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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OP의 사도적 리더십

IHOP의 사도적 리더십
 

정이철 목사

 
 

   
   ▲ 정이철 목사

  총신대학 졸업
  총신대학 신대원 졸업
  ACTS졸업 Th.M 
  플러신학교 수학 Th.M 
  Liberty Seminary 졸업 STM
  Liberty Seminary D.Min 연구중
  현, 미시간캔톤한인교회 담임
  진리수호 목회자 연대 대변인
  세이총 연구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신사도운동의 사도는 인격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사도에 대해서 말하는 곳은 신사도 그룹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졌다. 이제 그런 곳은 곧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좀 수위가 낮아진 부드러운 모습으로 신사도 사상을 확산하는 그룹이 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신사도 운동은 인격과 생명을 가진 사도를 말하지 않고, 그 대신에 “사도적”이라는 형용사를 내세운다. 그래서 여간 혼란스럽지가 않다. “사도적 목회”, “사도적 리더십”, “사도적 교회”, “사도권 회복” ... 이런 용어들이 요즘 급속히 퍼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단어를 자주 쓰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쩌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무엇이 그릇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국제기도의 집(IHOP)도 그렇다. 이전에는 그곳에서도 “사도”라는 명사형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곳의 선지자들의 입이 예언을 받으러 간 어떤 사람에게 사도의 소명이 임했다고 했었다. 분명히 “사도”였지 “사도적”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이미 80년대 초에 밥 존스와 마이크 비클 사이에 계시와 환상을 통하여 이미  학습되고 준비되어진 일이다. 그냥 갑자기 등장한 일이 아니다. 다음은 당시에 마이크 비클이 사도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어니 그루엔 문서의 내용이다. 다음은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와 그리고 그 당시 캔자스시티 선지자들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폭로한 미국인 어니 그루엔 목사의 문서에 담긴 내용의 일부이다.1)

 1) http://blog.naver.com/yoochinw/130040444420 에서 이 내용을 인용하였다.



“4. "최고위 사도"에 관한 마이크 비클의 교설은 성경에서 매우 벗어난다.



마이크 비클은 그들의 "운동"으로부터 수 백 명의 사도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35명은 최고위급(사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육체 가운데 (신적 강림을 통해 가능한) 예수를 보아야만 하며,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을 겪어야만 한다고 그는 또한 주장한다.



<마이크 비클>

이 세대에서는, 사도 사역의 최고위급이 될 사람들로는, 이 운동을 위해 나타날 사람들 중의 35명이 있을 것이다. 이 운동에서는 수 백 명의 사도들이 생긴다고 믿지만, 사도바울과 같은 수준에 이르는 사람은 35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이 가는 모든 곳에서의 최고위급에서의 모든 통치 속에, 주께서 지고의 방법으로 갈라놓은 35명이 있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통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분은 35명의 특정 사도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말해주는 언약궤를 나른다고 말씀하셨다...(F88, p. 78).



우선 사도는 예수를 육체 가운데 보아야만 했다. 사도는 그저 부름 받은 사람(즉 일종의,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도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육체 가운데 보았다. 그 예수는 그의 손을 사도의 머리에 얹고 이적과 기사의 권능을 분여(임파테이션)한다. 고린도후서 12:12에서 사도는 사도의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의 표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을 사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로, 신약 사도들은,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들의 몸속에 겪었다. 넷째로, 도시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모든 불편을 해쳐나가야 했다. 내 생각으로는, 사도는 성숙한 방법으로 교회 속에 풀어진 것이 아니다.(P.His 3, p. 2).



이것은 비록 초대장에 불과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이것이 사도 사역임을 알았다. 이것은 위임은 아니었다. 주는 나를 사도로 부르고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고려중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네가 충실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도적 소명을 채울 기회를 가질 것이다. 만약 네가 충분히 충실하다면."(F88, p. 82).



만약 사람들이 중보(도고) 속에 살며 그들(사도들)의 도래를 (기도로)요청한다면, 내가 사도들(챔피언들)을 낳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F88, p. 84).”



위 내용을 보면 마이크 비클이 이미 살아있는 인격을 가진 사도에 대해서 당시에 경험한 계시와 환상을 통하여 이미 학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래에 수 백 명의 사도들이 탄생할 것이고, 그 중의 35명은 더욱 더 수준이 뛰어난 정상급 사도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사도의 권능을 부여받아 사도가 된 그들은 교회에서 각종의 이적을 일으키면서 사도로 드러날 것이고, 또한 고난을 당하면서 각 도시에서 교회를 세우는 사도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내용은 밥 존스와 마이크 비클 자신에게 임한 환상과 계시였다.



그러므로 이후 한 동안 IHOP에서 훈련되는 사람들 중에 사도직의 소명이 그곳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임하였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 변형된 것이다. IHOP에서는 명사로서의 “사도”가 아니고 형용사로서의 “사도적”인 신앙훈련을 통하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양육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도적이라는 말이 더욱 선호된다.>



신사도운동 그룹 안에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있는 것 같다. 매파는 사도라는 명사를 고수한다. 피터 와그너, 릭 조이너, 밥 존스, 폴 케인 ... 이런 사람들은 항상 매파 일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파는 사도적이라는 말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도 여기에 해당되고, 그 외의 사도적이라는 말을 염려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터 와그너는 사도의 주된 기능과 사명은 영적전쟁을 지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도들은 탁월한 용사이고, 또한 핍박에 전혀 굴하지 않고 끝내 사명을 완수하면 영적인 장군들이다. 사도들은 앞장서 원수(?)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교회들을 연합시키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받은 말씀으로 교회들을 그 전투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전투에 능한 군대로 조련한다. 그 사도들의 교회와 집회를 통하여 일어나는 일의 결국은 다 그런 것이다. 감동받고 빠져드는 사람들을 전투적인 군사로 만들어 간다. 그들을 더욱 결집시켜서 그들의 운동을 확산하는 탁월한 군대가 되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러한 삶을 살면서 다른 건전한 교회들과 성도들로부터 당하는 반대와 비판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당하는 핍박과 비판이 어디로부터,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가? 이것이다. 그들이 당하는 핍박과 비판은 기존의 다른 성경적인 교회들로부터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 복음으로 인해 탄생된 교회를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들의 입장에서 멋대로 해석한다. 사탄의 영에 결박된 죽은 바리새 교회들의 새로운 하나님의 사역에 저항한다고 하며 자기들끼리 더욱 결속을 다지고 있다. 우리가 보면 너무나도 한심한 짓인데, 그들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의미 있는 성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영적전쟁, 핍박, 불굴의 의지 ... 이런 말들이 그들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것들이  사도와 선지자로서 자신의 진정한 identity로 여겨지고 있다.  



신사도운동 분위기를 풍기는 어떤 선교사의 강의를 들었다. 그도 역시 사도는 핍박을 받아도 굴하지 않는 진취적이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순간 당장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바로 가장 먼저 저 분이 바로 사도이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왜냐하면 그 분도 선교사로서 여기저기의 많은 건강한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다른 선교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로부터 발생하는 압박보다는 다른 선교그룹들과 교회의 목회자들로부터 당하는 압박을 그 분에게는 더 심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 분도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사도에 관한 설명을 하셨다. 이상하게도 신사도운동과 연관이 있는 분들은 영적전쟁, 핍박, 진취적인 기상과 불굴의 의지 ... 이런 것을 사도의 특징으로 가장 강조한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빗나간 사도관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도 아무리 무서운 핍박을 받아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 온 세계를 거침없이 누비면서 영적인 싸움을 싸웠다. 정말 그러하였다.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은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단순히 그 사실만 비교하면 요즘의 거짓 사도들과 그때의 진짜 사도들의 모습이 참 닮았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진짜 사도들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그런 고난과 위대한 불굴의 영적전투를 수행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요즘 사이비 사도들과 사도행전의 진짜 사도들은 판이하게 다르다.



<십자가와 부활이 사도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진짜 사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위해서 그랬다. 그들의 삶과 믿음과 복음선포의 중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인해 탄생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고, 마귀의 가라지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핍박받고, 인내하고, 귀신들과 싸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지중해를 몇 번씩 돌며 고생했고, 자주 매를 맞았고, 자주 투옥되었다.  



그렇다면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사도는 어떤 사람일까? 효과적인 영적전쟁 수행, 핍박을 이김,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직통의 예언과 계시가 동반됨 ... 이런 특징이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IHOP의 마이크 비클도 그렇게 설명했다.



다음은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마이크 비클이 한인 신문의 기자에게 직접 한 말이다.

“<기자> 아이합에서 이야기하는 '사도적 리더십'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마이크 비클>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2)

 2) http://atl.christianitydaily.com/view.htm?id=187903&code=cg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마이크 비클의 정의에서도 사도적이라는 말을 써야할 성경적인 핵심이 없다. 그가 사도적 리더십의 특징이라고 언급한 내용들은 가장 중요한 중심적인 개념이 아니고 중심에 따라오는 일종의 가지들이다. 사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함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새 인류인 교회를 세우고자는 지고의 목적을 수행하였던 사도들의 사역의 자세를 그는 사도적이라는 말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차로 비유하자면 앞에서 목적지를 향하여 끄는 기관차와 뒤에서 끌려가는 객차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이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사도운동가들의 사도적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와 이해는 그럴싸하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상실되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최악의 문제이다. 신사도운동에 물들었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도의 특징은 실제로 사이비 사도들의 사역의 현장에서 나타난다. 핍박을 당하고 있다. 매일 거짓 사도라고 조롱을 받는다.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다가 소속 교단에서 제명당하고 심지어 사탄의 자식으로 규정되는 출교의 처분도 받는다. 섬기는 교회에서 사도직 소명을 운운하다가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환상, 계시, 예언, 입신, 천사출몰, 온갖 해괴한 광경들, 그리고 급격한 부흥(?) 등의 놀라운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결코 인정 할 수 없다. 그들의 활동을 “사도”로서의, 또는 “사도적인 리더십”으로서의 사역이라고 여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처럼 예수의 피 묻은 십자가와 그의 부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전파하는 것은 다른 것들이다. 정체불명의 새로운 기름부음, 그것으로 인한 일련의 신비와 영적쾌감, 그리고 함께 즐기는 영적개그들이다. 그들이 전하면 강조하는 것은 사실 이런 웃기는 것들이다.



그것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죽으심과 부활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만일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 중 바울과 베드로 두 사람이 그들 앞에 단 10분만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이크를 잡고 이상한 일들을 일으키면서 요란하게 설교하는 그들의 눈에 번쩍하며 번개가 스칠 것 같다. 그리고 (사도들이 오른 손잡이들이라면) 왼쪽 뺨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도장처럼 남을 것 같다.    



그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에 영혼을 바치는 참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로부터 경계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싸움은 사도적인 교회들과 유사 사도적인 교회들의 싸움이다. 처음부터 유사 사도적 교회를 개척하여 성공하신 사람들은 당분간 자리를 보존하면서 계속 영적인 사기를 치면서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사도적인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유사 사도적 교회로 체질을 바꾸려고 하는 신사도운동에 물든 사람들은 결코 앞 깊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당하는 고생이야 말로 자신들의 사도됨의 진정한 증거이고, 바울과 베드로에게 있었던 예수의 흔적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말장난이 이어져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런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사도적 사역의 근본은 성경이다!>



“사도”나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가 가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항상 성경이다. 성경은 사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전파한 사도들의 복음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사도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복음으로 인하여 탄생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기록이다. 성경에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진짜 사도들의 정신과 믿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의 영원한 교과서인 것이다. 사도적이라는 말은 항상 성경적이라는 말의 동의어이어야 한다. 사도적 교회는 곧 성경적 교회이고, 사도적 사역은 곧 성경적 사역이고, 사도적 리더십은 곧 성경적 리더십을 이르는 말들이다.  



오늘 날 교회에서 사도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도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멋있어 보이고 더 신령해 질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권 회복”이라는 말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린다.



사도권 회복이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생존해 있는 어떤 사람을 염두하고서 사도권의 회복을 말하면 필연적으로 이단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 그 사람이 과거의 사도들과 같은 계시의 통로이거나,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계시의 정확무오성의 입증하기 위해 동반되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서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이 뜨이는 등의 성령의 사도적 권능이 나타난다는 쪽으로 전개되어지지 때문이다.



선지자적인 사역 또는 선지자의 은사라는 말도 우리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저 멋있어 보여서 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어떤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선지자적인 사역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에  선지자적인 사역이 어떻게 누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현대 교회에 선지자의 은사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만일 선지자적인 은사가 이 시대의 교회에 실제로 나타난다면, 성경과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현대 교회의 시스탬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합니까?”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돌려서 말해도 선지자적이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직통의 예언을 받는 사람으로 귀결되어지고, 그러면 이미 기록된 성경의 완정성과 부딪힌다.



사도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모든 중요한 것들과 선지자적이라고 표현될 모든 중요한 것들의 핵심은 성경이다. 그러므로 사도권 회복, 사도적 교회의 회복, 선지자적 영성 회복 ... 등의 구호는 결국 가장 성경에 충실한 믿음과 삶과 교회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성경계시에 비교될 수 있는 신통함이라도 있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경계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때 큰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맞는 예언도 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고 교회를 부끄럽게 하는 어이없는 예언을 하거나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사도적, 선지자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예언운동, 은사운동, 성령의 이적을 추구하였던 많은 유명한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하면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사도직의 회복은 영적으로 뛰어난 어떤 사람이나, 특별한 어떤 은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의 정신과 혼이 담긴 성경의 진리가 성령의 능력 속에서 권세 있게 되는 것이 곧 사도권의 회복이다. 왜 오직 성경인가? 그 옛날 사도들의 그리스도께 받아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들의 활동과 사상이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성령 안에서 바로 교육되고, 선포되면 그 사도들을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과 가르침이 그대로 현재에도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적 사역이고, 사도적 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성경을 힘써 연구하고, 힘을 다해 바르게 전파하는 모든 목사, 선교사, 평신도는 사도적인 사역자들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



오늘 날에도 예배를 마칠 때에 목사들은 성도들을 향하여 복을 선언한다. 이것도 대표적인 사도적인 사역이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고서, 그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였다. 만일 우리 목사들도 동일하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동일하게 바르게 선포하고서 그렇게 축도한다면, 그것은 사도적인 복의 선포이다. 사도들이 그 당시에 전하였던 복음을 아멘으로 받았던 성도들을 위해 선포하였던 복이 오늘 날 모든 참된 복음의 사역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그대로 임함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가 전하였던 복음을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도적 교회에 대한 세미나와 article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도적 교회의 특징을 평신도 훈련에 둔다. 평신도들을 훈련하여 사역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 사도적 교회의 모습이라고 한다.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지엽적인 것이다. 무엇을 위한 평신도 훈련인지가 더 중요하다. 반드시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승하고,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를 계승하기 위한 평신도 훈련이어야 한다. 하물며 신사도운동 요소가 다분한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들뜨게 하고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해 주면서 그런 말을 쓰다면 더욱 안 될 일이다.



어떤 이는 성령 중심의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라고 한다. “성령이 드라이브하는 교회”, “성령이 주도하는 목회”, “성령이 이끄는 선교” ... 성령이 사도적이라는 말의 중심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인간의 리더쉽과 어떠한 목회기법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이다. 다만 성령이 일하시는데 인간은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이야 말로 “사도적”이라는 말을 왜곡하는 가장 위험스러운 시도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묘하게도 교리와 신학이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을 함께 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 기반을 둔 교리와 신학으로 인하여 훼방을 받은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성령을 가장하여 침투해 오는 마귀의 거짓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를 둔 교리와 신학은 절대로 성령 하나님과 부딪히지 않는다. 그런데 불건전한 자들은 항상 성령만을 무한히 강조하고 성경과 교리와 신학을 껄끄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윔버였다. 그는 자신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성령의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아니고)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서 조롱했다. 그러면서 교리와 신학과 성경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무엇으로도 제한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뛰고, 히죽거리고, 뒹굴고, 온갖 짐승들의 모양들 ... 이런 성령의 역사(?)가 그들의 집회에서 많이 나타났다. 성령중심의 교회가 사도적 교회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이런 양상이 나타난다 싶으면 바로 그런 부류인 것이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사도권 회복”, “사도적 사역”, “사도적 목회”, “사도적 교회”라는 말은 반드시 가장 먼저 성경과 연관되어야 한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신과 원리가 생생히 살아있는 사역, 성경의 진리의 말씀이 온전하게 선포되어지는 설교 ... 이렇게 연결되어져야 한다. 그런 와중에서 더욱 그 사역을 돕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신다. 그러한 역사로 인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성경의 위치가 더욱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도적 사역의 모습이고 열매이다. 



그런데 신사도운동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은 사도들의 흔적이 베인 성경을 제치고 직통으로 메시지를 받는 것을 중시하는 그것부터가 사도적이지 못하다. 심지어는 방언이 흔히 터지고, 진동하고, 금이빨이 생기고, 길이가 다른 팔이나 다리를 교정하고, 그래서 교인이 급격히 늘고, 환상을 보는 사람이 생기고, 천사도 자주 출몰하고, 사람들이 드러누워 떨고 히죽거리고 ... 이런 것까지 사도적 사역의 모습이라고 한다.   



<마이크 비클은 사도적 사역은 어떤 것일까?>



IHOP에서는 사도적인 신앙을 확산하고, 사도적인 리더들을 양산한다고 천명하였다. 과연 IHOP에서 추구하는 사도적 사역이란 무엇일까? 2010년에 뉴욕의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그곳에서 사도의 소명을 받았다고 간증하여 큰 소동이 일어났을 때에 어떤 신문사가 마이크 비클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마이크 비클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합의 원장 마이크 비클과 다른 신사도운동가들의 사이의 동일함이 발견된다. 물론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은 부지런했고, 헌신적이었고, 핍박을 견디었고, 전도와 세계선교에 초점을 맞추었고, 산상수훈의 삶을 실천했다. 그래서 현대교회의 일꾼을 그렇게 닮아가게 만드는 것이 사도적 리더쉽 육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선명하게 있어야 할 핵심이 분명한지가 의문이다. 그것이 빠지면 “사도적”이건 그냥 “사도”건 ... 아무것도 안 된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다. 사도들은 그것만을 위해 핍박을 받았고, 부지런했고, 산상수훈적인 삶을 살며 세계를 고생하면서 떠돌았다.



중요한 것은 몇 가지 행동이나 삶의 양식이 아니다. 신앙과 삶의 DNA이다. 정말 사도적이라면 그들이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같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영적인 DNA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 목사의 사도적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전형적 매파 신사도 운동가들처럼 비둘기파 신사도 운동가 마이크 비클도 사도적이라는 말의 당연한 핵심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부지런함, 핍박을 극복함, 뜨거운 헌신, 산상수훈적인 삶, 전도와 선교에 초점이 모아진 ... 이런 내용을 강조한다. 그것이 사도적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에게 사도들의 정신과 신앙이 담긴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교육하고 선포함으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사도들이 현재 살아서 다시 목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되게 하는 것이 오늘 날의 사도적 사역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일까? 



만일 마이크 비클의 평소의 모습에서 성경에 관한 철저한 자세가 있었다면 걱정이 안 된다. 그의 설교에서 사도들의 신앙과 가르침이 바르게 선포되어 있었다면 너무나도 기본이 되는 내용이므로 당연시하고 그냥 넘어갔으려니 ...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관한 평소의 그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아이합이 정말 사도적 기관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이크 비클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가 바른 사람이고, 말씀위에 바로 선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이합도 건강한 사도적 훈련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렇지 못하다면 아이합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이크 비클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마이크 비클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마이크 비클이 많은 신사도 운동가들 중에서 가장 신사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표독하거나 공경적인 성향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군데에서 유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래서 그를 나는 비둘기파라고 한다. 신사도 운동에 헌신된 다른 어떤 지도자들은 매우 표독스럽고 사납다. 그래서 그들은 매파이다. 그들은 자신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사납게 응대한다. 직설적으로  저주하는 말를 내 뱉기도 한다. “죽은 바리새인들의 교회”, “바리새 영에 포로된 불쌍한 O!” ... 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한 쪽 뺨을 때리면 넉넉히 웃으면서 다른 쪽 뺨을 돌려대 주는 그런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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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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