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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중에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중에서... (옥성호)
자료출처 http://cafe.daum.net/jce21/BvWP/33


[설교에 대해]

  우리는 설교의 본문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는 설교를 얼마나 자주 목격하며 살고 있습니까?(p.44) 요즘 교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교리를 무시하고, 교리를 중요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p.244).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말씀의 진리에 무지한 이유는 성경의 충분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반대로 성경의 충분성을 믿지 않으니까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성경을 잘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p.310). 우리가 너무 감정적으로 성경을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p.311).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성경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충분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현재 큐티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몇 구절 정해진 본문을 읽은 후 적용거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수준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의 전체를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을 진지하고 깊게 읽어야만 합니다. … 성경을 깊고 넓게 읽어야만 합니다(p.320).



[기독교 심리학에 대해]

  기독교 심리학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성경을 심리학 이론에 맞춰 왜곡하는 것입니다. … 기독교 심리학은 많은 경우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성경 말씀을 심리학 이론에 맞추기 위해 왜곡 또는 과장하게 되는 위험에 직면한다는 사실입니다(p.94). 좀 더 심하게 표현한다면 기존 심리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 몇 개의 성경 구절을 양념으로 올려놓은 것이 사실상 기독교 심리학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p.81). 현실적으로 기독교 심리 치료 또는 내적 치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이상, 성경을 형식적으로라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운 기독교 심리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들이 공부한 심리학 이론에 맞추어 성경을 적용하려니 당연히 성경 말씀을 심리학 이론에 맞추어 왜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무서운 함정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혼합시키는 것입니다(p.98-99).

  기독교 심리학은 인간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내면의 치료라고 생각합니다(p.99).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반기독교적입니다. … 심리 치료에 있어서 인간 문제 해결은 결국 자기 사랑으로 귀결됩니다(p.116). ‘어떻게 해야 내가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심리 치료의 핵심 과제입니다. … 심리학의 모든 중심은 인간을 향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시작해 인간으로 끝납니다. 이에 반해 성경은 어떠합니까? 성경의 모든 중심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p.117). 심리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심리학은 인간의 이 행복 달성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큰 증거이자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합니다(p.118).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중에서... (옥성호)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과연 성경적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교회 개혁은 시작되며,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부터 교회 부패는 시작된다(p.9). … 기독교를 이성적 탐구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기독교도 문제이지만 머리를 포기한 기독교는 훨씬 더 위험합니다(p.92).

  상품을 광고할 때 광고의 형태는 자주 바꿀 수 있어도 그 속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는 바꾸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p.33). … 세상을 향하는 마케팅 교회의 방향은 올바르지만 마케팅 교회가 들고 나아가는 내용은 잘못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간 것까지는 좋은데 교회의 본질을 놓고 나아갔습니다(p.61). … 교회가 세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교회가 바로 마케팅 교회입니다(p.89). … 각자의 색깔(개신교와 가톨릭)을 포기하더라도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면 무엇이라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p.97). …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프래그머티즘이 유발하는 가장 큰 위험은 수많은 가짜 크리스천의 양산입니다. 가짜 크리스천, 다른 말로 하면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은 프래그머티즘을 통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프래그머티즘에 빠진 교회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고민합니다(p.99). … 오늘날 교회에서 간증 집회가 많이 열리는 것은 프래그머티즘적인 사고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증 집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101). … 오늘날 성경 말씀을 떠난 간증들이 판을 치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의 교회들이 프래그머티즘에 물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p.103).

  왜 오늘날 마케팅이 이렇게 교회 속에서 이처럼 득세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케팅이 약속하는 즉각적 효과의 유혹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지하기보다 즉각적인 결과와 반응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 왜 우리는 마케팅의 즉각성을 의지합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p.15). … 마케팅 교회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복음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p.60). … 교회는 마케팅의 유혹을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적 상황’이라는 말로 정당화하기에 더 바빴습니다(p.166). … 부흥이냐 위기이냐를 결정짓는 시금석은 교회가 지금 말씀 속에 있는가 아니면 말씀 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의 여부입니다(p.384). … 마케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종시킵니다.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겠다는 애초의 좋은 의도는 마케팅의 본질 앞에서 힘없이 무너집니다. 마케팅은 본질상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거부감을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사라지는 순간 기독교의 교리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p.435). … 마케팅 교회 속에서 복음이 상품으로 인식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복음의 가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있듯이 말입니다(p.406). …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는 우리 형상의 본질인 하나님을 볼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비로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교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바로 선포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p.452). … 교회에서 말씀의 권위가 사라질 때 말씀의 능력도 함께 사라집니다. 말씀이 교회 속에서 사라질 때 가장 중요한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인간은 영적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p.456).

  (성경을 제 멋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꼬며...)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성경 본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내게 어떤 효과를 주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나에게 확실한 ‘필(feel)'을 꽂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설교에서도 굳이 성경 본문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과 관련 없는 얘기로 채운 설교를 더 이상 누가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가 감동과 재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일 뿐이지요.  (이와 같은 설교를 하는 목사의 경우를 예로 들며...) “그래, 내가 성경 본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설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감동만 엄청나게 받더라. 사람들이 감동받고 돌아갔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냐? 너 아까 내 설교에 우는 그 사람들 못 봤냐? 사람들이 듣고 눈물까지 흘리는 설교보다 더 훌륭한 설교가 어디있냐? 너 그런 얘기하는 거 보니까 은혜를 좀 더 받아야 되겠다. 내 설교 테이프 가져가서 다섯 번만 반복해서 듣고 다시 와라.”(p.109)

  우리 주위에는 바른 복음이 아닌 잘못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 교회로부터 우리는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생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찾아 그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p.112). … 채워줄 수도 없으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겠다는 헛된 약속을 하는 마케팅 교회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마케팅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결국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마케팅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마케팅 교회에서 당장의 필요를 채우면 채울수록 점점 커지기만 하는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p.455).  (☞ p.251의 예화 참조)

  이 글을 읽은 분 중에 저와 같이 오늘날 마케팅 교회에 대항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시는 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항상 어느 시대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지키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비록 소수이기는 했지만 진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교회가 바른 성경의 진리대로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행동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사의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워필드는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 진리는 믿는다고 고백할 가치도 없는 진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워필드의 말처럼 우리가 진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진리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믿고, 진리대로 살며,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수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진리는 다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있습니다(p.457).

 
4장 :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

1. 자기 사랑

  에릭 프롬의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 사고입니다(p.158). … 인간 본성에 대하여 이렇게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정신분열이 아닐까요?(p.159) … 그가 나름대로 개념화한 사랑의 정의, 사랑의 종류 등은 ‘거룩한’ 인간이 드러내는 한 측면을 표현한 것일 뿐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은 너무 확실합니다(p.161).

  자기 사랑이 가진 오류

1) 자기 사랑을 하나의 치료약, 다른 말로 하면 결과를 내기 위한 원인으로 인식하는 점
  이 자기 사랑은 단순히 교회와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에서도 각종 사회 문제까지 다 해결 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주는 하나의 만병통치와 같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존감의 결여가 범죄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식으로까지 오해를 주고 있습니다. … 자존감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범죄의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못 유도된 자존감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죄성을 합리화시키며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까지도 있는 것입니다(p.165).

2) 자기 사랑이 너무 모자라서 문제라는 시각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 사랑이 부족한 인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이지 결코 모자라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p.166).
  성경은 인간의 자존심에 근거한 자존감을 인간이 가져야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 자신을 보호하는 이 자기 사랑이 가진 위험 가운데 하나는 이 자기 사랑이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되기 쉽다는 것입니다(p.174). … 하나님을 바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도 바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을 바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긍지에 차서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p.178). … 내가 나 자신을 바로 보도록 노력하지 않고 나 자신이 얼마나 사랑할만한지를 깨닫기 위해 애쓰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방법이다(p.181).

2. 긍정적 사고방식

  나폴레온 힐은 사실상 적극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p.229).
  저는 로버트 슐러에게 사실상 성경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들과 분열하고 구별하게 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는 분열적 교리라고 부르며 거부했기 때문입니다(p.189)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입니다. … 분명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라는 긍정적 선언을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다져 가는 제자 베드로에게 격려를 하고 북돋아 주지는 못할망정 ‘너는 분명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그의 신념에 찬물을 끼얹으셨습니다(p.236). … 예수님은 눈과 팔이 잘못하면 아예 눈을 빼 버리고 팔을 잘라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긍정적인가요?(p.237) … 기독교의 가르침은 철저히 인간의 자존심과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희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p.239). … 죽음이 있는 한 우리 인생은 본질적으로 결코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자체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도록 그 본질 자체를 규정하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성경 속에서 매우 긍정적인 한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드러내는 ‘긍정의 화신’을 우리는 만납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너는 죽지 않아, 걱정하지 마, 죽기는커녕 너는 하나님이 될거야.’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p.240).
  긍정적 사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은 결코 자기에게 중요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이 되라고 말하는 사람 자체가 이미 부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 왜 긍정적이 되라고 상대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까? 그 자체가 자기모순을 안고 있습니다(p.241). …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긍정적 사고방식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능력을 부정하는 기독교의 무서운 적입니다(p.254).

3. 성공의 법칙

  우리가 마치 어떤 영적법칙을 사용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가 사용하는 영적인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거대한 에너지로 생각하는 자연 종교의 신처럼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말과 상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결국 생각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 즉 자신의 마인드를 다룰 수 있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람은 마인드를 통해 현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실재까지 지배하는 능력, 마인드가 현실을 지배하는 ‘성공의 법칙’을 손에 넣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p.262).
  우리가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의 생각의 변화가 보장된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태도에 따라 결과가 결정난다면 왜 이스라엘은 그 큰 여리고를 무너뜨린 후에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가 싸운 아이 성의 전투에서는 대패했습니까?(p.295-296) … 자신의 욕망과 꿈과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면서 말과 상상이라는 기법을 통해 이 비전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인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p.300). …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의 공식들을 꺼내 쓰기만 하면 네가 신이 된다.’는 노골적인 자연주의 종교의 가르침이나 ‘믿음을 발휘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식의 잘못된 기독교 가르침은 포장만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p.301). … 과거 인간은 몸으로 돌을 날라서 바벨탑을 쌓았지만 이제는 말과 상상만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는 바벨탑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p.305).



5장 :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

  심리학은 성경이 말씀하는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 대신 알 수 없는 미지의 에너지로서의 신 또는 내 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나의 모습으로 바꿔치기 했습니다. 또한 심리학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성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p.309).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듯 성경의 말씀과 극단으로 배치되는 다른 주장들에 대해 교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말씀의 진리에 무지한 이유는 성경의 충분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성경을 모르니까 성경의 충분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반대로 성경의 충분성을 믿지 않으니까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성경을 잘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p.309-310). …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가지는 가장 잘못된 자세 중의 하나가 바로 ‘느낌’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감정적으로 성경을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p.311). …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성경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의 전체를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을 진지하고 깊게 읽어야만 합니다. … 성경의 본문이 원래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기 위해 성경을 깊고 넓게 읽어야만 합니다(p.320).
  우리는 말씀을 모르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말씀은 모른 채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의지력’을 마치 무슨 신앙의 훈장이라도 되듯이 자랑하는 잘못은 더더욱 범하면 안 됩니다. 기도를 요가와 같은 무슨 수행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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