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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과 선(禪/Zen)과 장자의 도

토마스 머튼과 선불교에 관한 자료입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과 선(禪/Zen)과 장자의 도
 
 
20세기 서구 기독교의 가장 뛰어난 영성가로서 명상과 관상기도 등 기독교 영성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긴 머튼은 선불교에 관해서 큰 관심을 나타냈다. 머튼은 선불교와의 대화에 관련해서 탁월한 선불교학자이며 선승인 스즈키 다이세즈(Suzuki Daisets)와의 교제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의 서신 교환은 1959년부터 시작했으며, 머튼이 고대 사막교부들의 관상적 영성과 선불교의 선승들의 영성의 유사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왔는데, 바로 이 점에 대해서 스즈키와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스즈키와의 교제 이후, 머튼은 1965년에 「장자의 도/The Way of Chang Tzu」를 출간했다.
 
장자를 통해서, 머튼은 언어와 개념을 넘어선 “실재”에 대한 체험적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기독교의 문제점은 언제나 개념화와 교리화에 집착하는 약점에 있음을 깨달았다. 머튼의 동양종교에 대한 깊은 관심은 1968년 방콕(Bangkok)의 종교회의 참석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이 기회를 불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종교성과의 접촉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즉 인도, 태국, 스리랑카를 방문하려 했고, 달라이라마와의 만남과 일본의 선승들과 만날 계획도 세웠다.
 
로버트 킹(Robert King)은 말하기를 "머튼은 선불교의 선(禪)을 무조건 따르거나 모방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명상/관상 전통에 수렴시켜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행하려 하였다"고 하였다. 틱낫한의 명상실행의 최대 공헌은 명상/관상 실행의 대중화라 말할 수 있다(승려중심에서 일반인에로). 이것은 그의 책 「깨어있음의 기적/Miracle of Mindfulness」에 잘 나타나 있다. 머튼의 공헌도 틱낫한과 같이 관상/명상적 영성생활의 대중화(일반화)라고 말할 수 있다(참조, 머튼의 “명상의 씨”). 틱낫한의 머튼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의 서구 신학자나 영성가들이 이원론의 사고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반해, 머튼은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라고 보았다.
 
어느 날 친구인 데이비드 라스트(David Steindl Rast)가 머튼에게 묻기를, “불교와의 접촉 없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잘 설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자, 머튼은 한참 생각하다가 “나는 불교의 빛으로 조명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1962-1965년에 열린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타종교 특히 불교와의 접촉의 문이 열렸다. 머튼과 만나 대화했던 스즈키(Suzuki)는 그를 “선(禪)을 가장 잘 이해한 서양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머튼은 그의 「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 서문에서 “선(禪)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도 아니며, 신학도 아니며, 이론적인 명제도 아니고, 의식(意識)과 앎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론"이라고 말했다. 머튼은 이 책에서 기독교 전통에 얽매지는 않지만, 교부시대, 초기 수도원제도(사막수도자들), 영국 신비주의, 17세기 신비주의, 러시아 동방정교회 영성, 퀘이커교도, 떼제 공동체 같은 신교 수도원 공동체 등을 다루었다.
 
머튼은 동양의 다도(茶道)에서 단순성, 고요함/고독함, 정결함, 여럿이 하나됨을 이룸 같은 성만찬 예식과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머튼은 "선(禪)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선은 신학도, 종교도, 철학도, 교리도, 고행도 아니고, 선은 단순히 길이며, 경험이며, 삶이지만, 길이면서 또한 길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스즈키는 선은 단순한 “신비주의”(mysticism)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머튼의 선(禪)에 대한 생각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선(禪)은 완전한 비움 곧 공(空) 안에서, 모든 주관과 객관의 대립의 용해(溶解)에서 나오는 '깨달음'(satori)을 얻는 일이다. 선은 주관과 객관을 초월하는 순수 존재(실재)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이라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선은 모든 종류의 개념화나 추상화를 거부한다."
 
선 곧 선불교는 6세기, 인도 승려 달마(Bodhidharma)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었고, 도교와 결합하여 발전된 산물이다. 달마의 시(그러나 이것은 후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旨人心, 見性成佛"이란 이 시는 선불교(Zen)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시이다
  
중국 선종의 분열: 
중국의 선종(禪宗)은 6세기에 와서 남종(慧能, 6대조)과 북종[信秀, 5대조 홍인(弘忍)의 수제자]의 둘로 갈라졌다. 혜능이 6대조로 선택된 연유는 두 사람(혜능과 신수)의 선시(禪詩)의 내용 때문이었다.
 
신수의 시(신수는 5대조 홍인의 수제자이며, 최고령자로 홍인의 후계자로 여겨졌었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깨끗한 거울 같구나.
항상 갈고 닦아서 
한 올의 먼지도 묻지 않게 하려네."
 
혜능의 시(혜능은 홍인의 절에서 계도 받지 못한 채 부엌에서 일만 하던 도반 중 하나에 불과했었다.)
 
“보리수 나무 원래 없고,
거울 또한 틀이 아닌 것,
어느 곳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
 
이 시의 탁월성 때문에 신수 대신 혜능이 홍인을 이어 선종의 6대조가 되었다.
 
머튼은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이란 책에서 영국의 신비주의 - 리처드 롤(Richard Rolle), 「미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을 쓴 무명 저자,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등 - 를 매우 좋게 평가했다. 머튼에 따르면 영국의 신비주의는 기쁨의 찬미의 신비주의이다. 그들은 부정의 경우도 항상 긍정적이다. 그들은 기쁨, 환희, 찬양, 빛(어둠 속에서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영국의 전원의 아름다움, 즉 자연, 강과 숲과 나무들의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머튼은 또한 개신교 영성과 그리고 특히 개신교 수도원 운동(예를 들면 떼제 공동체 같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고 또한 높이 평가했다. 20세기 개신교의 대표적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주체성/주도성을 강조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부정함과 동시에,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로 복귀할 것을 강조한바 있다. 따라서 바르트는 언제나 고전적(종교 개혁가들의) 영성적 개혁 이론을 변호했고, 금욕주의를 과대평가하지는 않지만, 수도사의 독신생활을 인정하였고, 역사적으로 교회의 세속화에 반대하는 수도원 제도를 높이 평가했었다.
 
관상기도와 선(禪) - 명상/관상에 대한 머튼의 생각: 
 
깊은 침묵 속에서의 영적 사색행위인 명상(瞑想/meditation), 혹은 관상(觀想/contemplation)에 관해서 머튼만큼 큰 관심을 가지고 또한 그것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명성과 안정된 삶이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테라피스트 엄률 봉쇄 수도원(Therapist cloistered monastery)에 들어가 일생 동안 관상기도자의 삶을 살면서 명상과 관상생활을 몸소 실천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명상과 관상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겨 주었다. 
 
그에 따르면 명상이나 관상이란 순수한 신비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을 말한다. 즉 그것은 순수한 형이상학적 사색과 성숙하고 지혜로운 종교체험의 근거이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순수사색 행위 곧 순수인식을 지칭한다. 명상은 개신교에서는 아주 위험시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모든 고등종교의 공통적 요소이며, 지구적 영성(global spirituality) 곧 세계 종교주의(종교 간의 대화)로 나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물론 각 종교의 명상에 대한 개념은 상이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선(禪)의 공안(公案) 곧 화두(話頭): 
 
머튼은 선의 공안(公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공안은 깨달음을 주기 위한 스승의 간단한 질문의 형식으로서, 어떤 한 생각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예를 들면,
 
산은 왜 언제나 푸른가?
강물은 왜 언제나 소리 내며 흐르는가?
무(無/없음)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무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두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데, 왜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가?
 
공안 공부(실행)의 목적은 공안을 실행함으로써, 즉 공안에 대해 타당하면서도 살아있는 응답을 구하는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삶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지혜)을 배양함에 있다. 공안은 모든 생각들 특히 실재가 아닌 허상들, 임의적인 망상들을 깨부숴버리는 “바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성 베네딕트(St. Benedict, 6세기의 이태리의 영성가로서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자아주의(자기중심주의)를 부서트리는 “바위”라고 말한바 있다. 예수의 십자가도 인간의 모든 임의적인 생각들을 정지시키는 “철퇴”로 비유할 수도 있다. 요컨대 수도사 혹은 관

(http://daseokacademy.com/bbs/board.php?bo_table=religion&wr_id=66&sca=%EB%8F%84%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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