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 교
퀘이커 교
출처 = http://blog.daum.net/kkho1105/9772
퀘이커교의 교리
첫째, 퀘이커교는 그들 특유의 예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는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무언(無言)을 지킨다. 침묵(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성령의 내림을 기다린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성령의 내림과 사역이 있으면 받은 영감을 말한다.
17세기에 이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영감을 받을 때 전신이 떨었다 해서 ‘진동자(Qu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만약 영감을 받은 사람이 없으면 무언으로 그 모임은 끝난다. 그들은 직접적 영감을 중시하여 언제든지 새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예배형태에 대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조직신학)는 “과연 퀘이커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이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들은 때때로 성경과 예배 중에 성령의 영감을 구분하여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퀘이커 사람들은 계속적인 계시(continuing revelation)를 말하는 결과를 내고 만다”고 지적한다.
즉, 퀘이커교도들은 요한복음 1장 9절~18절에 근거해 ‘보편적인 내면의 빛(the universal Inward Light)’을 중요시하면서 이것으로 계속적으로 진리를 계시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 본문이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신비주의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퀘이커교는 성서가 모든 종교체험에 관한 가장 우수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인정한다.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불변의 진리가 있거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퀘이커에 따르면 “성서는 원천에 관한 방향 제시는 되나 원천 자체는 아니다. 그 원천은 오히려 성령 또는 각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 빛’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내적으로, 직접적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성서대학교대학원장 김호식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성경보다 자기들이 직접 받은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문제다”며 “이에 반해 개신교는 66권 성경이 모든 신앙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셋째, 퀘이커교는 내적 계시를 중시하고 성서를 격하시키기 때문에 어떤 교리나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신학적 사변의 무거운 짐을 바닷가에 다 버렸다고 자랑한다.퀘이커호주연회에서 펴낸 <청소년을 위한 퀘이커 신앙 안내서>의 교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한다. 따라서 군대에 들어간다거나 전쟁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양심적 병역거부).”
“우리는 노예제도,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은 외적인 성례전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례전을 갖지 않는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다. 그것은 ‘씨’, ‘속의 빛’, ‘사람의 영’ 등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인종이나 종교에도 상관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 속에 있는 영을 계발하고 진리를 더 열렬하게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매우 가까이 나아갔다.
이들 중에는 이집트인 악나톤, 인도 왕자 석가모니, 중국 신비주의자 노자, 유대인 이사야 등이 있다.”
“우리는 비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힌두교나 유교 또는 그밖의 다른 종교나 철학이 하나님께 향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실천을 존중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교리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퀘이커교도들은 대개 삼위일체 교리, 전전 타락 교리, 죄의 전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 등을 거부하고, 성례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넷째,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 종자가 있다고 믿는다.이는 죄의 종자와 신적 종자다. 죄의 종자는 인간 자신으로부터 싹이 트나,신적 종자는 신으로부터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방’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방의 하루 또는 한 때를 주어 그가 구원을 얻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에 동참하게 한다.
이 하나님의 심방의 때를 가지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마음속에 비치는 빛에 항거하는 사람은 멸망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아직 미완성이다.또, 퀘이커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아담의 죄값이 전가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다 같은 불복종의 죄를 범하고부터 비로소 죄책이 생기게 된다.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원죄의 책임을 지우는 교리는 잔인하고 자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에 어긋나는 견해다.
이승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아담의 죄의 전가를 거부하는 퀘이커교는 결국 펠라기우스적인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고,
그 구원의 방도는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가의 여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섯째, 퀘이커교의 교회는 ‘거룩한 빛,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한다. 그 안에는 이미 죽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교도(異敎徒)와 터키 사람과 유대 사람도 다 포함되어 있다.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눈을 뜨고 은혜의 선물의 정도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배려한다.
이것이 교회다.
그런데 외적 신앙고백과 외적 의식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지목) 그들은 악마의 꼬임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주장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초기 퀘이커 사상가인 죠지 폭스는 가시적 교회의 배교가 신약 성경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며 배교한 교회에 천주교회와 개신교 모두를 넣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참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주장했다.
그 함의는 이제 내면의 빛을 추구하는 이들이 참 교회라는 것이고, 자신들과 이교도 가운데서 이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 이들은 모두 참 교회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후에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확대되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섯째, 퀘이커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따라서 퀘이커교가 병역과 선서를 거절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봉사적 사랑으로써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 점이 다른 기독교신비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퀘이커교의 한국 전래와 현황
처음 퀘이커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6.25전쟁 직후다. 1953년 전북 군산의 도립병원에서 구제활동을 폈던 미국과 영국의 퀘이커 의사들을 통해 처음 퀘이커를 접한 군산 사람들이 그들의 침묵예배에 참석하면서 한국 퀘이커가 탄생했다.
퀘이커 봉사자들이 떠난 이후에도 한국인들끼리 자체 모임을 계속해 한국 퀘이커 1세대가 출현했으며 최초의 한국인 퀘이커는 이윤구였다.
1960년대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세상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 함석헌의 가담으로 퀘이커는 한때 크게 부흥했다. 함석헌은 본래 장로교 신자였으나 일본에 건너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가 사회에 대한 그들의 소극적 신앙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퀘이커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퀘이커 지도자였던 브린튼의 영향을 직접 받아 그것을 생활화하는 가운데 한국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퀘이커교는 1989년 함석헌 타계 후 내부 혼란과 갈등을 빚으며 10년이 넘도록 예배모임조차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미국 펜들힐에서 정식 퀘이커교도가 되어 귀국한 이후 한국퀘이커에도 활기가 생겼다. 옛 퀘이커 멤버들을 중심으로 원상 복귀를 위해 노력해 다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서울 신촌의 모임에는 약 50여명의 교도들이 있고, 곧 대전에 모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박성준 교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민중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을 통해 퀘이커교와 민중신학의 연합을 시도한다. 그는 죠지 폭스는 ‘예수가 이미 재림한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죠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음으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박 교수는 계속해서 “죠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사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고 해석한다.
이승구 교수는 박성준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결국 그리스도의 가시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살고 이 세상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강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갈 2:20),바울을 따라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에도 바울은 그리스도 자신과 성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인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했으며, 우리는 그 점을 매우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우리들의 성령님의 은혜 아래서의 삶과 사역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결국 그리스도 사역의 독특성을 파괴하게 된다”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반(反)하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문자적, 신체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http://onesfamily.org/technote/board.php?board=other&command=body&no=85&no=86
출처 = http://blog.daum.net/kkho1105/9772
퀘이커교의 교리
첫째, 퀘이커교는 그들 특유의 예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는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무언(無言)을 지킨다. 침묵(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성령의 내림을 기다린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성령의 내림과 사역이 있으면 받은 영감을 말한다.
17세기에 이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영감을 받을 때 전신이 떨었다 해서 ‘진동자(Qu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만약 영감을 받은 사람이 없으면 무언으로 그 모임은 끝난다. 그들은 직접적 영감을 중시하여 언제든지 새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예배형태에 대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조직신학)는 “과연 퀘이커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이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들은 때때로 성경과 예배 중에 성령의 영감을 구분하여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퀘이커 사람들은 계속적인 계시(continuing revelation)를 말하는 결과를 내고 만다”고 지적한다.
즉, 퀘이커교도들은 요한복음 1장 9절~18절에 근거해 ‘보편적인 내면의 빛(the universal Inward Light)’을 중요시하면서 이것으로 계속적으로 진리를 계시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 본문이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신비주의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퀘이커교는 성서가 모든 종교체험에 관한 가장 우수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인정한다.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불변의 진리가 있거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퀘이커에 따르면 “성서는 원천에 관한 방향 제시는 되나 원천 자체는 아니다. 그 원천은 오히려 성령 또는 각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 빛’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내적으로, 직접적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성서대학교대학원장 김호식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성경보다 자기들이 직접 받은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문제다”며 “이에 반해 개신교는 66권 성경이 모든 신앙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셋째, 퀘이커교는 내적 계시를 중시하고 성서를 격하시키기 때문에 어떤 교리나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신학적 사변의 무거운 짐을 바닷가에 다 버렸다고 자랑한다.퀘이커호주연회에서 펴낸 <청소년을 위한 퀘이커 신앙 안내서>의 교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한다. 따라서 군대에 들어간다거나 전쟁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양심적 병역거부).”
“우리는 노예제도,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은 외적인 성례전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례전을 갖지 않는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다. 그것은 ‘씨’, ‘속의 빛’, ‘사람의 영’ 등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인종이나 종교에도 상관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 속에 있는 영을 계발하고 진리를 더 열렬하게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매우 가까이 나아갔다.
이들 중에는 이집트인 악나톤, 인도 왕자 석가모니, 중국 신비주의자 노자, 유대인 이사야 등이 있다.”
“우리는 비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힌두교나 유교 또는 그밖의 다른 종교나 철학이 하나님께 향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실천을 존중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교리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퀘이커교도들은 대개 삼위일체 교리, 전전 타락 교리, 죄의 전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 등을 거부하고, 성례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넷째,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 종자가 있다고 믿는다.이는 죄의 종자와 신적 종자다. 죄의 종자는 인간 자신으로부터 싹이 트나,신적 종자는 신으로부터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방’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방의 하루 또는 한 때를 주어 그가 구원을 얻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에 동참하게 한다.
이 하나님의 심방의 때를 가지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마음속에 비치는 빛에 항거하는 사람은 멸망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아직 미완성이다.또, 퀘이커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아담의 죄값이 전가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다 같은 불복종의 죄를 범하고부터 비로소 죄책이 생기게 된다.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원죄의 책임을 지우는 교리는 잔인하고 자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에 어긋나는 견해다.
이승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아담의 죄의 전가를 거부하는 퀘이커교는 결국 펠라기우스적인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고,
그 구원의 방도는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가의 여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섯째, 퀘이커교의 교회는 ‘거룩한 빛,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한다. 그 안에는 이미 죽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교도(異敎徒)와 터키 사람과 유대 사람도 다 포함되어 있다.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눈을 뜨고 은혜의 선물의 정도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배려한다.
이것이 교회다.
그런데 외적 신앙고백과 외적 의식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지목) 그들은 악마의 꼬임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주장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초기 퀘이커 사상가인 죠지 폭스는 가시적 교회의 배교가 신약 성경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며 배교한 교회에 천주교회와 개신교 모두를 넣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참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주장했다.
그 함의는 이제 내면의 빛을 추구하는 이들이 참 교회라는 것이고, 자신들과 이교도 가운데서 이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 이들은 모두 참 교회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후에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확대되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섯째, 퀘이커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따라서 퀘이커교가 병역과 선서를 거절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봉사적 사랑으로써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 점이 다른 기독교신비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퀘이커교의 한국 전래와 현황
처음 퀘이커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6.25전쟁 직후다. 1953년 전북 군산의 도립병원에서 구제활동을 폈던 미국과 영국의 퀘이커 의사들을 통해 처음 퀘이커를 접한 군산 사람들이 그들의 침묵예배에 참석하면서 한국 퀘이커가 탄생했다.
퀘이커 봉사자들이 떠난 이후에도 한국인들끼리 자체 모임을 계속해 한국 퀘이커 1세대가 출현했으며 최초의 한국인 퀘이커는 이윤구였다.
1960년대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세상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 함석헌의 가담으로 퀘이커는 한때 크게 부흥했다. 함석헌은 본래 장로교 신자였으나 일본에 건너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가 사회에 대한 그들의 소극적 신앙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퀘이커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퀘이커 지도자였던 브린튼의 영향을 직접 받아 그것을 생활화하는 가운데 한국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퀘이커교는 1989년 함석헌 타계 후 내부 혼란과 갈등을 빚으며 10년이 넘도록 예배모임조차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미국 펜들힐에서 정식 퀘이커교도가 되어 귀국한 이후 한국퀘이커에도 활기가 생겼다. 옛 퀘이커 멤버들을 중심으로 원상 복귀를 위해 노력해 다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서울 신촌의 모임에는 약 50여명의 교도들이 있고, 곧 대전에 모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박성준 교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민중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을 통해 퀘이커교와 민중신학의 연합을 시도한다. 그는 죠지 폭스는 ‘예수가 이미 재림한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죠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음으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박 교수는 계속해서 “죠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사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고 해석한다.
이승구 교수는 박성준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결국 그리스도의 가시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살고 이 세상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강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갈 2:20),바울을 따라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에도 바울은 그리스도 자신과 성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인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했으며, 우리는 그 점을 매우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우리들의 성령님의 은혜 아래서의 삶과 사역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결국 그리스도 사역의 독특성을 파괴하게 된다”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반(反)하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문자적, 신체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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