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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공공성 김호경교수

신약성서의 공공성
이 글을 송영목 교수가 자신의 논문 "공공신학에서 본 세상 속의 천국"115페이지에서 인용했다


신약성서의 공공성  **교회/신앙   
2008. 8. 25. 16:06
복사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178

신약성서의 공공성                 
 김 호 경 교수
서울장로회신학교 신학과

I. ‘공공성’ 문제
J. 색스는 『차이의 존중』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세계화와 세계화가 불러일으킨 도전, 세계화가 마련해준 기회, 세계화가 낳은 고통, 그리고 세계화가 초래한 저항과 분노를 다룬다.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헌팅턴의 예측을 피하기 위하여 그가 택한 방법은 대화이다. 그가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 문제들의 대부분이 자기 집단에게만 말을 하는 집단적 분리와 고립의 현상에서 연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은 유대인에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만 말은 건네고, 경제지도자와 경제학자, 세계화 반대론자들 역시 그들의 동료들에게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진단이 옳다면 모든 문제들과 그 문제들로부터 기인한 비극들은 확실히 각각의 집단들의 간의 이러한 단절과 상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소위 포스트 모던이라고 하는 근자의 흐름은 이러한 단절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것을 거부하고 근대적 거대담론들을 폐기시킨 포스트 모던적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각각의 집단들의 의미이다. 이러한 포스트 모던적 특징은 현대의 자유주의적 신조를 ‘선보다 정당함이 우선한다’고 일갈한 J. 롤스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즉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작금은 인류가 지향해오던 공공(公共)의 선(善)보다는 각각의 집단들의 정당성이 의미를 갖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익을 달리하는 이러한 집단들의 정당성이 불화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인식은 특히 기독교 공동체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의 정당성을 드러내야 할 뿐 아니라,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하는 우리의 정당성을 이익을 달리하는 집단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성을 지향하는 ‘공공의 선’과 개별성을 지향하는 ‘집단의 정당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 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만큼 과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은 우리의 현재적 문제와 미래의 현실에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 상호주관성(타인을 목적이 아니라 주체로 인식하고 주체와 주체로서의 만남에 기초하여 형성되는 정체성)에 입각한 평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같은 집단의 사람만을 자신의 사회인식의 범위로 삼는 신앙의 단계에서 다른 집단과 다른 전통의 진리와 주장에 대하여 원칙 있는 이념적 유연성, 존재에 대한 자기도취성을 초월한 사랑을 지닌 신앙의 단계로의 변화(장신근)’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II.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요구

 

그렇다면, 신앙의 사사화(私事化)를 막고 신앙의 공적인 책임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서 성서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M.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을 말할 수 있는 근거로서, 기독교 공동체가 비밀스럽거나 접근 불가능한 집단이 아니라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에 책임이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노영상). 그가 기독교 공동체를 사회 내적 구조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와 세상과의 관계, 세상에 대한 책무를 강조한 것은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과 기독교 공동체와의 이러한 관계는 기독교의 현재적 역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가 처음 생성될 당시에도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교 내의 한 묵시적 종파’로 출발하였다. ‘유대교 내의’라는 의미는 기독교가 유대교라는 특정 집단과 맺고 있는 관계를 표출하며, ‘한 묵시적 소종파’는 기독교가 세상, 즉 당시의 지배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낸다.

구체적인 역사적 정황 속에서, 그 역사와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배태된 초기의 이러한 기독교는 역사와 전통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 특징을 벗어나는 기독교의 정체성으로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제시하였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유대적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지만, 유대적 의미를 넘어서며 끊임없이 ‘세상의 통치’와 대립함으로써 이 땅에서 예수를 통해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한다. 더욱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임박한 종말론과 실현된 종말론적 함의는, 로마라는 거대 제국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한 유대백성들에게 일종의 새로운 대안질서로 인식되었고, 이것이 갈등을 유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초기의 기독교가 세계 내에서 특정한 위치와 관계를 형성하며 역사 속에서 기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소위 기독교 공동체의 ‘공공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면, 공공성의 문제는 기독교의 태생적 특징이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33절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일종의 쌍을 이룬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는 하는 것으로 세상의 지배와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지배를 갈망하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요구는 곧 하나님의 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바울에게서 강조되는 것과 달리,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통치라는 하나님 나라와 짝을 이루며 인간의 책무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에게 요구되는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요구는 기독교 공동체의 내적인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며 그것으로서 기독교 공동체가 대립하고 있는 여타의 공동체들과의 관계성을 표출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의 의와 관계하여, 예수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계명들과 다른 새로운 법을 선포하는 단락의 앞머리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는 구절이 자리한다. 이 구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하한선(下限線)임을 강조함으로써, 유대 지도자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의 연관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6개의 반대명제(5:21-48)를 통해서 기독교 공동체의 의가 어떻게 유대교의 의와 다른 지를 구체화시킨다. 6개의 반대명제는 기존의 유대율법을 강화시키거나 폐기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기독교 공동체가 실현할 의의 내용을 드러내준다. 여기서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회복된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다시금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강조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예수는 그것이 천국에 들어갈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인간과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II. ‘죄인’을 부르심

 

의는 고대 근동지역의 세계질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초월적인 특성과 함께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간의 실천적 의지를 함의한다. 의는 하나님의 우주적 질서 가운데 하나로 이해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와 더불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의인, 또는 죄인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스라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회적 개념으로 발전된다. 정결한 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앞에서 거룩한 자, 의인인 반면, 정결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자이며, 이스라엘로 존속할 수 없는 자이다. 죄인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자’, 즉 ‘제의에 참여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자’, 혹은 ‘회개가 필요한 자’, ‘이스라엘에 들 수 없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것, 불완전한 상태가 바로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죄’이기 때문이다.

죄인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죄인을 단순히 도덕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죄인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악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개가 필요한 불완전한 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완전함’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즉 무엇이 거룩하고 무엇이 불결한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렇듯 ‘의’ 속에 반영된 제의적인 개념인 거룩함이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환경을 통해서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죄’의 개념은 제의적일뿐 아니라 사회적인 개념이 된다. 이스라엘에서 ‘죄’가 제의적, 사회적, 도덕적 의미를 가진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죄인과 의인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 이데올로기적(ideological)이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에서 죄인이나 의인의 개념은 이스라엘의 거룩함(정결법)과 그것을 주도하는 자들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스라엘에서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설정해줌으로써,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인 정결법의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반영한다. 정결법이 종교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는 것은 그것이 특정 그룹의 세계관에 의한 개념임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성전 정결법은 제사장 그룹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정결법을 성전의 거룩함과 배타적으로 연결시켰고,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성전과 그들에게로 집중시켰다. 이스라엘의 정결법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계급적인 사회적 특징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정결법과 성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며, 이스라엘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으로 나누는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특정 그룹에 편중된 이러한 배타적 정결법에 반대하여 새로운 거룩함을 주장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의 거룩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계급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들의 거룩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성전중심의 제의를 대신하여, 율법중심적인 삶을 강조함으로써, 성전제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율법준수를 통해서 거룩함이 회복되고 유지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성전 내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정결법을 성전 밖으로, 제의가 아닌 일상생활 속으로 끌고 나왔다. 그들은 정결법과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이 성전에 머무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도 머문다고 강조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제사장들의 거룩함을 비판하며 새로운 거룩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거룩함의 개념의 변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거룩함의 내용은 그것을 규정하는 자들에 따라 변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 일상적인 삶 속으로 가져온 바리새인의 의는 성전을 빼앗기고 유대적인 것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일 수 있는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즉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의 내용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그것으로 유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변화가 결국 70년 이후 변화된 판도 속에서 바리새인들을 유대교의 주도자로 만든다.

그러나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거룩함, 그들의 ‘의’를 ‘천국에 들어갈 최소한의 것’으로 비판한다. 그들은 제사장들의 ‘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의를 이데올로기로 만들면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임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고 그들의 의의 정통성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를 선포하며 거룩함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회복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이러한 새로운 의는, 죄인을 부르는 예수의 행위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죄인으로 규정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며 그들을 의롭게 만든다. 죄인을 부르는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이데올로기를 파기하며 그와 함께 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IV. ‘함께 함’의 구원

 

그러므로 많은 유대인들이 그의 제자들에 ‘너희 선생은 왜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가?’라고 묻는다. 아마도 예수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의 부정함과 불결함을 전적으로 인정했더라면, 예수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는 바리새인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한 자들과 함께 있는 예수가 거룩함을 주장한 것에 있다.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예수의 거룩함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새로운 거룩함은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로 드러내며 그들과 그들의 의를 비판하고 그들이 안주하고 있는 거룩함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거룩함을 위해서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과 같이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다른 이/그룹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였다. 그들과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거룩함을 해치지 않는 반면, 그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와 반대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의는 자신들의 설정한 범주 내의 사람들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많은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인종적, 지역적, 사회적, 경제적, 성적 경계를 넘어서는지 보여준다(큰잔치 비유, 그물 비유, 가라지 비유,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하늘로 올라간 여자의 비유). 예수의 행위, 특히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정결법을 파기하는 식탁교제도 이러한 경계의 허물어짐을 상징으로 드러내주며, 누가복음서의 취임설교는 예수가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왔음을 천명한다. 이 모든 말씀과 행위들은 죄인들과 함께 하는 예수를 보여준다. 예수는 자신의 복음을 통해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밖으로 밀려났던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예수는 경계를 허물어 ‘만민’을 하나님 나라 안으로 불러 모은다. 그러나 더불어 예수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자에 합당한 의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가 선포한 새로운 의와 더불어,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새로움이 ‘안’에 연결된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형성하며 ‘밖’으로 그들이 여타의 공동체와 다른 이유를 제시해 준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에는 경계의 파괴가 있다. 여러 조합들의 모임을 용인했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불온한 단체로 의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의 조합들은 같은 성질/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기독교 공동체는 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목적의 불분명함이 로마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로마라는 시대적 배경과의 이러한 상이성과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해진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차이는 기독교를 고난의 역사 속 속으로 밀어 넣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러므로 공적인 삶의 구조와 정책에 책임 있는 집단으로서 기독교의 공공성을 묻는다면, 경계와 범주를 규정하고 그 안에서의 관계를 강조하는 기존질서에 대한 예수의 비판이 기독교의 공공성의 회복에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기존의 관계 속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체성을 밑바탕으로 한다. 끼리끼리의 권세와 자신들 안의 관계 안에서 의와 진리를 주장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비판이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의 새로운 의’ 속에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적 죄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의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현상은 어떠한지, 오늘날 기독교의 거룩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지 돌아볼 일이다. 그 돌아봄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의’의 모델을 찾아내는 것이 공공신학의 과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 전문가 집담회 3
-일시 _ 2007. 12. 3(월) 오후 7시~9시
-장소 _ 명동 청어람 1실
-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출처] 신약성서의 공공성 |작성자 e_library

자료출처 https://blog.naver.com/e_library/12005522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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