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Fractals), 혼돈 이론, 양자 영성, 그리고 오두막(The Shack)
프랙탈(Fractals), 혼돈 이론, 양자 영성, 그리고 오두막(The Shack)
프랙탈은 단순하고 질서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써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실제로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된 것이다. 프랙탈은 거의 무한하게 복잡하다. 나는 프랙탈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나 프랙탈을 둔다. - 사라유, 오두막
프랙탈은 보기에 복잡한 사건들 하부에 있는 숨겨진 ‘질서’를 드러낸다. 프락탈은 섬세하며 아름답다. 무한한 다양함과 평태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패턴들의 반복이다. 이 과학적 연구로부터 등장하는 세계관은 새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매우 오랜 과거의 것과 같다. - 고대 용의 절대 주권적 법정과 명령 체계 (The Sovereign Court and Order of the Ancient Dragon)
레너드 스위트와 양자 영성에 대해 책을 쓰고 있을 때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다. 아침에 있는 두번의 예배와 저녁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아침의 두번째 예배 직후에 세 분의 여성이 내게 와서 뉴에이지/새영성에 대해 경고해 준 사실과 그러한 것들이 교회에 어떻게 침투해 들어오는지에 대해 알려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세 사람은 다 전에 릭 워렌의 새들백 교회에 다녔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러나 교회에 불만족을 느끼면서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친구들이 그 교회에 많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녁 예배 후에 두 여성이 내게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 사람은 작년에 새들백 교회를 떠났으며 다른 사람은 그 교회를 37년 다녔지만 떠날 수 밖에 없어서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두번 째 여성은 제니퍼라는 자매였는데 새들백 교회가 목적이 이끄는 종합 프로그램들, 교회 성장, 그리고 이머징 교회 가르침을 끌어들이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윌리암 폴 영의 뉴욕 타임지 베트트 셀러 책인 오두막 에 대해 말한 평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오두막은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이 비참하게 살해당한 후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인 소설로 그려 놓은 것인데, 나는 어떻게 오두막의 저자가 그 소설을 통해 뉴에이지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 소설의 중간을 보면 저자 영(Young)은 갑자기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뉴에이지/새영성/새세계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소개한다. 오두막의 ‘예수’는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인 좌절한 맥(Mack)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들 ‘안에’ 있다고 말했다.
제니퍼는 나와 간략한 대화를 나눈 후 그녀가 오두막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하며 그 발견에 대해 짧을 글을 썼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의 글을 읽어 볼 것을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프랙탈 이론과 오두막
집에 도착한지 일주일 후에 나는 제니퍼의 글을 내 컴퓨터에서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은 “오두막 안의 프랙탈 이론”이었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흥미를 느꼈다. 제니퍼는 연구를 위해서 뉴에이지 성향이 있다고 하는 DVD 영화 하나를 빌려 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영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발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그리고 프랙탈
제니퍼의 글을 읽은 후, 나는 그 내용을 복사해서 내게 노만 빈센트 필과 관련한 기사를 보내 주었던 인디애나의 목사에게 보내 주었다. 그 이유는 그가 오두막에 담고 있는 신학이 무엇인지 폭로하는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제니퍼의 글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제니퍼의 글은 뚜렷하게 오두막이 여러 번 언급하는 프랙탈과 뉴에이지 용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후에 우리는 전화로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목사는 인터넷에서 “프랙탈”을 검색했다고 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검색창의 제목은 “프랙탈 위즈덤(Fractal Wisdom)”이었다고 한다. 그 사이트는 “프랙탈 혼동이 과학과 종교 간의 벽을 무너뜨리다”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 화면에 담고 있었다. 그 대제목 하에 프랙탈 디자인을 포함한 상자가 있었고, 그 프랙탈 아래에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표현 밑에는 뉴에이지의 선구자이며 신비주의자인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글을 인용하고 있었다. 올더스 헉슬리는 마릴린 퍼거슨의 베스트 셀러 뉴에이지 책 물병자리의 음모 에서 유일하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다. 헉슬리는 또한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도 인용된다! 프랙탈 위즈덤 윕사이트에 인용된 헉슬리의 글은 혼동과 “목적”의 두 주제를 다루고 있다.
뉴에이지/새영성의 관점에서 볼 때 오두막의 예수가 왜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간다. 주인공 맥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프랙탈” 부분으로 보는 대신에 “엉망”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는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의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프랙탈 질서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두막의 “성령”이 맥에게 그의 삶은 단지 혼돈 및 “엉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살아있는 프랙탈”이라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 이해된다.
“프랙탈 위즈덤” 웹 사이트에서 나는 프랙탈이라는 단어를 이용하는 간교한 뉴에이지의 책략을 볼 수 있었다. 그 단어는 결국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연관되어 있었다. 만일 모든 대문자 “피조물”이 “하나님”이고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원자와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하나님” 에너지의 프랙탈 부분은 자동으로 하나님의 부분이 된다. 즉, 사람은 프랙탈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맥은 자신이 “살아있는 프랙탈”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맥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들은 것이다. 프랙탈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믿음을 나타내기 위한 과학적인 거짓 유사어인 것이다. 모든 것이 프랙탈이며 프랙탈은 전부의 부분이고, 하나님의 부분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오두막 은 “혼돈”은 단지 이 세상에서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프랙탈 질서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보지 못하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오두막은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과 마찬가지로 뉴에이지/새영성 세계관을 간교하게 들여오는 수단이다. 오두막은 “혼돈”은 인류가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보는데에서 벗어나 모든 것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분으로서의 “하나됨”으로 볼 때에 극복될 수 있다는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가 하나님이거나 하나님과 하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요 2:24-25; 겔 28:2; 호 11:9). 성경은 그 반대를 가르친다. 즉, 사람은 실제로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사 59:2). 이러한 “분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인정하게 하고 회개하게 한다 (행 2:38). 모든 사람은 “아래”가 아닌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만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 (요 3:6-7, 요 3:31). 오직 참되고 살아계신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그 하나님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신은 사도 바울이 말하길 “이 세상 신”이다 (고후 4:4). 성경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갈 3:28).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또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을 나의 죄를 위한 완전한 대속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요일 2:2, 골 1:20).
“혼돈”은 인간이 소위 프랙탈 신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더 심각해 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적인 진리는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오히려 “혼돈”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인간들의 죄성과 그로 말미암은 모든 것의 부패,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결과이다. 이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문제가 아니다. 프랙탈은 구원의 길을 알리지 않는다. 창세기 11:6-8절은 기만적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위험한 거짓 “하나됨”을 경고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사도행전 17:26절은 인류는 “한 피”이며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는 한 영이 아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성경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라고 말한다 (고전 15:50).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 3:7).
하나님의 피조물은 참으로 섬세하고 놀랍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방법으로 피조물은 서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피조물은 하나님이 아니다 (롬 1:25). 사람은 “심히 기묘하게” 지어졌다 (시 139:14). 그러나 사람은 어떤 신성한 프랙탈 질서의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들이며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복음은 이처럼 단순하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로 영접하는 것,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좁고’, ‘유일한’ 길이다 (요 14:6; 마 7:13-14). 오두막에서 프랙탈을 소개한 것은 순진한 독자들을 미혹하는 장치다. 이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도록 “프랙탈의 하나됨”이라는 거짓된 과학 지식에 입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브루스 립톤(Bruce Lipton)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프랙탈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은 믿음의 생물학: 의식, 물질, 기적의 능력을 풀어라 (The Biology of Belief: Unleashing the Power of Consciousness, Matter & Miracles) 라는 제목의 책에서 발견된다. 이 책은 연구 과학자 브루스 립톤 박사가 쓴 것이다. 립톤의 책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프랙탈 뿐만 아니라 양자 물리에도 연결하는 여러 구문들이 있다. 이 책은 레너드 스위트가 그의 책 양자 영성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교회를 뉴에이지 양자 물리학으로 이끌고 있다. 이 사실은 아마도 왜 유진 피터슨이 주기도문에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삽입하였는지, 왜 오두막이 그 겉표지에 피터슨의 추천의 글을 담고 있는지 명쾌하게 알려줄 지도 모른다. 오두막은 분명히 독자들로 하여금 양자 물리학의 악용에 해당하는 뉴에이지/새영성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천천히 변화시키는 변형 장치이다.
브루스 립톤은 어떤 인터뷰에서 말하길, 프랙탈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말해주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 뒤에 있는 과학의 “새 수학”의 부분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행 17:31).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누어 비슷한 세포 형질을 가진 점과 함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말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은 레너드 스위트가 양자 영성에서 제시하고 윌리암 영이 오두막에서 제시하는, 그러한 우주적이며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위해 죽으셨으며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따를 때 우리는 우리 죄로부터 구원 받고 자유할 수 있음을 분명히 선포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양자 물리학이나 양자 영성과 같은 것들을 예견하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으로 거짓-과학적 가르침들과 타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딤전 6:20).
바울은 또한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거짓 선생들을 쫓아 윌리암 영과 그의 책 오두막 처럼 프랙탈과 지어낸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참된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거짓 선생들을 따르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1-4).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릭 워렌이 그의 동료인 밥 뷰포드[버포드]의 책 하프타임(halftime)(이 책은 피터 드러커에게 바쳐진 책이다)에 추천의 글을 쓸 때 “나는 모든 회중들이 영감어린 이 책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켄 블랜차드가 기독교와 관련되게 된 계기는 노만 빈센트 필 및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특히 뷰포드가 때문이다. 현재 이머징 교회 운동과 브라이언 맥라렌, 더그 패짓(Doug Pagitt), 토니 존스 등과 같은 이머징 지도자들은 생겨날 수 있도록 한 것은 뷰포드의 리더쉽 네트워크(Buford’s Leadership Network)이다. 리더쉽 네트워크는 2000년 5월에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이라는 제목의 컨퍼런스를 주관했다. 양자 영성의 저자 레너드 스위트가 그 컨퍼런스의 주강사였으며 켄 블랜차드, 피터 센지, 마가렛 휘틀리 등의 뉴에이지 공감자들이 강사들이었다. 리더쉽 네트워크는 미래에 대한 성경에 주어진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듣기에 더욱 낙관적이고 부담없는 “지도”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 컨퍼런스에서는 스위트가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있었다.
마가렛 휘틀리(Margaret Wheatley)는 레너드 스위트처럼 양자 물리학과 뉴에이지에 심각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녀는 뉴에이저 마리안느 윌리암슨의 부탁으로 상상하라: 21세기에 미국은 어떻게 될까: 최고의 미국 사상가들로부터 듣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들 (Imagine: What America Could Be in the 21st Century: Visions of a Better Future from Leading American Thinkers) 라는 마리안느의 책의 마지막 과를 썼다. 이 책은 디팍 초프라, 닐 도날드 월치[월쉬], 바바라 막스 허바드 등등, 뉴에이지 저자들과 선생들의 글들로 가득차 있다.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의 강사였던 피터 센지도 또한 뉴에이지 지도자들의 범세계적 르네상스 동맹(the Global Renaissance Alliance of New Age leaders)의 기금 마련을 위한 뉴에이지 책의 한 과를 썼다.
1992년의 책 리더쉽과 새과학: 무질서한 세계에서 질서를 발견하기(Leadership and the New Science: Discovering Order in a Chaotic World) 의 2006년 개정판에서 마가렛 휘틀리는 2000년 5월의 리더쉽 네크워크 컨퍼런스의 주제인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실제 세상을 향한 지도”라는 제목이 붙은 서언에서 다음 내용을 볼 수 있다.
2000년 5월에 있었던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에 대한 요약이 온라인에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을 보면 리더쉽 네트워크 행사들이 나열되어 있다. 리스트에 있는 행사들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있을 컨퍼런스가 있고 그 컨퍼런스의 주강사는 릭 워렌이었다. 이제 우리는 릭 워렌이 레너드 스위트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에 참여를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던 릭 워렌은 밥 뷰포드와 리더쉽 네트워크와 친밀한 관계다.
양자 혁명
브루스 립톤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 나는 그의 책 믿음의 생물학 (Biology of Belief) 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립톤이 양자 물리학, 새 생물학, 새 세계관을 둘러싼 열정이 치솟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오두막의 저자 윌리암 영의 나레이터 “윌리”가 오두막의 맨 끝에서 촉구하는 “새 혁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 혁명”을 향한 저자의 강렬한 촉구는 이미 그의 책의 앞부분에서 나오는 프랙탈, 과학, “아원자 층에서 움직이는 양자”에 의해 이미 예시되는 것 같다. 즉,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목표로 하고 오두막을 쓴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윌리암 영의 오두막은 레나드 스위트의 양자 혁명과 영자 영성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양자 혁명”은 릭 워렌이 버밍햄의 예수처럼 인도하기 컨퍼런스에서 켄 블랜차드에게 언급한 “알지요, 켄. 함께 혁명을 시작합시다”라고 할 때의 “혁명”과 같은 것인가? 워렌이 주장하는 “혁명”이 바로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는” 이 혁명을 말하는 것인가? 또한 이 “양자 혁명”과 브라이언 맥라렌, 어윈 맥마너스, 쉐인 클레이본과 같은 어미장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의 글에서 언급하는 ‘혁명’과 같은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양자 물리학, 새 생물학, 프랙탈 기하학의 새 수학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마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증명하려는’ 것 같다. 그후 모든 피조물은 에너지의 양자 영역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하나됨”이 하나님임을 믿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꿈의 영역”인 서로 연결된 양자 내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인정하고 행할 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으며 “긍정적인 미래”가 있는 것이다. 릭 워렌은 “만일 당신이 예수님이 곧 오시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즉,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그분이 올 것이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의 여족장 앨리스 베일리는 “그분의 오심은 당신의 일에 달려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마치 워렌의 피스(P.E.A.C.E.) 계획처럼 들린다. 또한 닐 도날드 월치의 뉴에이지 피스(PEACE) 계획처럼 들린다. 에수 그리스도를 재발명하기 (Reinventing Jesus Christ) 와 목적이 있는 속임수에서 자세히 논의한 것처럼,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그분이 올 것이다”라는 말은 거짓 그리스도 마이트레야(Maitreya)의 피스 계획이기도 하다. 마이트레야는 뉴에이지 “그리스도”로서 그는 이미 이 지구 상에 있으며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올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개의 큰 질문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가 세워 놓으면 도대체 실제로 누가 오는 것인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적그리스도인가?
이러한 피스 계획은 신비주의라는 부분에서 서로 공통점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릭 워렌도 그가 진행시키고 있는 여러 계획들 속에는 같은 종류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장려하고 있다. 워렌은 리차드 포스터의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 운동(관상 영성)을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타당한 메시지”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포스터의 영적 형성을 보면 그가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 빌려오는 글들은 닐 도날드 월치 및 앨리스 베이리의 글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포스터는 종종 “진정한 고독은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고독에 참여하는 것이다”라는 토마스 머튼의 글들을 인용하며 의지한다. 포스터는 또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캐톨릭 관상주의자 바질 페닝톤(Basil Pennington)의 글들을 빌려온다. 바질 페닝톤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믿으며 모든 종교는 관상을 하는 동안 “깊은 일치”를 체험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오직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신은 오직 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릭 워렌이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자명종(wake-up call)”이라고 부르는 포스터의 “영적 형성”은 포스터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틸덴 에드워즈의 글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영적 형성의 신비주의 강물은 극동양(Far Eastern) 영성에 서양적인 다리(bridge)다.”
“하나님의 꿈”과 형이상학
마치 로버트 슐러가 교회와 뉴에이지/새영성 간에 다리는 놓은 것처럼 레너드 스위트도 특별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물론 스위트가 슐로의 격려와 도움을 받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스위트는 또한 릭 워렌을 포함한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스위트는 그의 1999년 책 영혼의 쓰나미 에서 “하나님의 꿈”에 대해 실컷 말한다. 그는 또한 “물리학은 형이상학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인정할 수 없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꿈”은 양자 물리학과 스위트의 뉴에이지/양자 영성에 의해 제시되는 새로운 세계관일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꿈을 꾸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거짓 가르침과 “하나님의 꿈”이라는 교묘한 속임수들을 드러내신다.
“물리학이 형이상학이 되고 있다”는 레너드 스위트의 인식은 리차드와 아이오나 브라운 부부에 의해 쓰인 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양자 물리학의 신비들”에서 제시한 것과 유사하다. 스위트의 형이상학/뉴에이지적인 언급은 도날드 드그라시아 박사(Donald J. DeGracia)의 글에 의해 생생하게 노출되었다. 도날드 박사에 의하면 혼돈, 프랙탈, 그리고 양자 이론은 밀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그라시아 박사는 “물리학을 초월해서: 프랙탈의 빛, 혼돈, 그리고 양자 이론의 밀교주의와 과학의 합성”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뉴에이지의 “하나됨(Oneness)”
잿더미로부터: 미국을 향한 공격에 대한 영적 반응(From the Ashes: A Spiritual Response to the Attack on America) 라는 책을 보면 뉴에이지와 종교 지도자들이 (물론 그 중에는 릭 워렌이 있다) 2001년 9월 11일의 대참사 후에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여러 글들이 있다.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으로 그 책에서 닐 도날드 월치는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뉴에이지 메시지를 전파하며 전 세계의 뉴에이지 및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도우라고 격려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하루 만에 바뀔 것이다”라고 월치는 약속한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흥미로운 점을 하나 더 소개하겠다. 오두막의 저자 윌리암 영은 실제로 온라인에서 오두막의 인물들의 대화 내용은 그가 실제로 그의 “하나님”과 나눈 “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해 준 내용을 소설로 만든 것이 오두막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존재의 바탕인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주변에, 관통하여 있다”는 말들, “프랙탈”에 대한 언급들, “아원자 층에서 움직이는 양자 물체”등은 영이 그의 “하나님”과 나눈 대화로부터 나온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영은 원래는 그의 책의 제목을 하나님과의 대화 라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닐 도날드 월치가 같은 제목의 책을 쓴 것이 있기 때문에 오두막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암 영은 실제로 닐 도날드 월치와 많은 점에서 공통된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과 실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대화 내용”을 글로 썼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내용들”은 뉴에이지/새영성 가르침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정보는 한 가지 큰 질문을 남긴다. 도대체 윌리암 영은 어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영이 대화를 나눈 “하나님”은 닐 도날드 월치가 그의 “대화”에서 만난 “하나님”과 같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뉴에이지/새영성의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하나님은 세상의 신이 아니다 (고후 4:4). 물론 우리 주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이 세상의 신은 다른 아닌 사탄이다.
평범한 눈에는 숨겨짐
결국 나는 제니퍼가 그녀의 글에서 언급한 뉴에이지 영화를 빌려서 보게 되었다. 제목은 구도자(The Seeker)였다. 그 영화에서 윌(Will)은 시간 속에서 숨겨져 왔던 표시들 또는 “프랙탈”을 발견해서 세상을 구원하려는 어린 소년이다.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윌과 메리맨(Merriman: 고대 지혜자들 중 하나)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참된 성령은 결코 유진 피터슨, 릭 워렌, 레너드 스위트, 윌리암 영, 또는 그 누구에게든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과 같은 밀교적 [에소테릭] 메시지 가르침을 그 어떤 책에 넣으라고 지시할리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 어떠한 밀교의 메시지라도 결코 참되신 한분 하나님과 그분의 참된 아들, 우리 주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 거하는 엄마
제니퍼는 가정주부로서 14살난 딸을 홈-스쿨링을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쳤다. 그녀의 연구는 내게 프랙탈과 양자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여 주었고 또한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밀교/뉴에이지 용어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를 알려주었다. 제니퍼의 프랙탈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에 대한 통찰력은 오두막의 중요 뉴에이지적 면들을 노출함과 함께 레너드 스위트의 책 양자 영성과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에 숨겨있는 뉴에이지 내용들을 더욱 드러내는 것을 도왔다.
제니퍼의 글 때문에 나는 1975년의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 물리학의 도교: 현대 물리학과 동방 신비주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 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수년 전에 내가 뉴에이지 운동에 머물 때 밀교의 고전으로 간주되던 책이었다. 그 내용은 온 세상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뉴에이지의 미래로 커다란 “양자 도약”을 할 준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과 윌리암 영의 오두막과 같은 책들도 교회로 하여금 양자 도약을 취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표시들과 프랙탈들은 같은 길을 지시하는 것 같다.
프랙탈은 단순하고 질서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써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실제로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된 것이다. 프랙탈은 거의 무한하게 복잡하다. 나는 프랙탈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나 프랙탈을 둔다. - 사라유, 오두막
프랙탈은 보기에 복잡한 사건들 하부에 있는 숨겨진 ‘질서’를 드러낸다. 프락탈은 섬세하며 아름답다. 무한한 다양함과 평태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패턴들의 반복이다. 이 과학적 연구로부터 등장하는 세계관은 새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매우 오랜 과거의 것과 같다. - 고대 용의 절대 주권적 법정과 명령 체계 (The Sovereign Court and Order of the Ancient Dragon)
레너드 스위트와 양자 영성에 대해 책을 쓰고 있을 때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다. 아침에 있는 두번의 예배와 저녁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아침의 두번째 예배 직후에 세 분의 여성이 내게 와서 뉴에이지/새영성에 대해 경고해 준 사실과 그러한 것들이 교회에 어떻게 침투해 들어오는지에 대해 알려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세 사람은 다 전에 릭 워렌의 새들백 교회에 다녔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러나 교회에 불만족을 느끼면서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친구들이 그 교회에 많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녁 예배 후에 두 여성이 내게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 사람은 작년에 새들백 교회를 떠났으며 다른 사람은 그 교회를 37년 다녔지만 떠날 수 밖에 없어서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두번 째 여성은 제니퍼라는 자매였는데 새들백 교회가 목적이 이끄는 종합 프로그램들, 교회 성장, 그리고 이머징 교회 가르침을 끌어들이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윌리암 폴 영의 뉴욕 타임지 베트트 셀러 책인 오두막 에 대해 말한 평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오두막은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이 비참하게 살해당한 후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인 소설로 그려 놓은 것인데, 나는 어떻게 오두막의 저자가 그 소설을 통해 뉴에이지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 소설의 중간을 보면 저자 영(Young)은 갑자기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뉴에이지/새영성/새세계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소개한다. 오두막의 ‘예수’는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인 좌절한 맥(Mack)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들 ‘안에’ 있다고 말했다.
만유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모든 것 주변에, 모든 것을 통해 거하신다.캘리포니아의 남부에 있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나는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거한다고 가르치지 않음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나는 이 세상 신 사탄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믿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믿어야만 저절로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오두막의 ‘예수’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할 때 이는 실제로 릭 워렌이 이미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셈이 된다. 나는 온 라인에 “오두막과 그 안에 담긴 뉴에이지 누룩”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제니퍼는 나와 간략한 대화를 나눈 후 그녀가 오두막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하며 그 발견에 대해 짧을 글을 썼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의 글을 읽어 볼 것을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프랙탈 이론과 오두막
집에 도착한지 일주일 후에 나는 제니퍼의 글을 내 컴퓨터에서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은 “오두막 안의 프랙탈 이론”이었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흥미를 느꼈다. 제니퍼는 연구를 위해서 뉴에이지 성향이 있다고 하는 DVD 영화 하나를 빌려 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영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발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구도자 라는 영화에서 젊은 소년 구도자(The Seeker)는 시간을 통해 숨겨진 표시들을 찾도록 선택된 사람이다. 그 표시들은 몰래 침입하는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영화의 내용을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소년이 찾는 각 표시는 다름 아닌 프랙탈로 알려졌다. 나는 프랙탈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최근에 다른 곳에서 그 용어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바로 오두막이었다.오두막과 구도자에서 나타나는 “프랙탈”이라는 용어에 호기심을 느낀 제니퍼는 계속 연구를 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프랙탈”이라는 용어는 “혼돈 이론”과 “프랙탈 이론”의 “새 과학”으로 불리는 것과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발견이 내게 특별한 관심을 일으킨 내용은 프랙탈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라는 전형적인 밀교 문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표현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유진 피터슨이 주님의 기도에 신비스럽게 삽입한 문구로서 밀교/뉴에이지 전용 용어이다. 알고보니 오두막 의 앞 표지에는 피터슨의 추천의 글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터슨이 그의 메시지 성경에서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사용한 점에 매우 염려를 하는 마당에 오두막 이 사용하는 프랙탈이라는 용어 또한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뚜렷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피터슨이 오두막을 열정적으로 추천한 점도 수상쩍다.
오두막 의 제 9과는 “저 멀리 있는 동산에서 옛날 옛날에” 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고 그곳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사라유가 어떻게 동산을 창조하였는지를 읽게 된다. 이때 우리는 그 동산이 프랙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사라유가 “프랙탈은 단순하고 질서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써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실제로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된 것이다. 프랙탈은 거의 무한하게 복잡하다. 나는 프랙탈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나 프랙탈을 둔다” 라는 말을 할 때 프랙탈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그리고 프랙탈
제니퍼의 글을 읽은 후, 나는 그 내용을 복사해서 내게 노만 빈센트 필과 관련한 기사를 보내 주었던 인디애나의 목사에게 보내 주었다. 그 이유는 그가 오두막에 담고 있는 신학이 무엇인지 폭로하는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제니퍼의 글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제니퍼의 글은 뚜렷하게 오두막이 여러 번 언급하는 프랙탈과 뉴에이지 용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후에 우리는 전화로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목사는 인터넷에서 “프랙탈”을 검색했다고 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검색창의 제목은 “프랙탈 위즈덤(Fractal Wisdom)”이었다고 한다. 그 사이트는 “프랙탈 혼동이 과학과 종교 간의 벽을 무너뜨리다”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 화면에 담고 있었다. 그 대제목 하에 프랙탈 디자인을 포함한 상자가 있었고, 그 프랙탈 아래에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표현 밑에는 뉴에이지의 선구자이며 신비주의자인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글을 인용하고 있었다. 올더스 헉슬리는 마릴린 퍼거슨의 베스트 셀러 뉴에이지 책 물병자리의 음모 에서 유일하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다. 헉슬리는 또한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도 인용된다! 프랙탈 위즈덤 윕사이트에 인용된 헉슬리의 글은 혼동과 “목적”의 두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떤 순간이던 삶은 전혀 감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기간을 두고 삶을 보면 시간 속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뚜렷한 방향으로 가는 일종의 유기체 같다.“프랙탈 혼동이 과학과 종교 간의 벽을 무너뜨리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글은 계속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혼돈에 대한 과학과 수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우리의 세계관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한 발견은 겉으로 볼 때 혼돈의 사건들이지만 그 저변에 숨겨진 프랙탈 질서를 드러낸다. 프랙탈은 섬세하며 아름답다. 무한한 다양함과 평태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패턴들의 반복이다. 이 과학적 연구로부터 등장하는 세계관은 새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매우 오랜 과거의 것과 같다. 이 웹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조금만 생각하더라도 당신은 혼돈과 프랙탈의 중요함을 더욱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이러한 통찰력을 사용해서 어떻게 과학과 영성을 이어줄 수 있는 다리를 창조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그러나 ‘과학’으로 제시된 것은 사실은 밀교/뉴에이지 세계관으로서 이 세상의 ‘혼돈’은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사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한 결과라는 뉴에이지 믿음이다. 즉, “혼돈”으로 보이는 것은 “보는 자(observer)”가 모든 창조를 정의하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프랙탈 질서”을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프랙탈 질서 논리는 피에르 테야르드 샤르댕, 매튜 폭스,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창조 영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두막이 프랙탈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에 내가 그 책을 읽을 때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지만) 곧 바로 왜 그 책의 저자 윌리암 영이 “피조물(Creation)”을 말할 때 대분자 “C”를 쓰는지 설명한다. 그는 오두막에서 적어도 20번 이상 대문자를 사용해서 ‘피조물(Creation)’을 말하고 있다. 그의 “예수”가 가르치는 대문자로 쓰인 “피조물”은 다름 아닌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은 피조물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신비주의의 현자들이 말해왔던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뉴에이지/새영성의 관점에서 볼 때 오두막의 예수가 왜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간다. 주인공 맥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프랙탈” 부분으로 보는 대신에 “엉망”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는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의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프랙탈 질서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두막의 “성령”이 맥에게 그의 삶은 단지 혼돈 및 “엉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살아있는 프랙탈”이라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 이해된다.
“프랙탈 위즈덤” 웹 사이트에서 나는 프랙탈이라는 단어를 이용하는 간교한 뉴에이지의 책략을 볼 수 있었다. 그 단어는 결국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연관되어 있었다. 만일 모든 대문자 “피조물”이 “하나님”이고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원자와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하나님” 에너지의 프랙탈 부분은 자동으로 하나님의 부분이 된다. 즉, 사람은 프랙탈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맥은 자신이 “살아있는 프랙탈”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맥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들은 것이다. 프랙탈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믿음을 나타내기 위한 과학적인 거짓 유사어인 것이다. 모든 것이 프랙탈이며 프랙탈은 전부의 부분이고, 하나님의 부분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오두막 은 “혼돈”은 단지 이 세상에서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프랙탈 질서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보지 못하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오두막은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과 마찬가지로 뉴에이지/새영성 세계관을 간교하게 들여오는 수단이다. 오두막은 “혼돈”은 인류가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보는데에서 벗어나 모든 것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분으로서의 “하나됨”으로 볼 때에 극복될 수 있다는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가 하나님이거나 하나님과 하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요 2:24-25; 겔 28:2; 호 11:9). 성경은 그 반대를 가르친다. 즉, 사람은 실제로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사 59:2). 이러한 “분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인정하게 하고 회개하게 한다 (행 2:38). 모든 사람은 “아래”가 아닌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만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 (요 3:6-7, 요 3:31). 오직 참되고 살아계신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그 하나님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신은 사도 바울이 말하길 “이 세상 신”이다 (고후 4:4). 성경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갈 3:28).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또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을 나의 죄를 위한 완전한 대속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요일 2:2, 골 1:20).
“혼돈”은 인간이 소위 프랙탈 신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더 심각해 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적인 진리는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오히려 “혼돈”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인간들의 죄성과 그로 말미암은 모든 것의 부패,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결과이다. 이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문제가 아니다. 프랙탈은 구원의 길을 알리지 않는다. 창세기 11:6-8절은 기만적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위험한 거짓 “하나됨”을 경고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사도행전 17:26절은 인류는 “한 피”이며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는 한 영이 아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성경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라고 말한다 (고전 15:50).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 3:7).
하나님의 피조물은 참으로 섬세하고 놀랍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방법으로 피조물은 서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피조물은 하나님이 아니다 (롬 1:25). 사람은 “심히 기묘하게” 지어졌다 (시 139:14). 그러나 사람은 어떤 신성한 프랙탈 질서의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들이며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복음은 이처럼 단순하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로 영접하는 것,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좁고’, ‘유일한’ 길이다 (요 14:6; 마 7:13-14). 오두막에서 프랙탈을 소개한 것은 순진한 독자들을 미혹하는 장치다. 이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도록 “프랙탈의 하나됨”이라는 거짓된 과학 지식에 입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브루스 립톤(Bruce Lipton)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프랙탈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은 믿음의 생물학: 의식, 물질, 기적의 능력을 풀어라 (The Biology of Belief: Unleashing the Power of Consciousness, Matter & Miracles) 라는 제목의 책에서 발견된다. 이 책은 연구 과학자 브루스 립톤 박사가 쓴 것이다. 립톤의 책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프랙탈 뿐만 아니라 양자 물리에도 연결하는 여러 구문들이 있다. 이 책은 레너드 스위트가 그의 책 양자 영성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교회를 뉴에이지 양자 물리학으로 이끌고 있다. 이 사실은 아마도 왜 유진 피터슨이 주기도문에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삽입하였는지, 왜 오두막이 그 겉표지에 피터슨의 추천의 글을 담고 있는지 명쾌하게 알려줄 지도 모른다. 오두막은 분명히 독자들로 하여금 양자 물리학의 악용에 해당하는 뉴에이지/새영성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천천히 변화시키는 변형 장치이다.
브루스 립톤은 어떤 인터뷰에서 말하길, 프랙탈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말해주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 뒤에 있는 과학의 “새 수학”의 부분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프랙탈의 기하학 내에 고유하게 있는 것은 서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아-유사(self-similar)” 패턴의 창조이다. 당신은 이 개념을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손으로 페이트 칠을 한 대중적인 장난감 러시안 목각 인형이다. 각각의 작은 인형(구조:structure)은 축소모형으로써 반드시 큰 인형(형태:form)과 똑같지는 않다. 이 새 수학은 고대의 격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배후에 있는 과학이다.나는 프랙탈, 양자 물리학, 세포 생물학을 말끔하게 다룬 립톤의 내용들을 보면서 세포와 뉴에이지에 대한 데빗 스팽글러의 가르침에 딱 들어맞게 고쳐진 것임을 볼 수 있었다. 립톤의 언급은 또한 레너드 스위트의 “신생 세포 이론”과 잘 어울리며 그의 양자 영성과 섞여 있다. 립톤의 말을 들어보자.
프랙탈 속성(fractal Nature)에 있어서 조직의 어떤 층에서 나타나는 구조는 “자아-유사” 패턴에 의해서 그 조직의 더 높은 층이나 더 낮은 층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어떤 층에서 조직의 프랙탈적 이해는 다른 층의 조직을 이해하는데 적용될 수 있다. 새 수학이 새로운 생물학에 적용될 때 세포와 사람과 사람의 문명은 조직의 다른 차원에서의 “자아-유사” 이미지들이다. 따라서 세포를 연구함으로써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사람 몸에 세포 집합체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더 큰 유기체인 인류를 구성하기 위한 성공적인 공동체의 속성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 피부 아래 있는 매우 성공적인 세포들의 문명을 연구함으로써 도움이 되는 문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 글을 읽은 후 나는 데이빗 스팽글러의 세상의 재구상화 의 다음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내게는 뉴에이지를 위한 가장 적절한 상징은 세포다. 세포는 실제로 살아있는 결정체다. 세포는 고도로 구조화된 내부 질서를 소유하지만 그 기하학적 배열은 결정 격자처럼 위치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원형질은 고도로 동적이다. 원형질은 새 생명의 무한한 다양성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원형질은 또한 강력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모으고 집중시킬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뉴에이지 일을 위한 마술 수정 구슬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몸과 또한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외에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다.그후 나는 어떻게 레너드 스위트가 데이빗 스팽글러에게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 이해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 점에 감사하였는지 다시 읽었다.
나는 데이빗 스팽글러에게 감사한다. 그는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나는 이러한 모든 세포 대화가 어디로 향하는지 볼 수 있었다. 테야르 드 샤르댕, 매튜 폭스, 레너드 스위트, 그리고 여러 뉴에이지에 선호가들은 세상과 교회에 하나님은 모든 원자 ‘안에’ 있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하나인데, 바로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헬라 이방인들에게 말하길, 인류의 모든 족속은 한 혈통으로서 (행 17:26) 모두 비슷한 세포 유사성을 가지지만 인류는 여전히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한 피를 나눈다는 뜻은 우리의 원시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통해 신체적인 “하나됨”을 함축한다. 그러나 바울은 영적 하나됨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헬라인들에게 인류는 한 피를 나눴다고 말한 바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다. 바울은 사도행전 17:31절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행 17:31).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누어 비슷한 세포 형질을 가진 점과 함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말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은 레너드 스위트가 양자 영성에서 제시하고 윌리암 영이 오두막에서 제시하는, 그러한 우주적이며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위해 죽으셨으며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따를 때 우리는 우리 죄로부터 구원 받고 자유할 수 있음을 분명히 선포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양자 물리학이나 양자 영성과 같은 것들을 예견하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으로 거짓-과학적 가르침들과 타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딤전 6:20).
바울은 또한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거짓 선생들을 쫓아 윌리암 영과 그의 책 오두막 처럼 프랙탈과 지어낸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참된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거짓 선생들을 따르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1-4).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릭 워렌이 그의 동료인 밥 뷰포드[버포드]의 책 하프타임(halftime)(이 책은 피터 드러커에게 바쳐진 책이다)에 추천의 글을 쓸 때 “나는 모든 회중들이 영감어린 이 책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켄 블랜차드가 기독교와 관련되게 된 계기는 노만 빈센트 필 및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특히 뷰포드가 때문이다. 현재 이머징 교회 운동과 브라이언 맥라렌, 더그 패짓(Doug Pagitt), 토니 존스 등과 같은 이머징 지도자들은 생겨날 수 있도록 한 것은 뷰포드의 리더쉽 네트워크(Buford’s Leadership Network)이다. 리더쉽 네트워크는 2000년 5월에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이라는 제목의 컨퍼런스를 주관했다. 양자 영성의 저자 레너드 스위트가 그 컨퍼런스의 주강사였으며 켄 블랜차드, 피터 센지, 마가렛 휘틀리 등의 뉴에이지 공감자들이 강사들이었다. 리더쉽 네트워크는 미래에 대한 성경에 주어진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듣기에 더욱 낙관적이고 부담없는 “지도”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 컨퍼런스에서는 스위트가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있었다.
마가렛 휘틀리(Margaret Wheatley)는 레너드 스위트처럼 양자 물리학과 뉴에이지에 심각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녀는 뉴에이저 마리안느 윌리암슨의 부탁으로 상상하라: 21세기에 미국은 어떻게 될까: 최고의 미국 사상가들로부터 듣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들 (Imagine: What America Could Be in the 21st Century: Visions of a Better Future from Leading American Thinkers) 라는 마리안느의 책의 마지막 과를 썼다. 이 책은 디팍 초프라, 닐 도날드 월치[월쉬], 바바라 막스 허바드 등등, 뉴에이지 저자들과 선생들의 글들로 가득차 있다.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의 강사였던 피터 센지도 또한 뉴에이지 지도자들의 범세계적 르네상스 동맹(the Global Renaissance Alliance of New Age leaders)의 기금 마련을 위한 뉴에이지 책의 한 과를 썼다.
1992년의 책 리더쉽과 새과학: 무질서한 세계에서 질서를 발견하기(Leadership and the New Science: Discovering Order in a Chaotic World) 의 2006년 개정판에서 마가렛 휘틀리는 2000년 5월의 리더쉽 네크워크 컨퍼런스의 주제인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실제 세상을 향한 지도”라는 제목이 붙은 서언에서 다음 내용을 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책을 마치 초기 탐험가들이 새로운 땅으 찾아 모함할 때 사용했던 지도들과 같은, 그러한 흥미로운 지도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해 왔다.휘틀리의 책 리더쉽과 새과학은 리더쉽 네트워크 컨퍼런스를 고취시켰음이 매우 분명한 것 같다. 그녀의 글을 보자.
1990년, 나는 리더쉽의 도전에 새과학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는 재난이던 혹은 새로운 가능성이든 풍성한 잠재력이 있는 무질서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마가렛 휘틀리는 어떻게 “양자 물리학이 방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관찰, 인식, 참여, 관계, 영향, 연결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도전하는지” 계속 설명한다. 그 다음 그녀는 독자들에게 “혼돈 이론”과 “프랙탈”을 소개한다.
질서와 범세계적 상호 연결은 우리의 매일의 삶의 부분이다.
지금은 우리가 과거의 지도를 사용해서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정말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근본적인 방법, 즉 우리의 세계관이다.
당신의 신앙과 체험이 무엇인든 나는 당신이 혼돈의 시간을 항해할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것을 부탁한다.
혼돈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 나는 어떻게 자연이 매우 기초적인 원칙을 가지고 그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패턴들을 만들어내는지, 프랙탈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들을 살펴보았다.휘틀리는 자신이 “새과학”에 대해 처음으로 읽은 책은 물리학의 도교: 현대 물리학과 동방 신비주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 를 쓴 뉴에이지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의 글이라고 말한다. 휘틀리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새과학에 대한 첫번째 책을 열었다. 그 책은 프리초프 카프라의 회귀점 이었다. 그 책은 양자 물리학으로부터 등장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설명한다. 이 책은 세상을 간파하는 세로운 방법에 대해 희미한 윤곽을 준다. 자연의 변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연의 패턴을 따르는 깊은 속성, 서로 거미줄처럼 두텁게 엮인 연결등을 이해하게 한다.이머징 교회 지도자 브라이언 맥라렌은 그의 책 다른 측에 서 있는 교회(The Church on the Other Side) 에서 마가렛 휘틀리를 인용하면서 리더쉽과 새과학 을 “영감을 주는 책”이라고 칭찬했다. 그녀의 책으로부터 한 일화에 끄집어 내어 평가하면서 맥라렌은 “양자 이론”은 사람들이 “아원자적인 실체를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여러 문장 속에서 “양자 이론”에 대한 언급을 한 맥라렌은 릭 워렌이야말로 미래에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정확히 보는 “재능이 많고 지혜로운 지도자요 저자”라고 평했다. 그런 후에 맥라렌은 우리를 하나의 변화에서 다른 변화로 신속하게 움직이게 하는 “양자 도약”을 언급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단지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 그 자체가 바뀌었다. 즉, 변화된 법칙 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다. … 지금 변화는 그 변화의 복잡성에 있어서 기하학적인 속도의 변화 그 이상이다. 진화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양자 도약이 발생하고 있다. 양자 도약은 철저하게 과거의 배경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낸다.레너드 스위트, 마가렛 휘틀리, 켄 블랜차드, 피터 센지 같은 뉴에이지 애호가들이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이라는 주제의 컨퍼런스를 함께 주관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이머징 교회 지도자 브라이언 맥라렌이 그의 책에 양자 물리학 및 휘틀리의 책 리더쉽과 새과학을 언급하는 점도 놀랍지 않다. 리더쉽 네트워크는 뉴에이지 공감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교회의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고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성경을 지도로 한 것이 아니라 뉴에이지의 양자 물리학을 결정적인 지도로 삼아 만든 것이다. 오두막의 주인공 맥켄지 알렌 필립스(McKensie Allen Phillips)의 이니셜을 따면 M.A.P (지도)가 되는데 이것도 우연일까? 우연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오두막은 뚜렷하게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이다.
2000년 5월에 있었던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에 대한 요약이 온라인에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을 보면 리더쉽 네트워크 행사들이 나열되어 있다. 리스트에 있는 행사들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있을 컨퍼런스가 있고 그 컨퍼런스의 주강사는 릭 워렌이었다. 이제 우리는 릭 워렌이 레너드 스위트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지도에서 벗어난 탐험” 컨퍼런스에 참여를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던 릭 워렌은 밥 뷰포드와 리더쉽 네트워크와 친밀한 관계다.
양자 혁명
브루스 립톤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 나는 그의 책 믿음의 생물학 (Biology of Belief) 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립톤이 양자 물리학, 새 생물학, 새 세계관을 둘러싼 열정이 치솟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오두막의 저자 윌리암 영의 나레이터 “윌리”가 오두막의 맨 끝에서 촉구하는 “새 혁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 혁명”을 향한 저자의 강렬한 촉구는 이미 그의 책의 앞부분에서 나오는 프랙탈, 과학, “아원자 층에서 움직이는 양자”에 의해 이미 예시되는 것 같다. 즉,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목표로 하고 오두막을 쓴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윌리암 영의 오두막은 레나드 스위트의 양자 혁명과 영자 영성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양자 혁명”은 릭 워렌이 버밍햄의 예수처럼 인도하기 컨퍼런스에서 켄 블랜차드에게 언급한 “알지요, 켄. 함께 혁명을 시작합시다”라고 할 때의 “혁명”과 같은 것인가? 워렌이 주장하는 “혁명”이 바로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는” 이 혁명을 말하는 것인가? 또한 이 “양자 혁명”과 브라이언 맥라렌, 어윈 맥마너스, 쉐인 클레이본과 같은 어미장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의 글에서 언급하는 ‘혁명’과 같은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양자 물리학, 새 생물학, 프랙탈 기하학의 새 수학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마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증명하려는’ 것 같다. 그후 모든 피조물은 에너지의 양자 영역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하나됨”이 하나님임을 믿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꿈의 영역”인 서로 연결된 양자 내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인정하고 행할 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으며 “긍정적인 미래”가 있는 것이다. 릭 워렌은 “만일 당신이 예수님이 곧 오시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즉,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그분이 올 것이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의 여족장 앨리스 베일리는 “그분의 오심은 당신의 일에 달려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마치 워렌의 피스(P.E.A.C.E.) 계획처럼 들린다. 또한 닐 도날드 월치의 뉴에이지 피스(PEACE) 계획처럼 들린다. 에수 그리스도를 재발명하기 (Reinventing Jesus Christ) 와 목적이 있는 속임수에서 자세히 논의한 것처럼,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그분이 올 것이다”라는 말은 거짓 그리스도 마이트레야(Maitreya)의 피스 계획이기도 하다. 마이트레야는 뉴에이지 “그리스도”로서 그는 이미 이 지구 상에 있으며 “만일 당신이 세워 놓으면 올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개의 큰 질문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가 세워 놓으면 도대체 실제로 누가 오는 것인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적그리스도인가?
이러한 피스 계획은 신비주의라는 부분에서 서로 공통점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릭 워렌도 그가 진행시키고 있는 여러 계획들 속에는 같은 종류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장려하고 있다. 워렌은 리차드 포스터의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 운동(관상 영성)을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타당한 메시지”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포스터의 영적 형성을 보면 그가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 빌려오는 글들은 닐 도날드 월치 및 앨리스 베이리의 글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포스터는 종종 “진정한 고독은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고독에 참여하는 것이다”라는 토마스 머튼의 글들을 인용하며 의지한다. 포스터는 또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캐톨릭 관상주의자 바질 페닝톤(Basil Pennington)의 글들을 빌려온다. 바질 페닝톤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믿으며 모든 종교는 관상을 하는 동안 “깊은 일치”를 체험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오직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신은 오직 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릭 워렌이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자명종(wake-up call)”이라고 부르는 포스터의 “영적 형성”은 포스터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틸덴 에드워즈의 글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영적 형성의 신비주의 강물은 극동양(Far Eastern) 영성에 서양적인 다리(bridge)다.”
“하나님의 꿈”과 형이상학
마치 로버트 슐러가 교회와 뉴에이지/새영성 간에 다리는 놓은 것처럼 레너드 스위트도 특별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물론 스위트가 슐로의 격려와 도움을 받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스위트는 또한 릭 워렌을 포함한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스위트는 그의 1999년 책 영혼의 쓰나미 에서 “하나님의 꿈”에 대해 실컷 말한다. 그는 또한 “물리학은 형이상학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인정할 수 없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꿈”은 양자 물리학과 스위트의 뉴에이지/양자 영성에 의해 제시되는 새로운 세계관일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꿈을 꾸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거짓 가르침과 “하나님의 꿈”이라는 교묘한 속임수들을 드러내신다.
“물리학이 형이상학이 되고 있다”는 레너드 스위트의 인식은 리차드와 아이오나 브라운 부부에 의해 쓰인 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양자 물리학의 신비들”에서 제시한 것과 유사하다. 스위트의 형이상학/뉴에이지적인 언급은 도날드 드그라시아 박사(Donald J. DeGracia)의 글에 의해 생생하게 노출되었다. 도날드 박사에 의하면 혼돈, 프랙탈, 그리고 양자 이론은 밀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그라시아 박사는 “물리학을 초월해서: 프랙탈의 빛, 혼돈, 그리고 양자 이론의 밀교주의와 과학의 합성”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돈, 프랙탈, 양자 이론은 …. 과학의 이 세 가지는 밀교주의에서 발견되는 원칙과 일치하는 원칙을 포함한다.프랙탈과 양자 물리학에 관련한 추가 자료들을 읽은 후에 나는 제니퍼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의 글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의 연구가 매우 도움이 되었으며 많은 사실들을 드러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와 또 다른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는 양자 물리학과 프랙탈의 전반적인 주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더 주었다. 그 정보는 레너드 스위트가 이머징 교회 지도자인 브라이언 맥라렌과 제리 헤젤매이어(Jerry Hazelmayer)와 함께 귀추적 방법: 이머징 교회의 언어 (A is For Abductive: The Language of the Emerging Church)를 공동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그 책은 이머징 교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F” 문자는 프랙탈의 대표하는 문자로서 “전체가 모든 부분의 소형에 그대로 복제되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뜻이다.
랜드샤이트(Landscheidt)는 태양의 활동이 지구의 활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이기 위해 고대 밀교의 관념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연금술의 공리)를 사용한다. 이 연구는 내가 “자연의 자아-유사성”이라고 부르는 원칙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즉, 자연의 어떤 조직에서 적용되는 원칙은 다른 규모의 조직에서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는 또한 프랙탈과 밀교 관념 사이의 호환성을 설명한다.
뉴에이지의 “하나됨(Oneness)”
잿더미로부터: 미국을 향한 공격에 대한 영적 반응(From the Ashes: A Spiritual Response to the Attack on America) 라는 책을 보면 뉴에이지와 종교 지도자들이 (물론 그 중에는 릭 워렌이 있다) 2001년 9월 11일의 대참사 후에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여러 글들이 있다.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으로 그 책에서 닐 도날드 월치는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뉴에이지 메시지를 전파하며 전 세계의 뉴에이지 및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도우라고 격려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하루 만에 바뀔 것이다”라고 월치는 약속한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기초하는 믿음들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다른 실체를 창조해야 하며 새로운 사회를 세워야 한다. … 우리는 새로운 영적 진리들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치유하는 그 메시지의 핵심은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월치의 뉴에이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책에서 월치는 그의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의 것은 더 나은 길이 아니며 단지 또다른 길일 뿐이다.
15개의 단어로 된 이 메시지는 모든 강단과 설교단에서 설교와 강연을 통해 외쳐지고 있다. 이 15개의 단어는 모든 것을 하룻밤에 바꾸어 낼 수 있다. 나는 모든 사제들과 사역자와 랍비들과 모든 종교 성직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선포하길 도전한다.
하나님은 피조물이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은 오두막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메시지 성경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이다. 윌리암 영, 릭 워렌, 그리고 유진 피터슨은 자신들이 깨닫던 말던 모두 닐 도날드 월치와 그의 뉴에이지 “하나님”에게 정확하게 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있다. 유진 피터슨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을 취하여 주기도문에 삽입하더니 결국 에베소서 4:6절을 번역할 때는 뉴에이적인 결론을 내린다. “당신의 존재, 당신이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은 모두 하나됨으로 스며있다.”
당신은 창조주며 피조물이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이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모든 사람과 하나이며 하나님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과 하나다.
오직 우리 중에 하나의 하나(Only One)가 있다. 당신과 나는 하나(One)다.
흥미로운 점을 하나 더 소개하겠다. 오두막의 저자 윌리암 영은 실제로 온라인에서 오두막의 인물들의 대화 내용은 그가 실제로 그의 “하나님”과 나눈 “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해 준 내용을 소설로 만든 것이 오두막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존재의 바탕인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주변에, 관통하여 있다”는 말들, “프랙탈”에 대한 언급들, “아원자 층에서 움직이는 양자 물체”등은 영이 그의 “하나님”과 나눈 대화로부터 나온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영은 원래는 그의 책의 제목을 하나님과의 대화 라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닐 도날드 월치가 같은 제목의 책을 쓴 것이 있기 때문에 오두막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암 영은 실제로 닐 도날드 월치와 많은 점에서 공통된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과 실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대화 내용”을 글로 썼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내용들”은 뉴에이지/새영성 가르침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정보는 한 가지 큰 질문을 남긴다. 도대체 윌리암 영은 어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영이 대화를 나눈 “하나님”은 닐 도날드 월치가 그의 “대화”에서 만난 “하나님”과 같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뉴에이지/새영성의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하나님은 세상의 신이 아니다 (고후 4:4). 물론 우리 주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이 세상의 신은 다른 아닌 사탄이다.
평범한 눈에는 숨겨짐
결국 나는 제니퍼가 그녀의 글에서 언급한 뉴에이지 영화를 빌려서 보게 되었다. 제목은 구도자(The Seeker)였다. 그 영화에서 윌(Will)은 시간 속에서 숨겨져 왔던 표시들 또는 “프랙탈”을 발견해서 세상을 구원하려는 어린 소년이다.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윌과 메리맨(Merriman: 고대 지혜자들 중 하나)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윌: 알았어. 이것을 볼래? 이 패턴이 프랙탈이지. 그 물리학에 대해 아빠가 가르쳐주었어. 마치 숨겨진 장소가 끝없이 있는 것 같아.메리맨이 말한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나는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유지 피터슨이 메시지 성경의 주기도문에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를 삽입한 것은 뉴에이지의 프랙탈과 같은 것이 아닐까? 즉, 평범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단서가 아닐까? 구도자 영화 속의 숨겨진 표시 중에 하나 처럼 메시지 성경의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는 어느날 예언적 표시로 간주되게 될 “단서”는 아닐까?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는 뉴에이지의 미래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프랙탈 “메시지”로 간주되는 메시지는 아닐까? 이 “메시지”는 메시지 성경이 가지고 있는 프랙탈 메시지는 아닐까? “하나됨”의 프랙탈 메시지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 즉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하나님이 온 세계를 구원할 열쇠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구도자의 프랙탈과 같은 것이고 또한 닐 도날드 월치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메시지와 같다. 그렇다면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 그리고 오두막에서 나오는 윌리암 영의 “예수”이 말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인용 또한 어느날 “평범한 눈에는 숨겨져 왔던 프랙탈 단서들로 간주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주의 재림 전에 주의 이름으로 와서 온 세계를 미혹하게 될 영적 속임수에 본의 아니게 빠져 그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4).
메리맨: 평범한 눈에는 숨겨진 단서가 바로 그 표시임을 말해 주는 것이란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참된 성령은 결코 유진 피터슨, 릭 워렌, 레너드 스위트, 윌리암 영, 또는 그 누구에게든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과 같은 밀교적 [에소테릭] 메시지 가르침을 그 어떤 책에 넣으라고 지시할리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 어떠한 밀교의 메시지라도 결코 참되신 한분 하나님과 그분의 참된 아들, 우리 주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 거하는 엄마
제니퍼는 가정주부로서 14살난 딸을 홈-스쿨링을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쳤다. 그녀의 연구는 내게 프랙탈과 양자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여 주었고 또한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밀교/뉴에이지 용어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를 알려주었다. 제니퍼의 프랙탈과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에 대한 통찰력은 오두막의 중요 뉴에이지적 면들을 노출함과 함께 레너드 스위트의 책 양자 영성과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운동에 숨겨있는 뉴에이지 내용들을 더욱 드러내는 것을 도왔다.
제니퍼의 글 때문에 나는 1975년의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 물리학의 도교: 현대 물리학과 동방 신비주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 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수년 전에 내가 뉴에이지 운동에 머물 때 밀교의 고전으로 간주되던 책이었다. 그 내용은 온 세상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뉴에이지의 미래로 커다란 “양자 도약”을 할 준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과 윌리암 영의 오두막과 같은 책들도 교회로 하여금 양자 도약을 취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표시들과 프랙탈들은 같은 길을 지시하는 것 같다.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yoochinw/130077241736)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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