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 배요한교수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 배요한교수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 **교회/신앙2008. 8. 25. 16:15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518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 공공성과 연관된 동양철학의 세 가지 장면을 중심으로배 요 한 교수장신대 철학1. 들어가는 말기독교 신학에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간단히 말해서 두 가지 큰 중심 주제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기독교적 공공신학” (혹은 공공적 기독교 신학, public Christian theology) 이라고 할 경우에 공공적 성격 [public] 과 기독교의 고유성 [Christian] 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Public을 우위로 강조하면 왠지 기독교의 고유성이 위협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보수 진영의 오해를 받을 듯 하고, Christian 이 강조되면 너무 기독교 내부적이고 대사회적인 관심이 약화되어 교회의 공공성과 실천력이 약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공공 신학의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통합과 연계성이다. 어떤 면에서 기윤실에서 지금까지 주최해 온 공공신학 세미나에서는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토론과 대화가 주로 되었다면 과연 그러한 학문적인 대화와 토론이 어떻게 실천적 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문제가 두 번째 문제이다.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위의 두 가지를 중심으로 글을 구성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공공성을 이론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위의 두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시대를 종횡하면서 동양철학의 세 장면을 유교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위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동양철학적 통찰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세 가지 장면이란 다음과 같다.첫째 장면은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유가 (儒家)의 노력에 이에 대한 장자 (莊子)의 비판을 통해서 공공신학의 실천적 적용과 이에 대한 신학자들의 공헌에 대한 문제를 연결해서 살펴 볼 것이다.둘째 장면은 당말 (唐末) 소장 유학자를 중심으로 한 신유학 (新儒學)의 정통성 확보와 노장 [도교], 불교의 연관성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말 한유 (韓愈, 768-824)와 이고 (李翶,?-?)를 위시하여 신유학의 완성자인 주자 (朱子, 1130-1200) 에 이르는 신유학자들은 유학 (儒學)의 정통성을 복원시키는 가운데 다른 종교인 도교와 불교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해 내고 있다. 그래서 이 과정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공공적 영역에서 기독교 신학의 고유성을 어떻게 해석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셋째 장면은 조선 500년의 주자학의 역사 속에서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사회에 이루어 내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예들을 살펴봄으로써 교회의 공공성과 기독 시민운동의 방향에 대한 통찰을 얻어 보려 한다.2. 몸 말1) 유가 (儒家)와 도가 (道家)의 상호보완적 관계기원전 1111-249년 까지는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라는 혼란기였고, 이 시대를 구하고자 수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위주로 학파 [家]를 만들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뛰어 들었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들이 공자 (孔子, B.C. 551-479), 묵자 (墨子, B.C. 468-376), 노자 (老子, ?-?), 맹자 (孟子, B.C. 371-289), 장자 (莊子, B.C. 369-286), 순자 (荀子, B.C. 298-238), 한비자 (韓非子, B.C. ?-233) 등이다. 우리는 이들과 같은 구세철학을 펼친 이들의 학파들을 역사적으로 “제자백가” (諸子百家) 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 공자는 인 (仁)과 예 (禮) 사상을 중심으로 구세철학을 펼쳐서 한 (漢) 나라 이후 중국의 역사와 정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상이 되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공자의 사상을 버스에 비유해 보자. 버스가 달리는 길을 인생길이라 가정하고,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사람들은 인생 [버스길] 속에서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 [멀미]을 당한다. 그러한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갖은 처방을 한 사상가들이 제자백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공자가 취한 방법은 이것이다. 버스 안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멀미를 하고 있는데 멀미를 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운전기사와 잠이 들어 있는 승객들이다. 운전기사가 멀미를 하지 않는 이유는 미리 길을 알고 자신의 몸과 길의 방향이 온전히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길의 변화를 능히 감당할 수 있기에 [능변, 能變] 대부분의 승객들이 길의 변화와 몸의 변화가 불일치되어 [봉변, 逢變] 생기는 멀미가 그에게는 없다. 또한 잠들어 있는 승객은 버스와 자신의 몸의 반응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물론 고통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는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멀미 (고통)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마이크를 잡고 “잠시 후에 여러분의 몸을 오른쪽으로 30도 트십시오.” “이번에는 5분 정도 가만히 편히 앉아 계십시오” 라고 알리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미리 깨달은 삶의 본질적인 이치를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중들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스템을 정비하고 고치도록 [사회 개혁과 정치개혁] 천하를 주유 (周遊)하면서 자신의 도리를 설파한 사람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위의 비유에서 노장 (老莊)은 비유하자면 선잠이 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선잠에 든 사람은 공자 같은 위인이 마이크를 잡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하는 말에 짜증을 낸다. 잠이 들면 멀미하지 않을 사람들조차도 공자가 잠을 깨게 만들어서 고통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즉 공자식의 수양과 개혁이 아무리 좋아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사회 자체로 하여금 어떠한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면 필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맞지 않는 사람의 부류가 생기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참다운 진리는 어디에 숨었기에 진짜다 가짜다 하는 논의가 생겨났으며, 참으로 옳은 말은 어디에 숨었기에 옳다 그르다 하는 논의가 생겨났는가?... 참다운 진리는 조금 이룬 것에 의해 숨겨졌고, 참으로 옳은 말은 번지르르한 미사여구에 의해서 숨겨졌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일어나게 되었다... 어떤 것도 입장에 따라서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입장에 따라서는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이것 또한 저것이고, 저것 또한 이것이다. 저것 또한 하나의 시비이고, 이것 또한 하나의 시비이다...위의 예에서 보듯이, 장자는 작게 이룬 진리 (小成)로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할 때 생기는 유가류 (儒家類)의 폐해를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그렇다면 유가와 노장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유가가 역사적인 과정에서 노장을 비판하는 주된 요지는 위의 버스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다. 유가가 말한다. ‘네 (老莊) 말이 맞다 치자. 그렇다고 해도 너는 버스 안에 멀미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버스 안에서 너처럼 선잠 들어 있는 사람은 늘 역사 속에서 소수잖아, 대다수 사람들은 그럼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데 너의 태도가 더 무책임한 거 아니냐?’ 도가 사상가들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넌 네 (儒家)가 마이크 잡고 떠들기 때문에 애꿎은 나처럼 선잠 든 사람은 소외되어도 좋단 말이냐?’ ‘너처럼 시대를 구한다고 떠들다가 더 시대를 망쳐 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감기 걸리면 그냥 푹 자면 되지 괜히 빨리 낫겠다고 약 먹으면 장기적으로는 몸의 저항이 더 약해진다는 건 왜 고려 안해?’위의 비유에서 보듯 유가와 노장은 늘 역사 속에서 보완적인 관계를 가져 온다. 사회를 더 진보시키기 위해 보다 나은 정치, 교육, 문화 등의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하고 수양하는 유가는 늘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노장은 멀찍이 물러서서 그렇게 유가처럼 개혁하겠노라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다가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늘 지적하면서 유가를 비판한다. 그러한 역사적인 과정과 양자의 만남 속에서 유가는 노장이 있기에 늘 자신이 지향해 나가는 방향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려 노력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노장은 늘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고통당하는 다수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유가의 흐름에 따끔한 일침과 이론적 성찰을 통해서 약간은 cynical하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비판으로 늘 유가가 그 자신의 시스템을 성찰하게 만들어 간다.2500여년 전의 유가와 장자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공공신학을 논하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라도 말해 본다면, 기윤실로 대표되는 건강한 기독교 시민운동과 공공신학 세미나를 주도해 온 여러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여러 학자들의 바람직한 관계를 유가와 노장의 관계를 통해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섣부른 실천은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낳기도 하지만, 유가처럼 인 (仁)과 예 (禮)에 바탕한 자신의 철학을 사회에 실현시키고자 악다물고 노력하는 유학자들이 있어 왔기에 유가는 역사를 통해 늘 사회 개혁의 중심부에 서 있어왔다. 물론 때로는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론이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실천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유가의 근본정신은 지금 논의되는 기윤실의 공공신학의 취지와 비추어 볼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동시에 노장이 유가에 대해서 늘 염두에 두기를 구했던 바대로 자칫 기독교 시민운동을 표방하면서도 그 시민운동 자체가 경직되고 권력이 되어 버릴 수 있기에, 그렇게 되지 않고 많은 시민 단체들과 함께 동조하고 넉넉하게 품어주면서 충분한 연대와 공감대를 늘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노장처럼) 신학 자문위원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기윤실과 참여하는 학자들은 어쩌면 유학자-노장의 관계보다 더 탁월하게 해 낼 수 있다고도 본다. 참여하는 학자들이 뒷짐 지고 훈수에 치중하는 노장보다는 더 적극적인 분들이라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이러한 현실 참여를 좀 더 넓은 지지 속에 실행할 수 있게 하는 교회와 여러 기독 시민운동 단체가 있음이 둘째 이유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동일화 내지는 단순화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유가와 노장의 관계는 공공신학을 논하는 지금 우리들에게 이론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 상호 보완적 역할의 좋은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2) 당말 신진유학자들의 고민과 신유학의 정체성 문제두 번째 장면은 당나라 (A.D 618-906) 말기 불교의 폐해에 고민하면서 시대를 이끌 대안적 사상을 찾아 고민하던 신진 유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 즉 “christian" 적 성격과 “public"의 성격 간에 어떤 연관성과 조화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무척이나 다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차이점을 갖고 있더라도 논의를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내용이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한 (漢)나라 때 인도로부터 소개된 불교 사상은 남북조 (南北朝) 시대를 거쳐서 수 (隋) 나라,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상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으로 계승되어갔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불교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한유 (韓愈, 768-824)와 이고 (李翶,?-?) 등의 학자들은 불교 사상을 배격 (排佛)하면서 동시에 공맹 (孔孟)의 유학을 다시 부흥시키고자 하는 흐름을 주도하였는데 이들의 사상이 북송 (北宋)의 주돈이 (周敦頤, 1017-1073), 장재 (張載, 1020-1077), 정이 (程頤, 1033-1107) 등으로 계승되어 결국 주희 (朱熹, 1130-1200)에 와서 신유학 (新儒學)인 주자학이 완성되게 된다.이러한 과정에서 본 공공신학의 논의와 더불어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내용은 신유학자들이 도교나 불교적인 용어나 철학적 원리를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용어는 불교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그 용어에 담긴 의미를 ‘유학적’으로 재해석해 내어 유학적인 면모를 갖추어 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고의 경우 그의 중요한 논문 <복성서 復性書>의 첫 머리에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성이다. 사람의 그 성을 미혹시키는 것은 情이다.... 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이 이에 가득 찰 것이다” 라고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불교식의 성불론 (成佛論)을 유교식으로 [成聖論] 재해석해 낸 것이다. 또한 복잡한 논의과정을 소개하지 않더라도 신유학의 핵심적인 철학적 내용들이 사실은 도교와 불교의 단어들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도입하여 점점 유학적인 고유의 특성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 신유학의 발전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주자학의 우주론의 가장 근원이 되는 <태극도설 太極圖說> 자체의 기원을 도교적 기원으로 볼 수도 있고, 여기에 등장하는 무극 (無極) 이라는 단어조차도 원래 유학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주자학의 가장 대표적인 존재 설명 이론인 이기론 (理氣論) 의 경우에도 불교에서 흔히 사용하던 리 (理)와 사 (事)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우리의 논의로 돌아가서, 공공신학에서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단어의 사용과 연관된 소통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공공신학은 두 가지 소통의 과제가 있다. 첫째는 교회 내에서 공공신학의 필요성을 말할 경우 “공공”이라는 다소 덜 기독교적인 (?)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기독교 고유의 단어로 표현 할 경우 (예를 들어 ‘시민사회 신학’이나 ‘청지기적 신학’ ‘섬김의 신학’ 등) 가뜩이나 교회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공공신학”이 지향하는 노력의 진정성이 지나치게 축소될 위험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두 가지 선택은 위에서 말한 문제점을 다 내포할 수밖에 없다.그러면 어떤 선택이 올바른 선택인가? 위의 신유학의 경우에는 과감하게 불교와 노장 [도교] 적 용어를 선택하여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였다. 당시는 노장 [도교]이나 불교를 비판하면서 유학의 부흥을 부르짖어야 하는 시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자기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불교와 노장 [도교]적 색깔로 자신을 소개한 후에 그 색깔들을 점점 걷어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어 갔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분법적으로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여 대적관계로 드러내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독교 복음을 좀 더 보편적 언어로, 세상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면서 표현해 낸다고 해서 기독교 복음이 위축된다거나 교회의 공감대를 얻기에 부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면을 너무 고려하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는 다른 종교를 공부한다고 해서 종교다원주의자로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대화=다원주의자”라는 성급한 동일화보다는 정말 기독교 복음의 고유성과 위대성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야말로 더 “자신 있게” 대화와 공공적 실천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순수 봉사활동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샘물교회 봉사단도 “교회”에서 갔기 때문에 오해와 비난을 받는다거나, 다른 종교에 비해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사회봉사 기관을 운영하고 경비를 지출함에도 몇몇 부정적인 얄궂은 모습으로만 한국교회가 “매도”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가 좀 더 “과감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공공의 영역을 향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복음이 시시한 것이 아닐진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서 좀 더 개방적, 중성적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기독교의 정체성 훼손 운운하는 것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한유에서부터 주자까지는 시대적으로 대략 400년 정도가 차이가 난다. 불교와 노장 [도교]적 색깔이 탈색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해서 우리는 아무도 한유, 이고, 주돈이, 장재, 정이 등을 불교학자로 부르지 않는다. 설사 부분적으로는 불교적 용어로 그들의 학문이 표현되었을지라도 그 그릇에 담긴 유학적 정신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공공적 영역에 좀 더 과감하게 헌신하고 실천하는 것, 도와주는 우군이 처음에는 없어 외로워보여도 점점 많아질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기독교 시민운동이 지향해 나갈 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길은 그다지 외로운 길만은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장면을 통해 생각해 본 대로 신학 자문 그룹이 노장 (老莊)적 역할을 하며 함께 도우미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3) 이 땅을 대동사회로!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유교 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노력마지막 장면에서 주목할 것은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주자학이 선정되고, 조선초기부터 유학자들이 과연 주자학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의 면모를 일신하여 어떻게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사회인 대동사회 (大同社會)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물론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채택되고 유교적 시스템을 가진 조선과, 지금 우리가 논하는 공공신학의 컨텍스트는 분명히 다르다. 기독교든 유교든 한 주력 종교가 모든 사회 시스템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구조에서 유학을 지배이념으로 하는 조선을 들먹인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조선 유학자들의 사회적 책임과 학문적 적용에 관한 부분이다. 과연 유학자들은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자신들이 이해하고 알고 있던 유학의 학문과 바른 가치관을 사회 속에서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공공신학을 논하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우선 조선의 유학자들의 학문과 사회적 실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수양 (修養)을 강조한 데 있다. 유학에서 인간은 하늘과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육체적, 현실적으로는 서로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투쟁적인 인간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수양론은 “극기” (克己), 즉 자신의 욕심을 이기는 노력의 과정이요,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사사로운 나의 욕심을 막아내는 “존천리 알인욕” (存天理 遏人欲)의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학의 수양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경” (敬)이다. 유학에서 경은 하늘의 품수 받은 이치를 간직하고 유지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칭하는 용어이다. 퇴계는 그의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 이라고 표현하였을 정도이다. 또한 천과 인간에 대한 이론적이고 철학적 설명보다는 경을 통한 구체적인 수양적 노력을 강조한 것이 성학십도의 특징이고, 또한 조선 주자학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경을 실천하기 위해서 늘 강조되던 방법이 정좌(靜坐)였는데, 우리가 각론적으로 깊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정좌와 기독교의 기도는 매우 유사한 자세와 태도를 지님을 쉽게 알 수 있다.공공적 영역, 공공적 신학을 말하면서도 유학을 통해 배워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자세는 공공신학을 하는 각 개인 (혹은 단체)의 수양적 태도와 덕성함양이다. 학문은 학문일 뿐 삶과는 별로 관계없는 서구의 학문관 (혹은 지식인에 대한 태도) 과는 달리 동양학, 특히 유학에서는 윤리적으로 바른 삶의 태도가 학자의 기본적인 소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우선적 조건이다. 이러한 유학적 측면에서는 공공신학을 주창하는 여러 학자들이나 기독교 시민운동 단체의 윤리성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바른 자세이다. 사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한국 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목회자의 삶의 태도와 교회의 태도가 얼마나 섬김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기독교가 비난을 받는 데에는 사실 잠재적으로 ‘교회가 세상보다 도덕적으로 나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정서적인 원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큰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목회직의 세습 문제, 목회자의 호화로운 생활,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것처럼 비쳐지는 일부 목회자들의 행태 등 기독교 비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내용은 사실 한국 교회 전체의 모습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교회는 이 사회를 위해 막대한 자금과 봉사를 지금도 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인 사회적 공헌들은 ‘일부’ 목회자들과 교회들의 의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행위에 의해 ‘거의’가 묻혀 버린다. 공공신학을 제창하는 여러 학자들이나 기독교 시민운동 단체도 이 점을 늘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 어떤 단체보다 투명한 재정 집행, 함께 실천적 장에 참여하면서도 가장 윤리적이고 바르고 청렴한 태도를 지닌 각 학자들의 모습이야말로 공공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면서 또한 가장 듬직한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사회적인 차원에서 조선을 유교적인 이상사회로 만들기 위한 유학자들의 노력은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유학자들 자신이 조정에 진출하여 자신의 학문을 바탕으로 한 사회 개혁에 동참하였다. 또한 이와 더불어서 자신이 섬기는 임금을 도덕적인 성인 (聖人)으로 만들어서 임금이 백성의 부모로서 자세를 갖고 늘 수양에 힘쓰게 하기 위한 노력도 선비로서 임금을 받드는 최고의 도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러한 임금이 되도록 늘 간언하고 돕는 것이 선비의 자세라 여겼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선에서는 임금이 어릴 적 세자로 책봉되던 때부터 임금의 재위에 통치할 때 까지 경연(經筵)이라는 제도를 두어 하루에 세 번씩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하여금 임금과 함께 유교 경전을 공부하며 임금으로 하여금 수양에 힘쓰게 하였다. 이는 임금을 성왕(聖王)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요, 또한 이러한 노력이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왕성하게 시행된 곳이 바로 조선이었고, 임금의 정책이 잘못 집행될 때에는 상소(上召)를 통해 시정하도록 하였다. 또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유교의 가르침에 입각한 바른 삶을 강조하기 위하여 각 향촌 단위까지 교육 기관 - 예를 들어 성균관, 향교, 서원, 사학 등- 들을 두어 유교의 각 경전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시작되었거나 고래로부터 있어온 향약, 품앗이, 계, 두레 등의 활동을 더욱 강화하여 각 향촌 마을도 생업에 있어 상부상조하며 서로 돕도록 하였다. 물론 경연 제도도 중국에 있었고, 교육 기관들도 중국을 통해 전해져 온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통해 그러한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더 한층 강화하여 중앙 정부와 지방 조직, 중앙의 교육 제도와 각 지방과 향촌 단위의 교육기관까지, 또한 향촌 자치기구들을 설치하여 지방의 학자들이 관리한다거나 상부상조를 위한 여러 활동들을 더욱 강화한 것이 조선 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물론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에 위와 같은 유교적 시스템을 적용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정신은 유학의 기본 정신이다. 수기 (修己)가 된 만큼 치인 (治人)이 되는 것이요, 동시에 치인 (治人)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수기 (修己)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는 유학의 근본정신은 이 시대 공공성의 담론을 주창하는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기윤실에서 공공신학 세미나 모임을 학제간 연구로 확대하고 또한 다양한 연구소와 학회의 협력을 도모한다고 하는 일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본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서 조선의 유학자들처럼 자신들이 가진 학문을 어떻게 이 사회 속에서 실천해 낸 성과들이 하나씩 하나씩 열매 맺는 그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한다.나가는 말앞서 소개한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 선생이 인생 만년에 유학의 핵심을 10개의 그림과 그에 대한 설명으로 간결하게 집약시킨 대표작이다. 퇴계는 70세로 생애를 마감하였는데, 그가 68세 되던 해 12월에 이 <성학십도>를 완성하여 당시 어린 나이인 17세에 임금의 지위에 오르신 선조 임금께 이 책을 지어 헌정하였다. 그 책을 지어 올리며 퇴계가 선조 임금께 아뢴 내용이 다음과 같다.신(臣)은 추위에 떨리며 병으로 거동이 어려운 가운데서 성학십도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하며, 글의 줄과 글자가 바르고 고르지 못합니다... 본문의 도표 (圖表)와 설명을 열 폭의 종이에 나열하였습니다. 이 도표와 설명을 깊이 생각하시고 익히셔서 평소 조용히 혼자 계실 때에 공부를 하신다면 도 (道)를 깨달아 성인 (聖人)이 되는 요령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며, 본래의 마음을 바로 잡아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오직 이러한 진실된 의미를 깊이 살피시고 정신을 가다듬어 뜻을 더욱 두터이 하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반복하시고, 번거롭다고 하여 중지하지 않으신다면, 국가로서도 다행한 일이며 온 국민들에게 있어서도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나이 어려 임금의 자리에 등극하는 선조 임금과 나라를 향한 노학자의 진정어린 사랑과 마음을 위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68세가 된 퇴계가 추운 날씨에 병까지 걸려 고생하면서 쓰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임금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충분히 배어남을 유추할 수 있다.“동양학에서의 공공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퇴계의 짧은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 짓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위의 퇴계의 예야말로 참된 공공신학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성인 (聖人)이 되기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면서도 우국충정 (憂國衷情)의 마음으로 생애를 마감한 퇴계선생처럼, 이러한 마음가짐과 교회의 태도가 바로 공공신학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향한 교회로서 먼저 교회가 교회다운 자세를 갖고 사회를 위한 진정한 마음가짐으로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학자, 그 모습을 실현할 수 있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세미나 4철학에서 본 공공성의 문제-일시 _ 2008. 4. 26(월) 오전 10시~12시-장소 _ 여전도회관 8층 회의실-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출처] 동양철학에서의 공공성|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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