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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슬람(Chrislam)운동’은 背道의 길

‘크리슬람(Chrislam)운동’은 背道의 길



‘크리슬람(Chrislam)운동’은 背道의 길
문병길 목사(종교근본주의연구소 소장)
 
문병길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2:2-3)     

최근 한국교회 속에 크리슬람(Chrislam)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무슨 대단한 것처럼 관심이 많다. 이 말은 기독교와 이슬람을 혼합하는 합성어로써 종교혼합주의의 대표적인 용어이다. 이런 혼합주의가 이른바 ‘크리슬람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에서 쟁점화 되고 있다. 이것은 2013년 10월 종교혼합주의 축제였던 WCC 부산총회를 계기로 확산되고 있으며,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종교 간의 대화와 이웃종교를 알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본격화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을 해소하고, 종교 간의 대화와 친교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뜻을 가진 정치적인 의미에서 관심의 대상은 되지만, 이는 십자가의 “진리의 도를 훼방”(벧후2:2)하는 배도의 길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1. 크리슬람 운동의 시작과 확산    

크리슬람 운동의 시작은 198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시작을 했다. 나이지리아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반반을 차지하는 국가로서 종교 간의 갈등과 투쟁이 극심한 나라였다. 이를 해결해 보고자 신흥종교지도자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람은 기독교 신자였던 틀라 테라(Tela Tella)와 무슬림 이었던 삼수딘 사카(Samsuddin Saka)이다. 테라는 기도 중에 천사로부터 기독교와 이슬람의 평화를 위한 사명을 받았으며, 사카는 메카를 순례 중에 기독교와 이슬람은 동일한 하나님이니 함께 예배를 드리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데서 출발하여 1990년 사카에 의하여 크리슬람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사카를 중심으로 성경과 꾸란을 사용하는 사제로서 미주 방송을 통해 전파되면서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첨예한 갈등을 체험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관심을 갖게 되고, 심지어 

정치지도자들이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저변화 되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았던 아들 부시 대통령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 간의 갈등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때에 크리슬람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릭 위렌(Rick Warren)목사가 “예수아, 이사(lsa), 헤수스, 그리고 지져스 이름으로 아멘”하고 기도를 함으로써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에게 충격을 주고, 세계 기독교계에 논란을 가져왔다. 여기에 이사(lsa)는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서 예수라는 뜻이다. 마치 NCCK(한국교회협이회)의 2009년 시국선언문과 공동기도문에서 “나무아비타불, 아멘” “하늘에 계신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와 소태산 대종사님” 등의 언급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 갈등의 해결이라는 정치이념과 기독교와 이슬람은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자유주의 신학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염려하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포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WCC(세계교회협의회)의 부산대회를 계기로 더욱 표면화되면서, NCCK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계의 이슬람 의 견제활동을 비판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그 당위성을 찾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에서는 신학생과 부제 그리고 신부와 수녀들은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을 방문하여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를 배우고 있으며, 불교와는 강단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종교 간의 대화를 앞세운 크리슬람 운동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는 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가 다종교국가이기에 특정종교를 배격할 수는 없다. 특히 종교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종교 간의 평화유지는 필수 조건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받도록 해야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2-4).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하여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어둠의 세상 주관자인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해서 크리슬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분명 십자가 진리의 배도요, 적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이다.     

2. 이슬람은 기독교의 완벽한 이단    

종교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지만은 그리스도가 빠진 것’이 종교다. 불교는 엄밀하게 따지면 종교가 아니라 철학의 일종이다. 그곳에는 분명한 신이 없다. 유교도 마찬가지다. 윤리와 도덕이 유교의 핵심이다. 이들은 모두 행위로서 의롭게 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종교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대교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완벽한 종교라고 자랑하지만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모조이면서도 스스로 완벽한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인 예수만이 인정되고 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종교가 아니라, 진리이며 실재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스스로 신을 만들어 섬기지만은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면서 사람을 찾아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유대교의 핵심이 십계명이었듯이 모든 종교에는 계율이 있다. 이슬람도 일종의 계율의 종교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세상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독교는 거듭남의 생명(요3:3)이 있으나 세상 종교는 거듭남이 없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인격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인격을 체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분명하게 영접함이 없이 그들이 이방 종교나 무종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함으로써 세상 초등학문이 주인노릇을 한데서 본질이 훼손된 인본주의 신학이 되었으며, 크리슬람 운동도 바로 이러한 인본주의 신학의 전형이다.    

그러면 이슬람은 왜 이단인가? 어떤 분들을 이슬람을 이교도로 보고 있으나 분명하게 기독교에 대한 이단의 완벽한 전형이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교조 무함마드가 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임을 체계화한 종교이다. 오늘날 이슬람이 전 세계적인 종교로서 세력화를 하는데 핵심신학인 일부다처제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일부다처제는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태어나는 자가 장자라는 논리다. 아브라함의 종인 하갈에서 낳은 이스마엘이 장자라는 논리다. 얼마나 주도면밀한가! 이스마엘은 믿음의 씨가 아니라 행위로써 의로움을 찾고자 낳은 자식이다. 그 이단성을 간단하게 정리하자.     

먼저 이단을 정의하자. 이단이란 하나님이 “다 이루니라”(창2:1),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신 것을 부정하고 있다. 2000년 교회사 속에 나타나는 모든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의 역사적인 위대함을 부정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자신의 피로 처리하셨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모두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복음의 핵심이며, 비밀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이 없이 자신들이 무언가 보완하고 보충하겠다고 나서는 자는 누구든 이단이다. 첫째 무함마드는 예수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성하겠다고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둘째 성경의 불완전성을 주장한다. 원래 아브라함의 경전이 있었는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위하여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슬람의 꾸란은 아브라함의 경전을 그대로 되 살렸다고 주장하면서 모세오경과 신약보다 앞섰다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 무함마드는 예수가 예언한 보혜사라고 주장한다. 넷째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선지자이며 무슬림이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다섯째 계율의 종교이다. 6가지 믿음과 5가지 실천의 계율을 갖고 철저한 의식을 실천으로 삼고 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월삭과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골2:14)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림자의 실체임을 밝히고 있다.    

3. 크리슬람 운동은 분명한 배도의 길    

크리슬람 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두 종교사이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모두가 하나 되는 운동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종교의 하나 되는 운동을 주목한다. WCC 제10차 부산총회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축하메시지를 통해 "이번 총회의 논의에 대한 저의 깊은 사목적 관심을 전하며, WCC와 다년간 함께 이루어 온 협력을 지속 이어가겠다는 가톨릭 교회의 다짐도 밝혀드립니다”고 강조한데 이어, 부산총회에 참석한 로마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평의회 의장 커트 코흐 추기경은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교회의 일치는 하느님의 의지이자 말씀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관련한 첫 문서에도 일치를 강조하고 있죠. 가톨릭은 동쪽으로 정교회 등 동방교회, 서쪽으로는 장로교 성공회 등 개신교단과의 대화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언급함으로써 WCC와 천주교의 관계를 직접 밝히고 있다.     

특히 WCC가 종교다원주의요 혼합주의 인 것은 그들이 밝히는 바아르 선언문(1990.1)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만 믿음의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톨릭이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한 유대인, 무슬림, 흰두교인, 불교인 등 모든 종교인들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구원을 받는다”는 ‘비 그리스도 교인에 관한 선언’과 동일한 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전 이대 정현경 교수가 WCC 제7차 총회에서 무당굿인 초혼제를 하고,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선환 교수(전 감신대)와 어느 길로 오르든지 정상은 같다는 등정로 이론을 주장한 한신대 김경재 교수 등을 대표한 다원주의자들과 같은 입장이다. 따라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는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배도의 길이요, 이 세상을 마지막 통치할 적그리스도, 곧 불법의 사람이요, 멸망의 아들이 나타남의 징후이다.     

4.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 세대는 어떤 세대인가. 사도 바울이 지적하는 세대란 바로 코스모스인 조직화된 세계이며, 현대화된 유행이 성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그런 자들의 세대이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서 과감하게 돌아 서야한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이슬람 역사 유대교의 모조품으로서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격하시켰다. 천주교는 그리스도보다 성모 마리아를 더 섬기는 우상의 종교가 되었다. 오늘의 기독교 역시 세상의 모든 것으로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세속화(벧후3:3-7)에 매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모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을 추구하는 배도의 길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과감하게 돌아서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깨어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자료출처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25281&section=sc7&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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