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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_현실 하나님의 세계 1

유진 피터슨은 "현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영성에 대해 말하면서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시로 시작한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가 누구인가?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1844년 7월 28일 ~ 1889년 6월 8일)는 영국의 종교인, 시인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을 배웠고 키츠풍(風)의 시를 섰으며 페이터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뉴먼의 감화로 카톨릭으로 개종, 제수이트회에 들어가 성직을 갖는다. 그러나 생래적인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은 다시금 그를 시창작에 몰두하게 하여 ‘스피링 리듬’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운율로 대담한 어휘와 어법(語法)으로써 미의 추구와 신앙, 이러한 내심의 갈등을 노래하였다. 그의 시는 1916년에 브리지스의 진력(盡力)으로 출판되어 젊은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위키피디아사전에서


홉킨스는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제수이트회에 들어가서 신부가 되었다. 

홈킨스를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시킨 뉴먼은 누구인가? 

존 헨리 뉴먼(영어: John Henry Newman, 1801년 2월 21일 - 1890년 8월 11일) 또는 성 요한 헨리코 뉴먼(라틴어: S. Ioannes Henricus Newman)은 19세기 영국의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서 1830년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원래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복음주의학과 교수였던 뉴먼은 옥스퍼드 운동의 주역이었다. 옥스퍼드 운동가들은 성공회 내에 영향력 있는 세력을 구성하여 영국 교회를 과거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전례로 되돌리기를 소원하는 이들이었다. 뉴먼은 1845년 성공회에서 가톨릭교회로 회심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신부로서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서


그런데도 유진 피터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책의 논조를 정하고 본의를 밝혀 주는 것으로서 홉킨스의 이 소네트를 택한 것은 바로 인런 이유에서다. 나의 희망은 기독교회가 지난 이천년 동안 이 세상 안에서 또 이 세상을 위해 삶으로 구현해 온 바를 공정하고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의 목표는 홉킨스가 자신의 시를 쓰면서 가졌던 목표와 다르지 않다.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종태, 양혜원 역 (서울: 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2010), 23.


홉킨스는 로마 가톨릭 사제이고 제수이트 사제다. 
유진 피터슨은 자기 영성의 의도와 목적을 이런 홉킨스의 의도와 일치시켰다.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기독교회"란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진 피터슨은 홉킨스의 시를 인용하고 난 후에, 모든 존제하는 것들에 "무언가 공명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무엇', '공명', 한통속', '신비'를 경험하고 증인이 되려고 했다. 


이런 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 바로 '삶'이다.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종태, 양혜원 역 (서울: 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2010), 21.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삶', '일상'이란 이런 것이다. 


삶은 궁극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성부의 뜻에 따라")과 벌이는 놀이라는 것, 즉 모든 삶은 예배이며, 또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잘 녹아들어 있다.

유진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종태, 양혜원 역 (서울: 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2010), 22.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하나님은 "궁극적 타자"다. 
그 궁극적 타자와 벌이는 놀이가 삶이고 영성이다. 

유진 피터슨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홉킨스의 시어는 삶이 가진 고유한 정열과 활기와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초점은, 이러한 참된 삶의 안과 밖에는,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리스도 계시다는 확신이다. 이러한 삶, 그러니까 물총새와 잠자리로 불붙어 있는 삶, 뒹구는 돌멩이, 퉁겨진 현 소리, 울리는 종소리, 등이 메아리치는 이 삶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팔다리와 눈에서, 우리의 발과 말에서, 우리가 매일 만나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거울 속과 길거리에서, 교실과 부엌에서, 일터와 놀이터에서, 성소와 위원회에서 놀이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메시지다. 
...
삶은 궁극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성부의 뜻에 따라")과 벌이는 놀이라는 것, 즉 모든 삶은 예배이며, 또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잘 녹아들어 있다.

유진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종태, 양혜원 역 (서울: 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2010), 22


하나님이 궁극적 타자이면 우리의 언어로 계시할 수 없다가 된다.
그런데 영성은 그 간격과 위기와 불안은 없앤다. 
그 궁극적 타자가 현실에 들어와 있다는 거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 그리스도 놀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종교, 모든 사상, 모든 영성이 다 포함된다. 
그래서 반기독교적이다. 

유진 피터슨은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안에 들어 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수많은 곳에서" 놀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은 그 안쪽으로 좀더 깊이 안내하고 싶다.
그리스도께서 놀이하시는 그 사지, 그 분, 그 얼굴들인 여러분을, 나를, 우리 모두를 말이다.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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