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욜라_교회사에 나타난 수도원 운동의 영성
로욜라_교회사에 나타난 수도원 운동의 영성
자료출처 http://cafe.daum.net/dusonma/J3VG/546
아래의 글은 여과없이 읽어서는 안됩니다.
아래 글을 통해서 수도원운동의 신비주의 흐름을 읽는데 참고가 되셔야 합니다.
특히 "로욜라"는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이런 수도원 영성을 다시 부활시킨 인물입니다.
그것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 로욜라를 계속 캐가는 큰 흐름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종교개혁은 "말씀의 경건"이었고, 그에 반대한 로욜라는 "감성의 영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뜨레스디아스가 그런 영향을 입고 있는데,
거기 갔다 오신 분들은 자기 체험에 근거하여 분별을 상실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수도원 운동의 영성
수도원 운동은 고대 교회가 국가 교회가 되며 세속화 되기 시작하자 세상의 소란함을 떠나 사막을 찾아 고요한 영성을 추구하던 사막 교부들에게서 유래하였다.
최초의 사막 교부는 안토니우스이고, 공동체 수도원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파코미우스였다. 또 동방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는 대 바질이라고 한다.
바질은 영혼이 세례에서 시작하여 성장하고 결국 "하나님을 봄"(visio Dei)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수도원 신학을 정리하였다. 동방 교회는 이러한 수도원의 신비 신학을 계속 발전 시켰고 14세기에는 빛의 신비주의라고 하는 "헤시카즘" 같은 신비주의 전통을 정통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동방 교회는 교회론 중심적인 서방 교회와 달리, 이렇게 성령이 계속 강조되었고. 신비적 영성이 지속적뜨로 추구되었다.
서방 수도원의 아버지는 베네딕트(c.480-c.550)였다. 그는 그의 수도원 영성훈련의 체험을 토대로 '수도 규칙'을 써서 후대 서방 수도원의 기틀을 놓았다. 그러나 베네딕트 수도원은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10세기 클뤼니 수도회, 12세기 시또 수도회을 통해 거듭 갱신되어야 했다. 특히 시또 수도회 소속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1153)는 고대 교회가 잃어버린, 그리스도와 인성을 다시 부각시킴으로써 영성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서방 수도원의 꽃은 누가 뭐래도 앗시시의 프란체스코(1182-1226)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고자 노력하여 그리스도의 가난과 고난을 문자 그대로 경험한 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먼저 도시 근교에 수도 공동체의 터를 잡고 선교와 봉사의 일을 동시에 하는 전통을 세웠다.
또한 그의 제자 보나벤투라(c.1217-1274)에 의하면, 프란체스코는 피조물과 교제하는 아름다운 영성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보나벤투라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여행'에서 영혼의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어거스틴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위 디오니시우스이었으며, 자연의 피조물에 대한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바로 앗시시의 프란체스코였다고 하며, 이 셋을 종합하는 시도를 하였다.
14세기에 이르러 서방 수도원은 공동생활형제단, "현대신심운동"(devotio modema)등 평신도 영성운동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나온 가장 유명한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16세기 개신교 종교 개혁 때 서방 카톨릭 수도원은 마틴 루터에 의해 개신교 지역에서 존폐 위기에 몰렸으나, 로욜라 이그나타우스의 예수회를 통해 카톨릭 자체 개혁에 성공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그의 '영신 수련'에서 4주에 걸쳐 묵상과 관상 기도에 이르는 영성훈련 과정을 소개하였다. 또한 16세기 후반 개혁파 갈멜회는 아주 탁월한 두 영성가, 아빌라의 테레사(1515-1582)와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을 배출하였다.
특히 아빌라의 테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영혼을 성으로 비유 하며, 기도로 이 영혼의 성에 들어가 제1궁방에서 제7궁방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도의 과정을 그림처럼 묘사해 놓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갈멜의 산 길'과 '어둔 밤'에서 감성과 영성의 능동적 정화와 수동적 정화의 과정을 잘 서술하여, 후대에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dusonma/J3VG/546
아래의 글은 여과없이 읽어서는 안됩니다.
아래 글을 통해서 수도원운동의 신비주의 흐름을 읽는데 참고가 되셔야 합니다.
특히 "로욜라"는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이런 수도원 영성을 다시 부활시킨 인물입니다.
그것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 로욜라를 계속 캐가는 큰 흐름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종교개혁은 "말씀의 경건"이었고, 그에 반대한 로욜라는 "감성의 영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뜨레스디아스가 그런 영향을 입고 있는데,
거기 갔다 오신 분들은 자기 체험에 근거하여 분별을 상실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수도원 운동의 영성
수도원 운동은 고대 교회가 국가 교회가 되며 세속화 되기 시작하자 세상의 소란함을 떠나 사막을 찾아 고요한 영성을 추구하던 사막 교부들에게서 유래하였다.
최초의 사막 교부는 안토니우스이고, 공동체 수도원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파코미우스였다. 또 동방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는 대 바질이라고 한다.
바질은 영혼이 세례에서 시작하여 성장하고 결국 "하나님을 봄"(visio Dei)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수도원 신학을 정리하였다. 동방 교회는 이러한 수도원의 신비 신학을 계속 발전 시켰고 14세기에는 빛의 신비주의라고 하는 "헤시카즘" 같은 신비주의 전통을 정통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동방 교회는 교회론 중심적인 서방 교회와 달리, 이렇게 성령이 계속 강조되었고. 신비적 영성이 지속적뜨로 추구되었다.
서방 수도원의 아버지는 베네딕트(c.480-c.550)였다. 그는 그의 수도원 영성훈련의 체험을 토대로 '수도 규칙'을 써서 후대 서방 수도원의 기틀을 놓았다. 그러나 베네딕트 수도원은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10세기 클뤼니 수도회, 12세기 시또 수도회을 통해 거듭 갱신되어야 했다. 특히 시또 수도회 소속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1153)는 고대 교회가 잃어버린, 그리스도와 인성을 다시 부각시킴으로써 영성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서방 수도원의 꽃은 누가 뭐래도 앗시시의 프란체스코(1182-1226)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고자 노력하여 그리스도의 가난과 고난을 문자 그대로 경험한 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먼저 도시 근교에 수도 공동체의 터를 잡고 선교와 봉사의 일을 동시에 하는 전통을 세웠다.
또한 그의 제자 보나벤투라(c.1217-1274)에 의하면, 프란체스코는 피조물과 교제하는 아름다운 영성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보나벤투라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여행'에서 영혼의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어거스틴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위 디오니시우스이었으며, 자연의 피조물에 대한 영성에서 가장 뛰어난 이는 바로 앗시시의 프란체스코였다고 하며, 이 셋을 종합하는 시도를 하였다.
14세기에 이르러 서방 수도원은 공동생활형제단, "현대신심운동"(devotio modema)등 평신도 영성운동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나온 가장 유명한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16세기 개신교 종교 개혁 때 서방 카톨릭 수도원은 마틴 루터에 의해 개신교 지역에서 존폐 위기에 몰렸으나, 로욜라 이그나타우스의 예수회를 통해 카톨릭 자체 개혁에 성공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그의 '영신 수련'에서 4주에 걸쳐 묵상과 관상 기도에 이르는 영성훈련 과정을 소개하였다. 또한 16세기 후반 개혁파 갈멜회는 아주 탁월한 두 영성가, 아빌라의 테레사(1515-1582)와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을 배출하였다.
특히 아빌라의 테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영혼을 성으로 비유 하며, 기도로 이 영혼의 성에 들어가 제1궁방에서 제7궁방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도의 과정을 그림처럼 묘사해 놓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갈멜의 산 길'과 '어둔 밤'에서 감성과 영성의 능동적 정화와 수동적 정화의 과정을 잘 서술하여, 후대에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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