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문제
현대교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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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 타협, 혼란
APOSTASY, COMPROMISE, CONFUSION
1.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2.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
3. 선교 개념의 변질
4. 교회의 윤리적 부패
5. 은사운동의 혼란
6. 복음주의의 타협
7. 근본주의의 입장
김효성 목사
Hyo Sung Kim, Th.M., Ph.D.
옛신앙
Old Faith Press
2001
저자 김효성 목사 소개
1973년, 연세대학교(철학과) 졸업(B.A.)
1979년, 총신대학 신학연구원[신학대학원] 졸업(M.Div. equ.)
1983년, 미국, 페이스(Faith) 신학교 졸업(Th.M.)
1988년, 미국,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J. G. 메이천, 신약개론, 신앙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 번역
총회신학연구원(합동보수) 교수 역임
예수교 장로회 신학연구원 교수 역임
현재, 서울 합정동교회 담임목사
계약 신학대학원 대학교 전임강사
옛신앙 출판사(Old Faith Press)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전화 (02) 334-9874, 팩스 (02) 337-4869
전자우편: book@oldfaith.org
등록번호 제10-1225호
1993년 9월 30일 (기독교문서선교회, 초판)
2001년 2월 24일 (옛신앙 출판사, 개정증보판)
2001년 3월 30일 (2쇄)
ISBN 89-951985-0-8 03230
총판: 도모 기독서점((02) 830-8566, Fax. (02) 830-8567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正確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내용 목차
머리말 / 5
제1부: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 17
서론 / 19
1.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 분류, 세력 / 21
2. 기독교와 자유주의 / 23
3.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 사상의 예들 / 28
4. 자유주의 이단들에 대한 성경적 반박 / 71
5. 오늘날 교회들에 끼친 자유주의 영향들 / 100
결론 / 123
제2부: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 / 125
서론 / 127
1.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 진술들 / 131
2. 신학적 포용주의--전체적 고찰 / 134
3. 신학적 포용주의--성경관 / 141
4. 신학적 포용주의--신조의 개념 / 148
5. 신학적 포용주의--복음의 개념 / 153
6. 신학적 포용주의--믿음의 개념 / 157
7. 신학적 포용주의--천주교회에 대하여 / 159
8. 성례주의적 경향 / 182
9. 한 세계교회를 지향함 / 184
10. 종교적 다원주의의 경향 / 189
결론 / 196
제3부: 선교 개념의 변질 / 199
서론 / 201
1. 넓어진 선교 개념 / 201
2. 사회 정치적 관심과 행동주의 / 209
결론 / 213
제4부: 교회의 윤리적 부패 / 215
1. 열린 예배 / 217
2. 현대 기독교 음악 / 224
3. 남녀 평등주의 / 229
4. 낙태 / 234
5. 동성애 / 237
6. 안락사 / 253
결론 / 254
제5부: 은사운동의 혼란 / 255
1. 은사운동의 기원과 세력 / 258
2. 성령의 세례 / 264
3.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 271
4. 비평: 은사운동에 대하여 / 275
결론 / 285
제6부: 복음주의의 타협 / 287
1. 개념의 정의 / 289
2. 복음주의 협의체 / 294
3. 복음주의 잡지와 학교들 / 304
4. 복음주의 인물들 / 309
5. 복음주의 교단들 / 316
6. 기타 / 319
결론 / 320
제7부: 근본주의의 입장 / 323
1. 역사적 고찰 / 326
2. 개념의 정의 / 332
3. 성경적 평가: "분리의 원리" / 335
4. 역사적 후원 / 351
5. 잘못된 비평들에 대한 비평 / 355
결론 / 369
전체적 결론 / 373
머리말: "순결한 교회를 위하여"
서론
교회는 초대로부터 문제들을 갖고 있었음
주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도 시대로부터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주의 이단의 침입이 있었고(갈라디아서),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과 분쟁, 음행한 자의 포용, 성찬식의 무질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부활의 부정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고린도전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하고는 다 책망거리들을 갖고 있었다(요한계시록 2-3장). 이러한 교회의 문제들은 사도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역사는 교회 문제들의 역사이었다.
현대 교회들의 문제들
21세기에 들어선 현대 교회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것들 가운데 다음 몇 가지는 매우 중대한 것들이다. 첫째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이며, 둘째는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이며, 셋째는 복음의 중심과 연결되고 교회의 사명인 선교 개념의 변질이며, 넷째는 이런 교리적 문제들에 첨가된 교회의 윤리적 부패의 문제이며, 다섯째는 말씀보다 경험을 중시함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은사 운동의 문제이며, 여섯째는 타협적 복음주의 혹은 신복음주의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많은 교회들은 배교(背敎)의 길을 걷고 있고, 다른 많은 교회들은 그 뒤를 따르거나 그 배교와 타협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문제점들과 더불어 또는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더욱, 교회들은 영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교회의 문제들의 원인
땅 위에 있는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까닭은, 부분적으로는 성도들의 성화(聖化)의 불완전, 즉 그들의 지식과 인격이 불완전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부패시키려는 사탄과 그 도구인 위선적 교회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활동 때문이다. 사탄은 에덴 동산 때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에 거짓말을 퍼뜨리며 또한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있는 장본인이다.
신앙 생활의 표준과 근거는 성경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 생활의 표준과 근거이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등 인간의 권위에 근거해서는 안되고, 또 단순히 교회의 권위에 근거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물론 성경을 바르고 건전하게 해석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정통과 이단의 구별이 필요함
역사상 교회 안팎에는 많은 거짓 교사들이 나타났고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 사상들과 가르침들이 있어 왔고, 따라서 바른 사상과 그릇된 사상, 바른 가르침과 그릇된 가르침 즉 정통과 이단의 구별이 필요하게 되었다.
성경에는 이단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미 예언되어 있다. 주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11, 24절).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했다(2:3).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사도 시대에 벌써 여러 이단자들이 나타났었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인물이 언급되는데,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거짓된 사상, '독한 창질' 같은 사상을 퍼뜨리고 있었다(16-18절).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사도들을 통해 전수된 바른 교리 즉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보수(保守)할 것을 가르쳤고 또 이단자들과 그 사상을 명확히 정죄하였다. 디모데후서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갈라디아서 1:8, 9,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교회 역사상 가장 큰 이단은 천주교회(로마 카톨릭 교회)
교회역사상, 가장 큰 이단은 천주교회이다. 천주교회는 트렌트 회의의 선언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성경의 복음 진리를 정죄하고, 교황의 무오성(無誤性)을 주장하고, 마리아를 거의 신적 존재로 숭배하여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보혜사, 중보자'라고 부르며, 연옥의 교리와 미사의 교리 등을 주장함으로써 성경 진리들을 매우 이탈하였고 그 진리들에 명백히 반대되었다.
개혁신학
그러므로 천주교회를 반대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소위 '개혁신학'이 정립되었다. 개혁신학의 요점대로,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無誤)한 기준이다. 어떤 개인의 가르침이나 심지어 교회의 가르침이라도 성경과 다르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배격해야 한다. 또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며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해졌으므로,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자유주의 신학
오늘날 가장 심각한 이단은 자유주의 신학
근세에 들어와 19세기 이후,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 여러 이단종파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서 가장 심각한 이단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상 그 어떤 이단들보다도 더 파괴적인 이단이며, 게다가 다른 이단들처럼 구별되지 않고 장로교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등의 기성 교회 속에 들어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과 정체(正體)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의 이성주의, 과학의 발달, 진화론 등에 힘입은 성경의 비평적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의 비평적 연구는 성경의 진실성과 기적들을 부정하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의 정체는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을 부정하고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부정하며 성경을 오류투성이의 책으로 본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적으로 부정하며 하와를 범죄케 하였던 사탄의 말과 같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자 C. H. 다드는 말하기를,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심지어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심지어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도, 심지어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기록에 있어서 잘못을 범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범했다"고 하였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 기적들, 대속(代贖), 부활, 재림 등의 교리들을 부정한다. 우리의 문제점 제기를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말을 조금 인용해보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 탄생에 대하여, 자유주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영원(永遠)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성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하였고,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고 했고,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들이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기적들에 대하여, 루돌프 불트만이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로부터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야기의 주제,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디오니서스 전설의 전형적 주제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대속(代贖)에 대하여,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에 도달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代理的)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에 대하여,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는--현대 학자들의 사고 형식들과 용어로--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 그것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고 하였고,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물론 모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다 똑같이 모든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분명히 하나님의 거룩하고 귀한 진리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의 사상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단이요 철저한 이단이요 불신앙인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결과 혹은 영향력
20세기에 들어와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쳤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교회들은 거의 전체적으로 변질되었고, 미국의 대교단들도 그 뒤를 따랐다. 1923년에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작성되었던 소위 '어번 선언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는 표시이었는데, 그 내용은 성경 무오, 기적의 사실성,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대속(代贖), 그리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성경과 장로교회 신앙고백서에 본질적인 교리들이 아니고 인간의 학설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교회들의 다수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한 '넓어진 교회' 혹은 자유주의화한 '배교적 교회'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인 제프리 해든이 미국의 7441명의 성직자들에게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無誤)한 말씀임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과 감독교회의 95%가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연합 장로교회의 82%와 미국 침례교회의 67%와 미국 루터교회의 77%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음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0%와 감독교회의 44%가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연합 장로교회의 49%와 미국 침례교회의 34%와 미국 루터교회의 19%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51%와 감독교회의 30%가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연합 장로교회의 35%와 미국 침례교회의 33%와 미국 루터교회의 13%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1985년, 약125명의 개신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말씀하지 않으셨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이 세미나의 결과, 1988년 예수님의 비유들이라는 책자가 출판되었는데, 거기에는 적색, 분홍색, 회색, 흑색으로 예수님의 비유들의 역사적 신빙성의 정도를 표시했다. 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① 예수님의 말씀들의 오직 20%만이 실제로 그의 말씀으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이 그의 말씀이다. ② 주기도문도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다. ③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으셨다. ④ 예수님은 자신이 신과 매우 가깝다고 느겼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⑥ 성경에 묘사된 지옥은 없다. ⑦ 예수님은 독신이 아니셨고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으셨다.
교회 연합 운동의 문제
오늘날 많은 교회들 가운데는 신학의 변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 교회 연합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 연합 운동(에큐메니칼 운동)은 자유주의 이단 사상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의 운동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 연합 운동은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포용적이며, 심지어 이방 종교들에 대해서도 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타종교와의 대화분과장이었던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세계교회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출판된 성경과 타종교인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고 힌두교 같은 이방종교들에 대해 포용적 입장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통탄할 만한 기독교회의 상황이다. 하나님의 참된 성도들은 이 시대의 기독교계의 상황을 분별하고 바르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 신복음주의/ 복음주의
오늘날 교회들의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라는 입장과 태도와 정신이다.
신복음주의/ 복음주의의 정체(正體)와 예들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란 보수적인 교회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명확히 반대하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처하여 그것을 포용하고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쳐주신 교제의 원리를 저버리고 폭넓게 활동하려는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고 자신의 명예와 인기를 구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이러한 정신의 표본이다. 그는 전도 대회들을 개최할 때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단들과 협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로마 천주교회의 지도자들과 협력한다. 더욱 슬픈 일은, 전도 대회들에서 얻은 결신자들이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천주교회들로 돌려보내지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전도 방법이 아니요 바울 사도의 전도 방법도 아니다.
미국의 많은 보수적 교회들이나 단체들은 물론, 우리 나라의 예장 합동과 예장 고신 등 많은 복음주의 교단들과 신학교들, 그리고 대학생선교회(CCC), 아이 브이 에프(IVF) 등 많은 학생 선교단체들이 이런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적 입장 혹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심히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신복음주의/ 복음주의의 평가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 교회들의 포용과 그들과의 교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불성실과 불순종이며 이단과의 타협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그들과 싸우고 그들로부터 분리하라고 분명히 가르쳤다.
로마서 16:17, 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원문, '너희가 받은 교훈' 즉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고린도후서 6:14-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일서 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이서 7-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만일 참된 교회들이 성경의 명백한 교훈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용납하고 계속 교제하면 결국 서서히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머잖아 변질되고 말 것이다. 구약 역대하 18장, 19장에 보면, 남방 유다왕 여호사밧은 경건한 왕이었지만, 우상숭배자요 악한 자인 북방 이스라엘왕 아합과 교제함으로써 결국 그 후손들의 시대에 와서 유다 나라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악한 영향을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신복음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생하게 증거한다.
열왕기하 8:18, "저가[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8:27,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 은사운동
마지막으로, 오늘날 교회들의 또 하나의 심각한 큰 문제는 은사운동이다.
은사운동의 역사와 특징
20세기 초에 시작된 방언 운동은 오순절 교파를 형성하였고, 20세기 중엽에는 기성 교회들에 영향을 주어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 등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강조하는 소위 은사운동으로 진행되었다. 은사운동은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적 교회들과 단체들에서 활발하다. 미국 복음주의협의회의 회원교회들의 다수는 오순절 교회이며 벌써 여러 해 동안 그 단체의 회장은 오순절파 목사가 맡아오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은사운동은 오순절파 뿐만 아니라, 또한 많은 교파들에서 활발하다.
은사운동의 문제점과 평가
은사운동은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과 십자가 속죄의 복음으로 만족치 않고, 현재의 은사 경험을 추구하고 강조하며, 실제로 은사 경험을 성경말씀의 신앙보다 더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다. 참 기독교의 모습은 고린도전서 1:22, 23의 말씀에 잘 드러나 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또한 고린도전서 13:8-12은 예언, 방언 등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성격의 것들임을 증거하였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특히, 은사운동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충족한 말씀이라는 사실과 배치된다.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성경의 충족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증거하셨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27-31).
또한 히브리서 1:1, 2은 신약계시가 최종적이고 절정적 계시임을 증거하였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또한 요한계시록 22:18, 19은 성경의 종결성을 증거하기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다.
덧붙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은사운동이 감정과 육신적 만족에 호소하는 경향이 많고 록 음악 등의 세속적 요소를 사용한다는 점과, 오늘날 자유주의와 천주교회를 배제함이 없이 잘못된 교회연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은사운동은 하나님이 주신 참된 교회의 부흥이 아니고 오히려 참된 교회에 주는 말세의 또 하나의 큰 혼란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들은 오늘날의 은사운동을 용납하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
결론
결론적으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단지 소수의 교회들만 순결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순결한 교회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임을 밝히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일찌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3, 14).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5:26, 27에서 하나님의 뜻이 순결한 교회임을 증거하기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오늘날 참된 교회의 바른 길은 무엇인가? 오늘날 참된 교회의 바른 길은 자유주의의 배교(背敎)를 배격하고 오직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보수하고,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무분별함과 타협을 반대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단을 배격하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함이 없는 교제와 협력과 연합 활동은 그 어떤 명분으로 이루어지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바울 사도는 심지어 성경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그들과 교제하지 말라고까지 명령하였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 3:6, 14).
오늘날 참된 교회의 바른 길은 또한 은사운동의 혼란을 배격하고, 성경 66권의 말씀으로 만족하며 그 말씀을 믿고 소망하고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교훈대로 바로 믿고 바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옛신앙 그대로, 옛길 그대로, 성경 교훈 그대로 믿고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분별하고 잘못된 것을 배격하고 옛길을 추구해야 한다.
예레미야 6:16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라고 말씀하였다. 디모데후서 4:3-5에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였다.
이 시대가 엘리야의 시대 같고, 미가야의 시대 같고, 예레미야의 시대 같을지라도,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생각하고, 비록 그 길이 외롭고 힘든 길일지라도, 바른 길, 성경적인 길을 구하고 붙들어야 한다.
저자는 지식이 적고 말과 글에 둔한 자이지만, 누군가가 이 긴급하고 중대한 교회 문제들에 대하여 분명히 증거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시대에 분별력 있는 경고의 소리가 잘 들려지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본서를 낸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지식이 많고 적고가 아니고 글을 잘 썼고 못썼고도 아니며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가 없는가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오늘 교회들의 문제이며, 무엇이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가, 무엇이 오늘 시대에 참 교회의 갈 길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모든 뜻은 신구약성경 말씀 속에, 오직 그 말씀 속에만 밝히 계시되어 있다.
저자는 본서가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여 신앙의 건전한 옛길을 지키고, 참 교회를 보존하고 설립하고 회복하기를 원하는 주의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참고와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제1부: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목차
서론 / 19
1.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 분류, 세력 / 21
2. 기독교와 자유주의 / 23
3.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 사상의 예들 / 28
4. 자유주의 이단들에 대한 성경적 반박 / 71
5. 오늘날 교회들에 끼친 자유주의 영향들 / 100
결론 / 123
서론
현대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변질이다. 다수의 현대 신학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왔던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포기하고 표류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배교적이며 이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신 교회의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이러한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포용하거나,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
먼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에 대해 간략히 생각해보자.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첫번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회 속에 들어온 가장 무서운 이단적, 적그리스도적 사상이며, 우리가 이런 이단 사상에 대해 힘써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으나, 그것은 성도들 상호간에 사사로이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지, 하나님의 종들이 교리적 이단들을 비판치 말고 묵인하고 포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였고(마 7:15),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고 하였다(요일 4:1).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이단에 대해 명확히 비판하였고, 디모데후서 2:17에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이름을 들어서 비판하였다. 유다서 3절에는 이단에 대하여 힘써 싸우라는 교훈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이단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임을 깨닫고 자유주의자들을 포용치 말아야 하고 또한 그들을 포용하는 자들도 책망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 해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상과 생활은 연결되어 있다. 경건한 신앙 사상이 부패하면 경건하고 성결한 생활이 해이해지고 만다. 그래서 교인인지 세상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자유주의 교회들이 쇠잔해졌는가 하는 이유이다.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면, 구태여 교회에 나올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교회에 진리가 있고 기쁨과 감격이 있고 새 생활이 있어야, 교회에 나올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세번째 이유는,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적임을 바로 알아야 우리 주위의 교회들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이 교회를 선택하고자 할 경우 아무 교회나 출석하지 않고 바른 교회를 찾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모든 성도는 순결한 교회에 참석할 의무와 특권이 있다. 참된 성도는 자유주의적 교단에 속한 교회에 참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이단이며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교단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회협의회(WCC나 NCC)에 속한 교단들,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측)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나 기독교 대한 감리회(기감측) 등의 교단들은 순결하고 건전한 교단들로 인정되기 어렵다. 참된 성도들은 성경적 신앙을 지키는 순결하고 건전한 교단에 속한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
교회 출석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들의 연합 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성경대로 믿는 보수적 교회들이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교단들이나 교회들과 연합하여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활동을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외국 교회들와의 교류나 해외 선교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보수적 교회들은 보수적 교회들이나 단체들과만 협력해야지,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단체들과 협력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활동들은 조만간 부패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왜 처음에는 건전하게 시작되었던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점점 변질되었는가 하는 주요 이유이다.
사탄은 교회들로 하여금 자유주의를 배격하지 않고 은근히 수용하고 두둔하게 하고, 또한 신학생들의 사상을 변질시키고 지식 있는 교인들의 사상을 변질시키고 마침내 교회 전체를 변질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교묘하고 치밀한 배교(背敎) 운동을 분별하고 격퇴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이단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가를 바로 비판하고 신실한 교인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1.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 분류, 세력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대해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했었다. 그러나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이성의 권위를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비평적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소위 성경의 고등비평이라고 불리우는 연구 방식이었다. 과학의 발달과, 촬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등장 등은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회의적인 눈으로 보게 하였다. 더욱이,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세계와 및 창조와 종말에 대한 지식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한 칸트(Kant)의 지식론은 지성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분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의 쉴라이엘마허와 릿츨과 하르낙 등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던 불신앙적인 신학 사상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밥죤스 대학교의 스튜어트 카스터 박사는 그것들을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표는 본서에서 인용된 인물들임.)
1. 구(舊)자유주의--Adolf Harnack, Harry E. Fosdick, Henry
P. Van Dusen, L. Harold DeWolf, Nels F. S. Ferre
2. 후(後)불트만 학파--*Rudolf Bultmann, Hans Conzelmann,
Erich Dinkler, Ernst K semann, G nther Bornkamm,
Ernst Haenchen, Reginald H. Fuller
3. 해석학파--Gerhard Ebeling, Ernst Fuchs, James M.
Robinson
4. 불트만 급진 좌파--Herbert Braun, Manfred Mezger
5. 편집 비평학파--Willie Marxsen
6. 급진파--*Dietrich Bonhoeffer
7. 과정 신학--Schubert Ogden, John Cobb, Charles
Hartshorne, Norman Pittenger
8. 세속화 신학--Paul van Buren, Harvey Cox, John A. T.
Robinson
9. 신 죽음의 신학--Thomas J. J. Altizer, William Hamilton
10. 진화론 신학--Pierre Teihard de Chardin
11. 신정통주의--*Karl Barth, Emil Brunner, Karl Heim,
[영국] *C. H. Dodd, Peter T. Forsyth, [미국] *Reinhold
Niebuhr, Richard Niebuhr, William Hordern, *Paul
Tillich, [스칸디나비아] Anders Nygren, Gustave Aulen,
12. 독립파--Helmut Thielicke, Ethelbert Stauffer, *Joachim
Jeremias, J rgen Moltmann
13. 판넨베르크 학파--*Wolfhardt Pannerberg, Rolf Rendtorff,
Trutz Rendtorff, Ulrich Wilckens, Klaus Koch, Martin
Elze, Dietrich R ssler
14. 구속사 학파--*Oscar Cullmann, W. D. Davies, Werner
K mmel, Otto A. Piper, Eduard Schweizer, Alan
Richardson, A. M. Hunter
15. 신(新)자유주의--Millar Burrows, Floyd V. Filson, George
E. Wright, Carl E. Braaten, Paul Minear, *Krister
Stendahl, Charles C. Anderson, Hugh Anderson
자유주의 신학의 세력
자유주의 신학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지극히 작은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새 사상은 20세기 말에 와서 전 세계의 역사적 대 교단들 속에서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역사적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자유주의 신학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자유주의적 신학교들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는 넓어진 신학교들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다수의 교회들은 자유주의적 교회들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다. 오늘날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보수적 교회들은 숫적으로 다수가 아니고 소수인 것 같다.
2. 기독교와 자유주의
본질적 차이
성경적 기독교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단지 지엽적 문제들에 있어서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본질적 이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이것은 1920년대에 미국에서의 소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에서 잘 드러났다. 미국 북장로교회의 보수적 지도자이었던 메이천은 당시의 논쟁을 표현하기를, "특히 종교의 영역에서 현대는 싸움의 시대이다. 항상 기독교로 알려져 왔던 저 위대한 속죄적 종교가 전혀 다른 형태의 종교 신앙과 싸우고 있는데, 이 종교 신앙은 전통적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더욱 파괴적일 뿐이다. 현대의 이 비속죄적(非贖罪的) 종교는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라고 불리운다"라고 하였다(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p. 2).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두 파의 차이를 더욱 인상적이게 이렇게 말하였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는 오는 세대들을 위해 우리 세대에 의해 아마 해결될 문제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와 현대주의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어느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어느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그리스도인가, 어느 성경이 기독교의 성경인가, 어느 교회, 어느 하나님의 나라, 어느 구원, 어느 종말이 기독교의 교회,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의 구원, 기독교의 종말인가? 미래가 말해 줄 것이다("Fundamentalism and Modernism: Two Religions," Christian Century, January 3, 1924, pp. 5, 6).
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는 태도이었다. 19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쉴라이엘마허는 말하기를, 종교는 감정이나 직관에 근거하며, 종교의 핵심은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항상 그러하였고, 종교인에게 하나님은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라고 했었다. 19세기 중엽, 릿츨도 좀 다른 각도에서이긴 하지만 말하기를,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은 사람의 가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이며,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9세기 말, 하르낙도 주장하기를,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했다(Adolf von Harnack, What Is Christian- ity?, p. 159).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Ibid., pp. 21, 22).
이들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 교리, 더 정확히 말하여 전통적 교리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윌리암 호던은 자유주의 신학의 기본적 태도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유주의의 방식은 기독교 신학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계의 초기 신조들이 작성되었던 이후 세계는 급격히 변해 왔고 그래서 그 신조들은 현대인에게 낡고 비실제적이게 들린다고 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현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사고 방식들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해리 E. 포스딕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 즉 '영속적 경험들'을 표현해야 하고, 이것들을 과거에 표현되었던 '변하는 범주들'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예를 들어 기독교의 영속적 경험은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으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악을 파괴하고 선을 세우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범주로 묘사되어 왔고, 우리는 더 이상 이 낡아빠진 범주[재림]를 보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표현하려고 했던 진리를 믿을 수 있다고 했다(Hordern, p. 74).
메이천은 자유주의 신학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현대 자유주의가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기독교의 특수한 점들, 즉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기독교 교리들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救贖)의 교리들에 대해 과학적 반론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는 이 특수한 점들을 단지 종교의 어떤 일반 원리들의 시대적 상징들로 생각하며, 그 일반 원리들을 건지려고 하고, 또한 그것들을 '기독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Machen, p. 6).
성경에 의한 기독교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이 아니고 교리에 근거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또한 기독교 교리는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기독교는 교리(敎理, doctrine)에 근거함
기독교는 어떤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교리는 기독교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여기에서 교리란 단순히 진리의 진술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어떤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원을 고찰함으로써 확인된다. 최초의 기독교 전파자들은 단순히 어떤 신비적 경험이나 하나의 생활 교훈을 전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전했는데, 이 사실들의 설명이 곧 교리이다.
예를 들어,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2, 23에서 그가 전파한 내용을 표현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했고, 고린도전서 15:3, 4에서 복음의 요지를 언급할 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속죄의 교리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그 시초로부터 교리적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교리가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바른 교리를 보수하고 이단을 배격하라는 성경의 교훈에서도 확인된다. 로마서 16:17,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원문 직역). 디모데후서 1:13,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의 본을 굳게 붙들라"(원문 직역). 요한일서 4:2, 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원문 직역). 성경의 이러한 교훈들은 바른 교리가 본질적임을 전제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임
더욱이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이 사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불변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말과 거짓 증거를 미워하시고 정죄하신다. 출애굽기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또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시편 102:26, 27,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기독교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들에서도 확증된다. 첫째로,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에 기초하였다. 고린도전서 15:3, 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러므로, 만일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면, 그것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로,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의 기적들로 확증되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표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확증하는 표임을 보인다.
세째로, 기독교 복음은 목격한 증인들의 증거들에 의해 확증되었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순교의 피는 그들의 목격자적 증거들의 최후 확증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진리와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기본적 성격들에 의해서 확증된다.
덧붙여, 성경에는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이 분명한 말로 선언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1:8, 9,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 즉 사도 시대의 교회들이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기독교 복음은 명확하고 고정된 내용이다. 아무도 그 내용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그 고정된 내용을 바르게 파악하고 확신하고 후시대에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성경적 기독교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본질적 개념에 있어서 서로 다른 대답을 하고 있다. 두 사상 체계의 차이는 실로 심각하다.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들을 경시하고 쉽게 부정하거나 재해석한다. 여기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異端性)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것이나 그러한 포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큰 실수요 불성실한 일이다.
3.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 사상의 예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 사상들의 예들을 전부다 드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또한 불필요하다. 많은 이들은 전체적으로 불신앙적이고, 어떤 이들은 부분적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적이라는 것은 다음에 인용한 대표적 인물들의 사상의 예들을 통해 분명하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단 사상의 예들을 인물별로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를 원하지 않는 분은 4장[71쪽]으로 넘어가십시오.>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칼 바르트는 신정통주의의 시조이다. 그는 구(舊)자유주의의 내재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초월자 하나님의 계시와 그 내용인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객관적 계시의 기록임을 부정하고, 소위 성경의 고등 비평을 용납하며,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 역사를 분리하는 이중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인용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The Epistle to the Roman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3 (German edition, 1918).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28.
Church Dogmatics. Edinburgh: T. & T. Clark, 1936-1962.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Service of God.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49.
Dogmatics in Outline. London: S.C.M. Press, 1949.
Christ and Adam. New York: Harper, 1957.
A Shorter Commentary on Romans. Richmond: John Knox
Press, 1959.
The Humanity of God. Richmond: John Knox Press, 1960.
1. 성경은 객관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고 한다.
"말씀을 깨달음과 믿음은 하나의 사건이며 이 사건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것을 그의 말씀이 되게 하는 한, 즉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다"(Church Dog- matics, I. i. pp. 122, 123). "그러므로 성경은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Ibid., p. 124). "계시와 성경의 직접적 동일시는 우리가 전제하거나 기대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한다. . .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곳에서 계시와 성경은 하나가 된다"(Ibid., p. 127).
성경은 인간의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이며 비평적인 연구로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연구는 성경 안의 그리스도에 대한 전체적 인간적 형식의 증거를 명백히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연구가 그 증거의 대상 즉 하나님의 계시 자체를 드러내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계시가 계시로 말미암음 외에 그 증거의 신적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계시를 계시로 말미암아 인식하는 것이란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 계시에 의하여 그것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그 이중적(twofold) 역사를 사실 그대로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은 그 안에 참여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계시 자체에 의하여 일깨워진 신앙을 가지는 것일 것이다"(The Knowledge of God and the Service of God, pp. 66, 67).
2.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고 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심지어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심지어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도, 심지어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기록에 있어서 잘못을 범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범했다"(Church Dogmatics, I. ii. pp. 528, 529).
"축자(逐字, 글자) 영감이란, 오류와 결함이 있는 인간의 말을 그대로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과 그 인간적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Ibid., p. 533).
3.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65).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불가능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Ibid., p. 72).
"진정한 역사 속에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이 동반하고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의무적이다"(Church Dogma- tics, III. i. p. 81).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전체 진리가 위치한 앞뒤 문맥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자체로는 그것이 거짓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관계된다는 사실에서만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Christ and Adam, pp. 54, 55).
4. 하나님의 인성(人性)을 주장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神性)이 그의 인성(人性)을 배제하지 않고 포함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아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이다"(The Humanity of God, p. 49).
"이러한 신적 자유 의지와 선택에서, 이러한 주권적 결정에서(옛날 사람들이 말했던 대로, 그의 작정에서), 하나님은 인간적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자유로운 긍정, 그에 대한 그의 자유로운 관심, 그를 위한 그의 자유로운 대리(代理)--이것이 하나님의 인성이다"(Ibid., p. 51).
5. 성경의 천지 창조 기록을 사가(saga)라고 한다.
"그것은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에서 오직 순수한 사가(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Church Dogma- tics, III. i. p. 42). [그는 사가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직관적, 시적 묘사"라고 설명했다(Ibid., p. 81). 그것은 신화 혹은 전설과 비슷한 개념이다.]
6. 아담의 타락을 사가(saga)라고 한다.
"그 첫번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된 자로서 존재했다고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오직 사가(saga)일 뿐이다. . . . 그리고 타락, 즉 그 첫 사람의 타락이 발생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다시 말해 예언적으로 증거된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이었다"(Ibid., IV, i, p. 508).
"그렇다면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옴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적이거나 심리학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른다. 원죄의 교리는, 서방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왔던 바와 같이, 바울에겐 '매력적 가설'(리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의 의미에 대한 많은 역사적이며 심리학적인 왜곡들 중의 하나이었을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온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나타난 의와 같이, 초시간적(timeless)이며 초월적이다"(The Epistle to the Romans, p. 171).
7.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신화라고 한다.
(로마서 1:3, 4의 해설) "우리의 세계가 예수님 안에서 다른 세계에 의해 접촉될 때, 그것은 역사, 시간, 혹은 사물로서 직접 관찰될 수 있기를 그친다. . . . 그리스도로서, 즉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은 역사의 종말이시다. 그리고 그는 오직 역설로서(키에르케골), 승리자로서(블룸하르트), 원시 역사로서(오베르베크)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있는 지평이시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 지평을, 그는 수직적으로 위로부터 가로지르신다.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은 오직 문제 혹은 신화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Ibid., pp. 29, 30)
8.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분명히 긍정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이 주목할 만한 두 마디가 하나님께서 값없는 은혜로서 사람, 진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주장함을 보려고 해야 한다"(Dogmatics in Outline, p. 96).
"그의 어머니가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Church Dogmatics, IV. i. p. 5, footnote).
9.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로마서 3:24의 설명에서) "나사렛 예수 즉 육신을 따라 난 그리스도는 역사의 다른 가능성들 가운데의 하나이시다. 그러나 그는 불가능의 모든 표들을 소유하신 그 가능성이시다. 그의 생애는 역사의 구조 속의 한 역사이며, 다른 구체적 사건들 가운데서의 한 구체적 사건이다. . . . 그러나 그것은 의미를 가득히 가진 역사이다. 그것은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구체성이다"(The Epistle to the Romans, pp. 103, 104).
"그의 피를 흘림으로써 . . . 심판자 자신은 . . . 그를 믿는 사람들 전체를 위한 유화적(宥和的) 제물이 되셨다. 그는 그들의 정죄를 마땅히 따라야 하는 그 형벌의,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모든 결과들의, 책임을 짊어지셨다"(A Shorter Commentary on Romans, p. 46) 이 진술은 대리적, 형벌적 속죄, 그것도 제한 속죄를 믿는 것 같으나, 그는 처음의 로마서 주석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1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이 아니다"(The Epistle to the Romans, p. 3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Church Dogmatics, IV. i. p. 335).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는--현대 학자들의 사고 형식들과 용어로--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Ibid., pp. 335, 336).
1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 사건 즉 비록 그것이 역사 안에서의(in) 유일한 실제적 사건이지만 역사의(of) 한 실제적 사건이 아닌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들은--물론 그것이 그들의 확신을 파괴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재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12.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Ibid., III. ii. p. 34).
"하나님의 '예'(용납하심)는 선언되었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 . . 그것은 영원 전부터 그가 아들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인류에 대한 그의 '예'이었고 '예'이다"(Ibid., IV. i. p. 356).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가, 심지어 가장 쓸데 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The Humanity of God, p. 5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그 어떠한 종류의 제한을 가할 아무런 신학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의 신학적 의무는 그것이 우리가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고 깨닫는 것이다"(Ibid., p. 62).
13.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바르트는 몸의 부활을 스캔달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라고 말하였다(바르트, 죽은 자의 부활 <대한기독교서회>, 89쪽; 한종희,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 기독신보, 1991년 3월 30일, 9쪽).
14. 성경이 윤리의 객관적 규범임을 부정한다.
"사람은 자유의 은사(gift)에 내재(內在)한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선을 행한다. 그는 그의 자유에 반대되는 법에 복종할 때 악을 행한다. . . . [그러나] 어떻게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지침과 기준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유인은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명령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이 명령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가 권위적 형태를 취하고 인간이 직면하고 측정되는 바 그 명령이 확고하게 되기 때문이다"("The Gift of Freedom: Foundation of Evangelical Ethics," The Humanity of God, p. 84).
"선과 악의 문제는 결코 사람이 일련의 규범들로서의 하나님의 권위적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답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법전,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잣대로서 사람에 의해 발견되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부과되지 않는다"(Ibid., p. 85).
씨 에취 다드(C. H. Dodd, 1884-1973)
C. H. 다드는 영국의 신정통주의의 대표적 인물로서 신약신학자이었다. 인용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The Authority of the Bible.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ing Co., 1929.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ing Co., 1932.
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s.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ing Co., 1951(1936).
About the Gospel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2.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3.
1. 성경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바울이 했다는 설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나 다른 이들이 했다는 설교들은 사도행전 저자의 자유로운 작품일지 모른다는 것은 가능한 생각이다"(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s, p. 17).
"비록 우리는 아마 디모데전서를 진짜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지만. . . ."(Ibid., p. 30).
"요한은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하나의 추가적 기록보다 하나의 해석, 즉 새로운 대중을 위한 하나의 해석을 의도했다"(About the Gospels, p. 31).
"그렇다면 그[가나의 기적]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더 깊은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더 깊은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 단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The Interpre- tation of the Fourth Gospel, p. 297).
2.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14).
"문자적 의미에서 성경은 사람의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 . . 그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로마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울이다. . . .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가 아니고, 성경의 저자들이 나누어 가진 그 생명의 조성자이시다"(Ibid., p. 16).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self-subsistent)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objective)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Ibid., p. 289).
3.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한다.
"성경 무오(無誤)에 대한 옛날 견해가 과학적 발견과 역사 비평학의 연속적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과정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다.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서 성경의 정확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성경 무오의 변호자들이 희망 없는 입장을 택했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벌써 분명했다. . . . 성경의 그 옛 교리적 견해는 과학과 역사 비평학의 입장에서 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신중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와 공중 도덕에 위험물이 된다"(Ibid., p. 13).
"바울이 잘못이라고 나는 때때로 생각하고, 과감히 그렇게 말해 왔다, 비록 전체적으론 그가 말하는 바가 내가 보기에 충분히 참된 것 같지만"(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p. xxxv).
4. 하나님의 형벌적 의의 속성을 부정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로서의 진노가 사라지는 길이 열려 있고, 그의 사랑과 자비는 모든 것을 포괄하게 된다.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을 가지는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도덕 세계에서의 불가피한 인과(因果) 과정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Ibid., p. 23).
"하나님을 인격의 가장 높은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면서 비(非)이성적인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일관하지 않다"(Ibid., p. 24).
5. 아담은 신화적 인물이라고 한다.
"비록 바울에겐 그가 실제적 인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나의 신화이다"(Ibid., p. 79).
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모호한 개념을 가진다.
"그 복음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즉 우주의 의미를 표현하는 생애의 기록이다. 영원한 로고스[말씀]이 이해되는 것은 바로 이 생애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서이며, 다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다. . . . 그 서두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어질 수 있다: '모든 실제적 존재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그 신적 의미 혹은 원리이다.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은 바로, 생각에 있어서 하나님과 분리될 수 있으나 실재상 그와 분리되지 않는, 이 원리이다'"(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pp. 284, 285).
7.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승귀라고 간주한다.
"요한에게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심 자체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승귀와 영광이기 때문에 . . . 부활이 그에게는, 그것이 다른 어느 저자들에게 가지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의의를 거의 가질 수 없다"(Ibid., pp. 440, 441).
"그리스도의 승천이나 승귀가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지만."(Ibid., p. 442).
8.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누그러뜨림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The Romans, p. 55).
"하나님의 의(義)가 (예를 들어, 죄의 대리적 형벌에 의해) 만족될 수 있고 동시에 그의 자비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어떤 방책이 있었다는 아무런 암시도 없다. 의와 자비 간의 그러한 대립은 바울의 마음 속에 있지 않았다"(Ibid., p. 59).
9. 보편 구원론적이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서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Ibid., p. 186).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내면적 필요성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208).
10. 재림과 심판에 관한 성경 구절을 부정한다.
"그 서신의[데살로니가후서의] 첫번째 장에 나오는 종말론적 구절(7-10절)은--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그것이 문체에 있어서 바울의 것과 같지 않다고 논평했는데--유대교적이든지 혹은 유대-기독교적이든지 간에 실상 당시의 어떤 묵시 문학의 인용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거기에는 그 내용에서나 그 일반적 어조에서 특별히 기독교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The Apostolic Preaching, p. 37).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라인홀드 니이버는 미국의 신정통주의의 대표적 인물로서 사회윤리학자이었다. 인용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Beyond Tragedy. New York: Charles Scribner's, 1938.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New York: Charles
Scribner's, 1943.
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New York: Charles
Scribner's, 1955.
1. 교의(敎義)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교의(敎義, dogma)는 기껏해야 언약 공동체의 공동 견해를 나타낸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93).
2. 기독교 진리 일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기독교 종교에서 참된 것은 어느 정도 임시적이고 표면적인 거짓을 포함하는 상징들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 . . . 우리는 거짓에 의해 진리를 가르친다"(Beyond Tragedy, p. 3).
"기독교는 원시종교적, 예술적 신화들과 상징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한 종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Ibid., p. 7).
"성경의 상징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지성들이, 역사를 초월하고 성취하는 것[신]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 p. 289).
3. 창조를 신화적 개념이라고 한다.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Beyond Tragedy, p. 7).
4. 아담의 타락을 신화라고 한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는 원시적 신화이다. 현대 신학은 현대 문화가 그런 신앙을 종교의 개화 반대론(obscurantism)의 증거로 간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즐거이 타락 이야기를 부정했다"(Ibid., p. 10).
"타락의 개념은 동산, 과일, 그리고 뱀이라는 원시적 신화를 역사적으로 참된 사실로 간주하는 오류에 굴복한다. . . . 타락은 역사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어떤 구체적 인간의 행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행위들의 전제이다"(Ibid., p. 11).
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불합리하다고 한다.
"영원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Ibid., p. 13).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Ibid., p. 14).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진리를 신화라고 본다.
"사람들은 처녀 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Ibid., p. 17).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들이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66).
7.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는 신학적 오류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Beyond Tragedy, pp. 17, 18).
8. 영혼 불멸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 사상으로부터 온 유산에 불과하다"(Ibid., p. 290).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 속인 교리라고 한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Ibid., p. 21).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상징은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도 없고 중요치 않은 것으로 내버려질 수도 없다"(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 p. 289).
10.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의 개념은 물론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Beyond Trage- dy, p. 290).
11. 마지막 심판을 부정한다.
"신약의 상징론에서 에스카다(eschata) 혹은 '마지막 일들'은 세 개의 근본적 상징들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그리고 부활이다"(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 p. 290).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비록 문자주의적 정통주의가 그 일소를 정당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지만. 기독교인들이 천국의 가구(家具)나 지옥의 온도에 대한 어떤 지식을 주장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Ibid., p. 294).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루돌프 불트만은 불트만학파의 시조이며 신약신학자이었다.
Jesus Christ and Mythology. New York: Scribner, 1958.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Oxford: Basil
Blackwell, 1970.
Theology of New Testament. 2 vols. New York: Scribner,
1951-55.
Hans Werner Bartsch, ed., Kerygma and Myth: A Theolo-
gical Debate by Rudolf Bultmann and Ernst Lohmeyer,
Julius Schniewind, Helmut Thielicke, and Austin Farrer.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1.
1. 성경의 신빙성과 역사적 증거성을 부정한다.
"그 두 이야기들은 역사적 서술들로서 조화될 수 없다. 실상, 그렇게 하려는 어떤 시도도 각 이야기의 독특한 의도를 파괴한다. 하지만, 마가복음 1:16-20에 나오는 두 장면이 역사적 서술이 아니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이야기가 믿을 만한 역사적 전통을 담고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p. 108).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시는 메시아 혹은 인자(人子)는 유대교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수난의 예언들에서 인자라는 유대인의 메시아 개념이 재해석되었다는--혹은 더 낫게 표현한다면, 독특하게 부요하게 해석되었다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개념의 이러한 재해석은 예수님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 사건들 후에 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31).
"만일 그 계시가 그[공동체=초대 교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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