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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스팽글러, 그리고 양자(量子) 영성

스위트, 스팽글러, 그리고 양자(量子) 영성
만일 우리가 우리의 뉴에이지 사역을 위한 마술 수정 구슬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몸과 또한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외에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다. - 데빗 스팽글러 1991

나는 데빗 스팽글러에게 감사한다. 그는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 레너드 스위트 1991

윌리스 하만, 매튜 폭스, 엠 스콧 펙 그리고 양자 영성에서 “뉴 라이트 지도자들”로 그가 언급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레너드 스위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이 분들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믿는다. 이 분들은 새로운 사상이 흐를 수 있도록 운하를 뚫은 사람들이다. 이 책은 내가 그들이 뚫어 놓은 운하를 지나면서 그들의 과정을 도표화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생각들은 그들로부터 온 것이다.
스위트는 그의 양자 영성에서 영적 채널들(spiritual channels)을 말하면서 특히 개인적인 감사를 뉴에이지의 노장급 지도자이며 영매(channeler)인 데빗 스팽글러에게 돌리고 있다. 스팽글러는 뉴에이지 영매의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벗어버리려는 시도로서 자신을 의식적인 직관(a conscious intuitive)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뉴에이지를 대표하는 선구자적인 인물인 스팽글러는 지난 수년에 걸쳐 이머전스: 신성함의 재탄생, 계시: 뉴에이지의 탄생 세상의 재구상화: 뉴에이지, 과학, 대중 문화 비평등을 포함한 여러 책들을 썼다. 그의 책 계시: 뉴에이지의 탄생은 그가 몸이 없는 스피릿 가이드 “존”으로부터 받은 전달된 정보들을 모은 것이다. 계시 에서 스팽글러는 “존”이 “우주적 그리스도의 에너지들”과 “하나됨”에 대해 예언한 것을 문서로 남겼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에너지들이 지구의 에테르적인 생명 내에서 더욱 가속적으로 나타남에 따라서 많은 개인들이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서 그리고 자신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존재를 느낄 것이며 자신들이 사랑받는 자로서 이미 그리스도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하나님과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울 왕이 엔돌의 무당을 만났던 경우(삼상 28:7)와 비슷한 일들이 현대에 발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레너드 스위트가 양자 영성에서 말하길, 자신은 사적으로 영매 데빗 스팽글러와 상담을 하였었노라고 인정한다. 양자 영성에서 스위트는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에 대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는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를 이해하도록 도운 스팽글러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스위트의 글을 보자.
철학자 에릭 보에글린(Eric Voegelin)의 단어 “코스미온(cosmion)”은 “우주의 특성을 지닌 질서있는 것”을 의미한다. 뉴 라이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의 의식의 코스미온들로서 자신들을 헌신한다. 뉴 라이트들은 새 몸의 세포들로 변화하는 코스미온으로서 운반 그릇의 기능을 한다. 변화시키는 에너지는 이 세상에서 뉴 라이트들을 통해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을 어떤 구현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김으로 신적인 형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나는 뉴 라이트 리더쉽의 “신생 세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데빗 스팽글러에게 감사한다.
스팽글러: 여전히 뉴에이지에 속함

데빗 스팽글러는 그의 1991년 책 세상의 재구상화(The Reimagination of the World)에서 분명하게 말하길 “신생 세포”의 대한 자신의 이해는 뉴에이지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했다. 스팽글러는 뉴에이지의 자가 당착적이고 피상적인 면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영적 신앙을 묘사하기 위해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굳게 사용하고 있다. 사실 뉴에이지의 “신생 세포 이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스팽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는 뉴에이지를 위한 가장 적절한 상징은 세포다. 세포는 실제로 살아있는 결정체다. 세포는 고도로 구조화된 내부 질서를 소유하지만 그 기하학적 배열은 결정 격자처럼 위치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원형질은 고도록 동적이다. 원형질은 새 생명의 무한한 다양성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원형질은 또한 강력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모으고 집중시킬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뉴에이지 일을 위한 마술 수정 구슬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몸과 또한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외에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다.
“신생 세포” 이해의 이 부분이 레너드 스위트가 데빗 스팽글러로부터 받은 전부였겠는가? 수년에 걸쳐 스팽글러가 체계적으로 문서화한 “뉴에이지 일(New Age Work)에 비하면 이 문장은 매우 작은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이 문장만으로도 제대로된 복음적 기독교 지도자라면 스팽글러의 이단적 뉴에이지 가르침을 멀리하기에 충분하다. 스위트는 뉴에이지 핵심 지도자이며 스피릿 가이드의 영매인 데빗 스팽글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혁신적이고 선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둠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그 어둠을 드러내어 꾸짖으라고 교훈한다 (엡 5:11-13).

레너드 스위트의 양자 영성과 데빗 스팽글러의 세상의 재구상화는 둘 다 1991년에 출판되었다. 이들의 책을 보면 둘다 뉴에이지의 유행성과 관련된 부분 및 소비자 중심 요소들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뉴에이지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스팽글러와 스위트가 실제로 뉴에이지에 반박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문맥에서 벗어난 인용들은 그렇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스위트와 스팽글러는 뉴에이지/새영성의 어떤 부분들을 대중에게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둘 다 대중적 냄새가 심한 셜리 맥클레인식의 용어들을 벗겨내고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재정의하여 세련되게 만들므로서 뉴에이지 자체를 겉으로 보기에 공신력 있는 과학 분야로 넣었다. 따라서 뉴에이지라는 용어는 더 이상 밀교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인증받은 영적 믿음인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는 더 이상 뉴에이지 영성이 아닌 것이다. 다가오는 “뉴에이지”(새 시대)의 우주적인 “새 영성”인 것이다. 이제 이 뉴에이지는 범지구적인 시대와 동등시 될 것이며 범지구적인 윤리는 인류의 환경과 유익을 향한 정열적인 관심을 나타낼 것이다. 이 새 시대는 스위트의 ‘영웅’, 고 (故) 뉴에이지 지도자 엠 스콧 펙이 요구했던 새로운 교양를 만들어 낼 것이다. 펙은 그의 1993년 책 세상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재발견된 교양(A World Waiting to be Born: Civility Rediscovered)에서 그의 유토피아 뉴에이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유토피아의 시민들이 갖게 될 뚜렷한 특성은 그들의 위치나 민족, 종교, 직업이 아니라 범지구적인 교양 문화로서 각 개인들은 더욱 교양있는 시민들이 되는데 온 맘을 다할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헌신과 시민의식 덕분에 자신들이 가진 신학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적극적인 임재를 환영할 것이다. … 그들의 주된 헌신은 자신들의 영혼의 발전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들은 모두 범지구적인 문화에 맞게 되기 위해 서로 시민 의식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누가 감히 이상적인 뉴에이지, 다가오는 이 새 시대에 범지구적인 “교양”과 인간을 향한 박애와 생태적 책임을 요구하는 이 부름에 따질 수 있겠는가? 오직 이러한 배후에 뉴에이지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일 것이다. 뉴에이지 믿음은 범지구적 새 윤리로서 새 영성 및 다가오는 뉴 에이지를 위한 새로운 세계관이라는 껍질을 갖고 몰래 대중화 되고 있다. 레너드 스위트와 브라이언 맥라렌도 또한 뉴에이지라는 용어를 밀교 믿음이라기 보다 시대의 기간으로 정의하려고 하고 있다. 맥라렌은 전반적인 뉴에이지 운동을 “애매 모호하고, 소비자 성향에 전문이고, 정의할 수 없는 반 응고 상태(mushy)”라고 특징지음으로 귀퉁이로 몰아내려고 하지만, 그가 놓치고 있는 점은 뉴에이지는 성경적인 기독교에 대항하여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구성된 영정 운동이란 사실이다. 뉴에이지는 그 믿는 내용에 있어서 매우 진지하며 결코 ‘반 응고체(mushy)’처럼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맥라렌은 성경적인 기독교를 “저돌적인 근본주의”라고 정의하는 한편, 뉴에이지는 반 응고체와 같다고 잘못 정의를 내림으로 뉴롭게 등장하는 신학인 새시대를 위한 새영성의 길을 포장하고 있다. 한때 밀교 믿음의 시스템을 특징지우던 “뉴에이지”라는 용어는 말끔이 사라지고 지금 “뉴에이지”는 단지 새 영성이 나타나는 시간대를 의미하고 있다. 맥라렌은 그의 책 우리의 길을 다시 찾아서(Finding our Way Again)에서 다가오는 “뉴 에이지”의 새 영성을 설명한다.
영성이라는 단어는 매일의 신성함을 뭉쳐놓은 것을 붙잡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성이란 세속적 근본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와는 달리 생명을 주는 다른 선택을 뜻한다. 세속적 근본주의는 이 세상에 대량 살상의 무기를 주었고 종교적 근본주의는 대량 살상 무기가 동작할 수 있도록 감정을 부추겼다.

불만족은 여러 경우에 있어서 저돌적인 근본주의가 반동적으로 일어나게 했다. 저돌적 근본주의는 무섭고, 흥분 상태에 있고, 폭력적이고, 종말론적이다. 또한 불만족은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새로운 종류의 영성을 추구하게 했다. 이러한 추구의 성공과 실패가 의심할 여지없이 21세기의 역사에 주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영성을 찾는 노력의 초기 단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애매 모호하고 소비자 성향에 전문이고, 정의할 수 없는 반 응고체 같은 것을 의미하는 ‘뉴에이지’라는 용어와 관련되어 왔다. 그러나 2001년 9-11 사건 후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스하지만 반 응고체 같은 불투명한 것으로는 어떤 종교에 속하던 정열적이고 저돌적인 근본주의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강렬하게 뭔가 신선하고 창의적 4번째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 군국주의적 과학 세속주의, 저돌적인 종교 근본주의, 반 응고체 같은 무정형의 영성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깨닫는 것은 4번째의 이 다른 방도는 창의적인 것이어야 하며, 포스트모던, 포스트식민정책, 포스트-계몽주의, 포스트-기독교계, 포스트-대학살, 포스트-9/11등, 모든 포스트를 지나는 새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방도는 그 힘을 과거의 종교 전통에서 가져와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이 방도는 오래된 과거 지혜로 새 시대의 도전들을 부딪혀야 한다.
따라서 뉴에이지와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새롭게 소개된 새로운 의미론(semantics)는 뉴에이지 영성이라고 불렸던 것을 이제 새 연대(New Era)와 새 시대를 위한 만유내재신론적인 새 영성으로 바꾸었다. 레너드 스위트, 브라이언 맥라렌, 그리고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은 서서히 교회를 뉴에이지 가르침으로 끌고 들어왔었다. 그러나 뉴 라이트 리더쉽, 양자 영성, 새 영성, 그리고 새 세계관 같은 교묘한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마친 “세계의 유익을” 위한다는 개념 하에 교회를 “구시대”/성경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새롭게 등장하는 새영성의 “새 시대”로 이끌고 있다.

1991년, 레너드 스위트는 오늘날 교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의 장을 마련하였다. 그는 맥라렌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말하였다. 뉴에이지를 밀교의 신앙 내용으로 정의하기 보다 새로운 연대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양자 영성에서 스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통치의 전선에 서 있다. 성경적인 학자 크리스티안 베커는 바울의 교회 사상에 대해 “교회, 뉴에이지의 여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구시대의 끝과 함께 새시대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교회는 “새 창조의 교두보”이다. 베커의 표현으로는 교회는 “사라지는 과거 세상에서 새 시대의 표지다.
따라서 데빗 스팽글러, 브라이언 맥라렌, 그리고 레너드 스위트는 모두 다 뉴에이지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뉴에이지를 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스위트가 양자 영성 에서 주장하듯 그들 모두는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뉴에이지의 기본 관점을 꼭 붙들고 있다. 이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스위트는 관상 신비주의/만유내재신론자 토마스 머튼을 언급한다.
그러나 교회가 춤을 추려면 먼저 살을 빼야 한다. … 지금까지 교회는 포스트모던 문화에 그 발을 담기를 거절해 왔다. 양자 영성은 교회가 그 큰 발가락을 현재의 시간과 장소에 담음으로서 교회의 과거를 안고 미래에 대처하기를 도전한다.

오직 그렇게 된 후에야 교회는 일차원적으로 활짝 펼쳐질 것이다. 종종 차원이 없는 세상은 4차원적 믿음에서 능력과 생동력을 발견했다. … 오직 그 후에야 다가 올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돕는 “세상을 만드는” 뉴 라이트 운동이 올 것이다. 오직 그 후에야 세속인들은 이 말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시인/관상/행동주의인 토마스 머튼이 동양과 서양에 다리를 놓기 위해 말한 “우리는 이미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본래의 하나됨이다” 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뉴에이지를 다시 포장하기

데빗 스팽글러 및 레너드 스위트의 개정된 뉴에이지 정의는 기존의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심령술사들, 수정 마술,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 풍자 등과 대조를 이루지만,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만유내재신론 교리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양자/만유/우주적 그리스도의 뉴에이지는 여전히 뉴에이지의 이단적 ‘그리스도’와 함께 이단적 영성이다. 뉴에이지는 의심하지 않는 세상과 분별력이 없는 교회를 향해 재포장되어 왔다. 세상의 재구상화 라는 책에서 스팽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 성육신하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자연과 이 지구에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여성(femine)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생물학과 양자 물리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으로 우리는 밀교주의자들이 언제나 보고 있었던 것들을 더욱 더 보게 되었다. 즉, 실체의 진행의 면, 서로의 연결성, 서로의 복합성, 서로의 침투성 등이다. 이러한 폭발적인 세계관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우주적 그리스도가 된다. 광고원들이 상품을 재포장하여 “새롭게 향상된 것”이라고 부르듯이, 우주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재포장한다. 사실, 그리스도의 나타남에 있어서 근본적인 특성은 같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활동을 한 개인 안에서 보던, 지구에서 보던, 우주 전반에 걸쳐 보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다. 그러나 새로운 포장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도록 하며 지난 2000년 동안 우리가 간과해 왔던 그리스도의 그러한 특성들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분명하게 레너드 스위트는 윌리스 하만, 매튜 폭스, 그리고 엠 스콧 펙과 같은 뉴에이지 지도자드을 “뉴 라이트 지도자들”로 언급함으로써 나름대로 “새로운 포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들의 “우주적 그리스도”는 뉴에이지/새영성의 거짓 그리스도다. 그들의 “우주적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거짓 그리스도다. 스팽글러는 이러한 뉴에이지 “우주적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그분(he)”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it)”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주적 그리스도는 어떤 특별한 역사적 사건과 관계없는 그리스도다. 그것은(it) 시간의 범주 안에서 언제나 활동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던 아니든 우리 각자 안에서 활동적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신성(the sacred)의 구현들(incarnations)이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그것은 여성적인 면을 드러내며 성별을 초월한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도 있다. 그것은 지구 내에 있는 신성한 영이며 온 우주 안에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방 종교라고 부르는 다른 믿음의 전통 내에도 있고 물론 기독교 내에도 있다. 가끔 내게는 기독교 내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특성과 우주성과 자비를 져 버리는 교단 보다는 타 종교에서 그리스도가 더 존재하는 것 같을 때도 많다.
왜 레너드 스위트는 데빗 스팽글러와 같은 뉴에이지 지도자와 상담을 하려고 하며 또한 모든 사람과 모든 것 ‘안에” 있는 만유내재적인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글을 쓰는가? 스위트는 다음을 강조한다.
자연 세계는 인간의 유익 외에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과 목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세계와 함께 그리스도의 우주적 몸을 구성하고 있다.
아무튼 양자 영성에서 나타난 레너드 스위트는 그가 포스트모던의 특유한 용어와 복음주의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다분하게 뉴에이지 신봉자다. 뉴에이지 교사들과 우주적 그리스도를 향한 스위트의 애착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양자 영성에서, 그의 웹 사이트 전반에 걸쳐, 그의 다른 글들에 잘 나타나 있다. 최근에 교회를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에 스위트가 끼어 있다. 그러나 만일 물병 자리의 음모의 저자인 마릴린 퍼거슨이 살아 있다면 그는 자신의 신앙과 일치하는 스위트를 그의 물병자리 음모자로 열거했을 것이다.

레너드 스위트와 릭 워렌

레너드 스위트의 책 양자 영성은 뚜렷하게 스위트의 뉴에이지 성향과 함께 그의 “일구이언”(딤전 3:8)과 “두 마음”(약 1:8)의 가르침을 (약 1:8) 드러낸다. 1995년에 릭 워렌과 레너드 스위트가 함께 제시하는 변화의 물결 의 대화를 근거로 하면 그때까지는 스위트의 사역의 뉴에이지 성향이 릭 워렌에게 전수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합동 제안이 있은 후에 많은 추가적인 일들이 있다. 워렌은 뉴에이지 공감자인 스위트와 더 함께하게 된다. 그는 1999년에 스위트의 책 영혼의 쓰나미: 새 천년의 문화 가운데 잠수할 것인가 아니면 수영할 것인가(Soul Tsunami: Sink or Swim in New Millennium Culture)에 추천을 글을 썼다. 워렌의 추천은 책의 앞면과 뒷면에 실렸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책의 앞표지의 디자인에 삽입되었다. 워렌의 추천의 글은 명백하게 스위트와 그의 책에 신뢰를 실어주었다. 스위트의 책에 공개적으로 서명함으로 워렌의 사역의 뉴에이지 성향은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스위트는 영혼의 쓰나미 에서 신속히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꿈”과 교회를 위한 “새 개혁”을 주제로 하여 로버트 슐러/릭 워렌/뉴에이지/이머징 교회를 소개한다. 그의 글을 보자.
하나님의 꿈을 위해 준비된 때는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이 꿈을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당신이다. …

하나님은 교회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영적 각성을 태어나게 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이 탄생의 산모로 부르신다. 당신은 그 부름에 응답하겠는가?

세상이 전반적인 문화 형성을 재고하고 있는 이 때에 교회는 포스트모던 배경에 맞는 교회가 되기 위해 새로운 길들을 찾아야 할 때다. 지금이 바로 포스트모던 개혁을 위한 때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는 레너드 스위트다. 하나님은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적 각성을 탄생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뉴에이지/새영성이 지난 몇 년에 걸쳐 기하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뉴에이지 책들과 가르침은 교회를 포함한 모든 곳에 퍼져 있으며 그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및 여러 뉴에이지 대변인들 또한 “하나님의 꿈”과 위대한 “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각성”은 거짓 그리스도, 곧 우주적 그리스도를 향한 것으로서 우리 주시며 구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다. 레너드 스위트나 릭 워렌과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지금 교회와 뉴에이지/새영성 간의 차이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회의 “포스트모던 개혁”에 대해 매튜 폭스는 그의 2006년 책 새 개혁: 창조 영성과 기독교 변형(A New Reformation: Creation Spirituality and the Transformation of Christianity)의 출판을 통해 교회의 뉴에이지/새 개혁을 독촉했다. 폭스의 새 개혁은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는 만유내재신론의 뉴에이지/새 영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레너드 스위트와 그의 ‘영웅’인 매튜 폭스가 교회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던 개혁을 위한 똑 같은 말을 한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사역과 관련한 워렌의 레너드 스위트와의 관계는 워렌과 스위트가 아틀란타 조지아 및 워렌의 새들백 교회에서 2008년에 열린 가장 인기있는 두 개의 소그룹 워크숍을 함께 인도하게 되면서 더욱 깊어졌다. 워렌과 스위트가 새들백에서 인도한 소그룹 워크숍은 “연락망(Wired)”라고 불렸는데, 그 모임의 주제는 “영적 성장과 상호 연결을 위해 당신의 교회를 준비시켜라” 였다. 이 소그룹 모임에 대해 스위트는 양자 영성에서 평을 썼는데, 마치 매튜 폭스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소그룹의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식’을 갖게 하고 ‘서로 연결되도록’ 훈련시킬 수 있는 기능에 있다.
기존의 나의 뉴에이지 교사들도 이 말보다 더 나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식”은 매우 대중적인 뉴에이지 용어로서 수년 동안 영매들, 구루들, 무당, 심령술사, 밀교 수행자들이 사용해 왔던 용어다. 레너드 스위트와 릭 워렌에게 꼭 질문해야 하는 것이 있다. 소그룹 내에서 서로 연결되도록 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그리스도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의식”을 갖도록 잘 훈련시키겠다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거짓 그리스도나 창녀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어지럽게 하는 일에 대해 경고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 6:15-16).

또한 다른 곳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 1:6-7).

“누가 보아도 기독교인이다

레너드 스위트가 뉴에이지/새 영성에 공감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릭 워렌은 스위트과 계속 사역을 같이 해 왔으며 심지어 그를 멀리하기 보다 오히려 그를 장려하고 있다. 이는 성경이 권하는 바와 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1).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억지가 있다. 릭 워렌의 가장 뛰어난 대변인이며 변론자이고 또한 뉴에이지에 대해 방대한 글을 쓴 리차드 어베니스가 실제로는 레너드 스위트와 워렌의 그와의 관계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2008년 “레너드 스위트와 릭 워렌 그리고 뉴에이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베니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레너드 스위트는 누가 보아도 기독교인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뉴에이지 지도자인 데빗 스팽글러와 상담을 하고 윌리스 하만, 매튜 폭스, 그리고 엠 스콧 펙을 그의 “개인적인 롤 모델들”이며 “영웅들”이라고 언급하는 사람을 “누가 보아도 기독교인”이란 말인가? 아마 어베니스는 자신이 1995년에 펙과 스팽글러에 대해 덜 다닌 길과 성경: 엠 스콧 펙의 철학에 대한 성경적 비평이라는 책을 쓴 것을 망각했는가 보다. 어베니스는 그 책을 웨인 하우스(H. Wayne House)와 함께 공동으로 썼는데, 어베니스가 쓴 단원에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펙과 스팽글러가 뉴에이지 운동에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펙과 스팽글러를 둘 다 “뉴에이저들”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들이 뉴에이지 개념인 “하나됨”을 장려하는 점에 경고하면서 어베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펙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발견되는 개념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즉, 모든 실체는 하나이며(oneness) 우리가 개별로 인식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 위의 개념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교의로서 뉴에이지 대변인 데빗 스팽글러는 “하나됨이 핵심 개념이며 영적인 감각으로 볼 때 세상은 언제나 하나였다”라고 설명한다.

모든 뉴에이저들처럼 펙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믿음, 또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라는 깨달음을 수용한다. 이 믿음은 모든 문제로부터의 자유와 영적 성장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성에 이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다. 우리의 신성(divinity)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펙이 말하는 또 다른 ‘기적’으로서 진화 배후에 있는 모든 목적이다.
이러한 강력한 경고를 했던 리차드 어베니스가 지금은 왜 레너드 스위트를 변론하는지 모르겠다. 레너드 스위트는 분명히 어베니스가 과거에 뉴에이저로 폭로했던 엠 스콧 펙과 데빗 스팽글러에게 매력을 느끼는 매우 염려되는 사람임에도 말이다. 어베니스는 펙이나 스팽글러와 같은 뉴에이저들과 함께 하는 스위트를 도마에 올려 놓기 보다 스위트를 비판하는 자들을 도마에 올려 놓고 있다. 그는 거의 아무런 설명없이 스위트의 뉴에이지 성향과 또한 릭 워렌의 스위트와의 관계를 비평하는 자들을 나무라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과거에 펙과 스팽글러와 뉴에이지에 대해 쓴 자신의 글들과 모순이 된다.

릭 워렌의 변론가로서 어베니스는 그를 철저하게 보호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릭을 돕기 보다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베니스가 워렌이 레너드 스위트와 같은 뉴에이지 공감자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뉴에이지 성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이며 또한 릭 워렌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레너드 스위트, 엠 스콧 펙, 그리고 뉴에이지에 대한 리차드 어베니스의 입장과 관련한 아이러니이다. 엠 스콧 펙에 대한 어베니스의 1995년 책의 서론에는 같은 해에 그 책이 나오기 직전 내가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실제로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글의 제목은 “엠 스콧 펙: 공동체와 우주적 그리스도”였는데, 그 글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교묘한 뉴에이지 가르침으로 어떻게 펙이 성경적 기독교를 재정의하려는 그러한 영적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지에 대하여 썼다. 펙과 뉴에이지에 대한 나의 경고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어베니스는 그의 책에 나의 글을 호의적으로 인용하면서 책을 시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5년에 SCP 저널에 실린 기독교 저자 워렌 스미스의 글은 펙이 혼자서 “오늘날 진행 중인 영적 혁명에 불을 지피는 것을 도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에 대한 펙의 영향은 그가 1980년에 기독교로 회심한 후에 특별히 강력하였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에 걸친 펙의 글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믿음을 그의 가르침으로 재점검하게 하였다. 그의 책들은 기독교 서점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글들과 그가 추천한 다른 책들은 영적 시장(marketplace)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리차드 어베니스는 과거에 그가 인용했던 나의 글을 지금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똑 같은 교묘한 “영적 혁명”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는가? 지금만 보아도, 엠 스콧 펙의 “영적 혁명”은 레너드 스위트와 같은 뉴에이지 공감자들을 통해 더욱 심각하게 교회 내에 직접적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어떤 혁명인가?

어베니스가 엠 스콧 펙에 대해 그의 책에서 인용한 1995년의 저널에 실렸던 나의 글에서 말하는 “영적 혁명”은 뉴에이지 “혁명”을 말한다. 이 혁명의 목적은 오늘날 교회를 꼼짝 못하게 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뉴에이지 공감자가 자칭 복음주의 지도자라고 하면서 “영적 혁명”을 주장할 때 매우 염려해야 한다.

이 책의 4과에서 나는 어떻게 뉴에이지 공감자 켄 블랜차드가 2003년 예수처럼 인도하기 컨퍼런스에서 릭 워렌이 자기를 보며 “알지요, 켄. 함께 혁명을 시작합시다”라고 말한 사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5년후에 블랜차드는 그의 예수처럼 인도하기 컨퍼런스를 예수의 “혁명”처럼 인도하기로 바꾸었다. 예수의 비밀 메시지 라는 책에서 브라이언 맥라렌은 “하나님의 꿈”이라는 은유의 그 다음 은유로 “하나님의 혁명”을 제안하였다. 맥라렌의 책 모든 것은 바뀌어야 한다 는 작은 소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 범세계적 위기들, 그리고 희망의 혁명 이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이머징 교회 지도자인 어윈 맥마너스는 릭 워렌이 추천의 글을 써 준 그의 책 멈출 수 없는 힘(The Unstoppable Force)에서 “혁명의 진화”를 요구한다. 뉴에이지 지도자 닐 도날드 월치 또한 “멈출 수 없는 힘”이 될 “진화 혁명(evolution revolution)”에 대해 말해 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직에 가입된(Organized) 기독교와 뉴에이지는 이제 서로 겹치고 있으며 대단히 많이 서로 섞이고 있다. 그래서 조만간, 매우 빨리, 이 둘은 새 세계 종교의 새 영성으로 섞이게 되면서 둘 사이의 구분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기독교와 뉴에이지 간의 겹치는 용어로는 “혁명”, “개혁”,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하나님의 꿈”, “우주적 그리스도”, “하나됨”,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등이 있으며 이러한 용어들은 한때 전통 기독교로 여겨지던 것들이 뉴에이지의 새영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다. 뉴에이지 지도자 마리안느 윌리암슨은 뉴에이지/새영성의 “개혁”은 “인류의 세포구조를 바꾸는 범세계적 현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에 출판된 변화의 선물(The Gift of Change)에서 그녀가 한 말을 들어보자.
지하 혁명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휩쓸고 있다. 지금 이 혁명은 전쟁과 테러가 우리 코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고 있다. 이 혁명은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로서 인류 문명의 구조를 재구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에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혁명은 모든 전쟁을 끝마치는 평화를 이끌어 낼 것이며 인류의 세포구조를 바꾸는 범세계적 현상이 될 것이다.
어떻게 지하 “혁명”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범세계적 현상”이 될 수 있겠는가? “혁명”이 인류의 세포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데빗 스팽글러는 뉴에이지의 기본 은유는 세포라고 설명한다. 한편 레너드 스위트는 그의 영자 영성의 “신성 세포 이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스팽글러가 도와주었다고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더욱이 릭 워렌과 브라이언 맥라렌은 역사를 바꿀 수 있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영적 “혁명”을 설명한다. 뉴에이지 지도자 마리안느 윌리암슨과 닐 도날드 월치 또한 역사를 바꿀 수 있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영적 “혁명”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을 바꾸는 혁명적인 세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에 좋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기만으로 가득한 뉴에이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를 이끌어 뉴에이지/새영성의 양자 영성으로 가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그 다음은 다가오는 새 세계 종교로 이끌 것이다. (자료출처http://blog.naver.com/yoochinw/130076443176)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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