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와 세속화 신학 현대신학 이야기
2011. 6. 11. 6:07
https://blog.naver.com/mateo501/30110683881
본회퍼는 인간적인 매력과 신학적으로 다양성을 지닌 특이한 신학자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급진신학의 맹주로 불린다. 그의 생애는 그의 신학만큼이나 다채롭다. 튀빙겐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였고, 초창기부터 리츨학파의 자유신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칼 바르트의 위기신학에 관심을 가졌다.
1930년 본회퍼는 24세의 나이로 베를린대학 조직신학 교수로 발탁되었다. 당시 미국 유니온 신학교 연구교수로 도미하여 뉴욕의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았고 멕시코, 쿠바를 방문하여 미국과 이웃나라들의 비교하면서 미국사회의 깊은 상처를 목격하였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반(反) 나치 입장 때문에 점점 더 고립된 길을 걷게 되었고 이후 영국에 머물며 1년여 독일인 교회 목회생활을 한 후 다시 독일로 귀국하였다.
독일 고백(告白)교회의 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940년 나치에 의해 신학교가 폐쇄될 때까지 근무하였다. 본회퍼는 반(反)나치 지하운동에 가담하여 활동 중에 체포되어 1945년 처형되었다. 그의 과격한 신학의 형성은 1944년 히틀러 암살 기도 실패 이후, 거대한 악의 세력과 투쟁을 그의 사명으로 삼았던 특수 현실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a) 본회퍼의 신학사상
본회퍼 신학은 1942년 투옥된 시기를 계기로 그 이전을 전기, 이후를 후기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후기 신학사상도 어떠한 학문적 논문을 통해 발표된 것이 아니라 옥중에서 친구(베트게)에게 보낸 서간문을 통해 알린 신학적 내용이 전부이다.
그가 옥중에서 명상으로 얻은 신학적 결론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숙한 세계에 사는 성숙한 인간들에게 성서적 개념에 관한 비종교적인 해석을 토대로 하는 비종교적인 기독교를 확립할 것을 제기하였다. 즉,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세상적인 복을 주시고 인간의 육체적 요구를 모두 들어주시는 만능의 방망이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 회퍼에 의하면, 계몽시대 이후 서구인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성숙된 사회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함에도 현실 교회는 하나님을 여전히 초월적인 하나님으로 보고, 그 절대적 초월자를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사로 받아들이는 과오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회퍼는 하나님은 죽음, 고통, 죄악 등 인간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만능의 해결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체험되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이 다른 세계(死後 世界)에서나 존재한다면 그런 신은 이미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성숙하여져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가므로 이제는 신의 존재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신이 요구된다면, 삶의 한계적인 상황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의 중심에 놓여지면, 그 다음 과제는 구원의 의미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과거처럼 타계적(他界的) 구원관은 별로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이 세상의 삶을 건설하는 일을 돕는 현세적(現世的) 구원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그는 출애굽의 구원을 철저히 현세적 구원의 결정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본 회퍼는 이상과 같은 새로운 신학의 초안을 남긴 채, 집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처형되었다. 그의 신학의 방향과 성격은 그의 옥중 서간문에 충분히 남아있다. 그의 신학적 성격은 존재론적 입장에서 보는 기존의 신관을 외면하고, 실용적 입장에서 보는 그리스도관(기독론)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학의 방향은 수직적인 면보다 수평적인 면, 즉 남을 위해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간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기독론”을 강조하였다. 믿음이란 남을 위해 산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이라고 술회하였다.
교회론에 대하여, 현대교회의 사명이 영혼구원이 아니라, 사회개혁에 있다고 보았다. 교회란 인류복지, 즉 이웃을 위하여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현대교회의 활동은 교회가 가야할 방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대해, 사회적 각성에서 시작되며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세속적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되어진다고 확언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영적 차원에서 내려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을 가지고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며, 지금까지 세상을 교회로 이끌려던 방향을 바꾸어 교회를 세상 속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 회퍼의 입장은 교회를 철저한 세속화 운동만을 뒷받침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며, 정통적인 구원관을 신화적 구원관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구원관에 대하여, 본회퍼는 부활의 소망에 근거하여 인간이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어 무덤 저편에서 영생구원을 얻는다는 종래의 구원관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기독교인의 부활소망은 신화적인 내세(來世)에 관한소망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재탄생 하는것이며, 이러한 구원을 “역사적인 구원”이라 말할수있다.
그는 교회의 세속화 운동을 통한 역사적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교리적 논쟁을 지양하고, 전통적인 사도신경도 재검토해야 하며, 기독교 속에 깃들여있는 모든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b) 본회퍼의 신학사상 비판
그의 옥중서간에 나타난 그의 신학은 인본주의 신학에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만연된 급진주의 신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1) 본회퍼의 신관(神觀)
그는 하나님을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모범성과 연관시키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객관적인 인격적 존재를 대체하여, 주관적 사랑을 말함으로써 결국 무신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 대상으로 믿으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나타낸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된 것이므로, “이웃을 향한 자아 희생적인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요일 4:8)라고 한 것은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사랑이란 속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의 표현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사랑 그 자체가 한 인격이라는 말이 아니고, 사랑은 그 인격을 이루는 하나의 본질 또는 속성에 불과하다는 뜻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면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한다고 본회퍼는 말한다.
또한 하나님 없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립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인격적 존재로서 아버지로 부른 곳이 400회 이상 등장한다고 밝혔다.
(2) 본회퍼의 구원론과 교회론
본 회퍼의 생각대로 교회가 개인의 구원문제를 무시하고 사회개혁만을 위해 활동한다면 이는 성서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온 천하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개인의 영적구원 없는 사회구원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과 상치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한 인간의 구원과 회심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사회개혁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회퍼는 교회와 사회의 명백한 분리선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서(요17장)에 근거한 교회는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구별된 백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와 일반적 의미에서 동일시 할 수 없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본 회퍼의 신학사상은 교회의 신령한 성격을 오해한데서 생긴 것이다. 사회참여는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들의 구주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기독교인의 비종교화 운동
본 회퍼의 비종교화 운동은 하나님의 편재성만을 중시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인하는 잘못에서 온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의 비종교화 운동은 교회의 세속화를 표방하므로 비성서적이다.
그의 신학의 방향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향해서 보인 모범된 생활면을 더 중시하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경시하고, 생활에 치중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
[출처] 3.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와 세속화 신학 |작성자 마테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