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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뉴에이지는 나쁜 것인가? - 레이 윤겐

10. 뉴에이지는 나쁜 것인가? -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오리라 - 레이 윤겐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90938215
 
10. 뉴에이지는 나쁜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날의 형이상학의 기원과 근본과 확장을 살펴 보았다. 나는 뉴에이지가 범세계적인 평화와 조화가 보장된 황금 시대로 향하는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뉴에이지에 대해 22년 동안 연구할 결과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형이상학을 수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변형을 추구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정통 (과거 패러다임)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삶 가운데서 영적인 의미들과 유토피아에 대한 비전을 붙들기를 원한다. 더욱이 그들은 형이상학이 그들의 매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뉴에이지를 통해 더 나은 건강, 더 사랑 깊은 관계, 내면의 평화, 성공과 형통을 위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처럼 인간의 조건들을 개선하는 놀라운 뉴에이지를 누군가가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그를 지독히 교만한 자나 어리석은 자로 생각한다.
 
기독교 관점에서 뉴에이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이 잘못된 정보로부터 야기되었기 때문에 뉴에이지를 거절한다. 예를 들어, 뉴에이지 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형이상학의 대가였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구절들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이 구절은 더 높은 자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이 구절 또한 관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요 14:12). 이 구절은 뉴에이저들이 예수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해석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못 치우친 것으로 들리지만, 뉴에이지 옹호자들은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다. 그들은 확고하게 믿기를 원래 성경에는 환생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니케아 총회에서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 교회와 국가가 공포를 사용하여 일반 평민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해석에 대해 많은 의심과 비평이 있기는 해도 이러한 믿음은 점점 사람들에게 거리낌을 주고 있지 않으며 더욱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다.
 
뉴에이지가 지닌 가장 전형적인 주장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가는 다른 사람의 길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의 길만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각각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는 길들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판단 받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모든 길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이 구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거나 또는 기적들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불법’ 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내게 이 구절은 거대한 미혹이 발생할 것임을 말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 구절은 또한 모든 길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아님을 말해 준다. 따라서 사람들은 옳은 길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맞다. 물론 사람들은 “판단 받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이 구절은 (마 7:1)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의 위선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영적인 가르침에 비판적인 점검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1:8절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영적 가르침들을 평가해야 할 필요를 말한다. 바울의 경고를 들어보자.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또한 요한2서 1장 9절에서 11절을 보자.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이 1:9-11).
 
또한 에베소서 5:11절은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책망할 수 있겠는가? 디모데후서 3:16-17절은 다음과 같이 권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접신 (Familiar Spirits)
 
뉴에이지 주창자들이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자신들의 형이상학 주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나는 고대 지혜와 성경의 주장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자명하게 대립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뉴에이저들은 형이상학과 성경 간의 계속되는 분명한 상충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대조와 대립은 그리스도인이 논리적으로 형이상학을 대항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신명기 18:9-12절을 보면 형이상학적 요법들이 나열되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신 18:9-12).
 
12절의 ‘가증’이라는 뜻은 ‘싫어한다’ 또는 ‘역겨워한다’ 라는 뜻이다. 다음 레위기의 구절을 통해 ‘접신’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주목하라. 구약에서 이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매우 부정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레 20:6).
 
이러한 실례로 샥티 거웨인(Shakti Gawain)인 쓴 창조적인 구상화 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뉴에이지 운동의 성경으로 불린다. 이 책은 미국에서 3백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25개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거웨인은 구상화의 기본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긴장을 풀고 “깊고 조용한 관상의 상태”에[1] 이르러야 한다. 이 일을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더 놓은 지혜 및 가이드가 당신에게 올 수 있는” “채널”이 열린다.[2] 이때 거웨인은 ‘인도을 받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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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가이드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상담자, 스피릿 가이드, 상상의 친구, 사범 등이다. 내면의 가이드는 당신 자신의 더 높은 부분으로서 여러 형태로 당신에게 올 수 있다. 그러나 보통 당신이 말할 수 있고 지혜롭고 사랑스런 대상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의 형태로 온다.[3]
 
당신의 가이드는 당신이 필요로 하거나 또는 특별한 인도를 원할 때, 또는 지혜, 지식, 지원, 창조적인 영감, 사랑, 동료의식등을 원할 때 언제든지 나타난다. 자신의 가이드와 관계를 설정한 사람들은 관상을 통해 매일 그를 만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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샥티 거웨인이 말하는 바는 신명기 18장에서 언급하는 ‘접신’과 똑 같은 것이다. 소위 더 높은 자아란 접신을 하는 것이며 그 신들은 자신들에게 문을 여는 사람들을 자기들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다. 기독교 내에서는 종종 그들을 악령들이라고 부른다. 악령(demon)이라는 용어는 헬라어 대모니온(deamonion) 에서 온 것으로 그 정확한 뜻은 ‘스피릿 가이드’이다. 마음을 비우고 악령들(familiar spirits, 접신)을 접하게 되면 그 관계가 깊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악령들이 그 사람을 조절하게 된다. 뉴에이지 영성의 골자는 더 높은 자아다 (즉, 악령이다.) 그 존재가 그 사람의 모든 삶을 인도하게 하는 것이 뉴에이지 운동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에베소서 6:1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바울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다른 능력(힘)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마음에 두고 형이상학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이상학이야 말로 바로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악령으로부터의 영향과 인도를 계속 받다 보면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면서 그 영에게 절대적인 조절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지점이 쿤달리니 효과가 나타나는 지점이라고 믿는다. 뉴에이지 지지자 중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이 현상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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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쿤달리니가 내게 신화처럼 아주 매력있고 멋진 체험처럼 들렸다. 그러나 쿤달리니 사건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 사건처럼 또는 모세가 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같은 사건처럼 내게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종종 다이나믹 관상(Dynamic Meditation)의 제 3단계에 이를 때면 내 등골 위로 잘 설명할 수 없는 기체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내 모든 지체에서는 번개처럼 빛나는 섬광을 느낀다. … 5단계 또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나는 춤을 추었고 평소에 의식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하고 특이한 힘에 의해 내 자신이 사로 잡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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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앨리스 베일리의 ‘티벳인’과 라파엘은 악령들(접신)이라고 믿는다. 나는 또한 이 영들은 자신들의 활동 계획을 글로 나타내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존재들의 의도를 다음과 같은 형이상학 실행자들이 말하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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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곳에 다 있다. 단지 찾기만 하라. 당신 안에 거하고 있는 불멸하며 영원한 영을 찾으라. ‘거하는 존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 당신이 내면의 구심을 따라 살아갈 때 당신의 삶이 전반적으로 더욱 의미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기억하라.[6]
 
당신의 외부에 어떤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불필요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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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의 천사
 
도대체 누가 이러한 것을 믿도록 한다는 말인가? 누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하려는 것일까? 그는 당신에게 말하길 신은 당신의 외부의 그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한 외부적인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뉴에이지 저자이며 철학자인 데빗 스팽글러는 그의 책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 (Reflections on the Christ) 에서 이 존재가 ‘누군지’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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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가 자신의 의식과 존재 안에 이러한 에너지를 취하여 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다른 존재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지금 이 경우는 인류이다. 이러한 에너지를 구체화하여 인간의 내면의 진화를 위한 천사가 되기로 선태한 존재는 우리가 알리고 루시퍼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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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빗 스팽글러는 뉴에이지 운동의 배후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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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는 우리에게 우리 안에 권능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그는 우리가 휘두를 수 있는 창조적인 권능을 의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당신이 이러한 권능을 드러내는 원칙 가운데 수고하고 있다면 당신은 본질적으로 루시퍼의 원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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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스팽글러가 이러한 글들을 쓰지 않았더라도 루시퍼와 뉴에이지 운동의 연결고리는 성경에 의해 자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을 보자.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3-15).
 
그의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그는 “광명의 천사”로 와야만 했다. 어떤 믿음의 시스템이 사탄적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자신에 대해 어떠한 묘사를 했는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2).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며 스스로 한 말들을 기억나게 하셨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사 14:13-14).
 
후에 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일 때 사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의심할 여지없이 뉴에이지 운동은 위의 내용에 정확하게 맞는다.
 
사탄의 간계
 
에베소서 6:11절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간계’라는 단어는 이 구절에서 ‘교묘하게 설치한 덫’ 또는 ‘함정’이다. 덫을 효과 있게 하기 위해 적절한 미끼가 필요하다.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구미를 당기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레이키를 보자. 일반적인 레이키 수행자들은 누가 만일 레이키가 사탄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 분개하거나 조소를 보낸다. 어떤 레이키 수행자는 레이키에 대해 긍적적인 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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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키 치료를 받는 동안 당신은 수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스함, 차가움, 간지러움, 깊은 포만감, 그리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느낌이 온다. 각 세션은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세션을 지날 때 마다 평안과 안정을 느낀다. 더 깊은 잠에 들 수 있게 되고 일반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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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이 사탄적인 내용으로 들릴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할 것이다.
 
레이키 요소 (The Reiki Factor) 에서 레이키 사범 바바라 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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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키는 에너지 균형, 자연 치유, 전인 치유,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긍극적으로는 더 높은 의식과 계몽을 획득하기 위한 변형 수단으로 등장하여 하였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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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계몽은 형이상학 수행의 맥락에서 자기-실현과 같은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누군가가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는 즉시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창 3:5),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 14:14)는 사탄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성을 더 가까이 들어보자.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 내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보면, 레이키 뒤에 있는 힘은 사탄적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대중적인 문화적 개념으로 사탄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성경이 묘사하는 사탄을 생각해야 한다. 즉, 그는 속임수에 전문가이고 진리를 위조하는데 선수다. 그는 ‘광명의 천사’로 와서 (고후 11:14), 인류에게 ‘신성’을 제안한다. (당신이 신이며 당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과 관련하여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체험들이 너무나 생생하며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초의식을 체험한 사람들마다 깊은 관상의 상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증거한다. 그들은 넘쳐 흐르는 강렬한 빛을 체험하며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가진 것처럼 느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러한 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황홀함을 체험한다. 그들은 모든 생명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자신들이 불멸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되면 그들은 더욱 깊은 체험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신이 된 것처럼 느끼지 못했다면 자신을 신이라고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뉴에이지 지도자 피터 캐디는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그룹으로 자신을 만나러 와서 자신을 구원시키려고 했던 사건을 언급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길, 자신이 가졌던 체험을 경험한 후에 다시 찾아와서 말하자고 했다. 그가 말하려는 요지는 이러한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은 형이상학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졌던 체험을 말하니 그를 기독교인으로 만들기 보다 오히려 그의 신비체험을 그들도 원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뉴에이지 그룹 내에서 만연하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낚아채어 갔다. 그들은 뭔가 위대한 것을 느끼며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다. 비슷한 사건이 사도행전 8:9-11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행 8:9-11).
 
헬라어로 마술이라는 뜻은 ‘놀라게 하다’, ‘감탄하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마술이란 악령들(접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몬이 행하는 일은 선해 보였으며 심지어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하나님과 관련이 없으며 단지 그렇게 보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볼 때, 왜 고대 지혜의 요새인 에베소에 기독교의 복음이 임할 때 그러한 엄청난 변화와 충격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행 19:18-19).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니 마술 또는 형이상학 요법들이 문 밖으로 도주하는 모습이다. 이 둘은 서로 함께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상반되는 세력이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행 13:5-10).
 
뚜렷한 구분
 
만일 당신이 다른 많은 뉴에이저들처럼 예수님의 진짜 가르침이 삭제되고 왜곡되었다고 느낀다면 다음을 고려해 보라. 예수님은 소위 구약이라는 것을 엄격하게 지켰던 좋은 유대인이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구약은 접신을 하는 것을 엄중하게 금하였다. 사울 왕은 이 금기 조항을 어긴 전형적인 실례이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대상 10:13-14).
 
또한 유대교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43:10-12).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 44:24).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께서는 경건한 유대인이었기에 고대 지혜를 전하였던 사람으로는 볼 수 없다. 유대교에서는 오직 한분 창조주와 보존하는 분이 있고 사람은 그분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사람들로부터 예배와 영광을 받기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진 기본 관점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신 것은 그의 메시야적 역할에 근거한 것으로서 매우 특이한 유대교 개념이다. 예수님의 신성은 인간이 신성을 가르치는 고대 지혜의 가르침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그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말씀하셨다 (요 4:22).
 
형이상학을 우주의 진리와 구원의 방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진실한 것을 압니다. 나는 형이상학이 당신에게 당신 자신에 대하여 기분 좋게 느끼게 하는 것도 압니다. 나는 당신이 과거 전통적인 기독교가 잘 맞지 않아서 거부한 것도 압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렘 10:6, 11).
 
이 시대의 어리석음
 
고린도후서 1:9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전 1:9). 이 구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그분은 우주가 아니며 스피릿 가이드가 아니시다. 가장 분명한 것은 그분은 사람이 아니시다.
 
뉴에이지가 틀린 이유는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이 받아야 할 영광과 신뢰와 헌신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주고 있으며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영광을 구하도록 속이는 반역적인 악령들에게 주고 있다. 이에 대한 은유를 하자면 캔버스(canvas)에 그림을 그린 예술가가 있는데 그 작품에 대해 예술가가 영광을 받지 못하고 캔버스 또는 그림이 영광을 받는 꼴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방 나라들이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방인들은 고대 신비 학교의 형이상학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5).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지금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 점이다. 과거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악령들을 의지하였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사건 하나가 내가 말하려는 바를 잘 전하고 있다. 사도행전 16:16-19절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행 16:16-19).
 
이 구절들은 뉴에이지 운동의 속성과 목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4가지의 중요한 내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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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신이 여종의 능력의 근원이란 점이다. 이 능력은 그 여인에게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귀신이 나가면 그녀의 재능은 사라졌다.
 
2) 귀신은 대단히 실력이 뛰어나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여종이 그녀의 주인에게 많은 돈을 벌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멋진 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여종은 그 사업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3) 바울과 귀신은 같은 편에 있지 않았다. 바울이 그녀에게서 귀신을 내어 좇는 사실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귀신이 자신을 하나님 편에 있는 것처럼 행사했다는 점이다. 그는 바울과 실라를 쫓아 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고 외쳤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 귀신은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계속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후에 바울이 이룬 사역을 다 헛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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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신들은 오늘날에도 같은 일을 한다. 이 여종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내면에 어떤 신이 있어서 그녀에게 사회를 돕는데 효과적인 정보들을 알려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당신이 내면의 신성과 연결되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2-23)의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스와미 묵타난다(Swami Muktananda)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뉴에이지 지도자 중에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실제로 신이 된 사범이라고 믿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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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무릎을 꿇어라. 네 자신을 존경하고 예배하라. 언제나 당신 내면에 주문이 흐를 수 있도록 주문을 외라. 자신에 대하여 관상하라. 하나님이 당신으로 당신 안에 거하고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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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묵타난다가 죽었을 때 그의 가장 가까운 제자 중에 하나가 다음 사실을 폭로하였다. 그의 스승은 “정신 박약에 가까운 상태로 매일 밤마다 잔인한 폭군이 되어 경건한 어린 소녀들에게 은혜와 자기-실현을 약속하며 자기 침대로 가면서 인생을 마쳤다.”[13] 그는 성경의 진리들을 깨닫지 못한 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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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 인간의 도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분노, 정욕, 탐욕을 해결한다는 보장이 없다. 계몽은 자기 자신의 악에 대항하여 갈등한다는 점에서 계몽되지 못한 무지한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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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시대 가운데 형이상학의 폭발적인 인기는 레위기 19:31절의 경고를 연상케 한다.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1).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들이 하나님이라는 뉴에이지 메시지의 타당성에 대하여 도전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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