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브란의 교회성작학 비판
맥가브란의 교회성작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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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브란의「교회 성장 이해」(Donald McGavran‘s Understanding Church Growth) 류향석 문제의 제기 한국교회는 복음이 처음 전파된 이래 경이로운 성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양적인 성장이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근래에는 성장률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몇 몇 교회들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대형화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내면을 들추어보면 과연 한국교회는 바르게 성장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교회 안에는 세상의 물량주의 기복신앙, 신비주의 그리고 교파분열 등이 한국인의 정신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전통신앙의 무속(巫俗) 즉 샤머니즘(Shamanism)과 결합하여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복음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고 교인수를 얼마나 끌어 모을 수 있는가에 대해 모두 혈안이 되어 있다. ‘교인수=교회의 질과 목회자의 능력’이 공식화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오늘의 혼란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오늘의 물량주의 수량주의, 성공지상주의의 교회현상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건전한 신학의 빈곤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 교회성장의 신학적 기초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은 맥가브란으로 시작된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파의 신학에 지금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풀러신학교가 아세아연합신학교와 제휴하여 박사과정을 한국에서 운영하면서 맥가브란의 신학이 절대적 진리처럼 번져 나갔다. 1. 맥가브란의 신학과 그 공헌 선교의 결과는 숫자로 표시되는 교인 수로 나타나야 한다는 견해를 교회성장(church growth)이라는 말로 정리되어 체계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 1908-1990)이다. 그는 교회는 셀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을 헤아리지 않는 일에 특별히 영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므로 수적인 연구방법은 교회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한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객관적 수치사용은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 계시 전체는 구원받은 자의 수를 헤아리는 것을 전제하고 하나님의 계시는 은혜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될 때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사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실제적으로 교회성장은 수적인 성장에 훨씬 강조하고 있다. 먼저 맥가브란이 교회 성장학을 주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맥가브란은 세속화되어가고 있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반대하였다.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은 그 자체로 세속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이 이제는 교회 안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에 대하여 맥가브란은 교회는 선교라고 말하면서 가장 불완전한 교회라도 그것은 가장 좋은 비신앙적인 사회보다 더 하나님의 진리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학은 선교개념이 세속화하고 선교활동이 패배주의로 기력을 잃고 있었던 때에 나온 것이다. 그는 이런 부정적 상황 속에서 기력을 되찾을 수 있게 하였다. 교회는 성장할 수 있다는 확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감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론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성장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성장의 필요성을 일깨우며, 효과적인 성장론을 연구, 학습, 실천하게 하는 이론적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맥가브란의 성장 이론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맥가브란의 이론은 탐색신학(search theology)과 추수신학(harvest theology)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교회성장을 위하여 수용이론(receptivity principle), 동질집단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 대중운동(people movement)같은 개념들이 적극적으로 채택된다. 그리고 물론 이런 원리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성서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그의 교회성장의 성서적 근거로서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성경은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들이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그는 ‘더함’(adding)의 성서적 개념을 ‘성장’(growing)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또 하나의 중요한 구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행 28:19-20) 그는 이 본문으로부터 기독교화의 단계를 ‘제자화’(discipling)와 ‘완전화’(perfecting)로 구분하는데, 제자화는 개인이나 단체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도록 하는 단계이며, 완전화는 그들을 신앙 속에서 양육하여 윤리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단계라고 주장한다. 이 두 단계를 구분하는 것은 모든 민족을 기독교인이 되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며,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단계와 중복되지만,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단계를 선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시작된 맥가브란의 이론은 마침내 미국 교회성장연구원 헌장으로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교회 성장학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특별히 관련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증가시키며,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며, 건전한가를 조사하는 과학이다. 교회 성장학은 그것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한 신학적 원리와 도날드 맥가브란에 의해 이룩된 기본적 작업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의 사회 및 행동과학의 최선의 지식을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2. 맥가브란 신학 비판 맥가브란의 신학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영향도 지대한데 그 신학적 및 성경적 기초가 잘못된 부분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 있겠다. (1) 인본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맥가브란의 교회성장은 교회의 멤버들을 구체적으로 셀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과 그 분의 사역을 인간의 머리로 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교회성장학이 교회의 수적 증가와 교인 수의 증가를 중점적으로 취급하면서 이를 위한 이론과 원리 그리고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더함은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자유로우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은밀한 역사임이 분명하다. 교회성장을 이루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것은(제자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라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성장학파들은 이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교회 성장학의 가장 큰 약점이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방법과 전략이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알미니안적 전통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아울러 이는 미국적인 실용주의를 도구로 채택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실제적인 적용의 면에서는 미국식 패권주의를 엿볼 수 있다. (2) 성경적 기초가 약하다. 교회 성장학의 약점은 또한 얕은 성서해석에 있다. 그 이론들은 성서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성서의 인용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대표적인 성서인용의 예, 맥가브란이 제자화와 완전화의 이론을 위해 사용하는 마28:19-20은 잘못된 주석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 본문은 제자화와 완전화의 구분이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모든 민족들’(a whole nations)은 동질집단 이론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임도 불구하고 맥가브란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의 증가를 전하는 행 2:41, 47, 5:14, 11:24 등에서 강조점은 신자들의 수적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성서해석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신학적으로도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신학에 있어서 성서적 근거가 결여된 학문분야란 있을 수 없다. 중요하게는 그들이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일의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일이라면, 증가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3) 반성경적 요소가 있다. 다음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맥가브란의 성장 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질집단의 원리에 있다. 현실적으로 다민족 사회 속에서 동질집단 중심의 선교방법이 효과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원시공동체부터 강조해 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인종적 장벽 제거의 주제는 신약성서 전체에 기초가 되고 있다. 화해와 일치와 연합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가 중점적으로 선포해야 하는 복음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맹목적인 수적증가의 방법으로 택하도록 요구되는 동질집단의 원리는 비신학적 또는 反성서적인 원리이다. 특히 성장학파에 의해 초대교회의 성장의 예는 물론, 대표적인 교회 공동체의 모형으로 제시되는 행 2:44f.과 4:32-47의 그리스도교 원시공동체의 원형은 분명히 동질집단의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한자리 모여 이룬 사랑과 친교와 봉사의 공동체가 그리스도교의 원형이었다면, 오늘의 교회도 이 원형을 닮아가야 하며, 특별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구성된 성만찬 의식에 동참함으로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동질집단이 되는 것과 동질집단 중심으로 성장한 교회의 동일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해석이다. 지연이나 혈연, 학연 등의 원인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서, 이 원리를 추종하는 것은 화해와 일치와 연합을 지향해야하는 교회의 모습을 분열과 갈등의 구조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재고해야 할 점이다. 맥가브란에 의하면 동질집단 원리는 자연적으로 대중운동(people movement)으로 이어지며, 대중운동의 전략은 집단개종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장을 낳는다고 한다. 신약의 시대는 물론 2000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유형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그의 주장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운동이 곧 복음화 또는 기독교화는 아니다. 그는 전제군주제와 봉건제와 식민제도에 의해 양산되었던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문제는 간과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는 결코 대중운동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을 위한 대중운동 전략은 교회의 내적성숙 보다는 외형적 성장을 지향하는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4) 성장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의 문제점들 속에서 공통점으로 지적되었던 성장개념에 대한 불균형이 교회성장 이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교회성장학파들이 질적 성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수적성장을 훨씬 더 강조해 왔다. 이러한 숫자에 대한 강조는 초대형 교회를 최선의 교회형태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많은 교회로 하여금 성공지상주의에 노예가 되도록 해왔다. 물론 최근의 교회성장학파의 사람들이 교회성장을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질적 내적 성숙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교회의 존재이유나 본질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비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성장의 개념이 숫자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숫자의 증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 선교학을 교회 성장학으로 대체함으로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를 선교의 중심 용어로 주장하는 교회성장학파의 여러 이론들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물량주의적 초대형교회를 꿈꾸는 많은 목회자들에게 매력적인 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대형 교회들이 교회성장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성장 제일주의라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형성시킬 뿐 아니라, 성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형적인 교회들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질적 성장이 따르지 않는 양적 성장으로는 사회변화 혹은 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되어야만 기독교적 가치, 경제적 정의, 인종적 형제애, 사회적 개선, 혹은 민주주의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한 맥가브란의 말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이는 현실성이 없다. 문제는 그러면 앞으로의 한국 개신교의 성장은 어떻게 될 것이며,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다. 균형 잡힌 발전이 필요하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수행하면서 따라오는 양적인 부흥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선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업이라면, 이 사업은 영적, 육적, 질적, 양적인 모든 면에서 균형 있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지금 한국교회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은 그 동안 균형을 잃고 있었던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하나님 나라 운동”이 확산되고 나아가서 개인과 공동체의 전체적인 삶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진정한 ‘복음화’를 위한 철저한 신앙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교는 개인구원을 위한 선의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평화와 정의사회의 구현을 위해서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낮은 데로 임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받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부분에서 성육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에 올바르게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이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한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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