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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기자의 Oxford Letter(48)] 톨킨과 '반지의 제왕'

문갑식 기자의 Oxford Letter(48)] 톨킨과 '반지의 제왕'


[문갑식 기자의 Oxford Letter(48)] 톨킨과 '반지의 제왕'
입력 2015.02.05 16:47 수정 2015.02.11 18:43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뭘까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1위는 찰스 디킨스 ‘두 도시(都市)이야기’, 2위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4위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물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입니다.

5위에는 동양소설 홍루몽(紅樓夢)이 유일합니다. 그렇다면 3위는? 오늘 다룰 존 로널드 루엘 톨킨(J.R.R Tolkienㆍ1892~1973)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입니다. 1~5위 모두 1억부 이상이 팔렸군요. 이것은 단행본(單行本)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시리즈물로 따지면 순위가 바뀝니다. 1위는 J.K 롤링의 ‘해리 포터’ 2위는 R.L 스타인의 ‘구스범프스(Goosebumps) 3위는 J.P 돈리비의 ‘진저맨(The Ginger Man)’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반지의 제왕’은 시리즈인데 왜 시리즈물 순위에 없는 걸까.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 톨킨은 이 책을 한권으로 내려 했지만 초판 인쇄 때 2차대전 때문에 종이가 부족해 3권으로 나눠낸 겁니다. 그 뒤 이 소설은 한권, 3권, 7권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됐습니다. 평론가들은 “모든 형태의 것을 합치면 반지의 제왕이 판매된 수량은 1억5000만으로 추정된다”고 봅니다. 전쟁은 이런 에피소드까지 만듭니다.

과연 한국에서도 ‘반지의 제왕’은 6권(황금가지 출판사) 혹은 5권(예문사)으로 다양하게 나왔는데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영국 더 타임스로부터 “20세기 영미(英美)문학의 10대 걸작”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입니다. “영어권 사회는 ‘반지의 제왕’을 읽은 사람과 읽게 될 사람들로 나뉜다”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지 않는 건 용서받을 수 있어도 판타지 독자가 ‘반지의 제왕’을 읽지 않는 건 구제(救濟)의 여지가 없다”는 말도 유명합니다.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 ‘20세기 판타지 소설의 새 장(章)을 연 소설’ ‘만화-게임으로도 히트한 원작’…. 반지의 제왕에는 이런 평가도 있습니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낸 게 1954년입니다. 그해 1-2부가 나왔지요. 1년 뒤 3부가 출판됐는데 각각의 제목이 ‘반지원정대(The Fellowship of The Rings)’ ‘두 개의 탑(The Two Towers)’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s)’입니다. 몇 년 전 관심이 쏠렸던 영화도 이런 순서였습니다.
옥스포드대가 배출한 많은 작가 가운데 가장 흔적이 뚜렷하게 많이 남은 이가 톨킨입니다. 어느 겨울날 아침 저는 톨킨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손에는 옥스포드대가 기록해놓은 ‘톨킨의 지도’ 한장이 있습니다. 톨킨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은 액세터 칼리지-펨브로크 칼리지-마그달렌 칼리지-머튼 칼리지 네곳입니다. 이 칼리지들은 옥스포드 중심가에 흩어져 있습니다. 고색창연한 옥스포드의 도서관들에도 그는 살아있습니다.

지금 중앙도서관인 애쉬몰리안 도서관의 전신(前身)인 올드애쉬몰리안 빌딩은 옥스포드에서 가장 오래된 블랙웰서점 바로 위고요, 하버드대학이 이름을 따간 ‘래드클리프 카메라’-원형건물-에도 톨킨은 숨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인트존스스트리트, 노스무어로드, 애디슨워크같은 곳은 그가 아내와 함께 전세로 살았던 집들과 산책로지요. ‘피누스 니그라(Pinus Nigra)’는 옥스포드 외곽의 야트막한 야산에 있는 한그루 나무로, 톨킨이 평생 “저 나무가 바로 나”라고 했던 장소입니다.
톨킨의 사후 옥스포드시는 이 위대한 작가를 기려 두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그것이 ‘두 그루의 나무(The Two trees)’로 문학추종자들을 맞고 있지요. 옥스포드 북부의 울버코트 묘지에 가면 톨킨 부부가 잠들어 있고요.

하루 날을 잡아 발에 힘을 줘가며 대가의 자취를 밟아보는 것은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대단한 호사(豪奢)로 여겨집니다. 우리도 문학가들의 발자국을 남길 수도 있을텐데 있는 것이라곤 들어찬 메밀국수 집들뿐이니…

톨킨은 1892년 1월3일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공(南阿共)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습니다. 네살 때 영국으로 와 옥스포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인 1925년부터 1959년까지 옥스포드대 교수를 지냈지요. 톨킨은 어렸을 적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 세상을 떴으며 어머니마저 그가 12살 때 당뇨로 사망했습니다. 아버지 사후 외가 쪽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줬는데 그게 끊긴 것에는 종교적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외가 모두가 성공회(聖公會)를 믿는 데 반해 로마가톨릭으로 회심(回心)했습니다. 그러자 외가 쪽 친척들이 등을 돌렸다지요. 어린 톨킨은 이런 일을 보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순교(殉敎)’로 봤다고 합니다.

킹에드워드스쿨과 성필립문벅학교를 다니던 그는 1911년 옥스포드대에 입학했을 때 고전을 공부하다 중간에 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톨킨은 1916년 3월, 55년을 함께한 평생의 반려 에디스 브렛과 결혼합니다. 처음 톨킨이 에디스를 만난 것은 16살 때인데 나이는 에디스가 세 살 많았으며 종교도 개신교로 톨킨과 달랐습니다. 당시 톨킨을 돌보던 신부는 “21살 이후에 다시 만나라”고 권유했고 톨킨은 이 말에 따랐다고 합니다.

톨킨은 결혼 직후 제1차 세계대전에 지원병으로 참전합니다. 1차대전은 참호전(塹壕戰)으로 대변될 만큼 전장의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톨킨도 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병을 얻어 1916년말 후방으로 후송됐습니다. 병이 심해 1년 반 동안이나 치료받으며 사라진 신화에 대한 책을 쓰기로 구상하고 1925년 북유럽 신화(神話)인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모태(母胎)입니다. 이 책에는 아내 에디스가 반영돼 있다고 합니다. 톨킨을 즐겨 독미나리 숲을 에디스와 함께 산책했는데, 에디스가 남편을 위로하는 귀여운 춤을 추자 소설 등장인물인 베렌과 루시엔에 아내 에디스를 투영(投影)시킨 겁니다.

세계 각지의 신화를 연구한 학자들이 말한 바로는 한 지역의 신화나 전승(傳承)은 타 지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례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수메르라는 고대(古代) 왕국이 있었지요. 그게 기원전 24세기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곳의 ‘길가메쉬 서사시(敍事詩)’를 보면 노아의 홍수가 연상되는 대홍수(大洪水)부터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꽤 유사합니다. 길가는 ‘노인’ ‘조상’을 뜻하고 ‘메쉬’는 ‘젊은이’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어른들로부터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전승된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요. 이게 유대 지역으로 넘어와 각색(脚色)을 거쳐 구약성경 창세기 무렵의 설화로 자리 잡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유럽의 신화가 차이가 납니다. 남부는 그리스-로마신화, 즉 제우스가 최고지만 켈트족이 지배한 서부는 아테포마루스, 벨레누스, 알라우누스(태양신)-벨라투카드로스, 카뮬로스(전쟁 신) 등으로 나뉘지요.

북유럽은 게르만족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신화가 다른데 스칸디나비아의 신화의 골자는 거인과 세상이 망할 때까지 싸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신(主神)은 오딘과 토르인데 오딘은 귀족, 토르는 평민이 믿는다지요. 구조를 보면 신→거인→인간과 난쟁이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엮어가는데 다른 지역과 달리 기후가 춥고 척박해서 신화 자체의 분위기도 매우 비장하며 황량한 것이 특징이며 ‘아홉(9)’이라는 숫자와 연관된 게 많습니다.

톨킨은 ‘잃어버린 이야기들’에 이어 계속 이 지역의 신화를 연구하다 1936년 ‘베어울프(Beowolf)’를 씁니다. 베오울프는 스릴러물이나 액션물에 살인마의 상징처럼 나오지만 실제론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영웅입니다. ‘베오울프’는 악력(握力)을 무기로 모험을 떠나는데 그 내용이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1010년쯤 씌여진 필사본으로 그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영미권에선 고대 영어로 이뤄진 가장 오래된 문학으로 불리지요.

기본적인 구조는 ‘괴물 그렌델과의 전투’→‘그렌델의 어미와의 전투’→‘용(龍)과의 전투’인데 마지막에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시다시피 용(드라곤)은 동양에서는 왕을 상징하지만 서양에선 악을 상징합니다. 톨킨은 ‘베오울프’에 이어 북유럽의 신화적 상상력을 환상적으로 엮은 ‘호빗’-여러분도 잘 아시는, 요즘 개봉된 영화-을 1937년 출간한 뒤 마침내 1954년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아 문단을 장악합니다. ‘호빗’을 쓰기에 앞서 그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1920년에는 리즈대학 언어학 조교로 강의하다 1924년 리즈대에서 정(正)교수가 됐으며 1년 뒤인 1925년 옥스포드대에 교수로 돌아옵니다.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씻고 대학교수로 신분이 안정되면서 아이들까지 자라나자 톨킨은 행복한 나날을 지내지요. 그러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바로 ‘호빗’을 쓴 계기가 됩니다. 톨킨은 자기가 아이들에게 들려준 허구적인 이야기가 출판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지요. 그런데 우연히 이 책을 읽은 런던 출판사 ‘조지 알렌 앤드 언윈’의 여직원이 출판을 톨킨에게 강력히 권했습니다.

‘호빗’이 예상외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출판사는 ‘속편(續篇)’을 요청하게 됐고 그것이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지요. 이렇게 출판의 역사를 보면 유능한 편집자 한명의 혜안(慧眼)이 명작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빗’에 이은 ‘반지의 제왕’의 스토리는 악(惡)의 군주 사우론(Sauron)이 세계를 지배하려 절대반지를 만들었다가 요정ㆍ인간의 공격을 받아 암흑세계로 사라지면서 시작되지요. 이후 절대반지의 소재가 바뀝니다.

처음에는 호빗족의 빌보 배긴스에게 들어갔다가 조카 프로도 배긴스가 이어받지요. 프로도는 “절대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면 세계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지를 없애기 위해 ‘불의 산’으로 원정을 떠납니다. 여기서 선과 악, 프로도와 사우론, 그리고 그들을 돕는 무수한 이야기가 파생됩니다. 원래 톨킨은 ‘호빗’이 자체적으로 완결되는 구조인데도 ‘언어학자로서의 특기’, 즉 전체를 하나의 글로 완성하려는 욕심을 내지요.

그래서 ‘잃어버린 이야기들’→‘베오울프’→‘호빗’→‘반지의 제왕’에 이어 ‘실마릴리온(Silmarillion)’이란 대작에 몰두했지만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뜻을 못 이뤘고 아들 크리스토퍼가 원고를 정리해 책으로 냅니다. ‘실마릴리온’이란 실마릴의 노래라는 뜻인데 소설은 실마릴이라는 보석(寶石) 3개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연속입니다. 다루는 역사만 1만년, 등장인물 500명, 지명(地名)이 100곳이나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대작입니다. 아쉽게도 ‘실마릴리온’은 톨킨 본인이 아닌 아들이 아버지의 사후(死後)에 정리한 탓에 오류가 많습니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거나 설정 상의 오류도 심심치않게 발견되는, 사실상 미완(未完)으로 분류됩니다.

아내 에디스는 톨킨보다 2년 앞선 1971년 11월 사망했습니다. 톨킨은 아내의 비석 이름 밑에 ‘루시엔(Lúthien)’이라 새기는데 루시엔은 ‘잃어버린 이야기들’에 나오는 여자 등장인물, 그 루시엔이었습니다.
1973년 9월 아내를 따라 톨킨이 81세로 사망했을 때 비석에 베렌(Beren)이란 이름이 더해집니다. 베렌과 루시엔은 ‘잃어버린 이야기’ ‘실마릴리온’의 등장인물이니 두 사람은 지금쯤 신화 속에서 뛰놀고 있을 겁니다.

저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소설을 아이들이나 읽는 것으로 알았고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접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톨킨이 살아있을 때 ‘반지의 제왕’이 라디오드라마로 기획됐는데 예상외로 청취율이 저조했습니다. 저자는 실망 속에 세상을 떴는데 이후 피터 잭슨이라는 걸출한 영화감독이 등장해 ‘반지의 제왕’ 3부작 모두를 흥행에 성공하지요. 피터 잭슨에 앞서 1978년과 1980년 ‘반지의 제왕’은 만화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예술가들에게는 팬들이 많은데 문학분야에서는 특히 환상소설, 추리소설 쪽이 대단하지요. 셜록 홈즈 애호가를 두고 영국에서는 ‘홈지언(Holmesian)’, 북미권에서는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각각 불렀습니다. 지금은 셜로키언이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했는데요, 톨킨의 팬들을 흔히 ‘톨키니스트(Tolkienist)’라고 부릅니다. 톨키니스트들은 저자인 톨킨처럼 뭐든지 소설을 학문적, 철학적인 면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톨킨학(Tolkienology)’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는 톨킨의 팬들이 대개 고학력자인데 이유는 톨킨의 방대한 소설을 이해하려면 지식이 그만큼 있어야 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톨킨의 소설을 두고 비판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흑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란 말도 있었고 여성의 비중이 없다시피 해 ‘성차별’이란 말도 있었는데 여기 대응한 사람들이 바로 톨키키니스트들이었습니다.

생전의 톨킨은 외부의 비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도 철저했습니다. 톨킨이 분명히 이념의 지형으로는 보수, 과거지향(신화를 연구했기에)적이지만 비평은 비평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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