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분별 없는 글_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관한 논란을 보며
너무나 분별 없는 글_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관한 논란을 보며
정말 웃기네요. 이렇게 분별력이 없으니 이 나라 이 교회가 어찌 될런지 정말 웃기네요
(자료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7876)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관한 논란을 보며폰트 기사보내기 입력 : 2013.11.05 19:05 [기고] 우리에게 성경을 읽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김기현 목사.나는 이 책이 번역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 마뜩치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성경을 써야 하는데, 그 책임을 피터슨의 것으로 방기하고 미루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자극과 도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환영할 수 있었다. <메시지>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가 만든 <메시지> 성경을 써 내려가야 한다.신약성경을 죽 읽어보면, 산상수훈의 여러 대목에서 마땅치 않은 곳이 여럿 눈에 띈다. 지나친 의역이 잦다는 생각이다. 원래 그런 책이니, 이 책에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를 들이대며 틀렸다고 너무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은, 시쳇말로 하면 ‘웃자고 말한 것을 죽자고 대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메시지>는 통독용이지, 정독용은 결코 아니다!이러한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도 똑같은 모양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읽는 것이 상당히 힘든가 보다. 그런 이들에게 성경을 재미있게,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런 의역 성경이 필요하다.그러나, 정독용은 아니다. 다시 말해 묵상용도, 예배용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메시지>로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나는 몇몇 Q.T 책들에서 개역개정판 성경 옆에 <메시지>를 같이 병기한 것을 심히 우려한다. 묵상은 한 단어 한 구절을 곱씹어야 하는데, 정확성에 기반하지 않은 번역판을 묵상하라고 제시한 것은 먼저 묵상에 대한 오해이고, 또한 <메시지>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다만 성경공부를 하거나, 앞서 말한 대로 통독하기 위해서, 그리고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공동번역 등과 함께 읽는 것은 적극 환영한다. 이미 출판사가 책 표지에서부터 ‘떡 하니’ 박아 두지 않았던가.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이라고.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대로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여러 다양한 번역성경들과 같이 보면 그만이다.▲‘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이라고 쓰인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신약)>.나는 <메시지> 신약 부분을 통독하면서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 누가복음 16장 9절 말씀이었다. 당시는 교회 사역이 참 어려웠던 때라 여러 방법들을 놓고 고민하며 기도한 때였다.“모든 역경을 생존을 위한 창조적인 자극제로 삼고, 가장 본질적인 것에 너희 관심을 집중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선한 행동에 만족하면서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살게 될 것이다.”아는 대로 헬라어 본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번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통해, 아니 이 해석 그대로 실행했다. 그래서 로고스교회가 생겨났다. 나는 이를 <메시지> 성경의 힘이라 생각한다.(저자인) 유진 피터슨은 머리말에서 “읽는 것이 먼저다. 일단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한다. 그러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메시지>는 참 좋은 책이다. 물론 성경처럼 읽을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기 위해 읽어볼 수 있는’ 참 좋은 책이다. 역시 유진 피터슨이다./김기현 목사(로고스교회,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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