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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를 좋아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본회퍼를 좋아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본회퍼를 좋아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최경환 (현대기독연구원 전 상임연구원)

본회퍼는 상당히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로부터 극단적인 세속화 신학자들까지(심지어는 무신론자들) 다양합니다. 최근 30년 동안 본회퍼는 복음주의 주류권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정착한 신학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렇게 복음주의권에서 본회퍼를 소비하는 현상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신학적 이론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그가 기독교적 사회참여의 롤 모델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아마도 [나를 따르라]와 [신도의 공동생활]을 통해 본회퍼를 접한 복음주의자들은 그의 복음주의적 열정과 제자도에 매료되어 세속화 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가치와 본질을 붙잡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Stephen R. Haynes, The Bonhoeffer Phenomenon: Portraits of a Protestant Saint (Minneapolis: Fortress, 2004), 10.

하지만 본회퍼의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을 면밀하게 분석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Richard Weikart(California State University)는 “So Many Different Dietrich Bonhoeffers” TRINJ 32NS(2011)라는 글에서 복음주의자들의 본회퍼 해석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제기합니다. 그가 제시한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Georg Huntemann, The Other Bonhoeffer: An Evangelical Reassessment of Dietrich Bonhoeffer (1993).
Eric Metaxas, Bonhoeffer: Pastor, Martyr, Prophet, Spy: A Righteous Gentile vs. the Third Reich (Nashville: Thomas Nelson, 2010).
Mark DeVine, Bonhoeffer Speaks• Today: Following Jesus at All Costs (Nashville: Broadman and Holman, 2005).
Joel Lawrence, Bonhoeffer: A Guide for the Perplexed (London: Τ & Τ Clark, 2010)

이들에 대부분 본회퍼의 신학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역사적인 정황에 대한 정보도 부정확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취향(복음주의)에 따라 본회퍼의 사상을 간추려서 해석한 전기들입니다. 매텍시스와 드바인의 책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는데 이에 대한 Weikart의 비판은 사실 민망할 정도로 날카롭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인 정보에 있어서도 부정확한 것이 많고, 특히 본회퍼의 신학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별히 매텍시스는 본회퍼를 지나치게 히틀러의 암살자로서 묘사함으로 그의 중요한 신학적 요소들을 모두 간과했습니다. 그는 독일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아니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반면 Weikart가 본회퍼에 대한 보다 공정한 해설서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Ferdinand Schlingensiepen,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Martyr, Thinker, Man of Resistance (trans. Isabel Best; London: Τ & Τ Clark, 2010)
Sabine Dramm, Dietrich Bonhoeffer: An Introduction to His Thought (trans. Thomas Rice; Peabody, Mass.: Hendrickson, 2007)
Stephen R. Haynes and Lori Brandt Hale, Bonhoeffer for Armchair Theologian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9)

이들은 본회퍼의 지적배경과 사상적 계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적하면서 본회퍼가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에 가까운 신학자인지를 보여줍니다(그러고 보니 대부분 독일 학자들이네요). 본회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일의 근대철학과 신학에 대한 배경지식과 함께 본회퍼가 이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급진적으로 해석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본회퍼는 헤겔, 니체, 키에르케고어, 딜타이, 하이데거의 철학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학과 깊은 조우를 했습니다. 본회퍼는 그들의 사상을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 낸 독창적인 신학자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없이 본회퍼의 사상과 생애를 복음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오독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실존주의 철학(키에르케고어)의 깊은 영향 아래 쓰여진 책입니다. 여기서 본회퍼의 일차적인 관심은 산상수훈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1934년에 본회퍼가 그의 동료에게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자넨 이걸 알아야해. 아마도 자네가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산상수훈을 설명한 전체적인 핵심은 바로 결정(decision)에 관한 것이야.” (Dramm, 81) 본회퍼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성서본문이 어떠한 ‘본질적인 윤리적 원칙’이나 ‘고정적인 도덕’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결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드레임에 의하면, 본회퍼는 (그의 신학적 멘토인 바르트를 따라) 보편 구원론을 수용하였고, 영육 이원론을 거부했습니다. [윤리학]에서 본회퍼는 “모든 인간은 신체를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존재한다. 신체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과 인간이 된다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본회퍼, 윤리학, 217)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세속화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인 최초의 신학자입니다. (Dramm, 103, 211) 그는 바르트의 신학이 보수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지적했으며, 불트만의 신학(비신화화)이 보다 급진적으로 적용되지 않음을 비판했습니다. 

이쯤 되면, 본회퍼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은 허수아비에 대한 짝사랑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복음주의자들이 본회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현시대를 진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신학적 틀이 부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책임있는 시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 확신과 역할모델의 결핍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151514261867149&id=602202148)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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