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 교설과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개혁)운동
지금까지 늦은 비, 빈야드(토론토 블레싱), 신사도개혁(NAR)과 신비주의 간의 연관과 이들의 미혹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신사도개혁 속에 들어 있는 늦은 비의 사상을 다시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피터 와그너가 주도하는 신사도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 NAR)운동은 초대교회에서의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을 현대교회에서 다시 세워서 이들을 통해서 교회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늦은 비의 오중사역(Five-fold Ministry)회복운동의 일환으로서, NAR의 신사도들은 종말시대의 교회의 완성을 이끌 사도와 선지자를 스스로 자처하는 그룹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말입니다:
이 글은 늦은 비 운동가이자 처음부터 피터 와그너와 함께 신사도개혁운동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NAR의 공식 사도, 선지자 및 감독으로 있는 빌 해몬(Bill Hamon)의 주장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늦은 비 사상이 신사도개혁(NAR) 속으로 들어 오다

<빌 해몬> <피터 와그너>
빌 해몬은 1934년에 태어났으며, "사도, 선지자, 하나님의 다음 움직임"이라는 그의 책에 의하면 그는 십대에 이 사역에 참여했다: "18세의 나이로, 나는 현대에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다는 회복적 가르침 속에서 태어났다. 19세에 나는 목사로 위임받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회복운동 속에 있었고, 워녹이 "장막절(Feast of Tabernacles, 늦은 비의 새 질서 사상을 가장 잘 보여준 책)" 책을 출간한 직후 사역을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그의 주장은, 앞으로 보겠지만, 워녹의 주장과 거의 똑같다. 그도 역시 종말교회가 사도행전의 교회보다 더 영광스러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학개 2장 9절을 풍유적으로 해석했다. 해몬은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개혁(운동)에 태동기 때부터 참여해왔다:
늦은 비 이설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소개되다
늦은 비 운동과 신사도 개혁운동과의 차이는 주로 용어와 관련된 것이지 교리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1980년대에, "새로운 품종의 사람"이라는 예언적 운동가들에 의해 개최된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닌 교설이 있다.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다. 교회사를 통한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거대한 실패였으며, 하나님은 일단의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내려오셔서 그들을 "잉태"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품종"의 사람은 전대미문의 성령과 권능으로 들리운 성도들이다. 나는 이런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과의 논쟁을 기억한다.
얼 폴크(Earl Paulk)는 1980년대 이런 교설에 참여한 기억해둘 만한 리더이다. 비록 그는 지금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속된 성추문들로 인해 망신당했지만, 폴크는 이 운동의 엘리트적 사고를 확실히 보여준다:
빌 해몬은 그의 교설에 이 "새로운 품종"을 포함시킨다: "여호수아 세대 사도들의 새로운 품종은 기적 속에서 움직이며 틀림없이 사도들의 이적을 나타낼 것이다." "여호수아 세대"는 이 운동의 인기있는 또 다른 풍유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땅으로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은 교회가 땅을 점령하듯 모든 대적들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풍유된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새로운 품종"이 뜻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의 모든 크리스천들과 같은 사람들의 계급이 아님을 뜻한다. 해몬은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자리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사도들은 지혜의 영에 의해 동기부여될 것이라는 정도로 족할 것이다." 이사야서 11장 2절의 지혜의 영은 그리스도만의 특수성이다. 신사도(NAR)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속으로 오신다고 주장한다. 해몬은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종말 사도들의 "새로운 품종" 중의 한 명이라고 주장한다.
전에, 윌리엄 브래넘은 그가 오기로 한 엘리야(마태복음 17:11)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브래넘은 죽고 모든 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해몬은 그들이 "엘리야 회군(會郡, Elijah Company)"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 이 주장을 수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엘리야가 올 때 이룰 일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한 선지자가 아니라 선지자들의 회군(會郡)이 길을 예비하고 사람들을 준비시킬 뿐 아니라 그들이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 "회복"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수 있도록 교회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메시아적 예언을 완수하기 전에 이 땅을 떠날 수 없었으며, 교회가 회복의 말씀들을 모두 이루기까지 이 땅에 다시 올 수 없다."
환난전 휴거를 배척하며, 해몬과 같은 교사들은 영화된 종말교회가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당할 것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환난의 바벨론 시스템 모두를 그들이 무찌른다고 믿는다! 여기 그의 주장이 있다:
"킹덤나우" 이설이 다시 소개되다
해몬이 예언한 또 하나의 "운동"이 "왕국수립운동"이다. 여기 그가 말한 더욱 과대한 주장이 있다:
(원문링크: http://www.cicministry.org/commentary/issue103.htm)
이번에는 신사도개혁 속에 들어 있는 늦은 비의 사상을 다시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피터 와그너가 주도하는 신사도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 NAR)운동은 초대교회에서의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을 현대교회에서 다시 세워서 이들을 통해서 교회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늦은 비의 오중사역(Five-fold Ministry)회복운동의 일환으로서, NAR의 신사도들은 종말시대의 교회의 완성을 이끌 사도와 선지자를 스스로 자처하는 그룹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말입니다:
신사도개혁은 전세계적으로 기독교의 모습을 바꾸고 계신 성령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진정한 새 날이 왔습니다! 교회는 바뀌고 있습니다. 새 이름! 새 방법! 경배의 새 표현! 주님은 새천년을 위한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계십니다. 이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위에 세워집니다. 사도들은 이 땅 위의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고 설립합니다.아래 글은 16번 문서에 인용한 "마이크 비클과 IHOP - 되살아난 늦은 비<<"를 쓴 밥 드웨이 목사의 글을 발췌한 것으로서, 참고로 그는 1970년대에 늦은 비 운동의 계열인 목양운동(Shepherding Movement)에 참여한 적이 있는 분입니다.
이 글은 늦은 비 운동가이자 처음부터 피터 와그너와 함께 신사도개혁운동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NAR의 공식 사도, 선지자 및 감독으로 있는 빌 해몬(Bill Hamon)의 주장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늦은 비 사상이 신사도개혁(NAR) 속으로 들어 오다
<빌 해몬> <피터 와그너>
빌 해몬은 1934년에 태어났으며, "사도, 선지자, 하나님의 다음 움직임"이라는 그의 책에 의하면 그는 십대에 이 사역에 참여했다: "18세의 나이로, 나는 현대에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다는 회복적 가르침 속에서 태어났다. 19세에 나는 목사로 위임받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회복운동 속에 있었고, 워녹이 "장막절(Feast of Tabernacles, 늦은 비의 새 질서 사상을 가장 잘 보여준 책)" 책을 출간한 직후 사역을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그의 주장은, 앞으로 보겠지만, 워녹의 주장과 거의 똑같다. 그도 역시 종말교회가 사도행전의 교회보다 더 영광스러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학개 2장 9절을 풍유적으로 해석했다. 해몬은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개혁(운동)에 태동기 때부터 참여해왔다:
1996년 5월, 풀러신학교의 피터 와그너에 의해 개최된 교파이후기(敎派以後期, 포스트-교파) 교회에 대한 심포지엄은 교회사에 관한 하나님의 연대기 가운데의 역사적인 행사이었다. 이 행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그 궁극적인 숙명으로 가져가시려는 하나님의 점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령에 의해 예언적으로 짜여졌다... 지금도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으며, 21세기 교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사도적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페널리스트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마지막 세대의 교회는 처음 세대의 사도운동만큼이나 위대한 사도운동을 가질 것이다.와그너의 승인 하에 해몬은 늦은 비의 교설을 NAR(신사도개혁) 속으로 가져 왔다. 와그너은 사도와 선지자에 관한 해몬의 책을 높이 추천하고 이 책의 서문을 적었다. 하지만, 해몬은 책에서 불신임 받은 늦은 비 운동의 모든 주장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예를 들어, NOLR(늦은 비의 새 질서)의 극단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는 "나타난 아들들"이었는데, 해몬은 "아들들의 나타남"으로 번역되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종말세대의 교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땅과 모든 피조물은 종말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완전히 회복된 교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로마서 8:19) 교회가 완전히 회복되면, 그제야 성도들이 그들의 최후의 구속, 즉 죽을 몸의 불멸함을 받게될 것이다.교회가 그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 일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해몬은 주장한다. 파루시아(parousia,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불멸의 몸을 입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다른 증거가 여기 있다: "성도들의 죽어 없어질 몸이 불멸의 몸으로 구속받도록 일으킬 부활-이동(resurrection-translation)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위해/통해 이루실 위대한 목적을 완수하도록 하실 것이다."
늦은 비 이설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소개되다
늦은 비 운동과 신사도 개혁운동과의 차이는 주로 용어와 관련된 것이지 교리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1980년대에, "새로운 품종의 사람"이라는 예언적 운동가들에 의해 개최된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닌 교설이 있다.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다. 교회사를 통한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거대한 실패였으며, 하나님은 일단의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내려오셔서 그들을 "잉태"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품종"의 사람은 전대미문의 성령과 권능으로 들리운 성도들이다. 나는 이런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과의 논쟁을 기억한다.
얼 폴크(Earl Paulk)는 1980년대 이런 교설에 참여한 기억해둘 만한 리더이다. 비록 그는 지금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속된 성추문들로 인해 망신당했지만, 폴크는 이 운동의 엘리트적 사고를 확실히 보여준다:
"첫열매들"은 그(예수)를 닮은 많은 사람들이 뒷따를 것을 뜻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따라 산 사람]-의 첫 열매였다. 그분은 이제 말씀하신다. "나는 성령의 씨앗을 교회 안에 놓음으로써 삶을 주입할 것이다. 나의 백성들은 이 지구에서 '성육신된 말씀'이 됨으로써 삶을 탄생시킬 것이다." 나는 이 정의가 일부 신학자들을 근심하게 할 것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진행적 표현"이다.그래서 잉태된 교회는 그리스도 같이 "성육신"할 것이다. 이 생각은 1679년 제인 리드(Jane Leade)가 정확히 가르쳤던 것이며, 후에 늦은 비 교사들이 연결한 것이다. 폴크는 이 사고를 되풀이한다: "우리 안에 성령을 두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움직임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육신이 되도록 한다."
빌 해몬은 그의 교설에 이 "새로운 품종"을 포함시킨다: "여호수아 세대 사도들의 새로운 품종은 기적 속에서 움직이며 틀림없이 사도들의 이적을 나타낼 것이다." "여호수아 세대"는 이 운동의 인기있는 또 다른 풍유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땅으로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은 교회가 땅을 점령하듯 모든 대적들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풍유된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새로운 품종"이 뜻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의 모든 크리스천들과 같은 사람들의 계급이 아님을 뜻한다. 해몬은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자리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사도들은 지혜의 영에 의해 동기부여될 것이라는 정도로 족할 것이다." 이사야서 11장 2절의 지혜의 영은 그리스도만의 특수성이다. 신사도(NAR)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속으로 오신다고 주장한다. 해몬은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종말 사도들의 "새로운 품종" 중의 한 명이라고 주장한다.
전에, 윌리엄 브래넘은 그가 오기로 한 엘리야(마태복음 17:11)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브래넘은 죽고 모든 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해몬은 그들이 "엘리야 회군(會郡, Elijah Company)"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 이 주장을 수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엘리야가 올 때 이룰 일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한 선지자가 아니라 선지자들의 회군(會郡)이 길을 예비하고 사람들을 준비시킬 뿐 아니라 그들이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 "회복"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수 있도록 교회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메시아적 예언을 완수하기 전에 이 땅을 떠날 수 없었으며, 교회가 회복의 말씀들을 모두 이루기까지 이 땅에 다시 올 수 없다."
환난전 휴거를 배척하며, 해몬과 같은 교사들은 영화된 종말교회가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당할 것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환난의 바벨론 시스템 모두를 그들이 무찌른다고 믿는다! 여기 그의 주장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위대한 바벨론의 강력한 몰락을 가져올 협력사역을 가진다. 그들의 권위는 오늘날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뛰어 넘는다...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들의 적을 끝까지 압도할 것이다.성경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하신다고 했다; 교회가 한다고 하자 않는다. (계시록 18장을 보라)
요엘의 군대 이설이 다시 소개되다
NOLR(늦은 비의 새 질서)의 불신임된 교설 중의 하나가 "요엘의 군대"이다. 이는 요엘서 2장 1-11절이 종말교회가 "요엘의 군대"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한다고 예언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빌 해몬이 아직도 전파하고 있는 늦은 비의 또 다른 그릇된 교설이다:성도들은 국제적 훈련소와 지역교회 병창(兵倉)의 군대기지에서 지금 훈련 받고 있다. 목적은, 다가오는 성도운동 가운데에서 예언적 (복음전도)성도들의 하나님 군대를 이끌 장교들을 만들기 위해 가르치고 준비하고 필드트레이닝 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훈련시킨 오중사도들과 예언적 장군들의 영권과 리더십 아래에서 사역할 것이다. 이런 성도들은 선지자 요엘(요엘서 2:1-11)이 예언적으로 기술한 하나님의 군대와 같이 기능할 것이다.요엘서 2장 1-11절에는 이 군대가 엘리트들의 종말 크리스천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언한 것은 전혀 없다. 해몬의 풍유적 방식은 모든 것을 성경 속에서 읽어 내도록 한다. 그는 나아가 교회를 종말군대라고 논한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하늘에 이미 선포된 심판포고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기록된 심판을 집행하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종말군대가 준비되고 있다. 하나님의 성도군대를 통해 땅에서 다스리고 집행될 시간은 책정되었다. 예정되고 필요한 모든 것은, 주님의 운동의 하나님의 회복군대 동안에 가동될 것이다.이 모든 것들은, 계시록에 묘사된 대환난 중에 퍼부어질 심판은 하나님이 이 땅에 분노를 직접 쏟으실 것이며, 교회의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해몬이 그리는 "운동"은 성경에서는 볼 수 없다; 그는 우리가 그의 말을 믿을 만한 아무 증거 없이 그 자신의 권위로 예언하는 것이다.
"킹덤나우" 이설이 다시 소개되다
해몬이 예언한 또 하나의 "운동"이 "왕국수립운동"이다. 여기 그가 말한 더욱 과대한 주장이 있다:
이 운동은 온 땅에서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민족(언어)들이 예수를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런 고백과 인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 집단에게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나타나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자연재해를 기적적으로 조절하고, 기적의 예언들과 끝없는 영적이 나타남, 이적과 기사들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신 중의 신이며 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신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NOLR(늦은 비의 새 질서)와 NAR(신사도개혁) 교사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에 의해서 역사시대 중에, 파루시아 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해몬은 적는다. "그분의 말 그대로의 왕국의 온전한 통치가 모든 현실 속에서 모든 나라와 이 땅의 모든 백성 위에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시다..." 그들은, 하늘이 위임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권위와 사역을 통해서 온 땅 위에 세워질 하나님의 왕국의 때가 지금이라고 기도하며 선포할 것이다.
(원문링크: http://www.cicministry.org/commentary/issue10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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