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음주의와 복음화
신복음주의와 복음화
기독교의 정치참여와 사회참여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원래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사회참여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그들은 관심사는 주로 자신의 영적성장과 참된 복음의 전도였다. 심지어, 개인 입장에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참여를 권장하는 개혁주의와도 입장을 달리했다. 그러나, 복음주의 일각에서는 이런 노선에 반발하여 분리주의를 거부하고 기독교의 적극적 정치사회적 참여를 주장하는 새로운 운동인 '신복음주의'가 태어났다. 신복음주의의 문제점은 크게 '에큐메니즘(Ecumenism)'과 '주권주의(Dominionism)'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교파 간의 단합과 일치를 신앙의 기본교리보다 우선시 하고, (복음화를 위한) 모든 기독교 간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에큐메니즘은, 성경말씀을 신화로 여기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물론이고 비성경적 교리로 가득찬 (적그리스도적인<<) 로마 카톨릭과의 연합에도 주저함이 없으며, 더 나아가 모든 종교와의 화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상을 이겨서 예수께 바친다"는 승리주의적 주권주의는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비성경적 사상으로 킹덤나우 사상으로도 불린다.
이 글에서는 신복음주의로 대변되는 '세계기독운동'이 주장하는 '복음화'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세계기독운동의 역사와 주권주의적 문제점들을 주로 앨 대거의 세계기독운동(THE WORLD CHRISTIAN MOVEMENT<<)이라는 글에서 발췌하여 정리해 보겠다.
다음은 세계복음화에 관한 로잔위원회 명예회장인 빌리 그래엄의 말이다:
1974년 로잔대회 이후,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소수자이었거나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서의 리더십을 제공하도록 점점 더 요청 받아 왔다. 복음전도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큰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큰 책임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독교 유산의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어떠한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복음화 시켜야 한다. 빈곤과 인구의 세계 문제들과 핵전쟁의 위협은 매시간 늘어 간다. 세계는 바로 지금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복음전도'와 '복음화']
앨 대거는 '복음전도'와 '복음화'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푸른 글씨는 앨 대거의 글의 내용이다.
복음전도(Evangelism)는 물론 정당한 이름이며 정당한 시도이다. 이것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져오기 위해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일이다. 참된 복음 전도는, 각 성도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성경적 진리와 행위를 지켜주는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심고 신자들을 제자로 삼는 것을 따른다.
복음화(Evangelization)는 글로벌, 에큐메니컬 '세계기독운동'이 전세계 교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이것이 나타내는 바는 사회적 정치적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똑같은 요소로서 결합시키는 일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족속'을 '기독교화' 시키는 것이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전도와 복음화 간의 구분이 없다. 하지만 세계기독운동에게는 구별이 있다. 본질적으로 그 차이점은, 복음전도는 영혼구원과 관계되지만, 복음화는 모든 국가들 또는 족속들을 정치적 사회적 행동을 통해서 영적으로 세속적으로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잔선언]
세계기독운동의 참 동기와 목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이런 구분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로잔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정되었다. 로잔위원회로부터 세계기독운동이 싹텄다. 세계복음화에 대한 국제대회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ICOWE 회장인 호주 시드니 성공회의 잭 댐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로잔은 복음화대회이지 복음전도대회가 아닙니다.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복음전도대회는] 많은 복음전도대회 중의 처음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온 세계의 많은 리더들의 마음 속에서의 지금의 생각은, 우리는 복음전파인 복음전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적절하게 표현해서, 복음화라고 불립니다.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 공식화된 로잔언약은 세계기독운동의 어젠다를 위한 길을 만들었다. 언약의 제 5항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자 모든 사람들의 심판자이심을 확인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체 인류사회의 정의와 화해에 대한 관심과 인류의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별 및 나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은 고유의 존엄성을 가지며,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존중되고 섬김 받아야 하며 착취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태만함과 그리고 복음전도와 사회적 배려를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여겼음을 통회하는 바이다. 비록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행동복음전도나 정치해방구원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 모두는 우리의 기독교적 의무임을 확언한다. 왜냐하면 두가지 모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우리 교리-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과연 기독교의 정치사회적 참여로 인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범죄와 질병을 없애고,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복음화'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대사명에 해당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뿐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에는 아픔과 괴로움과 억압과 착취와 부조리와 불평등이 지속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왕국은 마귀 사탄의 메이트릭스인 세상 질서, 세상 시스템과는 아무 상관 없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인 영적인 신자들의 영들, 곧 비가시적인 우주적 교회 안에서 이뤄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뿐이다." 복음화는 사회복음(Social Gospel)의 한 형태일 뿐이며, 이런 킹덤나우 사상은 미혹일 뿐다.
이제 신복음주의적 세계기독운동의 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 보겠다. 이 운동에는 신사도운동의 특징인 환상과 불, 안수와 임파테이션, 그리고 겉옷(외투 mantle)의 분여/전이를 볼 수 있으며, 그의 핵심에는 헨리에타 미어즈라는 여성이 있다. 다시 앨 대거의 글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800년대 말, 무디와 피어슨에 의해 캠퍼스에 불붙여진 해외선교의 욕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10만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해외선교에의 헌신을 약속하게 했으며, 이런 움직임은 학생자원봉사(Student Volunteer, SVM)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SVM에 이어 IVF, SMA 등의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조직되었다. SVM 리더들의 슬로건은 "우리 세대 안에 세계를 복음화하기"였다. SVM의 유산으로 현대세계선교에 큰 영향을 준 다섯 명이 배출되었으며, 그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주일학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헨리에타 미어즈였다.
실용주의자였던 그녀는 주일학교 교재를 만들어 출판했으며, 담당한 주일학교를 10배로 부흥시켰다. 그녀는 또한 포레스트홈 컨퍼런스센터를 세워 모든 교파로부터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녀의 명성은 복음화 그룹의 두번째 사람이자 친한 친구였던 찰스 풀러의 공이 컸다. 부흥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하던 풀러는 청취자들에게 컨퍼런스를 소개함으로써 부흥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을 포레스트홈으로 보냈다. 바로 이 포레스트홈이 신복음주의의 산실이 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이기려는" 헨리에타 미어즈의 불타는 욕구는 복음에 정치사회적 행동을 융합시켰다.
그녀는 또 버닝하트(불타는 심장) 펠로우십을 만들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거는 대생들에게 안수하고 그녀의 겉옷(mantle)을 분여했다. 그들은 가슴 속에 '버닝하트'를 받은 것이다. 복음화 그룹의 세번째는 고든칼리지 총장이자 목사였던 해롤드 오켕가이다. 오켕가는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를 세우는 데에도 기여했다. 풀러와도 친했던 그는 풀러신학교의 설립을 도와주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두 사람은 미어즈의 포레스트홈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에드윈 오르와 아민 게스웨인 등 5명이 이 에큐메니컬 캠퍼스 운동을 주도했다.
1946년 6월 포레스트홈에서 열린 교사 컨퍼런스에서 그녀의 설교에는 리차드 헬버슨(할리우드장로교회 부목사), 루이스 에반스 2세, 존 프랭크와 윌리암 (빌) 브라이트가 함께 참석했다. 빌 브라이트는 그 때 크리스천이 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이다. 설교 후 이들과 몇몇 젊은이들은 미어즈에게 그녀의 오두막에 가서 기도를 계속하자고 요청을 해서 그날 밤까지 기도가 이어졌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들이 함꼐 무릎꿇자 그들은 무력감과 무능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밤 늦게까지 울며 소리치며 주께 기도하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인도를 요청하고, 성령의 권능의 실재를 요구했다. 때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심에 따라 그들은 조용하기도 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매우 생생한 환상으로 응답하셨다. 그들 앞에서, 그들은 전세계 대학 캠퍼스를 보았는데, 세상을 변화시킬 권능을 손에 들고 있는 믿지 않는 학생들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맞다. 대학 캠퍼스-그것이 세계 리더십의, 세계 부흥의 열쇠였다.
그리스도를 위해 정복할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고, 정복의 시간은 지금이었다!
부흥을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가 핵심적이라고 본 미어즈는 "세상을 이겨 그리스도께" 바치는 그녀의 비전을 위해 남녀 전도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음은 그녀가 안수한 대표적인 리더들이다.
CCC
그녀의 겉옷(mantle)를 분여하기 위해 빌 브라이트에게 안수한 후, 그리고 그를 버닝하트 펠로우십으로 받아 들인 후, 그녀는 브라이트 부부를 그녀의 집에 데리고 가서 11년간 함께 살았다. CCC는 그녀의 응접실에서 태어났다. 네비게이토, 영라이프, 유스포크라이스트 등의 젊은이 사역과 마찬가지로 CCC를 통한 회심자들은 에큐메니칼 교리로 훈련 받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각자의 교회로 보내졌다.
영 라이프
영 라이프의 디렉터인 짐 레이번도 미어즈의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포레스트홈에서..
미국상원 담당 목사
버닝하트 펠로우십 출신인 리차드 헬버슨은 미국상원의 담당목사가 되었다. 그는 미국 국가기도의 날을 미상원이 선포하는 데 이바지했다.
할리우드 그룹
루이스 에반스 2세를 통해 많은 유명 연예인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켰다..
빌리 그래엄
그래엄에 의하면 헨리에타 미어즈는 그의 어머니와 아내 룻 다음으로 그의 사역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여자였다:
헨리에타 박사는 직접 간접으로 나의 삶에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사실, 나의 아내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나에게 이런 뚜렷한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여자는 없다. 그녀의 자비한 영, 헌신적 삶, 단순한 복음에의 확고함, 그리고 그녀의 성경지식은 나에게 지속적인 영감이자 놀라움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았던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 중의 한 명이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미어즈의 목사였으며 후에 노스웨스턴 스쿨의 총장이 된 라일리 목사는 그의 외투를 그래엄에게 주려 했으나, 그래엄은 그의 임파테이션 받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라일리의 죽음에 임박해서 그의 외투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노스웨스턴 스쿨의 총장이 되었으며, 포레스트홈에서도 가르쳤다. 어느날 밤, 리차드 오르는 빌리 그래엄이 진짜로 라일리의 겉옷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의 겉옷을 그래엄에게 주기 위해 안수한다. 이럼으로써 그는 빌 브라이트, 리차드 핼버슨 그리고 다른 버닝하트 펠로우십 멤버들과 같이 인정된, 기름부음 받은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아민 게스웨인의 기도집회를 도우며 전도시를 돌아 다녔다. 그는 거의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 신부들을 포함한 에큐메니칼적 대중들 앞이 아니면 강단에 오르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출처] 신복음주의와 복음화|작성자 청춘
http://blog.naver.com/yoochinw/130072113025
기독교의 정치참여와 사회참여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원래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사회참여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그들은 관심사는 주로 자신의 영적성장과 참된 복음의 전도였다. 심지어, 개인 입장에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참여를 권장하는 개혁주의와도 입장을 달리했다. 그러나, 복음주의 일각에서는 이런 노선에 반발하여 분리주의를 거부하고 기독교의 적극적 정치사회적 참여를 주장하는 새로운 운동인 '신복음주의'가 태어났다. 신복음주의의 문제점은 크게 '에큐메니즘(Ecumenism)'과 '주권주의(Dominionism)'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교파 간의 단합과 일치를 신앙의 기본교리보다 우선시 하고, (복음화를 위한) 모든 기독교 간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에큐메니즘은, 성경말씀을 신화로 여기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물론이고 비성경적 교리로 가득찬 (적그리스도적인<<) 로마 카톨릭과의 연합에도 주저함이 없으며, 더 나아가 모든 종교와의 화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상을 이겨서 예수께 바친다"는 승리주의적 주권주의는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비성경적 사상으로 킹덤나우 사상으로도 불린다.
이 글에서는 신복음주의로 대변되는 '세계기독운동'이 주장하는 '복음화'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세계기독운동의 역사와 주권주의적 문제점들을 주로 앨 대거의 세계기독운동(THE WORLD CHRISTIAN MOVEMENT<<)이라는 글에서 발췌하여 정리해 보겠다.
다음은 세계복음화에 관한 로잔위원회 명예회장인 빌리 그래엄의 말이다:
1974년 로잔대회 이후,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소수자이었거나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서의 리더십을 제공하도록 점점 더 요청 받아 왔다. 복음전도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큰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큰 책임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독교 유산의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어떠한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복음화 시켜야 한다. 빈곤과 인구의 세계 문제들과 핵전쟁의 위협은 매시간 늘어 간다. 세계는 바로 지금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복음전도'와 '복음화']
앨 대거는 '복음전도'와 '복음화'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푸른 글씨는 앨 대거의 글의 내용이다.
복음전도(Evangelism)는 물론 정당한 이름이며 정당한 시도이다. 이것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져오기 위해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일이다. 참된 복음 전도는, 각 성도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성경적 진리와 행위를 지켜주는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심고 신자들을 제자로 삼는 것을 따른다.
복음화(Evangelization)는 글로벌, 에큐메니컬 '세계기독운동'이 전세계 교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이것이 나타내는 바는 사회적 정치적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똑같은 요소로서 결합시키는 일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족속'을 '기독교화' 시키는 것이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전도와 복음화 간의 구분이 없다. 하지만 세계기독운동에게는 구별이 있다. 본질적으로 그 차이점은, 복음전도는 영혼구원과 관계되지만, 복음화는 모든 국가들 또는 족속들을 정치적 사회적 행동을 통해서 영적으로 세속적으로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잔선언]
세계기독운동의 참 동기와 목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이런 구분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로잔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정되었다. 로잔위원회로부터 세계기독운동이 싹텄다. 세계복음화에 대한 국제대회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ICOWE 회장인 호주 시드니 성공회의 잭 댐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로잔은 복음화대회이지 복음전도대회가 아닙니다.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복음전도대회는] 많은 복음전도대회 중의 처음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온 세계의 많은 리더들의 마음 속에서의 지금의 생각은, 우리는 복음전파인 복음전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적절하게 표현해서, 복음화라고 불립니다.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 공식화된 로잔언약은 세계기독운동의 어젠다를 위한 길을 만들었다. 언약의 제 5항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자 모든 사람들의 심판자이심을 확인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체 인류사회의 정의와 화해에 대한 관심과 인류의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별 및 나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은 고유의 존엄성을 가지며,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존중되고 섬김 받아야 하며 착취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태만함과 그리고 복음전도와 사회적 배려를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여겼음을 통회하는 바이다. 비록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행동복음전도나 정치해방구원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 모두는 우리의 기독교적 의무임을 확언한다. 왜냐하면 두가지 모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우리 교리-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과연 기독교의 정치사회적 참여로 인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범죄와 질병을 없애고,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복음화'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대사명에 해당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뿐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에는 아픔과 괴로움과 억압과 착취와 부조리와 불평등이 지속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왕국은 마귀 사탄의 메이트릭스인 세상 질서, 세상 시스템과는 아무 상관 없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인 영적인 신자들의 영들, 곧 비가시적인 우주적 교회 안에서 이뤄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뿐이다." 복음화는 사회복음(Social Gospel)의 한 형태일 뿐이며, 이런 킹덤나우 사상은 미혹일 뿐다.
이제 신복음주의적 세계기독운동의 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 보겠다. 이 운동에는 신사도운동의 특징인 환상과 불, 안수와 임파테이션, 그리고 겉옷(외투 mantle)의 분여/전이를 볼 수 있으며, 그의 핵심에는 헨리에타 미어즈라는 여성이 있다. 다시 앨 대거의 글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800년대 말, 무디와 피어슨에 의해 캠퍼스에 불붙여진 해외선교의 욕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10만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해외선교에의 헌신을 약속하게 했으며, 이런 움직임은 학생자원봉사(Student Volunteer, SVM)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SVM에 이어 IVF, SMA 등의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조직되었다. SVM 리더들의 슬로건은 "우리 세대 안에 세계를 복음화하기"였다. SVM의 유산으로 현대세계선교에 큰 영향을 준 다섯 명이 배출되었으며, 그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주일학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헨리에타 미어즈였다.
실용주의자였던 그녀는 주일학교 교재를 만들어 출판했으며, 담당한 주일학교를 10배로 부흥시켰다. 그녀는 또한 포레스트홈 컨퍼런스센터를 세워 모든 교파로부터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녀의 명성은 복음화 그룹의 두번째 사람이자 친한 친구였던 찰스 풀러의 공이 컸다. 부흥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하던 풀러는 청취자들에게 컨퍼런스를 소개함으로써 부흥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을 포레스트홈으로 보냈다. 바로 이 포레스트홈이 신복음주의의 산실이 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이기려는" 헨리에타 미어즈의 불타는 욕구는 복음에 정치사회적 행동을 융합시켰다.
그녀는 또 버닝하트(불타는 심장) 펠로우십을 만들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거는 대생들에게 안수하고 그녀의 겉옷(mantle)을 분여했다. 그들은 가슴 속에 '버닝하트'를 받은 것이다. 복음화 그룹의 세번째는 고든칼리지 총장이자 목사였던 해롤드 오켕가이다. 오켕가는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를 세우는 데에도 기여했다. 풀러와도 친했던 그는 풀러신학교의 설립을 도와주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두 사람은 미어즈의 포레스트홈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에드윈 오르와 아민 게스웨인 등 5명이 이 에큐메니컬 캠퍼스 운동을 주도했다.
1946년 6월 포레스트홈에서 열린 교사 컨퍼런스에서 그녀의 설교에는 리차드 헬버슨(할리우드장로교회 부목사), 루이스 에반스 2세, 존 프랭크와 윌리암 (빌) 브라이트가 함께 참석했다. 빌 브라이트는 그 때 크리스천이 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이다. 설교 후 이들과 몇몇 젊은이들은 미어즈에게 그녀의 오두막에 가서 기도를 계속하자고 요청을 해서 그날 밤까지 기도가 이어졌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들이 함꼐 무릎꿇자 그들은 무력감과 무능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밤 늦게까지 울며 소리치며 주께 기도하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인도를 요청하고, 성령의 권능의 실재를 요구했다. 때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심에 따라 그들은 조용하기도 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매우 생생한 환상으로 응답하셨다. 그들 앞에서, 그들은 전세계 대학 캠퍼스를 보았는데, 세상을 변화시킬 권능을 손에 들고 있는 믿지 않는 학생들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맞다. 대학 캠퍼스-그것이 세계 리더십의, 세계 부흥의 열쇠였다.
그리스도를 위해 정복할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고, 정복의 시간은 지금이었다!
부흥을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가 핵심적이라고 본 미어즈는 "세상을 이겨 그리스도께" 바치는 그녀의 비전을 위해 남녀 전도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음은 그녀가 안수한 대표적인 리더들이다.
CCC
그녀의 겉옷(mantle)를 분여하기 위해 빌 브라이트에게 안수한 후, 그리고 그를 버닝하트 펠로우십으로 받아 들인 후, 그녀는 브라이트 부부를 그녀의 집에 데리고 가서 11년간 함께 살았다. CCC는 그녀의 응접실에서 태어났다. 네비게이토, 영라이프, 유스포크라이스트 등의 젊은이 사역과 마찬가지로 CCC를 통한 회심자들은 에큐메니칼 교리로 훈련 받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각자의 교회로 보내졌다.
영 라이프
영 라이프의 디렉터인 짐 레이번도 미어즈의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포레스트홈에서..
미국상원 담당 목사
버닝하트 펠로우십 출신인 리차드 헬버슨은 미국상원의 담당목사가 되었다. 그는 미국 국가기도의 날을 미상원이 선포하는 데 이바지했다.
할리우드 그룹
루이스 에반스 2세를 통해 많은 유명 연예인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켰다..
빌리 그래엄
그래엄에 의하면 헨리에타 미어즈는 그의 어머니와 아내 룻 다음으로 그의 사역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여자였다:
헨리에타 박사는 직접 간접으로 나의 삶에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사실, 나의 아내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나에게 이런 뚜렷한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여자는 없다. 그녀의 자비한 영, 헌신적 삶, 단순한 복음에의 확고함, 그리고 그녀의 성경지식은 나에게 지속적인 영감이자 놀라움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았던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 중의 한 명이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미어즈의 목사였으며 후에 노스웨스턴 스쿨의 총장이 된 라일리 목사는 그의 외투를 그래엄에게 주려 했으나, 그래엄은 그의 임파테이션 받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라일리의 죽음에 임박해서 그의 외투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노스웨스턴 스쿨의 총장이 되었으며, 포레스트홈에서도 가르쳤다. 어느날 밤, 리차드 오르는 빌리 그래엄이 진짜로 라일리의 겉옷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의 겉옷을 그래엄에게 주기 위해 안수한다. 이럼으로써 그는 빌 브라이트, 리차드 핼버슨 그리고 다른 버닝하트 펠로우십 멤버들과 같이 인정된, 기름부음 받은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아민 게스웨인의 기도집회를 도우며 전도시를 돌아 다녔다. 그는 거의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 신부들을 포함한 에큐메니칼적 대중들 앞이 아니면 강단에 오르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출처] 신복음주의와 복음화|작성자 청춘
http://blog.naver.com/yoochinw/13007211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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