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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와 하느님




가이아와 하느님
내가 보는 세상/읽은 책 2008/02/08 17:19
로즈마리 래드퍼드 류터 저/전현식 역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E Press) | 2000년 07월

로즈마리 류터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학부 때 처음 들었다. 그때 그 이름은 여성신학자라는 한 단어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매튜 폭스와 로즈 마리 류터가 친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폭스에게 푹 빠져있던 마음이 로즈 마리 류터에게로 이어졌다. 메튜 폭스와 친했던 류터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책이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창조와 파괴, 지배 그리고 치유라는 네 개로 구성된 책은 메퓨 폭스가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성서와의 관련성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폭스의 책은 읽으면서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면, 류터의 책은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폭스의 책보다는 좀 더 이해하기 쉬웠고, 받아들이는데 어려움도 없었다. 특히 치유라는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성서의 계약 전통과 성례전 전통은 학부 때 많이 들었던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에서 자주 사용된 표현들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조금은 수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각각의 개념들이 종전의 개념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미하게 구분선을 그으면서 글을 읽을 때는, "왕의 남자"에서 주인공이 외줄타기 하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느낌들을 받기도 했다. 아마 그것이 학문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이 가지는 신학적 통찰들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학부 3학년 때 처음 학교에 강의를 하러 온 교수님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을 통해 페미니즘적 시야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번 학기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옛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나아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우선 이 책에서도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생태계의 위기란 다양한 종류의 억압 구조에 의해 만들어졌다. 류터는 이런 업악을 "상호구조지워짐"이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계층적 이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우울하다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예로서, 인간 중심성, 남성 중심적 사고인 가부장적 체제 등을 들고 있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류터는 자신의 생태 신학을 기독교의 잘못된 전통이 아닌 긍정적인 전통 곧 개혁적이며, '생명을 사랑'라는 흐름에서 찾고 있다. 류터의 생태 신학은 인간과 자연을 운명 공동체로 바라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파괴적 관계를 정의와 사랑의 상호 관계로 회복시킬 수 있는 밑거름으로 생태 신학을 제안하고 있으며, 그것은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남성적 가치가, 여성 안에서 발견되는 공생, 협동, 정의와 사랑의 가치에 의해서 균형 잡혀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우선 류터는 세 가지 고전적 창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와, 히브리 창조 이야기, 그리고 그리스 창조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바빌론 창조이야기는 여러 갈등 때문에 지배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히브리 창조 이야기에서는 하나님과 아담을 호칭하는 명사가 남성형이며, 창세기 2장 이후로 남성 중심성이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창조 이야기에서는 우주를 누군가 만든 것으로 설명하면서 이원론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이원론에 근거하여 계층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제 류터는 이 세 창조 이야기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의 창조 이야기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창조 이야기가 생태학적 무책임을 형성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기독교의 창조 이야기는 16세기 이후 과학적 설명으로 인해 가치를 상실해 나게 되었다. 더 이상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기독교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다윈의 진화론은 지구의 역사가 성서에 나타난 역사보다 훨씬 오래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현대 과학에서는 우주는 180억 년 전 '빅뱅'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늦게 태어난 인류가 모든 자원을 가장 빠른 속도로 소비하면서 자신들의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다음으로 류터는 고대 근동의 이야기들과 히브리 세계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이야기들은 자연이 순환 구조에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에서부터 의미와 원리를 추출해 내고 있다면, 헤르부의 이야기들은 그것 위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상정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서 보고 싶은 부분은 "죽음"이다. 초기에는 죽음은 히브리 종교에서도 자연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극복해야 할 어떤 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생명의 본질이 부정되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절대화되는 과정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나아가 이런 사고는 이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다음으로 류터는 기독교적 전통에서 본 죄의 개념을 설명한다. 죄를 불복종과 유한성으로 보는 고전적 기독교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서구 역사 속에서 큰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한다. 나아가 이런 죄에 대한 이해는 악을 정당화시키는데 사용되었다. 죄와 악에 대한 고전적 이해는 지배적 남성의 관점에서 형성되었으며, 여성과 다른 종속된 사람들, 그리고 지구에 대한 지배적 남성의 폭력적 힘을 정당화시켰다. 게다가 유대 전통에서 죄와 죽음, 불순함과 유한성의 근원을 여성에게 귀속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여성의 종속이 정당화되었다. 류터에게 있어서 "죄"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본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유산을 잘 살펴보면 생태학적 정의의 윤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것들 가운데 한 가지는 히브리인들이 가진 악에 대한 이해에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악은 사람들 사이의 부정한 관계가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에 있다.


류터는 이제 생태학적 영성과 실천을 기독교 전통 가운데서 끌어내는데 그것은 계약 전통과 성례전적 전통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이원론적 구분에 의해 나누어지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분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즐거워하고'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에 응답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는 물활론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던 "땅"에 대한 개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땅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 명시된 바와 같이 안식일 법에 땅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인간은 인간만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함께 안식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안식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기독교 전통 가운데 끌어내는 것은 성례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성서적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는 창조의 내재적 근원으로서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면서 구속자로 이해된다. 특히 류터는 우주론적 그리스도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크게 세 가지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메퓨 폭스의 창조 중심의 영성,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영성, 그리고 화이트 헤드의 과정 신학에 기초한 영성이 그것들이다. 폭스는 원복이 모든 사물의 내재적 본성으로 이해된다. 샤르댕은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사고는 가이아 가설과 잘 연결이 된다. 지구는 공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된다. 화이트 헤드는 과정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는 자기 자신을 현실화하는 실체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류터의 책을 살펴보았다. 류터의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여성과 환경문제는 남성 중심사회의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동시에 해결해야 할 숙제로 인식하고, 문제의 원인이 상호 연관되어 있는 만큼 그 해결책 또한 여성과 남성, 자연과 문화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에코페미니즘의 주요 통찰이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에코 페미니즘은 자연 생태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와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또한 남성, 서구, 이성 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뒤바꾸려는 실천 지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남성과 자연에 대한 인간을 타도 대상이 아닌 원래 하나라고 규정하고 어울림과 균형을 통한 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한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은 자연 속의 생명력이 협력과 상호 보살핌, 사랑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새로운 우주론과 새로운 인류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다양성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표현까지도 우리의 안녕과 행복의 진정한 원천으로서 존중하고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에코 페미니즘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것 같이 말하고 있다.
(자료출처 http://cyh77.tistory.co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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