 합의해야 한다.③ 구성원 모두에게 상호적으로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합의해야 한다.④ 공화국을 이끌 정치지도자 혹은 정부를 구성함에 있어서 그들은 국민들의 공공복리와 이익에 관련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정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협의하고 대화해야 한다. 아울러 공화국으로서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가치를 늘 확인하고 지속시켜야 한다.2.공공성의 문제를 탐색하는데 있어서 공화국(republic)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공공성을 고민하는 목적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릭 워렌이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 강조하듯이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목적이 그 교회를 이끌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단순히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혹은 그들이 선호하는 것을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윤실이 한국 사회와 교회를 위해 무언가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공공성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지를 먼저 확인하지 않는다면, 운동의 진성성이 도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운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열매를 성취하는데 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키케로의 공화국 개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특히 교회와 관련된 활동에 있어서 공공성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교회는 사적 존재가 아니라 공적 존재(Public Being)이며 공공성의 가치를 가진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존재론적 토대와 기초 및 그 기원(arche)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로서의 공적 교회는 세상 나라인 공화국의 가치를 넘어서는 위대함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세상 나라로서의 공화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전략 내지는 비전을 디자인하기 위함이다.3.공공성은 주요한 특징은 참여, 공유, 소통이라는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Web 2.0의 핵심가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참여(participate)라는 단어는 ‘부분 part'을 어근으로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어떤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것은, 즉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어떤 획일적이거나 독점적인 지배 권력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즉 어떤 중앙의 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발휘할 수 있는 권력과 힘을 모든 구성원이 부분, 부분 나눠가짐으로 권력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Viroli, 2006:12).공공성은 자치의 원리(self-governing)에 기반하고 있다. 자치의 원리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로마법 원리에서 도출될 수 있다(Viroli, 2006:35).시민들이 공적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도록 힘을 써야 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적 덕윤리가 개발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여를 통한 공공성의 가치를 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에게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덕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값싼 민주주의는 공공성이 회복을 기대하게 하는데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윤리적 시민을 길러내는데 힘을 쏟아야 하며, 더 나아가 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이 공공성을 가진 공동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윤리적 공공성에 기초한 윤리적 공화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윤리적 공공성이라는 말은 참여, 공유, 소통의 형식을 넘어서 어떤 내용으로 참여하고, 어떤 내용을 공유하며, 어떤 내용을 소통하느냐에 관계하는 물음이다.형식적으로는 참여가 이루어지고 권력과 정보가 공유되고 구성원 상호간에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마약이 거래되고, 반환경적인 제품이 생산되고 평화를 깨트리는 사업이 전개되고, 부패와 비리로 물든 네트워크가 움직인다면 그러한 공공성의 실현은 곤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할 물음은 공공성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느냐를 넘어서 어떤 공공성이 실현되고 있느냐? 이다. 즉 온전한 공화국을 세워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민적 덕, 윤리적 덕을 구비한 시민들의 유무이다. 공공선과 상호이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와 능력을 갖춘 시민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덕 윤리(virtue ethics)를 구비한 시민들은 공화국의 토대가 된다. 아울러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윤리적 시민이자 윤리적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공화국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 대한 존중과 집단에 대한 존중 모두를 규정하는, 즉 내부적으로 경쟁적이긴 하나 꼭 상호 파괴적이진 않은 다원성을 실천하고 지키도록 하는 권리체계에 대한 존중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윤리적 공화국을 가능하게 하는 윤리적 시민에 대한 모색은 공공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도달하는 종착지가 될 것이다.4.공공성의 가치는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Public Theology에서 뿐만 아니라 Public Leadership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Public Corporation (Corporation Social Responsibility)의 차원에서도 고민되고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는 시대적 키워드인 것이다. 특히 2009년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진행 중인 ISO 26000 Social Responsibility은 ①조직의 지배구조, ②환경, ③인권, ④노동문제, ⑤공정한 비즈니스 운영, ⑥소비자 문제, ⑦사회참여와 발전 등 7가지 기준에 적합한 프로세스에 의해 각 조직이 운영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ISO 26000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이지만, 유럽연합의 경우 2009년 발효 이후 이 절차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 조직과는 무역거래 및 협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ISO 26000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하고 있는 7가지 표준 프로세스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6.‘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는 빌립보서의 말씀에서 ‘생활하라’는 단어는 헬라어 ‘폴리튜에스테’라는 동사이며,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도시공동체인 ‘폴리스(polis)’에서 ‘시민적 삶을 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늘날 시민(citizen)이라고 소개되는 개념 역시 ‘폴리스(polis)’라는 고대 그리스도의 도시공동체인 아테네에서의 시민적 삶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즉 도시공동체의 문제들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공동체를 ‘좋은 공동체(good community)’로 변화시켜가는 것에 참여하는 사람을 시민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폴리스를 이루며 사는 동물이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공동체적 속성과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흔히 서울이나, 대전, 광주, 부산에 살면 즉 도시에 살면 그냥 시민이라고 부르지만, 적어도 고대 아테네의 도시공동체에서 시민이라는 칭호는 대단히 명예롭고 위대한 가치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은 공공의 문제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에서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한편 라틴어 civitas로 연결된 시민이라는 개념은 ‘예의바른’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가 공적 영역에서 시민답게 행동한다는 것은 법을 지키고 질서는 따르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예의 바른’방식으로 따르는 것까지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예의 바른 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를 우선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환대를 가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미국 퓰러 신학교 총장인 리처드 마우가 ‘무례한 기독교’에 대해서 조심할 것을 지적한 바 있는데,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환대가 중요한 덕목이었음을 생각하면, 점점 더 다원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환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드러난다고 믿는다.“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는 의미와 연결해서 천국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등진 삶을 추구하라는 것 이라기보다는 이 땅의 시민적 삶에 매몰되지 말 것을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던 바울은 분명 이 땅에서의 시민적 삶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적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시민이라는 명예보다 더욱 중요한 시민권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을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의 논리적 구조를 바꾸어서 이해하면, 천국 공동체에서 공적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땅의 공공시민으로서의 공적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시민이자 성도, 성도이자 시민이라는 이중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우리의 관심은 진리와 원칙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추구하는 태도를 균형 있게 내면화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정직을 강조하게 되면, 진리와 원칙에 맞지 않는 말과 주장을 하는 사람을 옳지 못하다고 정죄하기 쉽지만, 설령 그 사람이 진리에 합당하지 않은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부정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특히 Public theology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기독교적 변혁은 종교적 권위에 의한 일방적인 접근이 아니라, 설득과 숙의를 통한 공적 대화의 과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반면, 배려만 강조하게 되면, 항상 친절하고, 온유하고, 용서하면서 정말 현실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방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직과 배려를 함께 연결해서 ‘신뢰’를 지향하는 통합적인 삶의 태도는 공적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삶의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 전문가 집담회 2-일시 _ 2007. 10. 6(토) 오전 10시~오후 3시-장소 _ 명동 청어람 5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출처] 기윤실 운동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모색|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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