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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의 하나님의 임재 타령은 이교사상




CCM의 하나님의 임재 타령은 이교사상
정태홍 목사의 <왜 CCM은 위험한가?>(2회)
승인 2015.04.28  13:02:07   

 
CCM의 위험성을 말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존 윔버의 영향 아래 있는 그 근본적인 위험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CCM의 위험성을 말한다고 할 때, 우리는 분명한 근거에 의해서 말해야 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 후속 편으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주는 어떤 동영상 자료를 보았기 때문에 먼저 이것을 말하고 글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다음의 동영상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MRjaKPKg6gQ

이 동영상 자료에는 자막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자막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배는 음악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예배의 표현일뿐 입니다. 예배는 박스 안에 가두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입니다. 바로 이것, 바로 이 한 가지입니다. 예배곡, 춤, 그림, 노래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예배의 표현입니다. 그 표현들이 예배의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예배는 이러한 박스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모임과 예배자들 안에서 이러한 ‘연결’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모든 이들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와 예배자들과 모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개혁교회는 부흥을 이루어 내는 것, 이것이 단지 과거의 일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흥이 꾸준히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예배 또한 그래야 합니다. 예배는 성장해야 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예배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죠.

우리는 일주일을 보내며 삶을 살아갑니다. 일을 하고, 아이를 보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나쁜 날을 보내기도 하고 좋은 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학교에 다니며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목사님, 네 예배팀 저를 다시 주님과 연결시켜 주세요. 예배팀은 빠른 찬양 두세 곡 정도 부르고, 두세 곡의 중간 템포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나서 보다 친밀한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모든 회중들이 예배에 들어오게 하고, 하나님과 연결되게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시죠?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로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여기에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세요. 만일 회중들 모두가 이미 하나님께 연결된 상태로 준비가 되어 교회에 들어와서 ‘저는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한 노래가 필요치 않아요.’ ‘누군가 내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연결을 위해 싸워왔고’ ‘이것이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한다면 얼마나 예배가 놀라워질까요. 얼마나 더 깊은 임재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정말 이런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우리가 함께 예배할 때 얼마나 더 강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가 소멸될까요? 이런 생각들이 제 마음 속에 밀려 왔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우물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우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우물을 가득 차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득하다는 것은 꽉 찬 상태가 아니라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안으로 채워지면서 밖으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이 우물을 계속 채울 수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집회에 가서 새로워지고, 회복되고 채워졌다고 합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좋아요 가족들 우리가 오늘부터 이러 이러한 것들을 새롭게 할 거에요’라고 말하고 일주일 동안에 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하게 된다면 금방 지루해 질 수 있습니다. 또는 놀라운 일들, 마치 가브리엘 대천사가 여러분을 방문해서 내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이러한 기적이 자주 일어나도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점점 멀어져서 주일 예배를 기다리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교회의 주일 예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집회들을 기다리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반복합니다. 우린 항상 그래요. 저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내가 이런 일들을 겪는 걸까? 왜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걸까?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는데 ‘오 내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구나. 나의 주중에 주님과 연결이 어땠지? 어디로 간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나님과의 ‘연결’이 살아 있게 하는 것 그것은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중에 식료품 가게에 가서 계산대 앞에 줄을 서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멈추고 내 안에 모든 열정과 내 안의 모든 힘으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연결’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노래들을 생각해야 하거나 또는 사람들에게, “혹시 이 식료품 가게에 저를 위해 연주해 주실 분 있나요? 내가 지금 바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전혀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저는 주님과의 ‘연결’이 살아 있기를 원해요.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올 때 이런 한 일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미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요. 저는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노래나 춤이 필요하지 않아요.”

저는 노래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이렇다면 어떤 예배가 드려질 수 있을지 말하는 거에요. 만일 우리가 주님과 이미 ‘연결’된 상태로 함께 모인다면 예배 시작과 동시에 ‘쿵!’ 주님의 임재 속에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연결’이 친숙한 사람들입니다. 계속해서 주님과 연결된 가운데 머무르세요. 이것이 열쇠입니다. 주님을 향해 거부하지 않는 마음(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열쇠입니다.

우린 항상 이렇게 하곤 하죠. 제가 한번 말해 볼께요. 분명 어떤 날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이 있을 거에요. 흉측한 것들이 내 안에서 올라와 나를 향해 고개를 들고서 나를 대적합니다. 나는 계속 그것들을 잘라내야 하죠.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느끼죠.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걸까.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너무나 크신 분이신데 이런 일들이 제게 일어난 것일까요? 이런 충격적인 일들,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왜 이런 일들을 막지 않으셨죠? 당신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지구를 당신의 손으로 붙드시는 분이신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나요?’ 그리곤 우리의 모든 질문의 해답을 듣지 못할 때, ‘주님 당신도 나의 전부를 얻을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예배로부터 물러섭니다. 물론 요만큼은 예배합니다. 그러나 정말 모든 열정을 다해서 자신의 전부를 던져서 예배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거절할 때, 주님과 함께 깊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닫혀진 마음 때문이죠.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허락한다면 우리도 이렇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 삶의 매일에 걸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님 안에서 다루었고 이것은 제 삶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그거 아세요? 저는 대답이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대답을 안 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원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떤 대답보다 하나님 당신을 원합니다.’

우리가 만약 이러한 곳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예배는 과연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왜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지? 왜 뭔가가 느껴지지 않을까?’

어쩌면 여러분의 마음 어딘가에, 이처럼 굳어지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의 마음이 아프면 ‘아야 아파’하고 뒤로 물러납니다. 상처 입거나 데이는 것처럼 이것은 자연스런 반응이에요.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고난들을 극복하고 돌파하는 방법은, ‘주님, 이러한 고통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거하는 것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Kim Walker)
 

킴 워커(Kim Walker)가 8분 48초 동안 말하고 있는 이 동영상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연결’(connec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예배(worship)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예배 전에 찬송을 부르는 목적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찬송이 수단이 되어서 하나님과 연결하려는 방식은 매우 비성경적인 방식입니다. 과연, 우리가 찬송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되어 있을까요? 이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CCM의 위험성을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대목 중에 하나입니다.

킴 워커가 말하는 방식은 성경적 개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는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참다운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내주하십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다시 떠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성령님께서 오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사역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참으로 거듭난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며 그 말씀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중생한 자들은 이미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으며, 예배에 나오기 전에도 이미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거듭남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3-26)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 안에 거하시면서 성도를 위해 탄식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고 계신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성도의 기도에서도 드러납니다. 성경은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이 말씀에서, ‘무시로’라는 헬라어는 ‘엔 판티 카이로’입니다.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모든 시간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고 말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모든 시간에 기도할 수 있다는 뜻 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명령합니다.

킴 워커가 말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런 방식에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왕상 18:25-29)

바알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자기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떠들”었습니다. 여기서 떠든다는 말의 문자적으로 ‘미친 듯이 예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광란에 찬 자해 행위자들이 한숨과 신음으로 토로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예언이란 우상을 섬기는 종교에서 행하는 주술적 행위들입니다.

『1서클 대마법사 1』판타지 장편소설에 나오는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판트리아에 환생을 하게 되면 넌 자유의 몸이 된다. 무슨 뜻인 줄 아느냐?”
“예. 정말 잘 살아보겠습니다. 묵주님이 주신 목숨이니 정말 잘 살겠습니다.”
“그곳에서 네가 죽는다면 그건 네 잘못이다. 그것에서 네가 잘되어도 네가 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나 다른 저승사자들을 탓해선 안 된다. 또 신을 탓해서도 안 되고, 명심해라.”

물질계의 존재가 신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은 간절한 기도뿐이다.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그 내용이 신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허나 모든 득과 실을 자신의 탓으로 하게 되면 기도를 하지 않게 된다. 즉 신과 연결이 끊어지는 것, 묵주가 노리는 게 이것이었다.

바알의 선지자들도 판타지 소설에서도 인간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신과 연결된다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틀린 사상입니다. 성경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말하는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미 자기 백성들을 보고 계시고 그 기도할 바를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5-7)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8)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2)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이미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은밀한 중에 우리를 보고 계시며, 심지어 우리가 구하기 전에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열심히 기도하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기에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지, 연결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시 139:1)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시 142:3)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늘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마음이 상한 그 때에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 속에 있는 백성인지 다윗은 시편 23편에서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특히, 이 구절은 우리가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도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것을 확신하게 해 줍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CCM을 부름으로써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하여 CCM을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비성경적인 사고방식이며 샤머니즘적인 접근입니다. 왜 그 많은 CCM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CCM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함입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연결되려고 할까요? 그것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과 연결하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두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충성된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연결은 이미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 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2-33)

그렇게 새언약이 성취되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늘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CCM을 부르면서 연결하려고 시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미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미 언약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회를 가리켜 “공교회”(catholic church), 혹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nk)라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여러 갈래로 찢어지지 않으시는 이상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인데(참조 고전 1:13),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택한 자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을 이루어(참조 엡 1:22-23) 한 머리를 의지하며, 또한 한 몸으로 함께 자라나며, 한 몸의 각 지체들로서(롬 12:5; 고전 10:17; 12:12, 27)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참조 엡 4:16). 이들은 진정으로 하나로 만들어진다. 이는 이들이 한 믿음, 한 소망, 한 사랑, 그리고 한 하나님의 성령 가운데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일한 영생의 기업을 향하여 동일하게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함께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엡 5:30)."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의 모든 택자들은 연합이 되어 있습니다. 칼빈의 말처럼,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찬송을 부름은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영광 돌림입니다.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송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송영을 부를 수 있는 자들은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한 자들입니다. 구원과 언약으로 성도는 하나님과 연결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이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46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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