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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 신관

바르트 - 신관
자료출처http://kr.blog.yahoo.com/visions72000/1605
 
1) 바르트의 계시관에 대해 몇 가지 더 지적한다면, 그는 계시의 형태로 성경과 설교를 말하지만, “성경과 설교 자체가 하나님에 대해 다 ( 계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계시 형태로 하나님이 자신이 “( 전적 )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말이다. 참으로 애매한 말이다. 또한 계시는 받는 자의 “믿음의 반응”과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결국 인간의 ( 주관 )을 강조하여 성경계시를 인간 이성의(= 혹은 감정, 기분 ) ( 판단 ) 아래 두게 되는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
2)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나 리츨의 신학을 주관적 혹은 인간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러한 비판이 바르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의 눈에는 정통주의자들이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것을 해석하고 논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어떤 인간 연구의 객체적 ( 대상 )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즉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 소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능력”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인간의 ( 언어 )로 기록하게 하신 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리는 바르트의 계시관을 알고 나면, 그의 계시관은 정통신학이 아님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기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이 그럴 듯 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러나 바르트의 계시관은 그의 철학적 계시 개념에만 ( 국한 )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존재 )에까지 연결되는 개념으로서 오히려 신의 ( 실제 )적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 인격 )적이시며 ( 절대 )적 존재”이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바르트의 “전적 타자(wholly other)”로서 “( 추상 )적이고 ( 개념 )적인 하나님”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한다.

신 관
1) 그러면 바르트의 신관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르트는 하나님의 ( 초월 )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 타자, 감추어진 자, 자유” 등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의 “( 자유 )”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는 하나님의 “근본적 성품”이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자유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 될 ) 수 있는 자유”도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감추어진” 하나님이 “전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을 “자유를 사랑하는 자”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의 자유는 그의 ( 감추어짐 )을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의 계시, 구원, 은혜 등으로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3)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감추임”과 “계시(= 나타남 )”가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란 “그 자신외의 무엇이 ( 될 ) 자유”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내재”하실 자유도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자유의 연속이며, 그의 영원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자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언어와 문자 속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말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독자들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4) 바르트가 하나님을 그의 계시와 동일시 할 때는 어떤 ( 간접 )적 동일을 의미한다. 즉 계시가 “역사적 형태를 취할 수”는 있어도, “역사적인 어떠한 것이 계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어떤 면에서는 계시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계시와 동일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계시의 ( 간접 )성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계시 속에서도 감추어지신 분이라고 한다. 즉 계시 안에서도 자유하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간접성 개념은, ( 변증법 )적 방법으로서 하나님이 ( 동시 )에 감추어지고 ( 동시 )에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식으로 하나님을 계시와 ( 동일 )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 정체 )”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는 ( 매개 )체(=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 )가 아니라 하나님 ( 자신 )이라면, 우리가 계시를 받을(= 계시 사건 ) 순간 그 계시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시를 받는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계시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보편적 실재(= realty )로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범신론적으로) 그 무엇인가?
6) 물론 바르트는 이런 질문과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바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감추임” 혹은 “초월성”만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신”으로 정의하든지, 굳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말하고 싶으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인격적 하나님이 인간(= 역사적 매개체 )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7)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와 그의 존재는 사건 그 자체임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 감추어 )지신 분인지라 그의 계시는 ( 보존 )할 수도 ( 조정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키에르케고르의 “순간” 개념과 같이 우리가 간혹 ( 순간 )적으로 가지는 계시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전적으로 계시된 분이시기에 (= 즉 계시와 동일시되는 분이기에 ) 그의 존재는 계시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렇듯이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성품(= person) 과 그의 사역의 구분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수 혹은 성품과 그의 사역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르트의 하나님은 “인격체”이신지 “과정”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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