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운동, 그 영향과 평가
뉴에이지운동, 그 영향과 평가
http://www.duranno.com/moksin/detail.asp?CTS_YER=1992&CTS_MON=9&CTS_ID=9933&CTS_CTG_COD=0
Ⅰ. 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뉴에이지운동에 관해서 한 두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지난 몇년 동안 뉴에이지라는 용어는, 세계도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현재 미국과 유럽, 특별히 호주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이 운동이 상륙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술에 회자되고 있으며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 들어가고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외에도, 이 운동과 연관된 사상들이 소설, 영화, TV프로그램은 물론 과학, 생태학, 인류의 미래에 관한 논의 등 모든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분명히 이 사상은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운동을 명상(meditation)과 연관시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초 감각적인 어떤 경험과 관련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조화로운 세계, 사회개선, 인간의 행복, 자아실현 ,그리고 내적평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이 뉴에이지운동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찬양하고 있다. 한편 이 운동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 운동의 종교적 이단성, 주관성, 주술성 등을 비난하고있다. 사실상 이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반응 역시도 이 운동 자체 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운동은 오늘날 코메디언들에게는 익살의 표적이 되고 있고 많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바벨론의 사교(邪敎)이며, 뉴 에이지추종자들에게는 인류의 제반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으로, 그리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게는 경제적 성공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이 운동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부터, 사탄의 주요한 음모(Satanic conspiracy)로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뉴욕에 있는 성 요한 성당(The 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은 수년 동안, 이 성당의 사제인 몰톤(James Parks Morton)의 후원으로, 뉴에이지사상의 센터가 되어왔다. 이곳은 뉴에이지성향의 미사인 '미사 가이아(Missa Gaia)'의 개막축하 장소였다. 축하예배의 성격을 갖고 있는 이 감동적이며 놀라운 음악작품은 생방송으로 녹음되어 LP레코드 앨범으로 제작되었으며, 전 세계에 음악판매상에게 팔려나갔다.
또한 미국의 퍼시픽 노스웨스트(Pacific Northwest)에 있는 한 주요한 뉴에이지센터는 치누크 학습공동체(T-he Chinook Learnign Community)'인데, 이것은 헐(Fritz Hull)이라는 장로교 목사와 그의 아내 비비안(Vivi-enne)에 의해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공동체에서 뉴에이지 사상은 기독교전통의 틀 안에서 발전되고 있다. 여기서는 뉴에이지를 기독교신앙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중 다른 한 극단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텍스 마알스(Texe Marrs)인데, 그는 뉴에이지를 대규모적인 사탄의 음모(a massive Satanic conspiracy)로 보면서, 뉴에이지의 임박한 위협을 경고하는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그의 책은 뉴에이지운동에 대해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을 상당한 정도로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우리는 거의 모든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서점의 서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고있는 반응은 대체로 텍스 마알스의 입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 실제로 이 뉴에이지운동은 무엇인가? 이 운동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미치고 있는가?
먼저, 이 '운동(movement)'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고, 또 중심적인 어떤 본부가 있는 일종의 조직을 의미한다.
그런, 이 뉴에이지운동을 관리, 조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중심적인 기구나 본부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뉴에이지는 회원자격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어떤 조직(organization)도 아니며, 공동의 목적진술 등으로 연합해있는 여러조직의 그룹도 아니다. 뉴에이지는 많은 다양한 조직 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직에 가입해 있지 않는 개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많은 조직들과 개인들간을 연결하는 공식적인 어떤 연결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운동(movement)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아마도 '뉴에이지 의식(New Age Consciousne-ss)'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뉴에이지운동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사고와 생활의 새로운 양식(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뉴에이지운동을 하나의 망(network)', 더 정확하게는 메타네트워크(metanetwork)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에 네트워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른 형태의 조직과는 그 구조와 운용 모두에 있어서 아주 다른 비교적 완만하게, 비형식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조직을 의미한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은 아주 다양한 근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쿠퍼(John Cooper)에 의하면, 뉴에이지운동은 "평화와사랑, 생태학에 대한 1960년대 반문화운동(counter culture)의 관심, 1970년대의 자아인식(self-awa-reness)에 대한 추구, 그리고 1980년대의 쾌락주의(hedonism)의 결합"이다. 뿐만 아니라 동방종교(주로 힌두교)와 고대 자연종교들의 많은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공통의 신앙인데, 이 공통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뉴에이지운동은 아주 복잡성을 띄고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관계하고있다. 학자들, 예술인들, 문필가들,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Shirlley MacLaine)과 같은 영화배우도 대대적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 특별히 셜리 맥클레인은 그녀의 많은 저술과 텔레비젼 출연활동, 그리고 뉴에이지 세미나를 통해서 사실상 그녀의 이름과 뉴에이지운동이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 뉴에이지운동의 의식 또는 네트워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의 역사와 신조, 그리고 그 효과 등에 대해서 조금더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
Ⅱ. 뉴에이지운동의 역사
'뉴에이지(New Age)'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어휘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은 우리가 이러한 이름을 붙여 부르기 훨씬 전에 이미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여기에 '새(new)'라는 의미를 붙여 갑작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운동의 철학적, 종교적인 면에 대한 별다른 성찰이 없이 몇가지 흥미있는, 또는 기괴한 모양(형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뉴스 미디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뉴에이지운동의 역사를 좀더 좁혀서 거슬러 올라가 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1875년에 블라바츠키(Helen Petrovan Blavatsky)가 주도했던 신지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의 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헬레나 페트로브나(Helena Petrovna)는 1830년대 초엽에 소련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십대의 나이에 군인 장성인 블라바츠키(N. B. Blavatsky)와 결혼하였는데, 결혼한지 2개월 후에 남편을 버리고 서쪽으로 미국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인디아 등지에 이르기까지 25년의 순례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동안 그녀는 여러 다양한 종교철학을 공부하였고, 자신을 존 왕(King John)이라고 일컫는 신령안내자(spirit-guide)의 차넬러(chann- eler)가 되었다. 그리고 1875년에 그녀는 뉴욕에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를 창설하여 1891년 죽을때까지 이 협회의 지도자로서 일하였다. 이 신지학협회는 여러면에서 오늘날 뉴에이지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이 조그마한 그룹이 뉴에이지운동의 기본적신조를 갖고 100년 정도 이상 활동한 후 지금은 1만여개 이상의 뉴에이지 조직들로 구성되는 거대한 망(network)으로 번창하였다. 이들 뉴에이지 단체(조직)들 가운데서 공적으로 뉴에이지 신조를 표방하는 단체로는, Green Peace, Zero Population Growth, 그리고 Amnesty Internati-onal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통해서 뉴에이지 의식은 실제로 공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뉴에이지 점성가들은 우리는 이제 기독교시대의 종말과 뉴에이지 시대의 시작을 예고하는 수병좌(水甁座)의 시대(t-he Age of Aquarius)로 들어가고 있다고 동의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지구는 고기(Pisces)의 사인(sign) 영향권아래 있었는데, 이 고기사인은 초대교회의 한 표식으로서 기독교와 동일시 된다. 그런데, 점성가들은 말하기를 이제 이 어좌(魚座)시대(Piscean Age)는 지나가고 수병좌의 시대가 동텄다고 한다. 정확하게 언제 이 새로운 별의 시대가 시작되었는지 예언하기는 어렵지만 각 시대가2,200년 씩 지속되고, 또 점성가들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을 100년 정도는 가감할 수 있기 때문에, 셜리 맥클레인 같은 사람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는 '인본주의(humanism)'의 시대이며, 형제애(brotherhood)의 시대, 주술(주문)적 현상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구시대와 새시대간의 연결다리의 무지개(rainbow)로서 상징하고 있다.
이 시점으로부터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이제 미디어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그들의 신조를 공표해 오고 있다.
Ⅲ. 뉴에이지운동의 기본적 신조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비교적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저술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아주 신비적이며 '영적 '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가하면(Shirley MacLaine), 또 어떤 이들은 '비종교적인' 지성들도 있고(Arthur Ko-estler), 또 단순히 일반 소시민에 불과한 사람들도 있다(John Denver).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의 다양한 표현의 이면에는 실재(reality)와 구원(salvation)에 대한 어떤 공통적인 핵심적 신조가 깔려있다. 요컨데, 뉴에이지운동에 대해서 어떤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에이지운동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어떤 공통의 신앙를 확인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이들이 믿고 있는 기본적인 신조가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면 우리는 먼저 뉴에이지운동의 접근에 있어서 인본주의적 강조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들의 기본 신념은 하나님이 비인격적(impersonal), 미분화된 존재(und-iffrentiated oneness)로서 창조세계와 분리되지 않는 창조세계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의식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존재'나 '인격'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초월성(God's tran-scendence)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비인격적인 에너지(impersonal energy), 힘(force), 또는 많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표현하는 바대로 '모든 생물의 집합적 의식(the aggreate consciousness of all living things)'이라는 것을 의미하고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인간의 진화를 통하여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는 목적이 없으며, 인간의 가능성은 한계가 없고, 선과 악을 마치 삶과 죽음이 동일한 것처럼 동일하다고 본다.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단지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지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기위해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근원(the God-so-urce)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한다(I know that the God-source exist. therefore IT IS)."
이들의 또 다른 신념은 "모든 인간은 신이다(all humans are gods)"라는 신앙이다. 인간은 다른 창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질적존재를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인간은 그 스스로 어떤 구체적인 본성(본질)이나, 속성, 제한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항상 모든 임의적인 선택에 개방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선택하는 바 어떠한 것에도 든지 진화해 갈 수 있다. 이러한 미래에로의 진화과정에 유일한 장애는 인간자신의 신성(divinity)에 대한 무지이다. 그러나 이 무지는 '계몽(enlightenment)'에 의해서 물리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도 '나사렛에서 온 사람(the man form Nazareth)'이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의미로 "나는 하나님이다"(I am God)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셜리 맥클레인이라는 여배우는 세미나에 나가서 "여러분도 하나님이고 나도 하나님이다"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우리가 다른 어떤 신을 경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자신이 모두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위기는 다 인간자신이 바로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다 신인데, 인간이 자신을 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의식훈련과 정신, 훈련을 통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소위 '변형(transformation)'의 '각성(awakening)'과정을 통하여 인간은 완전과 전능, 불멸에 이르게 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요가(yoga), 좌선, 초월명상, 마인드 컨트롤 등과 같은 기술을 사용함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신앙은 그들이 신봉하고 있는 또다른 하나의 가치로 인도해 가는데, 그것은 곧 "모든 종교는 다 동일한 진리에 도달하는 상이한 길이며,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모두 신이다"라고 하는 가치이다.
그럼,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의 세계관에 의하면 단지 하나의 기본적 실재(basic reality)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우주(universe)이다. 이 우주는 분리할 수 없는 두 차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시적-물질적 차원과 비가시적-영적차원이다. 그런데, 비가시적-영적차원은 우주의 실제적인 능력(real power)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 비가시적 세계는 가시적-물질세계를 발생시키며, 살아있고 귄장하는 전체로 통합시킨다. 어떤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이 잠재적 능력(h-idden power)을 신(하나님)(God)이라고 부르고, 영화 '별들의 전쟁'은 이것을 '힘(the Forc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성인들은 이것을 '에너지(energy)'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구별된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에 (우리들 각자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 잠재되어 있는 영적인 힘(spiritual power)이다. 이처럼 뉴에이지운동의 세계관의 핵심은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란 분명히 영적(spiritual)이며, 이 인간의 영성은 모든 생명형태가 가지고 있는 영성과 동일한 하나라는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과 함께, 이 지구 자체는 분명히 영적인 것이어서 이 지구상의 인간생활의 미래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이 지구의 영적인 힘들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보는 공통의 신념이 있다.
현대인의 문제는 우리가 이와같은 통합적이며 창조적인 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위 "타락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반응을 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적인 의식과 물질계(material realm)에 완전히 흡입되어 빠져들어감으로서 영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를 더이상 유기적 통일체(organic unity)로서가 아니라, 제한되고 유한되며 경쟁상태에 있는 이른바 상호연관성이 없는 사물과 사건들의 집합으로 경험하고있다. 우리 자신들과 세계를 이러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생태학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문제들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보다 고차원의 의식(higher consciousness)'을 통하여 만물의 근원에 있는 창조적이며 치유하는 에너지(healing energy)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회복하기만 하면 해결될 수 있다. 이 때에 우리는 세계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관계지을 수 있으며, 성장과 조화를 촉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치유되고 변형될 수 있는데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인 고차원 의식은 결국 이 세계를 사랑의 지구공동체(a global co-mmunity of love)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자신들도 초자연적 존재(superhuman being)로 진화해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Scotland)의 먼 북쪽에 있는 핀드 흔 컴뮤니티(The Findhom community)는 가장 오래된 뉴에이지 공동체 가운데 하나인데, 스팽글러 (Spangler)는 이 공동체를 여러면에서 "뉴에이지 그룹의 할머니"(the g-randmother of New Age groups)라고 말하고있다. 이 공동체는 전통적인 농작의 지혜로서는 그렇게 지배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고말하는 조악(粗惡)한 환경에서 채소들이 놀랄만한 생장력을 가지고 번성한 정원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마을로 유명해졌다. 그들은 이러한 성공을 자연의 영적인 힘에 맞추어 인간재배자들이 그 자연의 영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전통적인 농경방법은 이러한 영적인 힘들을 소외시켜 버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뉴에이지 사상의 핵심이 있다. 영성(spirituality)이 이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영성주의자들(a Spiritualist)의 세계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공예(technology)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현대의 세속주의 세계관을 단호히 거부한다. 호켄(Hawken)이 말한 바와같이, 인간은 자신의 지성을 개발하기 위하여 결국 영적인 감수성과 의식(Spiritual Sensitivity and awareness)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상실된 감수성이 점차적으로 소생하고,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고양시키면서 자신의 지성을 유지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의식(aware-ness)'이란 물론 영적인 의식, 즉 이 세상의 근본적인 영적인 힘들에 대한 의식을 의미한다
스팽글러(Spangler)는 뉴에이지운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우리의 감각의 재생(a rebirth of our sense of the sacred)이다. 이것은 초월적이거나, 내세적인 어떤 ,것에 대한 감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 곧, 우리의 인간성(humanness), 우리 주위의 자연세계, 그리고 우리의 운명(destiny)속에 있는 가치와 신성함에 대한 인식(이정)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신앙을 더 잘 분석해 보면, 우리는 인간 자아에 대한 일반적 낙관주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고백하기를 인간은 현재 무한정한 잠재력을 가지고 신비적 유토피아를 영적으로 발견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신적인 것(the d-ivine)'에 각성해야만 하는 신들로서 간주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기적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창조자들이다. 자신의 창조자들로서 인간은 자신과 그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미래적 진화의 방향을 현명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적인 고귀함이 출현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적 진화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지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메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은 자연히 항상 보다 높은 삶의 질서로 향해 발전해 가서, 결국 완전히 형성된, 그리고 고도로 진화된 새로운 종(species)이 아주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과학적 윈리'를 창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같은 기본적인 뉴에이지 신앙으로부터 연유되는 이른바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추종하고 있는 몇가지 일반적인 원리가 있다.
이 뉴에이지운동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우주적 의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자아(self)가제일 중요한 실재가 되며, 그 목적은 자아의 가장 내면적인 장소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실재(reality )를 가장 완전하고 심오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God Himself)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뉴에이지운동은 명상과 계몽을 아주 중요시한다. 우리 모두가 다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업도 성공할 수 있고, 건강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나아가 이러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되면 스포츠나 학문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원리와 관련해서 뉴에이지운동의 다른 한 중요한 특징은 소위 '영계 접촉(spirit contact)' 즉, 표명되지 않고 감추어져 있으며 이해될 수 없고 신비적인 것과의 접촉이다. 이 영계 접촉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 소위 구원(salvation)에 이르는 한 방편이다. 즉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보다 고차원의 의식(higher consc-iousness)'을 소유하는 것은 바로 구원의 성취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 구원에 이르는 여러가지의 방편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 신비주의나 명상의 방법(그것이 기독교적이든 힌두교적이든, 또는 불교나 물활론적 주술적이든 관계없이), 또는 영과의 교통(communicating with spirits)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실재에 대한 전체적 모델을 명상하거나 드라마, 음악, 댄스, 스포츠, 심지어는 섹스까지도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의도를 성취하는 보편적 수단이 되고있다. 대부분의 뉴에이지운동가들은 구원에 이르는 다양한 접근방법을 결합해서 사용하고 있다.
육체적인 죽음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생활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세계(otherworld)'의 사물들에 관해서 알기 위해서 점성가와 유사한 차넬러(channeler)와 상담하게 만든다.
이와같은 상이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뉴에이지운동은 미디아의 주요수단을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Ⅳ. 미디어를 통한 활동
3가지 유형의 주요 미디어가 현재 이 위험하게 침투적인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청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3가지 유형의 미디아는 특별히 1) 영화산업 2) TV 그리고, 3) 미술(painted symbols)이다.
이제 이들 세 유형의 미디아를 통해서 뉴에이지운동이 우리들에게(특별히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미치고 있는 심각한 영향의 실례들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1) 먼저 영화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화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ET', '백 투더 퓨쳐', '사랑과 영혼', '꿈의 구장' 그리고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는 영화는 뉴에이지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이다. 이들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메시지는 인간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으며, 유일한 실재(reality)는 지각(per-ceive)하는 것 바로 그것뿐이라는 메시지이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는 항상 어떤 힘을 마스터 할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는 이 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할려고 한다. 그런데 이 힘의 대부분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자기의 신(神)이라는 뉴에이지 사상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2) 미디어를 통해서 뉴에이지운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번째 유형은 TV를 통해서이다. 오늘날 TV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예컨대 유령, UFO's, 비젼, 환상등을 통해서 뉴에이지 사상을 전파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프로그램속에 감추어진 형태로 방영되게 한다.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들은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실재의 세계(reality)와 환상의 세계(fantasy)를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이것은 특별히 만화 프로그램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는데 이들 만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본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예를들면, 미국에서 아동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머프 가족, '우주 정복자 히맨(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e)'이라는 만화영화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한 수준에 둘 수 있다는 사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3) 마지막 세번째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주요 미디어는 미술을 통해서이다. 무지개에 관한 그 어떠한 그림도 구시대와 새시대간의 구분을 의미할 수 있다. " 뉴에이지 사상을 대표해 보여주는 다른 시각적 상징(visible symbols)은 666이라는 수와 유니콘(Unicon), 그리고 천리안(all-seeing eye)이다.
이외에도 뉴에이지운동은 음악과 서적출판을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셔리 맥클레인이 TV에서 'Out on a Limb'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동한 이후로 한 때 미국 각 서점가에서는 뉴에이지에 관한 책의 판매고가 전체 판매고의 90%를 상회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의 'Out on a Limb'이라는 책은 14주간 동안이나 New York Times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에서 셜리 맥클레인은 자기가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윤회사상을 믿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까지의 영적 순례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신세계사에서 출판된 많은 책들은 주의를 요하는 책들이 많다. 예컨데, '꼬마성자(The Se-arch for the King)'와 스리라마재단의 출판물인 '성자가 된 청소부(Sweeper to Saint)', 그외에도 '인도로 간 예수', '불제자였던 예수' '배꼽' 등등이 있다. 미국의 어느 서점이든지 한쪽 코너에는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고, 음악잡지, 컴팩트 디스크 판매 책자에도 몇 페이지정도는 항상 뉴에이지 음악을 소개하는 곳으로 할애되어 있다. 음악에서 소위 명상음악은 힌두교의 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환상적이며 사탄을 숭배하는 음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V. 직업에 미치는 영향
이 뉴에이지운동은 미디어에만 침투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상이한 직업에 영향을 미쳤다. 만약 인간이 명상기술(Mediation techniques), 약(drug), 요가(yoga), 또는 크리스탈(Crystal) 등을 이용하여 자아속으로 더 깊이파고 들어가기만 하면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이나 될 수 있다고 하는 근본신념은 그들 자신들의 직업과 관심 영역에서 뉴에이지 주창자들을 인도하는 지침이 되고있다.
심리학에 영역에 있어서 칼 융(C. G. Jung), 제임스(William James), 그리고 메릴랜드 심리치료연구소(the M-aryland Psychiatric Research Center)의 그로트(Stanis lanGrot)등은 죽어가는 환자에게 LSD를 주어서 그들이 우주적 일체감(a feeling of cosmic unity)을 성취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실험을 하였다. 사회학의 영역에서 톰슨(William Thompson ) 은 이와같은 지성적 여로(intellectual journey)를 그의 책「Passages upon Earth」라는 책에서 캐톨릭주의로부터 자연주의를 통하여 뉴에이지의 마술적 환상에 이르기까지의 지적 여로를 추적하고 있다. 뉴에이지 사상의 침투는 건강의 영역과 스포츠 영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실재(reality )에 들어가기 위해서 명상의 기술을 강조하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이와같은 뉴에이지 효과들에 덧붙여서 포드(Ford) 자동차회사나 폴라이드와 같은 많은 회사들은 뉴에이지 관리고문들을 고용하였다. 미국의 주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글들을 읽어보면 기업경영이 많은 경우에 있어서 뉴에이지운동의 원리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예컨데, 기업의 종업원 훈련프로그램들(주로 자아실현 훈련프로그램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종업원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감퇴시키고 보다 순종적인 노동자를 만드는 명상활동(meditative activity)을 장려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들 뉴에이지 훈련프로그램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또 얼마나 많은 기업체들에 침투해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포춘지(Fortune Magazine)의 기고에서 제리 메인(Jerry Mai-n)은 기업경영에 미치고 있는 뉴에이지운동의 영향이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스코트 페이퍼(Scott Paper), 그리고 듀퐁(Dupont)과 같은 거대한 기업들도 Werner Erhard's Transformed Technologies 와 World Institute of Scientological Enterprises(WISE), 그리고 Movement of Inner Spiritual Awareness(MISA)와 같은 조직의 봉사를 이용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 오고 있다.
이 회사들의 목적은 그들의 종업원들로 하여금 그들 개인의 문제이든지 아니면 그들의 직업과 관계된 문제들이든지 간에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아를 이용하는 뉴에이지 철학을 제공해 줌으로서 종업원들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협동적인 정신통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고용주들이나 종업원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고안된 어떤 뉴에이지 책들은, 인간들이 보다 많은 부를 획득하기위해서는 자신(자아)들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몰두해 들어감으로서 자신들을 영적인 코일로 포장해야 한다고 옹호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을 직접적으로 인간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이러한 사상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Ⅵ.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
지금까지 뉴에이지운동이 영화와 T.V. 그리고 미술, 직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뉴에이지운동의 본질과 그 영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수 밖에 없다.
뉴에이지사상의 가장 정교하고 주도적인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은 스팽글러(Spangler)인데, 그는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을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 수준은, 피상적인 호칭의 수준인데, 일반적으로 상업적인 세계에서 볼 수 있다. 이 수준은 기본적으로 뉴에이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이다. 뉴에이지 옷의 판매, 뉴에이지 아이스크림을 포함해서 뉴에이지 음식의 보급, 그리고 뉴에이지상점 등과 같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뉴에이지를 이야기 하는 피상적인 수준이다.
두번째 수준은, 스팽글러가 마력(glamour)의 수준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수준에서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모험과 능력의 환상생활을 하는데, 보통 신비적(occult)이거나 지복천년형태의 환상생활"을 한다. 이 수준의 특징은 자아실현(ego fulfilment)과 현세로부터의 도피이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뉴에이지사상과 실제를 새로운 유행에 맞는 어떤 것으로 추구한다. 뉴에이지가 마력적인 어떤 원인과 결부되고, 많은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지도자들, 또는 아주 선풍적인 어떤 활동으로 신문이나 잡지의 톱기사 등등과 관계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두번째 수준에서이다. 뉴에이지운동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체로 이 수준에서이다. 그러나 스팽글러는 첫번째나 두번째 수준을 진정한 뉴에이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진정한 뉴에이지 경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세번째 수준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스팽글러는 이것을 변화(cha-ange), 변형(transform)의 이미지(image), 파라다임의 변화(a paradigm shift), 새로운 세계관(a new world vi-ews) 이라고 부른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세계를 지배해 오고있는 세속주의적 세계관(the secularist worldview)에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세계관을 추구하고 있다. 네번째 수준은 궁극적인 뉴에이지의 전체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수준에서 뉴에이지의 특징은 성자(the sacred)의 수육(受肉)(incarnation)이다. 이 수준에서 뉴에이지는 "영적인 사건이며, 새로운 의식의 탄생, 생명(삶)의 새로운 의식과 경험… 일상생활 중에서 신성한 본질을 심화시킴, 일상적인 평범한 것 속에 있는 신성(d-ivinity)을 찬양(celebrate)할 수 있으며 이러한 축제 속에서 신성한(거룩한)문화를 소생시키는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세계관의 변형을 넘어 인간의 영적변형에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뉴에이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뉴에이지운동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의 경험에 근거하여 뉴에이지를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에서 뉴에이지운동이 가장 가시적이며 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탕에서 뉴에이지를 평가하는 것은 핵심을 놓쳐버리기가 쉽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을 세상의 변혁운동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세번째 수준과 특별히 네번째 수준에서이다.
Ⅶ. 뉴에이지운동의 평가
뉴에이지운동의 멧세지는 많은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운동은 현대 물질문명에 찌든 사회속에서 메마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성(spirituality)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개인적, 사회적, 생태학적인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희망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적대감과 이기심으로 찢기워진 세계에 공동체와 협동의 미덕을 약속한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하는데 그렇게 많은 댓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으며, 과학과 기술공예, 풍요, 쾌락, 인간의 자율성 등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 뉴에이지운동은 심지어 크리스찬들에게도 매력적인 것 같이 보인다. 뉴에이지운동의 메세지는 기독교의 언어들로서 가장되고 있다. 창조, 타락, 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의인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전체 피조세계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충만 등의 용어들이 뉴에이지운동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체계적인 인생관-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회와 문화를 '평화의 왕국(peaceable kingdom)'으로 변혁시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같은 강조들을 사회문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크리스찬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것 같이 보인다. 동시에 뉴에이지운동은 카리스마적인 예배나 잘 훈련된 명상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 경험을 갈구하는 크리스찬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사랑과 평화를 표방함으로써 뉴에이지운동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던지지 않는 크리스찬들에게 철저하게 성경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에도 크리스찬들이 인정하고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뉴에이지운동의 주창자들이 현대 서구사회의 물질주의와 조잡한 자연주의에 대항해서 영적인 어떤 실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뉴에이지운동은 인간이 구원받아야할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현 세계가 이 구원을 제공해 주기에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기술공예의 파괴적 역동성과 경쟁적인 개인주의에 대한 이들의 비판 또한 현대인들의 사고에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침투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육체와 영혼, 개인과 집단, 인간과 환경간의 전체적인 상호연관성에 대한 뉴에이지운동의 관심은 사실상, 전통적 기독교와 과학적 인본주의가 종종 등한시해온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구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은 우리가 잘 숙고해보면 기독교인들이 지혜롭고도 단호하게 대항해야만 하는 반성경적인 운동임이 자명하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은 기독교신앙과 완전히 배치되고 있다. 우리는 요한복음 7장 24절의 말씀 곧,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는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이 운동을 비판할 때에 맹목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설적인 비판을 지지할 수 있는 타당한 사상과 이유, 사실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 바 기본적 진리인 성경으로 돌아가 이 운동을 비판할 수 있는 지침적 지도 원리를 살펴야한다.
먼저, 뉴에이지가 추구하고 있는 영성은 분명히 이교적인 영성(pagan spirituality)이다. 모든 이교적 영성 형태의 핵심은 우리의 감각세계에 대한 지각을 신성(divinity)에 참여하는 영들의 세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그보다 좀 낮은 영들의 위계질서에 정점에 있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좀 낮은 영들이 방출되어 나오는 신성의 중심(the divine center)으로 본다. 하나님과 창조세계간에 예리하게 구분된 경계선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과 하나의 세계로 병합되어 있는 자연의 내재적 영들로 말미암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창조세계간의 구분은 힘의 위계질서의 구분이지 종류의 구분이 아니다. 우리의 세계가 그로부터 말미암는 최고의 창조 영이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좀 부족한 영들과 하나가 된다. 우리는 이 하나의 영계와 우리들 자신이 하나되는 것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뉴에이지가 말하는 영성의 본질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인도한다. 성경은 분명히 이 지상의 감각세계에 관여하는 영물의 세계(a world of spirit creatures)를 인정한다. 또한 성경은 인간존재의 근본적 영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영들의 세계는 결코 좀 저급한 신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분 유일하시고 참된 신이신 조물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의 세계(a world of creatures)에 속한다.
하나님은 종류(kind)에 있어서 모든 다른것과 독특하게 구별된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편만해 있는 영성에 우리 자신을 조화시킴으로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분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만남은 실제로 이 세상안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자(Transcendent One)가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the personal God)으로서,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하나가되시며 우리의 위치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지만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범주로부터는 완전히 다른 분이신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에 기독교신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뉴에이지 사상의 기본적인 이교적틀(the ba-sic pagan framework)에 기독교 신앙이 적응할 때에 한해서이다. 즉, 인간이 영계(a world of spirits)의 신성 (the divine)에 참여한다는 이교적인 틀에 적응할 때에 한하는 것이다. 크리스찬들은 계속해서 이 영계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을 절대적인 신(exclusive divinity)으로 주장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그러할 수 있다. 스팽글러는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하나의 영성세계(one world spirituality)가 문화적으로 규정되어 나타나는 많은 가능한 표현들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호킨(Hawken)은 나사렛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에너지의 인간적 표현"(a human enbodiment of the Christ energy)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여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 신앙 그 자체의 바로 핵심을 파괴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6). 기독교 신앙과 뉴에이지간에는 합법적인 결혼이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을 시도하는 것은 바알(the Baal)을 섬기면서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며 자신과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고 하는 뉴에이지의 기본신념(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전적 의존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된다. 뉴에이지운동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주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보는 비인격적인 힘을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과 대치시키고 있다. 이 운동의 주창자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특별히 계몽된 인간존재(enlightened human being)일 뿐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있는 우주가 아니라 수많은 세포를 가지고 진화해 가고 있는 유기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뉴에이지운동은 일종의 진화론적 범신론(evolutionary pantheism)의 사상을 강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인간을 유혹한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성경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겔 28:2)(사45:8∼16참조). 또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건축자들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병이 보초를 서도 헛일이다"(시 127:1).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음으로, 뉴에이지운동이 말하고 있는 타락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나 불순종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안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창조적 능력과의 접촉의 상실일 뿐이다.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뜻을 나타내는 어떤 객관적인 도덕적 질서가 존재하지 아니한다. 만약 우리 모두가 신적인 생명력(divine life-force)으로서 가득차 있는 신들이라고 한다면 우리 각자는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만큼 자유스러운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규범은 그들이 생각할 때에 인간의 성장과 우주와의 조화를 조장하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궁극적 심판자나 순종해야만 하는 거룩한 분같은 존재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조화를 이를 수 없는 양 반대적인 극단이 아니라 동일한 우주적 동전의 양 측면일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희망을 상실한 도덕적 상대주의이며, 주관주의일 뿐이지 그리스도안에서 향유하는 자유가 아니다.
세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이 표방하고 있는 인간의 잠재력개발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평가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엄청난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능력을 우리는 개발하고 그것을 또한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나아가 그 능력 마저도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죄로 오염된 상태에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만 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재력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네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명상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 신자의 생활에서 명상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명상은 신실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영적훈련의 한 방편이 되어왔다. 명상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시킨다. 팩커(J. Packer)는 말하기를 명상은 "하나님의 교제수단이며,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거룩한 사고활동이며, 그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영적비젼을 보다 분명히 하고 그 분의 진리가 우리의 정신과 가슴(마음)에 충만하고도 적절하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의 내부에 있는 어떤 잠재력에 대해서 명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한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다섯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이 중요시하고 있는 구원의 한 방편, 즉 '영계접촉' 역시도 기만적이다.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이들은 우리 자신의 왜곡된 영혼이나 마귀적이며 주술적인 깊이로 침잠해 들어가는 영적 채널(spiritual chan-nel)을 강조한다. 셜리 맥클레인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절정에 이르는 어떤 경험을 향유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지옥같은, 또는 광적인 어떤 상태에서 소위 보다 고차원의 의식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들이 실제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경험은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뉴에이지운동은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 회개와 중생이 없는 구원, 비현실적인 가상적 낙관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을 통한 경험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뉴에이지 의식으로부터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할지라도 이 운동은 인간의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부터만 오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단연코 부인한다. 대신에 뉴에이지운동은 우리 인간이 우리 자신과 전 세계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신적능력(divine power)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은 보다 위대한 조화와 통일이 있는 미래 세계에 다시 환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선언문(Humanist Manifestos Ⅰ&Ⅱ)을 통해서 표방한 바 대로 정통적인 종교의 모든 본질과 요소들을 철저하게 부인해 버리고 인간이 인간을 구원해야 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극단적인 낙관론적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 뉴에이지운동은 낙관적인본주의의 다른 한 형태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물음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뉴에이지운동이 사탄적인 음모(a sataruc conspiracy)인가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분명히 크리스찬들에게 전적으로 수용불가능한 이교정신(paganism)의 한 새로운 형태이다. 어느 누구도 뉴에이지운동에 흑암의 영적세력이 관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음모(sat-anic conspiracy)라고 간주하면서 사탄의 음모이론(the satanic conspiracy theory)을 주창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이 세상에서 사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서 예리하게 간파하지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한 예로써 텍스 마알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마알스는 아마도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이 사탄음모이론의 강력한 주창자이다. 그런데 그가 이 이론을 주장하는 논의의 근거는 네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로, 그의 논의는 부적절한 증거에 기초하고 있다. 음모이론에 대한 증거는 뉴에이지운동의 주류를 전혀 대표할 수 없는 이른바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 즉 뉴에이지운동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진술과 행동을 그 전체 맥락과는 별개의 단편적인 진술로부터 모은 것이다.
때때로, 이 증거와 뉴에이지와의 연결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희박한 경우가 일다. 전미국무장관이었던 슬츠(George Schultz)를 뉴에이지 옹호자로 낙인찍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1987년에 행한 연설에서 "통일된 세계경제질서가 형성되면서 경제적이며 재정적인 협동의 새시대가 동터오고 있다"(a new age of economic and financial cooperation had dawned with a unified world economic ordertaking shape)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세계 경제 질서의 실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뉴에이지운동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빈약한 주장은 영국황실의 찰스 황태자의 엘리자벳여왕이 뉴에이지신봉자 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의술에 대한 '총체적 접근방법(holistic approach)'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뉴에이지의 추종자들이 '총체적 의학(holistic medicine)'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뉴에이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소련의 지도자 마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세계의 뉴에이지교사와 지도자의 선봉"으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글라스로스트' 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름 아래 소련에 변화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단지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마알스는 확신있게 "사탄은 소련의 가장 높은 고관의 마음과 영혼을 빼앗는데 강력한 업적을 이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방법으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뉴에이지의 특색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않았다 .이외에도 발트하임(Kurt Waldheim) 전유엔사무총장, 미국 상원의원 게리 하트(Gary Hart), 브란트(Willy Brand) 전독일수상 등 여러사람들을 뉴에이지운동의 지도자 또는 추종자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경우들은 다 마알스(Marrs)가 단순히 주장하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로, 어떤 경우에는 증거를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어 이용하기도 한다. 마알스는 주장하기를 뉴에이지 지도자들은 그들의 뜻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무력으로 세계정부를 세울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스팽글러(Spangler)를 인용하고 있다. 스팽글러는 분명히 도래하는 세계공동체(a coming world community)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분명하게 폭력을 거절하고있으며, 폭력의 사용이 아니라 보편적(우주적)인 영적 변혁(a universal spiritual transformation)을 통해서 도래하는 새로운 세계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나아가 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억지로 강요하는 강력한 정부가 아니라, 스팽글러의 비전은 이러한 미래의 통합된 세계에서는 인류의 영적인 조화(the spiritual harmony of ma-nkind)가 있으므로 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바 그 어떠한 종류의 정부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러한 세계이다. 물론 우리는 스팽글러의 이러한 비전이 허망한 유토피아적인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알스가 하고 있는 방법은 군사적 힘과 억압을 통한 세계지배라는 무서운 그림을 만들어 내기위해 증거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마알스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성경은 계시하기를" 또는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성경에 대한 강한 어필로서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부주의한 독자들에게는 마치 성경이 뉴에이지는 사탄의 음모라는 그의 견해를 지지하는 권위적인 증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성경사용법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가 내세우는 증거는 마알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경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사용한 성경 본문 가운데 많은 경우는 마알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뉴에이지에 적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 본문들은 먼저 우리가 마알스의 음모이론을 정당한 것으로 먼저 수용할 때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순환논법의 한 분명한 예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마알스가 갖고 있는 신앙의 신실성과, 뉴에이지운동을 비판하는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 없고 오히려 그의 희생적인 봉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주의깊게 잘 살펴보면 마알스는 경험적 증거와 성경 모두를 뉴에이지에 대한 자신의 사탄음모이론에 끼어 맞추고 있다. 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마알스의 비판이 보여주고 있는 세 번째의 만족스럽지 못한 특징은, 그의 비판자체가 실제로 이교적인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뉴에이지가 이교사상(Paganism)의 한 새로운 형태이며, 그것은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항하는 자신의 주장을 확립함에 있어서 ,마알스 자신은 근본적인 이교적 원리를 타당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마알스는 상징(symbols)을 그 자체 스스로 힘(power)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말하기를 실제로 상징(symbols)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데, 이 상징은 영흔의 깊은 곳에 있는 흑암의 세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은 점에서 그는 뉴에이지의 상징들을 도처에서 찾고 있다. 즉 간단한 원이나 삼각형, 십자가, 별과 꽃 모양 등 아마도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그 어떠한 모양도 사실상 간교한 사탄적인 뉴에이지 심볼의 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의 어떤 모양이 뉴에이지 출판물이나 상품 등에서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양을 뉴에이지 심볼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의문성을 차치하고라도, 심볼들이 그 속에 어떤 힘을 갖고 있다는 사상은 본질상 이교적이다. 성경에 의하면 우상(idols)은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하였다. 사람들을 어떤 단순한 사물들 속에 가상적으로 있다고 보는 신비적인 어떤 영적인 힘 앞에 두렵게 만드는 것은 마술적(magic)인 것을 신앙하는 이교적인 사상(paganism)이다. 기독교인은 마술적인 힘에 대한 이교적인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복음은 우리를 이러한 이교적인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하셨다. 심볼은 그 심볼이 상징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신념을 통해서만 힘을 갖는다. 심볼은 그것이 신비적인 것이거나 공개적인 것이거나 간에 그 자체로서는 힘(능력 )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뉴에이지에 대한 마알스의 음모이론이 갖고있는 네번째의 불만족한 특징은, 그것이 지금 여기(현세)에서의 인간의 제 문제에 화목과 치유를 가져오는 능력이 없는 희석된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제공하는 바 모든 것은 도래해 올 보다 나은 세계로의 도피를 위한 준비를 요청하는 것이다.
일단 마알스가 뉴에이지에 의해서 도래하게되어 있는 미래세계에 대해 무서운 경고를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 다음, 마알스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 개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닥쳐올 재난에서 구원받고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환영할 준비를 갖도록 초대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를 갖고있지 않다.
물론 세상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의 영광중에서 나타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고 열렬히 고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모든 신자의 희망이며 소망이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는 복음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리스도와의 사적이며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이 종말의 날 만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유사한 교제에 들어오도록 촉구하는 것만 말하는 복음은 역시 완전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는 복된 소식이다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의 전 생활을 참된 영적 봉사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지금 여기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 존재를 변화된 심령의 인도아래 사랑의 봉사에 헌신하도록 요청하는 소식이다. 로마서 12장 1,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지막으로, 사탄의 음모이론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이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위 사탄의 능력을 나타내는 온갖 종류의 놀라운 그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세상 속에서 사탄의 활동을 충분히 심각하게 다루고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의 왕자로서 사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아주 깊이 관여해 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뉴에이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탄의 음모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능력이 영적인 능력을 이야기하는 곳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영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자율적인 세속적 능력(the autonomous secular powers)만을 언급하는 곳에는 사탄적 활동의 아이디어가 배경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보고 있다. 만약 사탄이 참으로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수 있는 위대한 속임장이(the Great Deceiver)라고 한다면, 사탄은 아마도 영적실체를 인정하는 뉴에이지를 통해서 보다 더 세속세계로부터 영적실체들을 배제하는 사상과 시대를 통해서 더 교활한 음모를 꾸밀려고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뉴에이지의 이교적인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주의(seculari-sm)가 우리들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을 잠식시키는 방법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점이 아마도 뉴에이지에 대한 많은 크리스찬 비판가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세속주의(secularism)'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속주의는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세속적인 일의 세계(the world of secular affairs)에 침투하지 않는 한 하나님에 관한 언급을 기쁘게 허용한다. 세속주의의 근본적 특색은 하나님에 관한 언급을 세속적인 일의 공적인 세계로부터 격리된 개인적이며 사적인 경험에 국한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음모이론을 옹호하는 마알스와 기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신앙을 전적으로 사적이며 개인적인 신앙에다 환원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음을 부인하는 세속주의자의 세계관에 적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탄의 활동을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이러한 실패의 필연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사탄이 인간생활을 통해서 활동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도 역시 활동적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이다"(롬 5:20).
뉴에이지의 사탄음모이론이 갖고 있는 최대의 취약점은 아마도 그것이 뉴에이지가 크리스찬들에 주는 도전이 무엇이냐는 것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뉴에이지를 하나의 위협으로서만 취급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오늘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주는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뉴에이지는 세속적 세대(t-he Secular Age)가 창출해 낸 이른바 인간의 삶의 억압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다. 세속적인 세대(the Secular Age)는 18세기 말엽에, 당시에는 인류의 자유와 희망, 그리고 성취의 '새세대(New Age)'로서 등장하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지적인 일에 있어서 인간의 사고(사상)를 제도종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과, 인간에게 환경에 대한 전례없는 통제력을 부여해 주는 자율적 능력으로서의 과학의 등장이었다. 정치적, 사회적인 제 문제에서 이 세속적 세대의 특징은 또한 세습적인 특권과 고정된 사회관계에 기초하여 안정성을 갖고 있는 구식의 사회질서를 폐기하고, 일반대중에게 힘을 부여하는 민주적인 제도의 출현이었다.
이때로부터 근 2백년동안 세속세대는 서구세계에 지배적인 힘으로서 군림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전 지구촌에 계속적인 영향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그 영향을 감지하지 못하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세속적세대를 지지하는 신념이 갖고 있는 몇가지의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그것은 소위 세속적인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자율성,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 모든 인간존재의 동등한 가치, 인간의 개별성, 그리고 의미부여자로서의 인간이다.
그런데 이 다섯가지 신념 모두에서 세속세대는 사실상 실패하였다. 세속세대는 이러한 약속을 실행함에 있어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의 억압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인간자율성의 행사는 만연되어 있는 무기력으로 인도하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너무 커서 도전할 수 없는 힘들 앞에서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정치, 사회질서, 환경처리문제, 개인생활 등에서 오늘날 세속주의 사회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오히려 환경으로부터의 소외로 인도하였다. 인간의 가치증진 대신에 오히려 인간의 가치절하가 초래되었다. 자존감의 문제는 오늘날 세속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한 중요한 문제이다. 특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규모의 도시생활에서는 더 그러하다.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나는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은 인간들이 분명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는 질문들이며 흔히 대답하기를 두려워하여 단순히 회피하고 있는 질문들이다. 뿐만아니라 자아를 갖고 있는 개인은 고독하고, 격리된 인간이 되어 버렸다. 특별히 대규모의 도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립되고 격리된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과 접촉이 있는 곳에서조차도 삶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나눔이 없는 피상적인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일상사의 철저한 세속화가 의미의 문제들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영적 무감각을 배양하고 있다. 일상사의 철저한 세속화는 인간의 삶을 단순히 동물적 존재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민감성을 갖고 태어났으며, 따라서 이것을 인간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오관을 제거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이러한 억압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 대해 효과적인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세속주의의 영적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잘못된 이교적 영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속세대의 근본적인 실패와 억압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세속세대의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근본적 원인에 도전하지 못하고 나타나는 증상만을 다루는데 만족한 채 머물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세속적 세대의 실패와 억압에 대한 효과적인 대답을 세계에 보여주는 방법을 갖고 있다.
Ⅷ. 마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여 왔다. 즉, "뉴에이지 운동은 적 그리스도(Anti - Christ)의 도래를 위한 준비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와같은 문제에 대답함에 있어서, 많은 주의를 해야하고 또한 많은 상충하는 논리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간에 사탄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의 도전(challenge)이지 단순히 부정적인 면에서의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뉴에이지의 강점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가를 잘 인식하고있으며, 동시에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종의 희망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스팽글러에 의하면, 뉴에이지 운동은 "문화와 자아, 삶, 그리고 영성의 새로운 비젼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변화시키는 영적 힘을 제공해 주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영성의 재발견을 통해서 세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제공해 주는 것처럼 공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뉴에이지 운동은 세속세대가 실패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즉, 뉴에이지 운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에게 접근가능한 영적 힘과 접촉케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을 소생케 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존재의 영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서 자기가치(self worth)의 소생을 제공해 주고 있다. 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더 이상 세속적 가치에 의해 전적으로 가치지워지지는 아니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또한 인간과 자연의 힘들간에 있는 영적 컴뮤니티의 재발견을 통해서 환경과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 환경을 통제하는 새로운 환경통제 형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선전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현대 세속주의의 개인주의 안에서 안목을 상실한 인간생활의 공동체적 차원을 재발견함으로써 소속감의 회복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뉴에이지 운동은 감각세계에 편만해 있는 영적실체의 인식을 통하여 현세적인 영성의 소생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뉴에이지 사상의 또 다른 매력은 그것이 세속적 세대가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폐기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은 이 모든 것들을 인간 삶의 새롭고도 풍부한 이해의 테두리안에서 용해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영을 통해서 뉴에이지의 희망이 세속적세대가 했던 만큼이나 기만적인 것임을 안다. 우리의 세계는 영성의 재발견에 의한 풍요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의 이교적 영성을 통해서는 결코 성취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 주는 도전이 있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우리 세기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예리하게 간파하였다. 세계는 지금 세속주의세대가 가져온 영적 공백을 메꿀 수 있는 영성의 소생을 찾으며 부르짖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내세지향적인 도피주의적 영성이 아니라 일상사의 모든 조직을 관통해 들어가는 현세적인 영성을 갈구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제 도전을 만날 수 있는 힘과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영성을 갈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자기 가치감을 주고, 이 땅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정이지 환경적 전투장이 아니라는 의식을 심어주며, 우리의 인간경험을 진정한 공동체의 경험으로 메꾸어 줄 수 있는 영성을 갈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이교적인 영성은 결코 대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이러한 도전에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적이며 개인적인 구원이라는 희석된 복음으로는 이 해답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간문제의 전 범위에 걸쳐서 복음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에만 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며 주님께서 이러한 파괴적이며 침투적인 뉴에이지의 위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줄 분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과 관련되어 있는 많은 사상과 실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강한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홍을 말하는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신 18:9∼12).
"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보라 그들은 초개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너의 근로하던 것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이 각기 소향대로 유리하고 너를 구원할 자 없으리라"(사47:13∼15).
동시에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의 이교주의(paganism)에 대해서 경고만 하는데 그치고,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제문제의 뿌리에 놓여 있는 원인에 대한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아가 신앙의 인내로서 다음 세기를 향한 대안적인 방법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적인 실패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인간의 생각과 삶을 그 근원에서부터 변혁시키는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그리스도안에서 날마다 확신하면서,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문제와 위기를 개혁적으로 치유하고 극복해가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해 가는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삶의 양태를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은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이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 범위에 있어서 우주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
1. 미국에서 이 뉴에이지운동의 영향이 얼마나 크게 미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Karen Hoyt(executive director of the Spiritual Counterfeits project)는 미국인들의 종교심의 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현재 미국인의 약 23%가 윤회(reincarnation)를 믿고 있으며, 23%는 점성술(astrology)를 믿고, 또 25%는 비인격적 에너지(nonpersonal energy)나 생명력(life force)을 믿고 있다고 한다(Karen Hoyt, The New Age Rage, Old Tappan, N.J. :Fleming H. Revolt, 1987, p. 11).
2. Ruth A. Tucker, Another Gospel: Alternative Religions and the New Age Movement, grand Rapids, M- ichigan: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9, p.319.
3. 바벨론 종교에서는 고대 바벨론의 절대 군주였던 니므롯(Nimrod)과 그의 아내인 세미라미스(Semiramis)를 신인(神人)으로 숭배하였는데, 이들의 사후 바벨론에서는 이쉬타(Ishtar)와 아스타르테(Astarte)로, 이스라엘과 가나안에서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hataroth)으로, 에베소와 소아시아에서는 다이아나(Diana)와 아데미(Artemis)로, 희랍에서는 가이아(Gaia)로 숭배하였다(참조, 신 상언,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서울: 낮은울타리, 1992,pp. 70∼71).
4. F. Vander Zwaag, "The New Age Movement? The New Age Consciousness!" paper read at the NRCS Teacher's Conference, August, 1989.
5. Eilliot Miller, A Crash Course on the New Age Movement : Describing and Evaluating a Growing Social Force, Gradn Rapids, Michigan : Baker Book House, 1989,p. 14.
6. John Cooper, "The New Age :a False but Attractive Religion", The Banner, October 23, 1989, p. 8.
7. Constance E. Cumbey, The Hidden Dangers of the Rainbow, Shreveport, Louisiana: Huntington House,1983.
8. Tucker. op. cit., p. 322.
9. 이 외에도 Science of the Mind 또는 Religious Science, the Urantia Brotherhood. the Holy Order oh M-ANS, the Church Universal and Triumphant. Transcendental Meditation, 그리고 the Inner Peace Movement 등이 있다. Cumbey, op. cit.(cf: philip H. Lochhaas, How to Respond to… Louis: Publishing House,1989, p.12).
10. Tucker, op. cit., pp. 319-320.
11. Vander Zwaag, op. cit.
12. Cooper, op. cit.,p.8. cf Lochhaas, op. cit., p. 5.
13. J. Hopkins, "Expert on Nontraditional Religions Try to Down the New Age Movement", Christina To-day, May 1985, pp.68∼69. of Lochhaas,Ibid., p. 7.
14. Lochhaas, Ibid. p. 7.
15. Marilyn Ferguson은 인간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심리기술(psychotechologies)'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즉 induced sensory isolation 또는 sensory overload, biofeedback, autogenic training, chanting, psychodrama, hypnosis와 self-hypnosis, "meditation of every description",feverish activity, frenetic dancing, shamanistic 또는 magicalrites, 그 외에 Silva Mind Control이나 Lifespring등과 같은 세미나들, d-ream journals, primal therapy, "rebrithing", 그리고 Theosophy와 같은 syncretistic religions, body disciplines, Religious Science나 Science of the Mind와 같은 Self-healing 등등과 같은 것들이다. 또 어떤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가하기도 한다. 즉 guided imagery 와 visualization, 'boot camp'consfrontational therapies, deep massage, diet, drugs, acupuncture, sleep deprivation, endurance tests, firewalking, pyramidology, use of crystals, astrology, 'channeling' of spirits등이다(cf. Lochhaas, Ibid., p. 8).
16. Cooper, op. cit., p.8.
17. S. Fowler, "The New Age: Threat or Challenge?" B.J. van der Walt, Die "New Age"-Beweging, potc-hefstroom: IRS, 1990. pp. 34∼35.
18. Douglas Groothuis, Confronting the New Age,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58. p.20.
19. Lochhaas, op. cit., p.7.
20. James Sire, The Universe Next Door,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6.
21. Groothuis, op. cit.
22. Lochhaas, op. cit., p. 10.
23. Robert Burrows. "Americans Get Religion in the New Age", Christianity, Vol. 30, No. 8, May 16, pp. 17-21.
24. Irving Hexham & Karia poewe-Hexham, "The Soul of the New Age", Christianity Today, Vol,32,No. 12, Sept.2, 1988, pp. 17-21.
25. "Minister Decries Occult Toys, Cartoons", Sioux Falls Argus Seader, Tuesday, June 30,1987.
26. Vander Zwaag, op, cit.
27. R. Van Zweden, "Dangers of the New Age Movement", paper read at the NRC Youth Conference, Au-gust 25, 1987.
28. Tucker, op. cit., pp. 333-334.
29. 뉴에이지 음악은 1964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그것은 Tony Scott가 "Music for Zen Meditation"을 녹음하고서 부터이다. 그후 몇년 동안 이 음악은 캘리포니아지방에서 아주 유명해졌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부터이다. 현재는 Windam Hill이 뉴에이지 음악을 가장 크게 보급하고 있는데, 1987년 한해에 무려 300만 달러 이상의 매상을 올릴 정도이다.
30. Sire, op. cit.
31. Tucker, op. cit., p.349.
32. Rober Burrows, "Corporate Management Cautioned on New Age", Eternity, February 1988, p.33.
33. Annette Miller, "Corporate Mind Control", Newsweek, May 4, 1987, pp. 38∼39.
34. Joe Queenan, "Crystal Clear", Forbes, August 7,1989, p. 52.
35. D. Spangler, The Rebirth of the Sacred, London: Gateway. 1901, pp. 78∼84.
36. Cooper, op. cit., p. 9.
37. Ibid, p.10.
18. Ibid, p.10.
39. Karaen Howe,"New Age Channels Spiritual Darkness", PRRM Renewal News, Jan.-Feb. 1990, p. 5.
40. Cooper, Ibid, p. 10.
41. Jean Waterink. Basic Concept in Christianity pedagogy, 김성린, 김성수 공역,(기독교교육원론, 서울 :소망사, 1982. p.47).
42. J.I. Packer, Knowing God,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1973, p. 19.
43. Cooper, Ibid, p. 10.
44. Paul Kurtz, Humanist Manifestos Ⅰand Ⅱ, Buffalo, New York: Prometheus Books, 1973. pp. 7∼10.pp. 13∼24.
45. Fowler, Ibid., pp.40∼44.
46. cf Texe Marrs, Mystery Mark of the New Age-Datan's Desing For World Domination, Westchester. I-llinois: Crossway Books, 1988. pp. 16∼18.
47. Ibid., p. 122.
48. Fowler, Ibid., pp.45∼47.
김성수 / 고신대 교수 | 1992. 9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http://www.duranno.com/moksin/detail.asp?CTS_YER=1992&CTS_MON=9&CTS_ID=9933&CTS_CTG_COD=0
Ⅰ. 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뉴에이지운동에 관해서 한 두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지난 몇년 동안 뉴에이지라는 용어는, 세계도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현재 미국과 유럽, 특별히 호주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이 운동이 상륙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술에 회자되고 있으며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 들어가고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외에도, 이 운동과 연관된 사상들이 소설, 영화, TV프로그램은 물론 과학, 생태학, 인류의 미래에 관한 논의 등 모든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분명히 이 사상은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운동을 명상(meditation)과 연관시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초 감각적인 어떤 경험과 관련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조화로운 세계, 사회개선, 인간의 행복, 자아실현 ,그리고 내적평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이 뉴에이지운동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찬양하고 있다. 한편 이 운동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 운동의 종교적 이단성, 주관성, 주술성 등을 비난하고있다. 사실상 이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반응 역시도 이 운동 자체 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운동은 오늘날 코메디언들에게는 익살의 표적이 되고 있고 많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바벨론의 사교(邪敎)이며, 뉴 에이지추종자들에게는 인류의 제반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으로, 그리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게는 경제적 성공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이 운동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부터, 사탄의 주요한 음모(Satanic conspiracy)로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뉴욕에 있는 성 요한 성당(The 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은 수년 동안, 이 성당의 사제인 몰톤(James Parks Morton)의 후원으로, 뉴에이지사상의 센터가 되어왔다. 이곳은 뉴에이지성향의 미사인 '미사 가이아(Missa Gaia)'의 개막축하 장소였다. 축하예배의 성격을 갖고 있는 이 감동적이며 놀라운 음악작품은 생방송으로 녹음되어 LP레코드 앨범으로 제작되었으며, 전 세계에 음악판매상에게 팔려나갔다.
또한 미국의 퍼시픽 노스웨스트(Pacific Northwest)에 있는 한 주요한 뉴에이지센터는 치누크 학습공동체(T-he Chinook Learnign Community)'인데, 이것은 헐(Fritz Hull)이라는 장로교 목사와 그의 아내 비비안(Vivi-enne)에 의해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공동체에서 뉴에이지 사상은 기독교전통의 틀 안에서 발전되고 있다. 여기서는 뉴에이지를 기독교신앙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중 다른 한 극단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텍스 마알스(Texe Marrs)인데, 그는 뉴에이지를 대규모적인 사탄의 음모(a massive Satanic conspiracy)로 보면서, 뉴에이지의 임박한 위협을 경고하는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그의 책은 뉴에이지운동에 대해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을 상당한 정도로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우리는 거의 모든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서점의 서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고있는 반응은 대체로 텍스 마알스의 입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 실제로 이 뉴에이지운동은 무엇인가? 이 운동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미치고 있는가?
먼저, 이 '운동(movement)'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고, 또 중심적인 어떤 본부가 있는 일종의 조직을 의미한다.
그런, 이 뉴에이지운동을 관리, 조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중심적인 기구나 본부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뉴에이지는 회원자격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어떤 조직(organization)도 아니며, 공동의 목적진술 등으로 연합해있는 여러조직의 그룹도 아니다. 뉴에이지는 많은 다양한 조직 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직에 가입해 있지 않는 개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많은 조직들과 개인들간을 연결하는 공식적인 어떤 연결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운동(movement)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아마도 '뉴에이지 의식(New Age Consciousne-ss)'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뉴에이지운동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사고와 생활의 새로운 양식(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뉴에이지운동을 하나의 망(network)', 더 정확하게는 메타네트워크(metanetwork)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에 네트워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른 형태의 조직과는 그 구조와 운용 모두에 있어서 아주 다른 비교적 완만하게, 비형식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조직을 의미한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은 아주 다양한 근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쿠퍼(John Cooper)에 의하면, 뉴에이지운동은 "평화와사랑, 생태학에 대한 1960년대 반문화운동(counter culture)의 관심, 1970년대의 자아인식(self-awa-reness)에 대한 추구, 그리고 1980년대의 쾌락주의(hedonism)의 결합"이다. 뿐만 아니라 동방종교(주로 힌두교)와 고대 자연종교들의 많은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공통의 신앙인데, 이 공통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뉴에이지운동은 아주 복잡성을 띄고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관계하고있다. 학자들, 예술인들, 문필가들,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Shirlley MacLaine)과 같은 영화배우도 대대적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 특별히 셜리 맥클레인은 그녀의 많은 저술과 텔레비젼 출연활동, 그리고 뉴에이지 세미나를 통해서 사실상 그녀의 이름과 뉴에이지운동이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 뉴에이지운동의 의식 또는 네트워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의 역사와 신조, 그리고 그 효과 등에 대해서 조금더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
Ⅱ. 뉴에이지운동의 역사
'뉴에이지(New Age)'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어휘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은 우리가 이러한 이름을 붙여 부르기 훨씬 전에 이미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여기에 '새(new)'라는 의미를 붙여 갑작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운동의 철학적, 종교적인 면에 대한 별다른 성찰이 없이 몇가지 흥미있는, 또는 기괴한 모양(형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뉴스 미디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뉴에이지운동의 역사를 좀더 좁혀서 거슬러 올라가 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1875년에 블라바츠키(Helen Petrovan Blavatsky)가 주도했던 신지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의 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헬레나 페트로브나(Helena Petrovna)는 1830년대 초엽에 소련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십대의 나이에 군인 장성인 블라바츠키(N. B. Blavatsky)와 결혼하였는데, 결혼한지 2개월 후에 남편을 버리고 서쪽으로 미국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인디아 등지에 이르기까지 25년의 순례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동안 그녀는 여러 다양한 종교철학을 공부하였고, 자신을 존 왕(King John)이라고 일컫는 신령안내자(spirit-guide)의 차넬러(chann- eler)가 되었다. 그리고 1875년에 그녀는 뉴욕에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를 창설하여 1891년 죽을때까지 이 협회의 지도자로서 일하였다. 이 신지학협회는 여러면에서 오늘날 뉴에이지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이 조그마한 그룹이 뉴에이지운동의 기본적신조를 갖고 100년 정도 이상 활동한 후 지금은 1만여개 이상의 뉴에이지 조직들로 구성되는 거대한 망(network)으로 번창하였다. 이들 뉴에이지 단체(조직)들 가운데서 공적으로 뉴에이지 신조를 표방하는 단체로는, Green Peace, Zero Population Growth, 그리고 Amnesty Internati-onal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통해서 뉴에이지 의식은 실제로 공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뉴에이지 점성가들은 우리는 이제 기독교시대의 종말과 뉴에이지 시대의 시작을 예고하는 수병좌(水甁座)의 시대(t-he Age of Aquarius)로 들어가고 있다고 동의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지구는 고기(Pisces)의 사인(sign) 영향권아래 있었는데, 이 고기사인은 초대교회의 한 표식으로서 기독교와 동일시 된다. 그런데, 점성가들은 말하기를 이제 이 어좌(魚座)시대(Piscean Age)는 지나가고 수병좌의 시대가 동텄다고 한다. 정확하게 언제 이 새로운 별의 시대가 시작되었는지 예언하기는 어렵지만 각 시대가2,200년 씩 지속되고, 또 점성가들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을 100년 정도는 가감할 수 있기 때문에, 셜리 맥클레인 같은 사람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는 '인본주의(humanism)'의 시대이며, 형제애(brotherhood)의 시대, 주술(주문)적 현상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구시대와 새시대간의 연결다리의 무지개(rainbow)로서 상징하고 있다.
이 시점으로부터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이제 미디어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그들의 신조를 공표해 오고 있다.
Ⅲ. 뉴에이지운동의 기본적 신조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비교적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저술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아주 신비적이며 '영적 '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가하면(Shirley MacLaine), 또 어떤 이들은 '비종교적인' 지성들도 있고(Arthur Ko-estler), 또 단순히 일반 소시민에 불과한 사람들도 있다(John Denver).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의 다양한 표현의 이면에는 실재(reality)와 구원(salvation)에 대한 어떤 공통적인 핵심적 신조가 깔려있다. 요컨데, 뉴에이지운동에 대해서 어떤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에이지운동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어떤 공통의 신앙를 확인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이들이 믿고 있는 기본적인 신조가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면 우리는 먼저 뉴에이지운동의 접근에 있어서 인본주의적 강조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들의 기본 신념은 하나님이 비인격적(impersonal), 미분화된 존재(und-iffrentiated oneness)로서 창조세계와 분리되지 않는 창조세계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의식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존재'나 '인격'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초월성(God's tran-scendence)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비인격적인 에너지(impersonal energy), 힘(force), 또는 많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표현하는 바대로 '모든 생물의 집합적 의식(the aggreate consciousness of all living things)'이라는 것을 의미하고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인간의 진화를 통하여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는 목적이 없으며, 인간의 가능성은 한계가 없고, 선과 악을 마치 삶과 죽음이 동일한 것처럼 동일하다고 본다.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단지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지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기위해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근원(the God-so-urce)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한다(I know that the God-source exist. therefore IT IS)."
이들의 또 다른 신념은 "모든 인간은 신이다(all humans are gods)"라는 신앙이다. 인간은 다른 창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질적존재를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인간은 그 스스로 어떤 구체적인 본성(본질)이나, 속성, 제한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항상 모든 임의적인 선택에 개방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선택하는 바 어떠한 것에도 든지 진화해 갈 수 있다. 이러한 미래에로의 진화과정에 유일한 장애는 인간자신의 신성(divinity)에 대한 무지이다. 그러나 이 무지는 '계몽(enlightenment)'에 의해서 물리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도 '나사렛에서 온 사람(the man form Nazareth)'이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의미로 "나는 하나님이다"(I am God)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셜리 맥클레인이라는 여배우는 세미나에 나가서 "여러분도 하나님이고 나도 하나님이다"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우리가 다른 어떤 신을 경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자신이 모두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위기는 다 인간자신이 바로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다 신인데, 인간이 자신을 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의식훈련과 정신, 훈련을 통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소위 '변형(transformation)'의 '각성(awakening)'과정을 통하여 인간은 완전과 전능, 불멸에 이르게 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요가(yoga), 좌선, 초월명상, 마인드 컨트롤 등과 같은 기술을 사용함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신앙은 그들이 신봉하고 있는 또다른 하나의 가치로 인도해 가는데, 그것은 곧 "모든 종교는 다 동일한 진리에 도달하는 상이한 길이며,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모두 신이다"라고 하는 가치이다.
그럼,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의 세계관에 의하면 단지 하나의 기본적 실재(basic reality)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우주(universe)이다. 이 우주는 분리할 수 없는 두 차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시적-물질적 차원과 비가시적-영적차원이다. 그런데, 비가시적-영적차원은 우주의 실제적인 능력(real power)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 비가시적 세계는 가시적-물질세계를 발생시키며, 살아있고 귄장하는 전체로 통합시킨다. 어떤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이 잠재적 능력(h-idden power)을 신(하나님)(God)이라고 부르고, 영화 '별들의 전쟁'은 이것을 '힘(the Forc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성인들은 이것을 '에너지(energy)'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구별된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에 (우리들 각자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 잠재되어 있는 영적인 힘(spiritual power)이다. 이처럼 뉴에이지운동의 세계관의 핵심은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란 분명히 영적(spiritual)이며, 이 인간의 영성은 모든 생명형태가 가지고 있는 영성과 동일한 하나라는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과 함께, 이 지구 자체는 분명히 영적인 것이어서 이 지구상의 인간생활의 미래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이 지구의 영적인 힘들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보는 공통의 신념이 있다.
현대인의 문제는 우리가 이와같은 통합적이며 창조적인 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위 "타락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반응을 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적인 의식과 물질계(material realm)에 완전히 흡입되어 빠져들어감으로서 영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를 더이상 유기적 통일체(organic unity)로서가 아니라, 제한되고 유한되며 경쟁상태에 있는 이른바 상호연관성이 없는 사물과 사건들의 집합으로 경험하고있다. 우리 자신들과 세계를 이러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생태학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문제들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보다 고차원의 의식(higher consciousness)'을 통하여 만물의 근원에 있는 창조적이며 치유하는 에너지(healing energy)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회복하기만 하면 해결될 수 있다. 이 때에 우리는 세계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관계지을 수 있으며, 성장과 조화를 촉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치유되고 변형될 수 있는데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인 고차원 의식은 결국 이 세계를 사랑의 지구공동체(a global co-mmunity of love)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자신들도 초자연적 존재(superhuman being)로 진화해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Scotland)의 먼 북쪽에 있는 핀드 흔 컴뮤니티(The Findhom community)는 가장 오래된 뉴에이지 공동체 가운데 하나인데, 스팽글러 (Spangler)는 이 공동체를 여러면에서 "뉴에이지 그룹의 할머니"(the g-randmother of New Age groups)라고 말하고있다. 이 공동체는 전통적인 농작의 지혜로서는 그렇게 지배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고말하는 조악(粗惡)한 환경에서 채소들이 놀랄만한 생장력을 가지고 번성한 정원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마을로 유명해졌다. 그들은 이러한 성공을 자연의 영적인 힘에 맞추어 인간재배자들이 그 자연의 영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전통적인 농경방법은 이러한 영적인 힘들을 소외시켜 버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뉴에이지 사상의 핵심이 있다. 영성(spirituality)이 이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영성주의자들(a Spiritualist)의 세계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공예(technology)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현대의 세속주의 세계관을 단호히 거부한다. 호켄(Hawken)이 말한 바와같이, 인간은 자신의 지성을 개발하기 위하여 결국 영적인 감수성과 의식(Spiritual Sensitivity and awareness)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상실된 감수성이 점차적으로 소생하고,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고양시키면서 자신의 지성을 유지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의식(aware-ness)'이란 물론 영적인 의식, 즉 이 세상의 근본적인 영적인 힘들에 대한 의식을 의미한다
스팽글러(Spangler)는 뉴에이지운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우리의 감각의 재생(a rebirth of our sense of the sacred)이다. 이것은 초월적이거나, 내세적인 어떤 ,것에 대한 감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 곧, 우리의 인간성(humanness), 우리 주위의 자연세계, 그리고 우리의 운명(destiny)속에 있는 가치와 신성함에 대한 인식(이정)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신앙을 더 잘 분석해 보면, 우리는 인간 자아에 대한 일반적 낙관주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고백하기를 인간은 현재 무한정한 잠재력을 가지고 신비적 유토피아를 영적으로 발견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신적인 것(the d-ivine)'에 각성해야만 하는 신들로서 간주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기적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창조자들이다. 자신의 창조자들로서 인간은 자신과 그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미래적 진화의 방향을 현명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적인 고귀함이 출현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적 진화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지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메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은 자연히 항상 보다 높은 삶의 질서로 향해 발전해 가서, 결국 완전히 형성된, 그리고 고도로 진화된 새로운 종(species)이 아주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과학적 윈리'를 창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같은 기본적인 뉴에이지 신앙으로부터 연유되는 이른바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추종하고 있는 몇가지 일반적인 원리가 있다.
이 뉴에이지운동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우주적 의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자아(self)가제일 중요한 실재가 되며, 그 목적은 자아의 가장 내면적인 장소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실재(reality )를 가장 완전하고 심오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God Himself)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뉴에이지운동은 명상과 계몽을 아주 중요시한다. 우리 모두가 다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업도 성공할 수 있고, 건강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나아가 이러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되면 스포츠나 학문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원리와 관련해서 뉴에이지운동의 다른 한 중요한 특징은 소위 '영계 접촉(spirit contact)' 즉, 표명되지 않고 감추어져 있으며 이해될 수 없고 신비적인 것과의 접촉이다. 이 영계 접촉은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 소위 구원(salvation)에 이르는 한 방편이다. 즉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보다 고차원의 의식(higher consc-iousness)'을 소유하는 것은 바로 구원의 성취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 구원에 이르는 여러가지의 방편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 신비주의나 명상의 방법(그것이 기독교적이든 힌두교적이든, 또는 불교나 물활론적 주술적이든 관계없이), 또는 영과의 교통(communicating with spirits)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실재에 대한 전체적 모델을 명상하거나 드라마, 음악, 댄스, 스포츠, 심지어는 섹스까지도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의도를 성취하는 보편적 수단이 되고있다. 대부분의 뉴에이지운동가들은 구원에 이르는 다양한 접근방법을 결합해서 사용하고 있다.
육체적인 죽음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생활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세계(otherworld)'의 사물들에 관해서 알기 위해서 점성가와 유사한 차넬러(channeler)와 상담하게 만든다.
이와같은 상이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뉴에이지운동은 미디아의 주요수단을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Ⅳ. 미디어를 통한 활동
3가지 유형의 주요 미디어가 현재 이 위험하게 침투적인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청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3가지 유형의 미디아는 특별히 1) 영화산업 2) TV 그리고, 3) 미술(painted symbols)이다.
이제 이들 세 유형의 미디아를 통해서 뉴에이지운동이 우리들에게(특별히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미치고 있는 심각한 영향의 실례들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1) 먼저 영화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화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ET', '백 투더 퓨쳐', '사랑과 영혼', '꿈의 구장' 그리고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는 영화는 뉴에이지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이다. 이들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메시지는 인간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으며, 유일한 실재(reality)는 지각(per-ceive)하는 것 바로 그것뿐이라는 메시지이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는 항상 어떤 힘을 마스터 할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는 이 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할려고 한다. 그런데 이 힘의 대부분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자기의 신(神)이라는 뉴에이지 사상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2) 미디어를 통해서 뉴에이지운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번째 유형은 TV를 통해서이다. 오늘날 TV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예컨대 유령, UFO's, 비젼, 환상등을 통해서 뉴에이지 사상을 전파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프로그램속에 감추어진 형태로 방영되게 한다.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들은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실재의 세계(reality)와 환상의 세계(fantasy)를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이것은 특별히 만화 프로그램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는데 이들 만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본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예를들면, 미국에서 아동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머프 가족, '우주 정복자 히맨(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e)'이라는 만화영화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한 수준에 둘 수 있다는 사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3) 마지막 세번째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주요 미디어는 미술을 통해서이다. 무지개에 관한 그 어떠한 그림도 구시대와 새시대간의 구분을 의미할 수 있다. " 뉴에이지 사상을 대표해 보여주는 다른 시각적 상징(visible symbols)은 666이라는 수와 유니콘(Unicon), 그리고 천리안(all-seeing eye)이다.
이외에도 뉴에이지운동은 음악과 서적출판을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셔리 맥클레인이 TV에서 'Out on a Limb'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동한 이후로 한 때 미국 각 서점가에서는 뉴에이지에 관한 책의 판매고가 전체 판매고의 90%를 상회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의 'Out on a Limb'이라는 책은 14주간 동안이나 New York Times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에서 셜리 맥클레인은 자기가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윤회사상을 믿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까지의 영적 순례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신세계사에서 출판된 많은 책들은 주의를 요하는 책들이 많다. 예컨데, '꼬마성자(The Se-arch for the King)'와 스리라마재단의 출판물인 '성자가 된 청소부(Sweeper to Saint)', 그외에도 '인도로 간 예수', '불제자였던 예수' '배꼽' 등등이 있다. 미국의 어느 서점이든지 한쪽 코너에는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고, 음악잡지, 컴팩트 디스크 판매 책자에도 몇 페이지정도는 항상 뉴에이지 음악을 소개하는 곳으로 할애되어 있다. 음악에서 소위 명상음악은 힌두교의 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환상적이며 사탄을 숭배하는 음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V. 직업에 미치는 영향
이 뉴에이지운동은 미디어에만 침투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상이한 직업에 영향을 미쳤다. 만약 인간이 명상기술(Mediation techniques), 약(drug), 요가(yoga), 또는 크리스탈(Crystal) 등을 이용하여 자아속으로 더 깊이파고 들어가기만 하면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이나 될 수 있다고 하는 근본신념은 그들 자신들의 직업과 관심 영역에서 뉴에이지 주창자들을 인도하는 지침이 되고있다.
심리학에 영역에 있어서 칼 융(C. G. Jung), 제임스(William James), 그리고 메릴랜드 심리치료연구소(the M-aryland Psychiatric Research Center)의 그로트(Stanis lanGrot)등은 죽어가는 환자에게 LSD를 주어서 그들이 우주적 일체감(a feeling of cosmic unity)을 성취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실험을 하였다. 사회학의 영역에서 톰슨(William Thompson ) 은 이와같은 지성적 여로(intellectual journey)를 그의 책「Passages upon Earth」라는 책에서 캐톨릭주의로부터 자연주의를 통하여 뉴에이지의 마술적 환상에 이르기까지의 지적 여로를 추적하고 있다. 뉴에이지 사상의 침투는 건강의 영역과 스포츠 영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실재(reality )에 들어가기 위해서 명상의 기술을 강조하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이와같은 뉴에이지 효과들에 덧붙여서 포드(Ford) 자동차회사나 폴라이드와 같은 많은 회사들은 뉴에이지 관리고문들을 고용하였다. 미국의 주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글들을 읽어보면 기업경영이 많은 경우에 있어서 뉴에이지운동의 원리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예컨데, 기업의 종업원 훈련프로그램들(주로 자아실현 훈련프로그램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종업원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감퇴시키고 보다 순종적인 노동자를 만드는 명상활동(meditative activity)을 장려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들 뉴에이지 훈련프로그램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또 얼마나 많은 기업체들에 침투해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포춘지(Fortune Magazine)의 기고에서 제리 메인(Jerry Mai-n)은 기업경영에 미치고 있는 뉴에이지운동의 영향이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스코트 페이퍼(Scott Paper), 그리고 듀퐁(Dupont)과 같은 거대한 기업들도 Werner Erhard's Transformed Technologies 와 World Institute of Scientological Enterprises(WISE), 그리고 Movement of Inner Spiritual Awareness(MISA)와 같은 조직의 봉사를 이용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 오고 있다.
이 회사들의 목적은 그들의 종업원들로 하여금 그들 개인의 문제이든지 아니면 그들의 직업과 관계된 문제들이든지 간에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아를 이용하는 뉴에이지 철학을 제공해 줌으로서 종업원들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협동적인 정신통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고용주들이나 종업원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고안된 어떤 뉴에이지 책들은, 인간들이 보다 많은 부를 획득하기위해서는 자신(자아)들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몰두해 들어감으로서 자신들을 영적인 코일로 포장해야 한다고 옹호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을 직접적으로 인간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이러한 사상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Ⅵ.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
지금까지 뉴에이지운동이 영화와 T.V. 그리고 미술, 직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뉴에이지운동의 본질과 그 영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수 밖에 없다.
뉴에이지사상의 가장 정교하고 주도적인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은 스팽글러(Spangler)인데, 그는 뉴에이지운동의 네가지 수준을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 수준은, 피상적인 호칭의 수준인데, 일반적으로 상업적인 세계에서 볼 수 있다. 이 수준은 기본적으로 뉴에이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이다. 뉴에이지 옷의 판매, 뉴에이지 아이스크림을 포함해서 뉴에이지 음식의 보급, 그리고 뉴에이지상점 등과 같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뉴에이지를 이야기 하는 피상적인 수준이다.
두번째 수준은, 스팽글러가 마력(glamour)의 수준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수준에서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모험과 능력의 환상생활을 하는데, 보통 신비적(occult)이거나 지복천년형태의 환상생활"을 한다. 이 수준의 특징은 자아실현(ego fulfilment)과 현세로부터의 도피이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뉴에이지사상과 실제를 새로운 유행에 맞는 어떤 것으로 추구한다. 뉴에이지가 마력적인 어떤 원인과 결부되고, 많은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지도자들, 또는 아주 선풍적인 어떤 활동으로 신문이나 잡지의 톱기사 등등과 관계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두번째 수준에서이다. 뉴에이지운동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체로 이 수준에서이다. 그러나 스팽글러는 첫번째나 두번째 수준을 진정한 뉴에이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진정한 뉴에이지 경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세번째 수준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스팽글러는 이것을 변화(cha-ange), 변형(transform)의 이미지(image), 파라다임의 변화(a paradigm shift), 새로운 세계관(a new world vi-ews) 이라고 부른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세계를 지배해 오고있는 세속주의적 세계관(the secularist worldview)에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세계관을 추구하고 있다. 네번째 수준은 궁극적인 뉴에이지의 전체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수준에서 뉴에이지의 특징은 성자(the sacred)의 수육(受肉)(incarnation)이다. 이 수준에서 뉴에이지는 "영적인 사건이며, 새로운 의식의 탄생, 생명(삶)의 새로운 의식과 경험… 일상생활 중에서 신성한 본질을 심화시킴, 일상적인 평범한 것 속에 있는 신성(d-ivinity)을 찬양(celebrate)할 수 있으며 이러한 축제 속에서 신성한(거룩한)문화를 소생시키는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세계관의 변형을 넘어 인간의 영적변형에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뉴에이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뉴에이지운동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의 경험에 근거하여 뉴에이지를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에서 뉴에이지운동이 가장 가시적이며 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탕에서 뉴에이지를 평가하는 것은 핵심을 놓쳐버리기가 쉽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을 세상의 변혁운동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세번째 수준과 특별히 네번째 수준에서이다.
Ⅶ. 뉴에이지운동의 평가
뉴에이지운동의 멧세지는 많은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운동은 현대 물질문명에 찌든 사회속에서 메마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성(spirituality)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개인적, 사회적, 생태학적인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희망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적대감과 이기심으로 찢기워진 세계에 공동체와 협동의 미덕을 약속한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하는데 그렇게 많은 댓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으며, 과학과 기술공예, 풍요, 쾌락, 인간의 자율성 등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 뉴에이지운동은 심지어 크리스찬들에게도 매력적인 것 같이 보인다. 뉴에이지운동의 메세지는 기독교의 언어들로서 가장되고 있다. 창조, 타락, 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의인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전체 피조세계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충만 등의 용어들이 뉴에이지운동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체계적인 인생관-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회와 문화를 '평화의 왕국(peaceable kingdom)'으로 변혁시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같은 강조들을 사회문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크리스찬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것 같이 보인다. 동시에 뉴에이지운동은 카리스마적인 예배나 잘 훈련된 명상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 경험을 갈구하는 크리스찬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사랑과 평화를 표방함으로써 뉴에이지운동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던지지 않는 크리스찬들에게 철저하게 성경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에도 크리스찬들이 인정하고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뉴에이지운동의 주창자들이 현대 서구사회의 물질주의와 조잡한 자연주의에 대항해서 영적인 어떤 실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뉴에이지운동은 인간이 구원받아야할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현 세계가 이 구원을 제공해 주기에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기술공예의 파괴적 역동성과 경쟁적인 개인주의에 대한 이들의 비판 또한 현대인들의 사고에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침투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육체와 영혼, 개인과 집단, 인간과 환경간의 전체적인 상호연관성에 대한 뉴에이지운동의 관심은 사실상, 전통적 기독교와 과학적 인본주의가 종종 등한시해온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구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은 우리가 잘 숙고해보면 기독교인들이 지혜롭고도 단호하게 대항해야만 하는 반성경적인 운동임이 자명하다. 실제로 뉴에이지운동은 기독교신앙과 완전히 배치되고 있다. 우리는 요한복음 7장 24절의 말씀 곧,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는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이 운동을 비판할 때에 맹목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설적인 비판을 지지할 수 있는 타당한 사상과 이유, 사실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 바 기본적 진리인 성경으로 돌아가 이 운동을 비판할 수 있는 지침적 지도 원리를 살펴야한다.
먼저, 뉴에이지가 추구하고 있는 영성은 분명히 이교적인 영성(pagan spirituality)이다. 모든 이교적 영성 형태의 핵심은 우리의 감각세계에 대한 지각을 신성(divinity)에 참여하는 영들의 세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그보다 좀 낮은 영들의 위계질서에 정점에 있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좀 낮은 영들이 방출되어 나오는 신성의 중심(the divine center)으로 본다. 하나님과 창조세계간에 예리하게 구분된 경계선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과 하나의 세계로 병합되어 있는 자연의 내재적 영들로 말미암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창조세계간의 구분은 힘의 위계질서의 구분이지 종류의 구분이 아니다. 우리의 세계가 그로부터 말미암는 최고의 창조 영이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좀 부족한 영들과 하나가 된다. 우리는 이 하나의 영계와 우리들 자신이 하나되는 것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뉴에이지가 말하는 영성의 본질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인도한다. 성경은 분명히 이 지상의 감각세계에 관여하는 영물의 세계(a world of spirit creatures)를 인정한다. 또한 성경은 인간존재의 근본적 영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영들의 세계는 결코 좀 저급한 신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분 유일하시고 참된 신이신 조물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의 세계(a world of creatures)에 속한다.
하나님은 종류(kind)에 있어서 모든 다른것과 독특하게 구별된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편만해 있는 영성에 우리 자신을 조화시킴으로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분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만남은 실제로 이 세상안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자(Transcendent One)가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the personal God)으로서,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하나가되시며 우리의 위치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지만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범주로부터는 완전히 다른 분이신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에 기독교신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뉴에이지 사상의 기본적인 이교적틀(the ba-sic pagan framework)에 기독교 신앙이 적응할 때에 한해서이다. 즉, 인간이 영계(a world of spirits)의 신성 (the divine)에 참여한다는 이교적인 틀에 적응할 때에 한하는 것이다. 크리스찬들은 계속해서 이 영계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을 절대적인 신(exclusive divinity)으로 주장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그러할 수 있다. 스팽글러는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하나의 영성세계(one world spirituality)가 문화적으로 규정되어 나타나는 많은 가능한 표현들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호킨(Hawken)은 나사렛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에너지의 인간적 표현"(a human enbodiment of the Christ energy)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여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 신앙 그 자체의 바로 핵심을 파괴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6). 기독교 신앙과 뉴에이지간에는 합법적인 결혼이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을 시도하는 것은 바알(the Baal)을 섬기면서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며 자신과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고 하는 뉴에이지의 기본신념(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전적 의존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된다. 뉴에이지운동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주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보는 비인격적인 힘을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과 대치시키고 있다. 이 운동의 주창자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특별히 계몽된 인간존재(enlightened human being)일 뿐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있는 우주가 아니라 수많은 세포를 가지고 진화해 가고 있는 유기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뉴에이지운동은 일종의 진화론적 범신론(evolutionary pantheism)의 사상을 강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인간을 유혹한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성경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겔 28:2)(사45:8∼16참조). 또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건축자들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병이 보초를 서도 헛일이다"(시 127:1).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음으로, 뉴에이지운동이 말하고 있는 타락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나 불순종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안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창조적 능력과의 접촉의 상실일 뿐이다. 뉴에이지 주창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뜻을 나타내는 어떤 객관적인 도덕적 질서가 존재하지 아니한다. 만약 우리 모두가 신적인 생명력(divine life-force)으로서 가득차 있는 신들이라고 한다면 우리 각자는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만큼 자유스러운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규범은 그들이 생각할 때에 인간의 성장과 우주와의 조화를 조장하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궁극적 심판자나 순종해야만 하는 거룩한 분같은 존재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조화를 이를 수 없는 양 반대적인 극단이 아니라 동일한 우주적 동전의 양 측면일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희망을 상실한 도덕적 상대주의이며, 주관주의일 뿐이지 그리스도안에서 향유하는 자유가 아니다.
세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이 표방하고 있는 인간의 잠재력개발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평가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엄청난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능력을 우리는 개발하고 그것을 또한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나아가 그 능력 마저도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죄로 오염된 상태에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만 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재력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네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명상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 신자의 생활에서 명상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명상은 신실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영적훈련의 한 방편이 되어왔다. 명상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시킨다. 팩커(J. Packer)는 말하기를 명상은 "하나님의 교제수단이며,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거룩한 사고활동이며, 그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영적비젼을 보다 분명히 하고 그 분의 진리가 우리의 정신과 가슴(마음)에 충만하고도 적절하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의 내부에 있는 어떤 잠재력에 대해서 명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한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다섯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이 중요시하고 있는 구원의 한 방편, 즉 '영계접촉' 역시도 기만적이다.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이들은 우리 자신의 왜곡된 영혼이나 마귀적이며 주술적인 깊이로 침잠해 들어가는 영적 채널(spiritual chan-nel)을 강조한다. 셜리 맥클레인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절정에 이르는 어떤 경험을 향유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지옥같은, 또는 광적인 어떤 상태에서 소위 보다 고차원의 의식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들이 실제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경험은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뉴에이지운동은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 회개와 중생이 없는 구원, 비현실적인 가상적 낙관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을 통한 경험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뉴에이지 의식으로부터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할지라도 이 운동은 인간의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부터만 오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단연코 부인한다. 대신에 뉴에이지운동은 우리 인간이 우리 자신과 전 세계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신적능력(divine power)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은 보다 위대한 조화와 통일이 있는 미래 세계에 다시 환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선언문(Humanist Manifestos Ⅰ&Ⅱ)을 통해서 표방한 바 대로 정통적인 종교의 모든 본질과 요소들을 철저하게 부인해 버리고 인간이 인간을 구원해야 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극단적인 낙관론적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 뉴에이지운동은 낙관적인본주의의 다른 한 형태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물음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뉴에이지운동이 사탄적인 음모(a sataruc conspiracy)인가 하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분명히 크리스찬들에게 전적으로 수용불가능한 이교정신(paganism)의 한 새로운 형태이다. 어느 누구도 뉴에이지운동에 흑암의 영적세력이 관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음모(sat-anic conspiracy)라고 간주하면서 사탄의 음모이론(the satanic conspiracy theory)을 주창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이 세상에서 사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서 예리하게 간파하지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한 예로써 텍스 마알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마알스는 아마도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이 사탄음모이론의 강력한 주창자이다. 그런데 그가 이 이론을 주장하는 논의의 근거는 네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로, 그의 논의는 부적절한 증거에 기초하고 있다. 음모이론에 대한 증거는 뉴에이지운동의 주류를 전혀 대표할 수 없는 이른바 첫번째와 두번째 수준 즉 뉴에이지운동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진술과 행동을 그 전체 맥락과는 별개의 단편적인 진술로부터 모은 것이다.
때때로, 이 증거와 뉴에이지와의 연결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희박한 경우가 일다. 전미국무장관이었던 슬츠(George Schultz)를 뉴에이지 옹호자로 낙인찍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1987년에 행한 연설에서 "통일된 세계경제질서가 형성되면서 경제적이며 재정적인 협동의 새시대가 동터오고 있다"(a new age of economic and financial cooperation had dawned with a unified world economic ordertaking shape)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세계 경제 질서의 실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뉴에이지운동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빈약한 주장은 영국황실의 찰스 황태자의 엘리자벳여왕이 뉴에이지신봉자 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의술에 대한 '총체적 접근방법(holistic approach)'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뉴에이지의 추종자들이 '총체적 의학(holistic medicine)'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뉴에이지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소련의 지도자 마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세계의 뉴에이지교사와 지도자의 선봉"으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글라스로스트' 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름 아래 소련에 변화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단지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마알스는 확신있게 "사탄은 소련의 가장 높은 고관의 마음과 영혼을 빼앗는데 강력한 업적을 이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방법으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뉴에이지의 특색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않았다 .이외에도 발트하임(Kurt Waldheim) 전유엔사무총장, 미국 상원의원 게리 하트(Gary Hart), 브란트(Willy Brand) 전독일수상 등 여러사람들을 뉴에이지운동의 지도자 또는 추종자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경우들은 다 마알스(Marrs)가 단순히 주장하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로, 어떤 경우에는 증거를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어 이용하기도 한다. 마알스는 주장하기를 뉴에이지 지도자들은 그들의 뜻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무력으로 세계정부를 세울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스팽글러(Spangler)를 인용하고 있다. 스팽글러는 분명히 도래하는 세계공동체(a coming world community)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분명하게 폭력을 거절하고있으며, 폭력의 사용이 아니라 보편적(우주적)인 영적 변혁(a universal spiritual transformation)을 통해서 도래하는 새로운 세계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나아가 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억지로 강요하는 강력한 정부가 아니라, 스팽글러의 비전은 이러한 미래의 통합된 세계에서는 인류의 영적인 조화(the spiritual harmony of ma-nkind)가 있으므로 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바 그 어떠한 종류의 정부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러한 세계이다. 물론 우리는 스팽글러의 이러한 비전이 허망한 유토피아적인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알스가 하고 있는 방법은 군사적 힘과 억압을 통한 세계지배라는 무서운 그림을 만들어 내기위해 증거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마알스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성경은 계시하기를" 또는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성경에 대한 강한 어필로서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부주의한 독자들에게는 마치 성경이 뉴에이지는 사탄의 음모라는 그의 견해를 지지하는 권위적인 증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성경사용법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가 내세우는 증거는 마알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경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사용한 성경 본문 가운데 많은 경우는 마알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뉴에이지에 적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 본문들은 먼저 우리가 마알스의 음모이론을 정당한 것으로 먼저 수용할 때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순환논법의 한 분명한 예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마알스가 갖고 있는 신앙의 신실성과, 뉴에이지운동을 비판하는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 없고 오히려 그의 희생적인 봉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주의깊게 잘 살펴보면 마알스는 경험적 증거와 성경 모두를 뉴에이지에 대한 자신의 사탄음모이론에 끼어 맞추고 있다. 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마알스의 비판이 보여주고 있는 세 번째의 만족스럽지 못한 특징은, 그의 비판자체가 실제로 이교적인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뉴에이지가 이교사상(Paganism)의 한 새로운 형태이며, 그것은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항하는 자신의 주장을 확립함에 있어서 ,마알스 자신은 근본적인 이교적 원리를 타당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마알스는 상징(symbols)을 그 자체 스스로 힘(power)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말하기를 실제로 상징(symbols)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데, 이 상징은 영흔의 깊은 곳에 있는 흑암의 세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은 점에서 그는 뉴에이지의 상징들을 도처에서 찾고 있다. 즉 간단한 원이나 삼각형, 십자가, 별과 꽃 모양 등 아마도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그 어떠한 모양도 사실상 간교한 사탄적인 뉴에이지 심볼의 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의 어떤 모양이 뉴에이지 출판물이나 상품 등에서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양을 뉴에이지 심볼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의문성을 차치하고라도, 심볼들이 그 속에 어떤 힘을 갖고 있다는 사상은 본질상 이교적이다. 성경에 의하면 우상(idols)은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하였다. 사람들을 어떤 단순한 사물들 속에 가상적으로 있다고 보는 신비적인 어떤 영적인 힘 앞에 두렵게 만드는 것은 마술적(magic)인 것을 신앙하는 이교적인 사상(paganism)이다. 기독교인은 마술적인 힘에 대한 이교적인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복음은 우리를 이러한 이교적인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하셨다. 심볼은 그 심볼이 상징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신념을 통해서만 힘을 갖는다. 심볼은 그것이 신비적인 것이거나 공개적인 것이거나 간에 그 자체로서는 힘(능력 )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뉴에이지에 대한 마알스의 음모이론이 갖고있는 네번째의 불만족한 특징은, 그것이 지금 여기(현세)에서의 인간의 제 문제에 화목과 치유를 가져오는 능력이 없는 희석된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제공하는 바 모든 것은 도래해 올 보다 나은 세계로의 도피를 위한 준비를 요청하는 것이다.
일단 마알스가 뉴에이지에 의해서 도래하게되어 있는 미래세계에 대해 무서운 경고를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 다음, 마알스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 개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닥쳐올 재난에서 구원받고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환영할 준비를 갖도록 초대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를 갖고있지 않다.
물론 세상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의 영광중에서 나타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고 열렬히 고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모든 신자의 희망이며 소망이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는 복음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리스도와의 사적이며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이 종말의 날 만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유사한 교제에 들어오도록 촉구하는 것만 말하는 복음은 역시 완전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는 복된 소식이다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의 전 생활을 참된 영적 봉사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지금 여기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 존재를 변화된 심령의 인도아래 사랑의 봉사에 헌신하도록 요청하는 소식이다. 로마서 12장 1,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지막으로, 사탄의 음모이론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이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위 사탄의 능력을 나타내는 온갖 종류의 놀라운 그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세상 속에서 사탄의 활동을 충분히 심각하게 다루고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의 왕자로서 사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아주 깊이 관여해 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뉴에이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탄의 음모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능력이 영적인 능력을 이야기하는 곳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영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자율적인 세속적 능력(the autonomous secular powers)만을 언급하는 곳에는 사탄적 활동의 아이디어가 배경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보고 있다. 만약 사탄이 참으로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수 있는 위대한 속임장이(the Great Deceiver)라고 한다면, 사탄은 아마도 영적실체를 인정하는 뉴에이지를 통해서 보다 더 세속세계로부터 영적실체들을 배제하는 사상과 시대를 통해서 더 교활한 음모를 꾸밀려고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뉴에이지의 이교적인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주의(seculari-sm)가 우리들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을 잠식시키는 방법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점이 아마도 뉴에이지에 대한 많은 크리스찬 비판가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세속주의(secularism)'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속주의는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세속적인 일의 세계(the world of secular affairs)에 침투하지 않는 한 하나님에 관한 언급을 기쁘게 허용한다. 세속주의의 근본적 특색은 하나님에 관한 언급을 세속적인 일의 공적인 세계로부터 격리된 개인적이며 사적인 경험에 국한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음모이론을 옹호하는 마알스와 기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신앙을 전적으로 사적이며 개인적인 신앙에다 환원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음을 부인하는 세속주의자의 세계관에 적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탄의 활동을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이러한 실패의 필연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사탄이 인간생활을 통해서 활동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도 역시 활동적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이다"(롬 5:20).
뉴에이지의 사탄음모이론이 갖고 있는 최대의 취약점은 아마도 그것이 뉴에이지가 크리스찬들에 주는 도전이 무엇이냐는 것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뉴에이지를 하나의 위협으로서만 취급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오늘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주는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뉴에이지는 세속적 세대(t-he Secular Age)가 창출해 낸 이른바 인간의 삶의 억압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다. 세속적인 세대(the Secular Age)는 18세기 말엽에, 당시에는 인류의 자유와 희망, 그리고 성취의 '새세대(New Age)'로서 등장하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지적인 일에 있어서 인간의 사고(사상)를 제도종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과, 인간에게 환경에 대한 전례없는 통제력을 부여해 주는 자율적 능력으로서의 과학의 등장이었다. 정치적, 사회적인 제 문제에서 이 세속적 세대의 특징은 또한 세습적인 특권과 고정된 사회관계에 기초하여 안정성을 갖고 있는 구식의 사회질서를 폐기하고, 일반대중에게 힘을 부여하는 민주적인 제도의 출현이었다.
이때로부터 근 2백년동안 세속세대는 서구세계에 지배적인 힘으로서 군림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전 지구촌에 계속적인 영향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그 영향을 감지하지 못하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세속적세대를 지지하는 신념이 갖고 있는 몇가지의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그것은 소위 세속적인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자율성,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 모든 인간존재의 동등한 가치, 인간의 개별성, 그리고 의미부여자로서의 인간이다.
그런데 이 다섯가지 신념 모두에서 세속세대는 사실상 실패하였다. 세속세대는 이러한 약속을 실행함에 있어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의 억압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인간자율성의 행사는 만연되어 있는 무기력으로 인도하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너무 커서 도전할 수 없는 힘들 앞에서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정치, 사회질서, 환경처리문제, 개인생활 등에서 오늘날 세속주의 사회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오히려 환경으로부터의 소외로 인도하였다. 인간의 가치증진 대신에 오히려 인간의 가치절하가 초래되었다. 자존감의 문제는 오늘날 세속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한 중요한 문제이다. 특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규모의 도시생활에서는 더 그러하다.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나는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은 인간들이 분명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는 질문들이며 흔히 대답하기를 두려워하여 단순히 회피하고 있는 질문들이다. 뿐만아니라 자아를 갖고 있는 개인은 고독하고, 격리된 인간이 되어 버렸다. 특별히 대규모의 도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립되고 격리된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과 접촉이 있는 곳에서조차도 삶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나눔이 없는 피상적인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일상사의 철저한 세속화가 의미의 문제들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영적 무감각을 배양하고 있다. 일상사의 철저한 세속화는 인간의 삶을 단순히 동물적 존재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민감성을 갖고 태어났으며, 따라서 이것을 인간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오관을 제거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이러한 억압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 대해 효과적인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세속주의의 영적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잘못된 이교적 영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속세대의 근본적인 실패와 억압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세속세대의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근본적 원인에 도전하지 못하고 나타나는 증상만을 다루는데 만족한 채 머물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세속적 세대의 실패와 억압에 대한 효과적인 대답을 세계에 보여주는 방법을 갖고 있다.
Ⅷ. 마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여 왔다. 즉, "뉴에이지 운동은 적 그리스도(Anti - Christ)의 도래를 위한 준비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와같은 문제에 대답함에 있어서, 많은 주의를 해야하고 또한 많은 상충하는 논리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간에 사탄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의 도전(challenge)이지 단순히 부정적인 면에서의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뉴에이지의 강점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가를 잘 인식하고있으며, 동시에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종의 희망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스팽글러에 의하면, 뉴에이지 운동은 "문화와 자아, 삶, 그리고 영성의 새로운 비젼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변화시키는 영적 힘을 제공해 주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영성의 재발견을 통해서 세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제공해 주는 것처럼 공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뉴에이지 운동은 세속세대가 실패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즉, 뉴에이지 운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에게 접근가능한 영적 힘과 접촉케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을 소생케 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존재의 영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서 자기가치(self worth)의 소생을 제공해 주고 있다. 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더 이상 세속적 가치에 의해 전적으로 가치지워지지는 아니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또한 인간과 자연의 힘들간에 있는 영적 컴뮤니티의 재발견을 통해서 환경과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 환경을 통제하는 새로운 환경통제 형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선전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현대 세속주의의 개인주의 안에서 안목을 상실한 인간생활의 공동체적 차원을 재발견함으로써 소속감의 회복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뉴에이지 운동은 감각세계에 편만해 있는 영적실체의 인식을 통하여 현세적인 영성의 소생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뉴에이지 사상의 또 다른 매력은 그것이 세속적 세대가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폐기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은 이 모든 것들을 인간 삶의 새롭고도 풍부한 이해의 테두리안에서 용해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영을 통해서 뉴에이지의 희망이 세속적세대가 했던 만큼이나 기만적인 것임을 안다. 우리의 세계는 영성의 재발견에 의한 풍요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의 이교적 영성을 통해서는 결코 성취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 주는 도전이 있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우리 세기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예리하게 간파하였다. 세계는 지금 세속주의세대가 가져온 영적 공백을 메꿀 수 있는 영성의 소생을 찾으며 부르짖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내세지향적인 도피주의적 영성이 아니라 일상사의 모든 조직을 관통해 들어가는 현세적인 영성을 갈구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제 도전을 만날 수 있는 힘과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영성을 갈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자기 가치감을 주고, 이 땅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정이지 환경적 전투장이 아니라는 의식을 심어주며, 우리의 인간경험을 진정한 공동체의 경험으로 메꾸어 줄 수 있는 영성을 갈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이교적인 영성은 결코 대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이러한 도전에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적이며 개인적인 구원이라는 희석된 복음으로는 이 해답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간문제의 전 범위에 걸쳐서 복음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에만 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며 주님께서 이러한 파괴적이며 침투적인 뉴에이지의 위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줄 분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과 관련되어 있는 많은 사상과 실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강한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홍을 말하는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신 18:9∼12).
"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보라 그들은 초개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너의 근로하던 것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이 각기 소향대로 유리하고 너를 구원할 자 없으리라"(사47:13∼15).
동시에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의 이교주의(paganism)에 대해서 경고만 하는데 그치고,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제문제의 뿌리에 놓여 있는 원인에 대한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아가 신앙의 인내로서 다음 세기를 향한 대안적인 방법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적인 실패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인간의 생각과 삶을 그 근원에서부터 변혁시키는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그리스도안에서 날마다 확신하면서,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문제와 위기를 개혁적으로 치유하고 극복해가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해 가는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삶의 양태를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은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이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 범위에 있어서 우주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
1. 미국에서 이 뉴에이지운동의 영향이 얼마나 크게 미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Karen Hoyt(executive director of the Spiritual Counterfeits project)는 미국인들의 종교심의 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현재 미국인의 약 23%가 윤회(reincarnation)를 믿고 있으며, 23%는 점성술(astrology)를 믿고, 또 25%는 비인격적 에너지(nonpersonal energy)나 생명력(life force)을 믿고 있다고 한다(Karen Hoyt, The New Age Rage, Old Tappan, N.J. :Fleming H. Revolt, 1987, p. 11).
2. Ruth A. Tucker, Another Gospel: Alternative Religions and the New Age Movement, grand Rapids, M- ichigan: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9, p.319.
3. 바벨론 종교에서는 고대 바벨론의 절대 군주였던 니므롯(Nimrod)과 그의 아내인 세미라미스(Semiramis)를 신인(神人)으로 숭배하였는데, 이들의 사후 바벨론에서는 이쉬타(Ishtar)와 아스타르테(Astarte)로, 이스라엘과 가나안에서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hataroth)으로, 에베소와 소아시아에서는 다이아나(Diana)와 아데미(Artemis)로, 희랍에서는 가이아(Gaia)로 숭배하였다(참조, 신 상언,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서울: 낮은울타리, 1992,pp. 70∼71).
4. F. Vander Zwaag, "The New Age Movement? The New Age Consciousness!" paper read at the NRCS Teacher's Conference, August, 1989.
5. Eilliot Miller, A Crash Course on the New Age Movement : Describing and Evaluating a Growing Social Force, Gradn Rapids, Michigan : Baker Book House, 1989,p. 14.
6. John Cooper, "The New Age :a False but Attractive Religion", The Banner, October 23, 1989, p. 8.
7. Constance E. Cumbey, The Hidden Dangers of the Rainbow, Shreveport, Louisiana: Huntington House,1983.
8. Tucker. op. cit., p. 322.
9. 이 외에도 Science of the Mind 또는 Religious Science, the Urantia Brotherhood. the Holy Order oh M-ANS, the Church Universal and Triumphant. Transcendental Meditation, 그리고 the Inner Peace Movement 등이 있다. Cumbey, op. cit.(cf: philip H. Lochhaas, How to Respond to… Louis: Publishing House,1989, p.12).
10. Tucker, op. cit., pp. 319-320.
11. Vander Zwaag, op. cit.
12. Cooper, op. cit.,p.8. cf Lochhaas, op. cit., p. 5.
13. J. Hopkins, "Expert on Nontraditional Religions Try to Down the New Age Movement", Christina To-day, May 1985, pp.68∼69. of Lochhaas,Ibid., p. 7.
14. Lochhaas, Ibid. p. 7.
15. Marilyn Ferguson은 인간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심리기술(psychotechologies)'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즉 induced sensory isolation 또는 sensory overload, biofeedback, autogenic training, chanting, psychodrama, hypnosis와 self-hypnosis, "meditation of every description",feverish activity, frenetic dancing, shamanistic 또는 magicalrites, 그 외에 Silva Mind Control이나 Lifespring등과 같은 세미나들, d-ream journals, primal therapy, "rebrithing", 그리고 Theosophy와 같은 syncretistic religions, body disciplines, Religious Science나 Science of the Mind와 같은 Self-healing 등등과 같은 것들이다. 또 어떤 뉴에이지 주창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가하기도 한다. 즉 guided imagery 와 visualization, 'boot camp'consfrontational therapies, deep massage, diet, drugs, acupuncture, sleep deprivation, endurance tests, firewalking, pyramidology, use of crystals, astrology, 'channeling' of spirits등이다(cf. Lochhaas, Ibid., p. 8).
16. Cooper, op. cit., p.8.
17. S. Fowler, "The New Age: Threat or Challenge?" B.J. van der Walt, Die "New Age"-Beweging, potc-hefstroom: IRS, 1990. pp. 34∼35.
18. Douglas Groothuis, Confronting the New Age,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58. p.20.
19. Lochhaas, op. cit., p.7.
20. James Sire, The Universe Next Door,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6.
21. Groothuis, op. cit.
22. Lochhaas, op. cit., p. 10.
23. Robert Burrows. "Americans Get Religion in the New Age", Christianity, Vol. 30, No. 8, May 16, pp. 17-21.
24. Irving Hexham & Karia poewe-Hexham, "The Soul of the New Age", Christianity Today, Vol,32,No. 12, Sept.2, 1988, pp. 17-21.
25. "Minister Decries Occult Toys, Cartoons", Sioux Falls Argus Seader, Tuesday, June 30,1987.
26. Vander Zwaag, op, cit.
27. R. Van Zweden, "Dangers of the New Age Movement", paper read at the NRC Youth Conference, Au-gust 25, 1987.
28. Tucker, op. cit., pp. 333-334.
29. 뉴에이지 음악은 1964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그것은 Tony Scott가 "Music for Zen Meditation"을 녹음하고서 부터이다. 그후 몇년 동안 이 음악은 캘리포니아지방에서 아주 유명해졌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부터이다. 현재는 Windam Hill이 뉴에이지 음악을 가장 크게 보급하고 있는데, 1987년 한해에 무려 300만 달러 이상의 매상을 올릴 정도이다.
30. Sire, op. cit.
31. Tucker, op. cit., p.349.
32. Rober Burrows, "Corporate Management Cautioned on New Age", Eternity, February 1988, p.33.
33. Annette Miller, "Corporate Mind Control", Newsweek, May 4, 1987, pp. 38∼39.
34. Joe Queenan, "Crystal Clear", Forbes, August 7,1989, p. 52.
35. D. Spangler, The Rebirth of the Sacred, London: Gateway. 1901, pp. 78∼84.
36. Cooper, op. cit., p. 9.
37. Ibid, p.10.
18. Ibid, p.10.
39. Karaen Howe,"New Age Channels Spiritual Darkness", PRRM Renewal News, Jan.-Feb. 1990, p. 5.
40. Cooper, Ibid, p. 10.
41. Jean Waterink. Basic Concept in Christianity pedagogy, 김성린, 김성수 공역,(기독교교육원론, 서울 :소망사, 1982. p.47).
42. J.I. Packer, Knowing God,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1973, p. 19.
43. Cooper, Ibid, p. 10.
44. Paul Kurtz, Humanist Manifestos Ⅰand Ⅱ, Buffalo, New York: Prometheus Books, 1973. pp. 7∼10.pp. 13∼24.
45. Fowler, Ibid., pp.40∼44.
46. cf Texe Marrs, Mystery Mark of the New Age-Datan's Desing For World Domination, Westchester. I-llinois: Crossway Books, 1988. pp. 16∼18.
47. Ibid., p. 122.
48. Fowler, Ibid., pp.45∼47.
김성수 / 고신대 교수 | 1992. 9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