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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워의 예언과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

데이비드 오워의 예언과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

http://livingworship.tistory.com/108?srchid=BR1http%3A%2F%2Flivingworship.tistory.com%2F108

 


 

요즘 인터넷 게시판과 모바일 문자 등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데이비드 오워 라는 예언가에 대한 이슈가 뜨겁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 대단한 일이 아니라 무심코 넘어 갔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안보위기)과 맞물려 전쟁에 대한 예언을 들고 나온 오워의 예언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한번쯤 정리를 해 드려야겠다 싶어서 간단하게 오워의 예언과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서의 비평을 해 보려고 합니다. 차분히 읽어 보시고 사람들의 말이 아닌 성경적 기준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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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비드 오워의 방한과 예언의 내용


 

오워에 대해 그를 홍보하는 단체와 사람들은 꼭 [박사]라는 호칭을 붙입니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신용을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홍보차원에서 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공이 그가 말하는 것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워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독일 등지에서 유전자분야를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합니다. 최종 유전자 박사 학위는 이스라엘의 하이퍼 대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곳이 얼마나 권위가 있는 곳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오워가 유전자학 박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예언운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를 홍보할 때 [박사]라는 타이틀을 앞세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제가 신학박사 학위를 땄는데 이걸 가지고 증권거래에 대한 세미나를 열면서 [***박사 초청 증권강좌 세미나] 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거짓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정직과 공의의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워와 그를 초청한 단체에서는 이를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늘 그를 박사라고 호칭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신학박사인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단체에서는 우리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요)또한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예언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성경에 대한 어떤 교육과정을 받았는지에 대한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학을 하거나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쳐야만 설교나 예언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말하는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성경의 내용과 관계없거나 심지어는 반대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는 더더욱 문제가 됩니다. 성령은 하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인데 예언의 내용이 성경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제 조금 더 심각한 내용을 다루어야 되겠습니다. 오워가 한국에 방한하게 된 것은 한국의 단체에서 초청을 했기 때문인데 그 단체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극단적 예언주의와 은사주의적 성향을 가진 곳인데 더 문제는 이곳은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기조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곳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위험성은 이 글에서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만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성경이해와 신학적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이 바로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워가 이곳의 초청을 받고 이곳을 중심으로 홍보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면 저는 결코 이들의 신학관과 무관하지 않다고생각합니다. 물론 오워의 예언과 방향성 역시 이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이렇게 오워를 홍보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이러한 극단적 예언과 은사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워의 예언들을 충분히 신중하게 검토하고 다루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물론 그의 예언들 가운데 일부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것을 전부 받아들일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오워를 하나님의 사자, 선지자라는 명목으로 말하고 있는데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제 예언자와 선지자들이 활동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 자체가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신약의 시대에 별로도 부름받은 하나님의 사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목사만이 하나님의 사자나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비성경적이고 반복음주의적 발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워의 예언의 내용을 축약하면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땅에 곧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자신의 예언의 근거는 칠레와 아이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자신의 예언의 적중으로 말할 수 있다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두 내용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땅에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자신은 다른 자연재해도 이미 예견했다(칠레, 아이티)


 

이것의 근거는 오직 자신이 보았다는 환상입니다. 물론 저는 각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과 비전을 믿습니다. 저에게도 제 목회적인 비전과 환상을 모두 보여주셨으니까요. 그러나 개인이 환상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러한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인 진리처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 주장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오워는 한국의 전쟁과 마태복음 24장의 예수님의 재림과 교묘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전쟁과 재난, 기근에 대한 문제와 한국의 전쟁을 연결시키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것인데 이것은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의 주장입니다.


 

기근과 전쟁, 자연재해는 어느 세대에나 있었던 일입니다. 이러한 것을 늘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우리 세대에도 수십명의 예언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예언했지만 늘 사실과 달랐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재림의 시기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못박으신 것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쟁을 원천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그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아무에게도 알려 주시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신뢰하십니까?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또한 이러한 예언들은 마태복음 24장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의 끼워맞추기식 산물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장에 나타난 예언들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닌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훼파와 대대적인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이 현세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에 대한 중의적 교훈이 상존하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마태복음 24장과 한국전쟁을 연결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말하는 것과 오워의 예언 사이에는 너무 많은 억측과 비약, 본문과는 상관없는 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미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다고 거짓선지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해도 너희는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고 있으면 아무도 알 수 없게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못을 박아 두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난과 기근에 대한 것에는 그렇게 마음을 뺏기면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 불신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워는 자신의 한국전쟁에 대한 예언의 근거를 자신이 미리 예견한 칠레와 아이티의 예를 들어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두리뭉실한 것들이라 정확하게 예견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것 역시 성경의 예언자들의 태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자신을 점쟁이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선지자들의 전매특허였지요. 성경의 예언자들(선지자들)은 자신을 신뢰감있게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토라의 내용을 각 시대에 맞게 선포하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회개와 반성을 촉구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환상과 비전을 보았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선지자들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말씀이 진실임을 확증하는 내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이 회중에게 외쳤던 것은 늘 모두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만으로도 오워의 예언자적 태도는 성경과는 상관없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자신에게만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함에도 그는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자의 형태를 따릅니다. 우리가 사람의 내면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행위와 결과로 그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7장) 거짓선지자와 진짜선지자는 결국 성경의 기준을 통해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땅에는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심각한 타락과 부패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물질과 세속적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번영신학에 대한 그의 지적과 윤리적 타락에 대한 질책은 그가 굳이 예언이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다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분명 한국교회의 현상적인 문제고 우리 세대에 고쳐야 할 교회개혁의 내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국교회의 문제로 지적한 부분에 대해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주로 윤리적, 성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주님의 성결한 신부인 교회의 배도의 증거로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신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교회의 문제는 윤리적이고 성적인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신사도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은사주의자들입니다. 낙태, 동성애, 윤리적 타락 같은 주제가 대표적인 것들이지요. 그러나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지적하시는 교회, 즉 하나님의 성도들의 근본적 문제는 그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이 아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호 4:1) 것입니다. 윤리적, 도덕적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면적 증거들일 뿐이지 이것이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가 진정한 예언자적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이 부분을 지적해야 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늘 이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해석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복음을 변질시키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신앙과 교회를 이용하는 타락한 교회지도자들과 성도들입니다. 윤리적 문제는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못되는 주제입니다. 만일 오워가 진실로 하나님의 예언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이 심각한 문제를 제쳐놓고 가서 너는 낙태나 음란, 자위같은 문제를 가서 한국교회에게 전하라고 하실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저는 오워의 예언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암걸린 사람에게 발톰 무좀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워의 다른 언행도 역시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천국 문 앞에 있는 두개의 결혼반지" 나 "신약의 언약궤" 운운하는 말은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고 언급도 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이고 -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화이트 여사의 천국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만이 빛나고 있었다 라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겠지요 - 그가 집회 때 사용하는 쓰러짐과 황홀경에 대한 것들은 빈야드 운동의 대표적인 행위들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된 적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자신도 모르는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대고 쓰러지고 이성이 마비되는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무엇보다 성경에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성령님 자체가 하나님의 영인데 성경의 말씀과 역행하는 그런 일들을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무엇보다 제가 의심쩍은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예언의 능력을 주시고 환상을 주시고 말씀을 주셨다면서 왜 성경의 특정한 구절만 - 그것도 특정한 단체가 주로 사용하는 -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왜곡되고 곡해된 성경구절에 대한 이해만을 내내 강조하면서 말이지요. 이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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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간단한 언급만으로도 오워의 예언과 그를 초청한 단체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문제점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한국교회의 영적 수준입니다. 뭔가 신비하고 기적같은 것에 혹해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한국교회의 체질적 문제야말로 한국교회의 심각한 변질과 타락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의미와 지금 교회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예언의 의미의 차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로 인해 성도들이 혹하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언이해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나비, 혹은 호제, 로에 등이 번역된 말입니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것이 구약이 말하는 예언의 의미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나비(선지자), 로에(선견자), 호제(예언자) 등으로 나타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구약도 초기에는 점이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말하는 복술가들이 있었습니다만 정통적인 하나님의 예언자들 - 특히 주전 8세기 이후의 문서선지자들 - 은 예외없이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신명기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법인 토라에 대한 준수를 하지 않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회개의 촉구로 그들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예언은 앞으로 생길일을 미리 아는 [예언: 미리 앎]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맡겨준 말씀을 다시 선포하고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그 말씀의 참된 뜻을 설명해주는 [예언: 맡겨진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의 사명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선민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나님의 말씀의 준수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하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선언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에 대한 예언자들의 사명이고 사역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예언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속사를 완성하시고 이제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해 일하시고 계신 지금의 시대에 다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성경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과는 관계 없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거짓 선지자들의 방법입니다.


 

또한 신약성경을 보아도 이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사도들이 당시 만연했던 윤리적 타락과 사회적 부패에 대해 지적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일부분 있는 것 역시 대부분 각 지역교회들의 상황과 관련이 있을 뿐(그나마도 복음의 본질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로서 작용) 그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중심적 관심이 아님은 성경을 읽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신약의 저자들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 복음서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인데, 핵심 내용은 "구약에서 예견된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으로 예언된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라는 것입니다. 즉, 신약의 저자들의 핵심적 관점은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 사역, 그리고 복음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신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주제는 바로 복음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입니다.


 

정리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절대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환상이나 막연한 미래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의 예언은 늘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던 토라(율법)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시대는 달라도 늘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공통되고 동일한 것만이 반복되었습니다. 즉, 성경의 예언은 무당처럼 다가올 일에 대한 환상이 아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재확인과 선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서에 나온 예언의 은사 역시 원어적으로는 말씀이라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헬라어 프로페테이아(예언)는 다른 병행구절인 롬 16:26; 벧후 1:19에서 볼 수 있듯이 [예언]이라는 말의 용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예시]가 아닌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글에 대한 것이 [예언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 전체를 보았을 때 결국 구약의 예언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이 있고 그 예언의 종착점은 예수 그리스도임이 자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성경의 목적은 이루어졌고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사명은 이 완성된 복음을 믿고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66권의 정경의 기록을 통해 복음으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고, 그것을 우리의 삶의 결과로 모두에게 증거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이를 전하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교회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은 신비한 환상이나 직통계시(?)같은 것을 예언이라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성경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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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세계관은 미국식 종말론인 휴거와 666 적그리스도의 세상과 7년 대환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을 물론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들은 성경의 본문이 가리키고 있는 내용들과는 별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이해와 종말론은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종말론적 세계관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라" 입니다. 내일 일도 모르는 인생들이 종말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알수도 없는 일에 목을 매고 사는 것이야말로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마 6:34) 고 일러 주셨는데도 우리는 그런 말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진정한 성경적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마라나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지키고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과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세계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은 쓸데없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두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예언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그것도 번영의 복음이 아닌, 십자가의 복음 말입니다.

권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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