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인물

14. 릭 워렌의 “넓은 길”의 기독교 / 후기 - 기막힌 속임수 - 워렌 스미스

14. 릭 워렌의 “넓은 길”의 기독교 / 후기 - 기막힌 속임수 - 워렌 스미스  


14. 릭 워렌의 “넓은 길”의 기독교 / 후기 - 기막힌 속임수 - 워렌 스미스  
2009/12/31 04:50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96811496

14. 릭 워렌의 “넓은 길”의 기독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3).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은 대단히 짧은 기간에 타임지가 “목적이 이끄는 제국”[i] 이라고 할 만큼 거대하게 되었다.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최고의 법, 완벽한 권력과 권세; 통치”라고 되어 있다. 또한 “한 사람, 한 가족, 또는 한 조직체의 통치 하에 거대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조직”[ii]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릭 워렌은 모든 목적과 의도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배교로 향하는 포스트모든 교회에서 거의 황제와 같은 경영 최고 지도자(CEO)의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워렌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교회를 움켜잡고 있다 하더라고 아직 사람들은 그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과 그와의 관련에 대해 재고하기에 늦지 않다. 다음은 왜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지 성경적으로 10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0 가지 기본 이유
1)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은 “넓은 길” 기독교를 제시한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 중에 하나는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은 길”이며 그 길을 실제로 발견하는 자는 ‘적을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시기를 “넓은 길”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길이 아니라고 하셨다. 릭 워렌의 개혁 운동은 믿음의 내용인 교훈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범 세계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을 초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 성경의 원칙들은 무시되고 제거되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2)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선포하지 않는다.
릭 워렌은 성경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만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그는 다른 많은 중요한 가르침들을 생략하거나 경시하거나 빠뜨린다. 특히 예언에 대한 부분과 영적 미혹에 대한 성경의 부분들에 대해 그러하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27-31).
 
3)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시대의 영적 징조들을 분별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 기상을 분별할 줄 알지만 시대의 표적들에 대해 무지하였던 것처럼 워렌은 여러 사회 및 경제 문제에 대해 분별할 줄 알지만 시대의 영적 표적들에 대해 무지하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3).
 
4)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사탄의 계략에 대해 무지하다.
사도 바울과 여러 성도들은 “사탄의 궤계에 대해 무지하지 않은” 반면,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사탄의 궤계는 “완전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iii]이라고 말한다. 사탄의 궤계에 대해 무지함으로 인해 “넓은 길” 기독교는 사탄의 계략에 빠졌으며 특히 뉴에이지/새 영성/새 세계관에 빠졌다.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후 2:11).
 
5)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영적인 악을 폭로하지 않는다.
워렌의 기독교는 영적 미혹과 악한 영들에 대한 바른 경고를 하지 않는다.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피스(P.E.A.C.E.) 계획은 세계 문제에 대한 치유책이라고 하지만 더욱 큰 악의 세계를 전혀 다룰 수 없다.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드러내야 하며 그들에게 배워서는 안된다. 영적으로 동조하거나 그들의 계획을 도와서도 안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3).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1).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고전 14:8).
 
6)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진정한 믿음의 싸움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모두 선포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의 표적들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사탄의 계략에 대해 무지하고 영적인 악을 드러내지 않는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못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 1: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전 6: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3).
 
7) 릭 워렌과 그의 “넓은 길” 기독교는 세상과 세상의 지도자들이 사랑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했지만 사랑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주님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인 것처럼 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죽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워렌과 그의 “넓은 길” 기독교는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면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요일 4:5).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6).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2).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5).
 
8)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불신자의 변화 과정에 관련하여 있다.
릭 워렌은 자신을 “변화의 대리인”이라고 부르며 세상을 바꾸어 내려고 하지만, 그 와중에 그와 그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은 실제로는 성경적인 기독교를 바꾸고 있다. 성경은 비성경적이고 불경건한 변화를 밀고 나가는 자들에 대해 경고한다.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잠 24:2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 3: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9)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종종 “일구이언하고” “두 마음”을 품고 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는 뉴에이지/새 영성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영적으로 뉴에이지에 동조하는 릭 워렌의 모습은 “일구이언” 및 “두 마음”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 스스로 속이고 있다. 시편에서 다윗은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을 가진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 12:1-2).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 3:8-9).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8).
 
10)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진리를 위해 용감하게 서지 않는다.
워렌은 여러가지 면에서 정치적이며 진리를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한다. 그의 “넓은 길” 기독교는 세상과 함께 지내며 세상을 포용하더니 세상이 되었다. 이제 워렌과 그의 운동은 진리를 굳세게 붙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없게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렘 9:3).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때가 이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쳤다. 그는 신자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그들이 듣기를 원하는 말을 해 주는 거짓 교사들을 찾을 것을 경고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릭 워렌의 “넓은 길” 기독교는 새 영성의 “넓은 길”을 향해 가는 것 같다. 그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7:14절에서 언급하신 “좁은 길”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직 하나이며 유일한 복음의 중심인 십자가가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이 없이는 구원의 소망은 사라진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며 궁극적으로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는 다림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류로부터 진리를 분별하려면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전반적으로 잘 알고 붙들고 있어야 한다 (행 20:27).
 
예수님은 오직 하나인 유일하신 구세주요 그리스도시다. 과학은 이 외의 내용을 증명할 수 없다 (딤전 6:20).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며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육과 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고전 15:50). 이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가 아니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 3:31).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다. 그분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다 (빌 2:9). 그는 오두막의 “예수”가 아니다. 그는 뉴에이지/새 영성의 “예수”가 아니다. 가장 확실하게 그분은 배교 및 속임에 빠진 세상의 “양자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실함을 설명한다 (고후 11:3). 오늘날의 여러 영적 종교적 지도자들에 의하면 2000년의 인류사를 지난 후에야 비로서 “뭔가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는 양자 물리학자들이 필요하고, 세포 생물학자들이 필요하며 수학 박사들과 뉴에이지 영매들, 그리고 예수께서 과거 1세기에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마침내 이해한 새롭게 등장하는 포스트모던 설교가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이는 바울이 말한 진실이 아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피조물을 창조주로 만들고 있으며 공동 창조주로 만들고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많은 목사들은 사탄이 이 세상 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고후 4:4). 또한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여 서야 한다”는 사실도 망각한 것 같다 (엡 6:11). 결과적으로 지금 교회는 거대한 영적 미혹에 날아들고 있다.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며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다아고은 기만은 너무나 커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혹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계 13:13-14). 예수님은 그분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라 주의 말씀 안에서 이어지는 “좁은 길”이라고 하셨다 (요 8:31). 그리고 이 좁은 길만이 영생으로 이끄는 주님의 길이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눅 21:28).
 

후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단 8:24).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과 교회에 끼치는 뉴에이지/새영성의 영향이 그 절정이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영적 기만 또는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원수의 계략에 대해 거의 망각한 상태에 있다. 그들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을 따라 피스(P.E.A.C.E.)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세상을 바꿀 새개혁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발명 의 최신 온라인 내용에 나는 내 아내와 내가 회심한 직후에 나누었던 대화를 올렸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궁극적인 영적 속임수에 대해 말하였다. 즉, 교회의 “대배교”와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는 세상이 볼 때 매우 믿을 만한 인물일 것이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허다한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믿을 것에 대해 말했다. 만일 그가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 및 허다한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편에 서게 하고 나면, 그는 그를 대항하는 자들을 의심스런 자들로 만들어 궁지에 몰아 넣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위해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독교를 재정의하는 일에 성공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그는 비기독교적인 가르침들과 행위들을 교회에 끌어들여 그러한 것들이 기독교적인 것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 그의 자명한 목표는 분별력이 없이 그를 믿는 신자들을 더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뉴에이지 “기독교”인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뉴에이지 가르침처럼 성경을 완전히 뒤집어서 가르칠 것이다.
 
지금 이러한 종말적이고 전 세계적인 기만이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는 더욱 “긍정적인” 뉴에이지 “기독교”가 되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뉴에이지 기도교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실제로는 참된 믿음을 거부할 것이다 (딤후 3:5). 뉴에이지 기독교/새 영성은 기독교적인 용어들을 사용할 것이지만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을 위해 이용될 것이다 (고후 11:4). 이 뉴에이지/새 복음/새 영성은 궁극적인 가짜이며 궁극적인 속임수다. 이러한 속임수가 바로 참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깨어 경계하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결론
 
계속 쉬지 않고 성장하는 목적이 이끄는 운동이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어떻게 그 목표에 다다를 것인가? 나는 내 온 맘을 다해 믿기는 릭 워렌과 그의 동료들은 교회를 뉴에이지를 위한 새영성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들이 이 일을 의도적으로 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그들이 하는 일은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바르게 주장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셈이 된다. 이들은 세상과 타협하기 보다는 기꺼이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생명까지 바쳤던 자들이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는 타당한 염려들에 대해 반박해 온 릭 워렌과 그의 새들백 변론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릭 워렌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의 평판을 깎아 내리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지 메이어와 같이 진심으로 워렌을 칭찬한 자들까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판을 깎아내렸다.
 
릭 워렌은 가장 확실하게 목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잠언 15:22에서 경고하듯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듯” 그의 목적은 기대에 어긋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평화의 사절단이라고 칭하며 모든 측면에서 교회에 접근하는 자들을 경계함으로써 여호수아 장군이 했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함으로” 기브한 땅에서 온 거짓 평화 사절단에게 속아 잘못된 언약을 맺었다. 여호수아는 속임수를 가지고 접근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언약을 체결함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치루어야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자문을 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리에 굳세게 서려는 신자들은 절대적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목적이 이끄는 운동과 릭 워렌, 그리고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을 통해 다가오는 새 영성에 대해 하나님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 잠언 14:12절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야고보서 1:5절을 기억하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마태복음 13:20-21절, 마가복음 4:16-17절, 그리고 누가복음 8:13절은 주님을 ‘기쁨으로’과 ‘즐거움’으로 받으나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과 유혹이 오면 믿음을 져버리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주의 은혜와 충만하심을 따라 주의 뜻을 행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원수에게 속아서 원수의 뜻을 따르거나 혹은 타협하는 지도자들의 뜻을 따라서는 안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섭고 놀라운” 속임수에 대해 경고했다 (렘 5:30). 지금과 같은 때에 우리는 누가복음 21:8절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눅 21:8).
 
이 위험하고 소요가 심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며 보호하시길 바란다. 당신의 마음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진리를 향한 사랑이 가장 먼저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기를 바란다. 주께서 약속하시길, 주의 은혜로 우리가 든든히 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