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OP 과연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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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OP의 24/365 중보예배
“마이크 비클은 미국 미조리 주 캔자스 시티에 있는 국제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대표입니다. 국제기도의 집은 “다윗의 장막”의 영성을 가지고 24시간 “중보예배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1999년 9월 19일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기도실 안에서는 예배와 중보기도가 단 한 번도 멈춰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 글은 마이크 비클 목사가 저술한 한 책의 겉표지에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IHOP을 홍보하는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IHOP은 24시간 기도를 쉬지 않는 곳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 365일 동안 그렇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IHOP을 엄청나게 신령한 곳으로 생각한다. IHOP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는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는 곳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IHOP과 관련되면 당연하게 받아드려진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의 교회와 선교기관에 새로운 활력을 공급하는 기도와 찬양의 발전소가 되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영력을 공급하는 곳이 IHOP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뜨거운 현장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처에서 날고 달려서 캔자스시티로 가고 있다.
<많이 기도하고 찬양하면 무조건 신령한가?> 그동안 IHOP에서는 교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다른 곳에서 그랬다면 이미 결판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IHOP과 관련되면 이상하게 더 복잡해지고, 옳다! 그르다! 목소리만 커지면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이것도 IHOP의 24시간 365일 연속되는 기도와 찬양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곳을 함부로 훼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은근히 널리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전의 IHOP에 대한 글을 읽으신 한 Ihoper는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은 말을 나에게 남기셨다.
“정 목사님은 엄청난 비판과 오류의 죄에 거하고 계신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대중을 목사님의 의견으로 이끌고 계시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을 후에 깨닫게 되시면 너무 늦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억울하게 악한 영을 받은 자라고 몰리는 것에 대해 신원해 주실 것입니다. 역사는 꼭 진리를 증명합니다. 두고 보시라!”
기도하는 곳을 훼방하면 후에 크게 신세를 망칠 것이라는 말이다. 24시간 찬양과 기도를 쉬지 않는 IHOP에 대해 조금 이라고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IHOP이 쉬지 않고 중보기도에 힘쓴다는 사실과 계속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은 우리도 가서 보고 배워야 한다. 그러나 기도와 찬양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 기도와 찬양이 드려지는 상황, 분위기, 동기, 정신, 신학적 모티프 ... 이런 요소들을 잘 살펴야 한다. IHOP의 중보기도와 찬양에 대한 일체의 신학적 의문사항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IHOP의 24/365 기도예배는 단지 그들의 그릇된 종교로서 그치게 될 것이다.
<기도와 찬양에 관한 바른 정신이 중요하다!> 찬양은 음악이다. 음악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찬양이 잘못되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이 아니고 단지 시끄러운 노래일 뿐이다. 그런 노래는 교회에는 골치이고, 바른 목회자들에게는 두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큰 재미를 누리는 자는 오직 그 이름이 S로 시작되는 그것일 뿐이다.
“이는 무슨 소리? 어찌 찬양을 통하여 마귀가 재미를 누린다는 것인가? 이 양반이 자꾸 글을 쓰더니 이제는 별 소리를 다하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찬양인데!”라며 눈을 둥그렇게 뜨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조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뜨거운 기도이지만 실상 하나님과 관련이 없을 수 있다. 대단한 찬양이지만 실상 하나님이 싫어하는 느끼한 노래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없다면, 그 이상한 교회(?)들의 우리보다 훨씬 더 뜨거운 기도와 찬양은 어떻게 된 것일까? 특히 신사도 교회의 기도와 찬양에 관하여 우리보다 더욱 강하다는 점은 다 알려진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 집회의 기도와 찬양을 다 기쁘시게 받으시고 계실까?
그래서 기도와 찬양에 관한 바른 자세와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항상 염려스러운 성향을 보이는 신앙집단의 기도가 일반적인 우리들의 기도보다 언제나 특별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찬양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염려해야 할 부분인데, 반대로 이 점이 사람들을 끄는 큰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한마디 하려들면 곧 바로 이렇게 묻는다.
“기도를 얼마나 하십니까? 당신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릇되었다고 말하는 일은 이처럼 괴롭고 힘들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실상은 이렇다!> IHOP의 24시간 365일 기도와 찬양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IHOP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이러저러한 내용들이 외부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실들이 알려질 것이다.
다음은 신학을 공부하는 한 청년이 IHOP에서 상당기간을 체류하면서 경험했던 IHOP의 24/365 릴레이 기도예배에 대한 짧은 간증이다.
“먼저 IHOP이 자랑하는 24/7 시스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좋다고 난리인데 그럴 수 있죠.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와 민족, 정부와 가정, 교회를 위해서 24시간 계속 기도하는 운동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런데 ... 정말 순수한 운동일까요? 거기 있으면서 느끼는 건 염불 외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4시간 수 십 개 찬양팀이 돌아가면서 찬양을 하는데, 왜 이렇게 늘어지는 건지, 중얼대는 듯한 노래를 하더군요. 아! 딱 한 번 신나는 음악을 들려주던데 바로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송가였죠. 찬양팀은 의자에서 조용히 찬양을 드립니다. 옆에 포도주와 비스켓이 있는데, 그냥 세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즈바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가끔 가다가 한 사람씩 나가서 강대상 같은 데서 서서 중보기도라고 그냥 맘 내키는 대로 기도하고 내려옵니다. 거기서 나오는 찬양에 다른 분들은 뿅 가시던데, 저는 머릿골이 깨질 것 같더군요! 이것이 제 개인적인 간증입니다.”1)
위의 내용이 IHOP에 대한 객관적이지 못한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은 IHOP의 찬양을 보여주는 다음의 영상을 보며 실제로 비교해 보기를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W0-quAkReA
위에 언급된 내용처럼,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IHOP의 찬양의 박자는 매우 느리다. 흐느적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분위기와 조명도 예사롭지 않다. 찬양드리고 기도하는 분위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요란스러워 보인다.
특히 노래의 짧은 가사를 수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와 음악은 인간의 정신을 무아지경으로 유도하는 신비종교의 모습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즉, 신접하게 만드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런 조명과 흐느적거리는 노래가 성령을 체험하기에 좋은 것들일까? 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유명한 IHOP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타나는지 의문스럽고 불쾌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이 있는 곳이라며 IHOP에 대한 화려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 그 실상을 본 많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이렇게 우려를 전하고 있다. 과연 IHOP의 기도와 찬양은 일부의 특이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할까? 그들의 기도와 찬양의 자세는 과연 성경적이고 건강할까? 마이크 비클 목사는 언제, 어떤 계기로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 기도와 찬양 사역의 비젼을 품게 되었을까? 이런 점들이 매우 궁금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강한 기도예배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부분들이 반드시 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나는 미국의 은사주의 계열에서 발행되는 <CHARISMA>라고 하는 매체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Technically, the blueprints for IHOP were given years before its official launch on May 7, 1999. The idea for 24/7 prayer has been around since the days of King David, and God instructed Bickle to do “24-hour prayer in the spirit of the tabernacle of David” as early as 1983. “I had never conceived of such a thought,” Bickle says. “I didn’t have a clue what this meant.”2)
위의 내용으로 보면, 1983년에 마이크 비클은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라는 음성을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당시에는 그 음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1999년에 IHOP이 설립되면서 들었던 그때 비로소 그 음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일단 그가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안스럽고 이례적이다. 마음에 다가오는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선명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고 한다.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너무나도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단지 이것 하나를 가지고 IHOP의 24/365 중보기도예배가 불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2000년 교회사가 보여주는 끝이 좋지 않았던 염려스러운 일들의 양상과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시작은 밥 존스라는 선지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마이크 비클은 2009년에 발행된 밥 존스의 책 <너는 나의 친구라>를 위해 쓴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었다.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을 1983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밥 존스 목사님은 저에게 캔자스시티에서 24시간 예수님을 경배하는 청년 찬양 사역자들 및 음악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청년 사역 운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찬양 사역자도 음악가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하루에 24시간 동안 경배 찬양을 하는 그런 사역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밥 존스 목사님이 예언한 대로 매일 24시간 기도하는 국제 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이 세워졌고, 1500명의 전임 찬양 사역자들과 음악가들과 중보 기도자들이 이 사역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비클이 밥 존스를 처음 만났던 1983년에 장차 마이크 비클이 운영하게 될 IHOP(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름도 없었으나)에서 24/365 중보기도예배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마이크 비클은 그 의미를 몰랐는데, IHOP이 시작된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신비한 음성을 듣고, 비범한 선지자에게서 예언을 받고 ... 이런 일은 성경이 완성되고 성령이 성도에게 내주하시는 신약시대의 일반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된 일이 과연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안전하고 유익을 줄 것인가? 에 대해서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걱정이 앞선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바꾸겠다!”> 1982년에 마이크 비클에게는 또 다른 유사한 일이 있었다. 1982년은 그가 미시시피 세인트 루이스에서 목회하던 때이다. 마이크 비클의 책 <Growing in Prophetic>의 1장을 보면 그가 어떻게 선지자들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캔자스시티의 선지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로부터 예언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까지만 해도 그는 소위 예언사역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해 6월에 어거스틴이라는 한 선지자가 찾아와서 마이크 비클에게 중요한 말을 했다. 마이크 비클은 그 선지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마이크 비클이 캔자스시티로 이사 와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이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의 방문으로 인하여 결국 마이크 비클이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캔자스시티로 이사하였기 때문이다.
1982년 마이크 비클은 캔자스시티로 이사하기 전에 인도와 한국을 거쳐서 이집트의 카이로를 여행하였다. 그는 카이로에서 그는 매우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또 하였다. 카이로의 한 호탤 방에서 장차 캔자스시티로 이사하여 그곳의 선지자들과 함께 시작할 새로운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 신비한 음성이 그에게 들렸다. 비록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는 그 순간 하나님의 강한 권능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한 세대 안에 지구상에서 기독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들과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바꿀 것이다”3)
우리는 그의 이러한 음성체험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 한다. 과연 성령으로부터 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가 들었다는 음성의 내용이 결코 그냥 받을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of Christianity)를 바꾼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기독교에 대한 표현”(the expression of Christianity)을 바꾼다는 말을 무슨 뜻일까? 누가 보아도 기독교의 구조를 바꾸겠다(변질시키겠다)는 의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인터넷 신문의 댓글을 통하여 IHOP을 지지하는 어떤 사람과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그 음성의 내용이 나쁜 뜻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 오히려 밟혀 주님의 이름을 모욕받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과 은혜가 체험되어지는 교회,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살아 역사하는 교회로 세상에 나타나게 하겠다는 주님의 뜻으로 저는 듣습니다. 어떻게 정 목사님은 뜻 그 자체도 잘못해석하시지만, 말씀 그 자체부터 전혀 다른 말씀으로 듣는지요?”
그래서 나는 당시에 내가 잘못 알고 섣불리 비판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 뜻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정중히 “기독교에 대한 모든 용어를 바꾸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님의 말씀이 맞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이크 비클이 그런 음성을 들었다는 정보만 접했지, 그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은 보지 못했으니 제가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오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라고 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불필요한 사과였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그가 들은 음성의 의미는 기독교의 구조적 변형이나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들은 그 신비한 음성이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이전과는 달리 보이는 교회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는 표면적으로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달리 보이게 하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책에서 나타나는 마이크 비클의 사상은 철저하게 신사도운동가들과 동일하다. 구약성경 요엘서 2장에서 예언된 성령에 대한 예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지금 이 시대에 완전하게 성취되었다고 한다. 이는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대 분출이 일어나고 있고, 예언적인 꿈과 환상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로서 대부흥이 일어난다는 신사도운동의 핵심적인 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불신자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곧 성령의 대 분출로 인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성령의 이적과 기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불신자들의 경외를 유발하게 된다는 신사도운동가들의 허구적인 이론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마이크 비클이 이 책에서 카이로에서 들은 그 음성을 소개하는 8장에서도 그는 종말의 대부흥과 쏟아지는 성령으로 인한 이적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시대 안에 기독교에 대한 모든 이해와 표현을 바꾸겠다는 그 음성을 그는 신사도운동을 통하여 이상한 성령이 흘러넘치는 교회를 만들어서 세상에서 그 위상이 달라지게 하겠다는 말도 이해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성경적인 기독교의 교리와 시스탬에 구조적 변질을 일으키겠다는 불순한 내용이었고, Konglish로 “a dog sound”라고 하는 표현되어야 할 말이었다. 한마디로 듣고 말고 할 가치가 소리였다.
그에게 이러한 음성을 들려주는 영은 과연 어디로부터 온 영일까? 하나님이 보내신 영이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1982년에 찾아온 선지지의 예언을 받고서 세인트 루이스에서 캔자스시티로 이사할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해에 카이로에서 그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3년에 신사도운동의 대부 밥 존스 선지자와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또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 당시에 마이크 비클은 예언적 계시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성된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뜻을 좇아야 하는 신앙패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신사도운동가들은 “그에게서 예언적 계시가 증진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귀신들의 미혹에 빠지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철길은 한 길이다. 부산과 목포로 가는 길이 대전에서 나뉜다. 대전에서 두 철길이 막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 손 한 뼘의 차이나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한 쪽은 부산으로 가고 또 한 길은 목포로 이어진다. 그 끝에서는 천리 길의 차이가 벌어진다. 마이크 비클의 지나온 영적인 여정을 보면 1982년에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그 해에 오늘 날의 IHOP까지 연결되는 길로 진입하여 인생의 여정을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예수의 피가 뿌려진 성도의 몸이 법궤이다!> 이제 다른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라는 부분이다. 그것이 지금의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모티프가 되었다. 그 개념이 과연 신약 교회의 기도와 찬양의 신학적 모티프로서 합당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다윗의 장막이란 다윗 왕이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안치한 천막이었다. 법궤는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기 전까지 그곳에 약 40년간 머물렀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법궤를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장들이 항상 그곳에 머물게 하였고,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또한 찬양하는 자들을 세워 쉬지 않고 찬양을 드리게 하였다(대상 15,16장).
구약 시대에 법궤는 하나님과 같았다. 하나님은 법궤를 통하여 모습을 나타내셨다. 대제사장이 법궤 위에 황소의 피를 뿌릴 때 하나님은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법궤가 있는 곳은 넓은 우주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대면하면 신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지만, 언제가 법궤가 있는 성전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은 반드시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경배하였다. 다윗이 힘을 다해 법궤를 위해 장막을 만들고 제사장들이 항상 기도하고 찬양드리게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 법궤는 어디에 있는가?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있는 법궤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거처로 삼으시고 우리 속에 거하신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법궤가 있는 곳이 성전이었듯이 하나님을 모신 우리의 몸이 이제는 성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물드는 순간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신이 임할 성전이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황소의 피가 묻은 법궤에 친히 임하셨던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인간의 몸을 거할 처소로 삼으실 준비를 하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순절 성령강림은 법궤에 계셨던 하나님이 그 아들의 피로 구속받은 인간의 몸을 거처로 삼으시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예수의 보혈로 구속된 인간의 몸에 내주하시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행 2:17).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시게 하심으로 요엘서의 예언은 확실하게, 완전하게, 분명하게 성취되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들이 새로운 영적인 법궤가 되었다. 구약시대에 그렇게 소중하고 거룩하고 신성했던 법궤가 우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법궤는 우리 속에 있고, 예배 중에 있고, 우리의 기도와 찬양 중에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나무 궤짝 법궤가 있었던 다윗의 장막의 영을 들먹이며 기도하라고 했다면서 다윗 시대의 그 제사장들을 따라한다. 문짝만 아귀가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앞뒤 아귀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이 들은 소리는 신구약 속에서 아귀가 안 맞아 떨어진다.
<당신은 더욱 존귀한 제사장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만이 법궤를 섬기도록 명하셨다. 그래서 다윗의 장막의 법궤를 제사장들이 밤낮으로 찬양을 부르며 섬긴 것이다.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법궤가 되었으니, 우리도 역시 제사장이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지극히 섬겼듯이, 우리도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다. 오히려 우린 그들보다 더 존귀한 제사장들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벧전 2:9)라고 했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보다 더욱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제사장들이 바로 우리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무상자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었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체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 귀한 분의 손을 잡기만 해도 감격인데, 아예 하나님을 몸에 모시고 산다는 것이 우리는 얼마나 큰 은혜이고 광영인가? 그래서 우리더러 “왕 같은 존귀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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