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총서 현대신학개설
개혁주의 신학총서 현대신학개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dusonma/3DfZ/656
1957년 1월에 한국 개혁주의 신행협회가 탄생하였다. 근 30여 년 동안
이 신행협회가 자라오는 어간 약 100종의 책을 출판하였고, 학술 강연과,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급여하며, 멀리 인도에까지도 개혁주의 문서 출판
을 위해서 기금을 보내 주기도 하였다.
1978년도에는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회자와 선교사 등 59명을 동원해서
'신학사전'을 출판하여 개혁주의 신학 운동에 이바지하였다. 이 책이 호
평리에 널리 보급되는 결과를 보고 힘을 얻어, 본 신행협회에서는 한국 신
학계에 신학 교재의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고 신학 교재 출판을 위해서 노
력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신학 교재들이 많이 출판되었으나 주로 번역물
이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신학 교재의 출판이 크게 요청되었다.
신학 교재 편집위원 3인(오병세, 차영배, 전호진)이 여러 방면으로 검토
한 결과 제목, 집필자, 출판에 관한 제반 사항을 확정지어 21명의 한국 신
학자들로 하여금 21개 교재에 대해서 집필하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개혁주의 신행협회'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안
심하고 읽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책들은 신학 교재로 출판되
었으나 표현을 비교적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신
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이나 성경학교, 그리고 각 교회의 교회학교의 교재
로서도 사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개혁주의 신학 교재의 제6권으로 김의환 박사님의 '현대신학개설' 책
이 출판된 것을 독자들과 함께 기뻐한다.
고신대학에서, 편집 위원장 오병세
예수 지상주의적 성격이 특히 Moravian 경건주의 운동에 두드러지게 나
타났다. 예수 체험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 운동을 H. Richard
Niebuhr는 "삼위일체 중의 제2위에 대한 Unitarianism"으로까지 불렀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구속의 적용자로서의 성령님은 거의 도외시된 채 구
주 예수에 대한 관심 일변도의 신앙 체계를 확립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의 미덕이 아니요
우리를 어둠에서 영광스런 빛으로 인도하신 그 분의 미덕을 예찬하는 책이
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을 담은 책이다."
Barth는 이러한 신본주의적 입장(신본주의적입장)을 점차 성경 연구와
설교를 통하여 발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일대 폭탄적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로부터 Barth의 신학은 '말씀의 신학'이 되었
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관주의적 계시관에 반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
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
한 증거이다"라고 한바,
"예수의 부활을 신문 기자가 취재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믿느냐?"
고 물을 때 Barth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그로서는 예수의 부활이
Historie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역사성의 강조는 Barth로 하여금 노스틱주의 (Gnosticsm)의
문제점이었던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의 교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
를 초래하였다.
Barth는 하나님의 초월과 자유를 강조함으로 직접 계시를 부인하였다.
그 결과 그는 자연 계시의 타당성이나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성경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계시에 대한 증거요, 지표에불과하며, 하나
님은 절대자이시요, 자유로우시므로 성경에 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통
주의가 성경을 계시와 동일시함으로 성경을 Paper Pope로 모시는 성경 우
상주의(Bibli- cism)에 빠져 있다고 비난한다. 그가 자연 계시를 인정한
Brunner는 비판하면서도 비신화화론을 주장한 Bultmann에게 관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신학적 천재성이 인정되어 1930년 그가 24
세때 Berlin 대학 조직 신학 교수로 발탁되었다. 옥중 서신에 부각된
Bonhoeffer 상은 인본주의적 신학자, 그외에 아무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자유주의가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고 부흥회 운동이 인간의 감정을 강조
하는 주관적인 신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양자는 일치한다. 그러나 교리
적 확신이 없는 체험만의 강조가 위험한 신앙임을 깨달은 후에 신앙적 체
험을 척도로 바로잡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Hodge는 신학의 합리성을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은 조직 신학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진리를
주셨다. 그 진리는 합당하게 이해되고 체계화되면 신학의 과학(the
science of theology)을 성립시킨다. 자연 사물이 물리적 법칙에 의하여
서로 연관되고 결정되는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의 본성에 의
하여 서로 연관되고 결정된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된 만물을 연구하여 그
들의 놀라운 유기적 관계와 조화를 발견하도록 원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워서 진리란 끝없는 조화와 장엄함 속에 엮어
지는 조직이요 체계란 사실을 깨달을 것을 원하신다."
예수의 초자연성만이 한 인간의 자연성보다 믿기는 어려워도 반드시 믿
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연인 그리스도에게서는 구원의 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는 항상 순결(Purity)과 연합(Unity)의 긴장 속에 발전되어 왔
을진대 양자의 조화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전자를 택한 Machen을
분열주의자로 정죄하는 교회사적 무분별은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Machen은 자기의 소속 교회였던 미국 장로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축출
되어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축출된 이유는 오직 교회 내의 자유주의 신
학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입장 때문이었다.
Berkhof의 20여권의 신학 서적 중에서 특히 '조직 신학'은 미국 복음주
의 신학교에서 가장 널리 쓰여지고 있다.
Francis Schaeffer의 저서들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2백만권
이상이 지난 10 년간에 팔릴 만큼 선풍적 인기를 모은 이 시대의 선지자로
알려지고 있다.
John A. T. Robinson의 'Honest to God'는 Harvey Cox의 'The Secular
City'와 함께 세속화 신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들은
교회와 세속의 구별을 거절하고 초월적인 신 존재를 믿는 신앙을 경멸한
다.
먼저 기독교는 초자연주의를 배제하는 체질 개선을 통해 이 시대에 적응
하는 작업을 하여야 된다고 한다.
거룩한 소재는 지성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 속의 한복판에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웃을 위한 봉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리스챤의
생활은 세속적 성결(Worldly Holiness)의 삶이요 그러므로 우리 때에 할
일은 과거의 신화적인 미신 신앙을 버리고 과감하게 생활 속에서 신과 만
나는 신앙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활 전체가 신을 만나는
생활 신학이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천국의 실재성을 일괄적으로 부인하고 이 모든
것을 다만 상징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만 이해하여야 된다고 한다.
개관해 볼 때 신에 대한 솔직한 신앙으로 동기된 'Honest to god'는 '솔
직한 불신앙'으로 일관된 세속화 신학의 한 장을 이루고 말았다.
급진신학은 현세주의적이며 합리적이다. 신학에는 반드시 성경적 전제
가 선행되어야 하며 거기에 대한 신앙 다음에 오는 이성을 통한 사색은 어
디까지나 계시 의존 사색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진신학은 역사적 기독
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경험적인 기독관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이웃을 향
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노래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그리스도의 주체성
(Identity)은 불문에 붙인다.
급진신학은 낙관주의로서 Teilhard의 진화적 비전에는 죄악의 뿌리가 경
시되고 있다. 과학적 발달에서 오는 인간 가능성의 과신이 죄로 말미암아
입고 있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점을 외면케 하고 있다. 좋은 침대에 누웠
다는 사실이 결코 병자를 저절로 낫게는 할 수 없다. 급진 신학의 결정적
약점은 죄의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한데 있다. 창조계의 조화와 완
성은 죄에 대한 심판 다음에 올 것을 알아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주
님이 가지고 올 것을 약속하였다. 성경은 하늘나라의 현재성과 내세성을
동시에 가르치며 구원과 심판을 가르친다. 성경과 교회사는 지상 유토피
어의 약속이 없다.
신복음주의 비판
신복음주의는 어느 극단의 보수 신학자가 말한대로 이단에 가까운 것인
가? 아니면 이단은 아닐지라도 길을 잘못 든 탈선된 복음주의 운동인가?
오늘날 신복음주의 운동은 일부 보수 교회에서 거의 타부시되고 있는 실정
이나 그 운동의 성격과 한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따르고 있다.
미국의 Bob Jones 대학교에서는, 그 대학교가 소재하여 있는 Greenvile
도시에서 1966년에 Billy Graham 박사의 전도 집회가 개최되었을 때 대학
생들에게 전도 집회 참석은 물론 그 전도 운동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엄
금하였다. 그 대학교 총장인 Bob Jones 박사는 반대의 변을 "Billy
Graham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대하여 생존한 어느 사람보다도 더 손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Graham and Greenville", Christianity
Today, Vol. X. No.13, April, 1966, p.44.)
Ashbrook은 신복음주의의 네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다. 그 잘못이란 첫
째로 자유주의(자유주의)와 협력, 둘째로 지적(지적)인 교만, 세째로 죄
(죄)에 대한 관용, 네째로 말씀에 의한 심판을 자초(자초) 등이라고 한다.
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은 오늘의 근본주의의 정신 구조에서 소아병
적(소아병적)인 부정주의(부정주의)를 염려하고,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부정'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모색하기에 힘썼다. 지난날 자유
주의의 탈선과 더불어 싸워 온 가운데 이러한 부정주의가 하나의 '멘탈리
티'로 체질화 되어버린 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Ockenga는 이와 같은 오늘의 근본주의가 근본적인 자체 개혁이 없는 한
미국 교회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빌리 그래함적인 협력 전도가 성경적 방법인지에 대하여 학자들에게 크
게 의심과 도전을 받고 있다.(Gary G. Cohen, Biblical Separation
Defended, Cohen은 본서에서 협력 전도에 대한 10가지 반론을 펴고 있다.
한글 번역판 "신복음주의 비판", 김효성 역, 성광문화사, 요약자)
신복음주의는 성경관에 있어서 근본주의가 믿어 온 축자 영감설(축자영
감설)에 동의하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유신적인 진화론을 주저없이 따름
으로써 과학적인 결론 앞에 성경적 창조설을 쉽사리 던져 버리고 만다.
Westminster 신학교의 대부분의 교수들이 종말론에 있어서 무천년설을
주장하고 주초(주초)와 극장 출입 문제에 자유로 규범화하는 것에 반대하
므로 1939년에 Carl McIntire, A.Mac Rae등이 중심이 되어 성경 장로 교회
를 세워 따로 분리하여 가면서 Faith 신학교를 세웠다. 20년이 채 못가서
Faith 신학교는 행정 문제로 분리되어 Saint Louis에 Covenant 신학교가
세워지면서 복음장로교회가 따로 생겼다. 남북 장로교회의 총회 합동을
계기로 남장로 교회에서 분리한 미국 장로 교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와 합동하여 Covenant 신학교는 P.C.A. 직영신학교가 되었다.
장로 교회의 경우보다 침례 교회의 경우, 근본주의를 따르는 목사들은
침례 교회의 독립주의적 정치 원리에 따라 더 많은 분리 현상을 빚었다.
그 대표적인 교단으로 The General Association of Regular Baptist
Church는 1932년에 세워졌고, The Conservative Baptist Association of
America는 1947년에 세워졌다.
이렇게 하여 '싸움과 분리'가 1930년대 이후의 근본주의 운동의 특징처
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분리로 이루어진 '분산된 힘'의 결속을 위하여 조
직적 연합체의 구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1941년에 America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여 조직되었다. C. MacIntire
의 주도 아래 W.C.C.를 대항하기 위하여 I.C.C.C.(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1948년 Amsterdam에서 조직되었다.
McIntire가 지도자로 부상된 근본주의 운동은 Bob Jones University와
Faith 신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상의 근본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여 갔
다.
그들은 완전 분리주의를 주장하여 W.C.C.계에 속하여 있는 목사들이 관
계한 어떠한 회의나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것은 그들의 완전 분리 원칙에
위배되므로 Billy Graham 전도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뿐아
니라 Billy Graham의 모교인 Wheaton 대학이나 Graham을 지원하는 Fuller
신학교 및 Christianity Today 등의 모든 기관을 정죄하였다. 1974년에
Billy Graham이 주최한 Lausanne 대회에 Mc Intire는 몇 사람과 함께 직접
피켜을 들고 반대 시위하였다.
완전 분리를 최대의 미덕으로 내세운 전기 신근본주의와 달리 1970년대
에 들어와서 정치 참여에 적극성을 띠고 분리와 함께 참여를 강조하는 운
동이 일어났다. 배도 교회(배도교회)에서 분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
라 세속 사회에 기독교 원리를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하여 조직과 매시
미디어를 동원하여 공격의 고지를 점령하자는 선교 전략을 활용하는 운동
이다. Jerry Falwell의 Moral Majority 등.
근본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전체 미국의 사분의 일이 넘는 실정에서
이들의 사회적 공헌은 기대하여 볼만하다. 그러나 정교 분리가 헌법으로
규정된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는 낙관을 불
허한다.
신근본주의 운동의 약점은 부정적 사고 방식으로 오늘날 I.C.C.C. 운동
이 현기증이 나리만큼 자체 분열을 거듭하는 현실에서 신근본주의의 파선
현장을 보게 된다. "신학적인 깡패, 연합운동의 방해자, 문화의 낙후자,
반과학, 반지식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지을 수 없게 한다.
항상 성경을 자기편에 두고 상대방을 비성경적인 이유로 비판한 습성이
어느덧 체질화 되어 자신의 비성경성을 돌아보는 자기반성의 결핍을 가져
오게 하였다. 자기반성의 결핍은 자기편에 속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수정
과 개혁의 대상이 되지만 자기편에 속하면 그것으로 벌써 자기 수정의 필
요성을 상실하여 버린 것이다.
자유 신학 자체를 신학 발전의 결과로 보고 신학 연구를 멀리 하거나 아
예 신학 교육을 포기한 채 성경학교(Bible Institute)를 많이 세워 전도
자 양성에만 더 주력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20세기 후반기의 싸움터에서 제1차 대전의 무기만을 가지고 싸우려
는 자기 어리석음에 비유할 만하다.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적이 누구인지
를 아는 것도 중요하나 적이 쓰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박형룡의 신학과 사상
이성의 한계성은 인간의 피조성 때문이다. 계시는 마음에게 진리의 시
달이다. 그러나 그 진리의 시달은 그것을받을 재량을 추상한다. 계시는
짐승에게나 백치에게 주어지기는 불가능하다. 진리들은 신앙의 대상들로
수납되기 위하여 반드시 지성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앙은 상당한 이유에 의하여 진리를 이지적으로 수납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도무지 '상당한 이유 없이' 신앙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
의 증언에 의하여서만 이러한 이성의 인식 작용이 가능한 사실을 지적한
다.
오늘날 신학자의 병(병)은 자신의 학적 우위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교회
와 상관없는 신학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신학 운동을 하는데 있다. 자기의
신학적 주장이 교회에 미치는 해독을 전혀 생각지 않고 창의성(창의성)<신
학은 발명해 내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다>의 이름으로
교회에 함부로 소개될 때 결국 신학의 이질적 타락이 교회의 쇠퇴를 가져
오고 만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독일 교회에서, 그리고 미국의 기성 교단에
서 뼈아프게 보고 있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학적 실험(실험)대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신학자의 사명은 오직 주어진 Text를 가지
고 교회의 유지와 성장을 위하여 바로 가르칠 것밖에 없다. Context가
Text를 고치게 <로마서 1장의 동성애 문제 등>할 아무런 권리도 주어 있지
않다. 신학자들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위한 신학자이어야 한다. 이종성에
게 취약점으로 보인 박형룡의 신학은 바로 그의 강점이었을 뿐이다. 박박
사가 기독교 변증을 위한 설교를 할 때는 조국 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며 우
시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현재 합동측 교단이 민족 복음화라는 전도적 차원에서 WCC계의 교회들
과 조직적이 아닌 기능적 연합 사업을 찬송가 공회나 '여의도 전도 집회'
나 장로교 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것은 박형룡의 척도대로 하면
다 정리받을 일들이다.
박형룡은 그의 '현대 신학 비평' 하권에서 "빌리 그래함 전도 운동의 비
참한 결과들"이란 제하에 Billy Graham 운동은 1)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
이의 역사적 분계선을 파괴하려는 고의적, 조직적 시도이다. 이 전도 운
동은 헤겔의 정(정), 반(반), 합(합)의 원리에 따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의 종합의 상징이다. 2) 빌리 그래함의 정책은 모든 분리 운동에 직접적
반항이 되어 왔다라고 비판하였다.
교회사는 항상 교회의 순결(Purity)과 연합(Unity)의 사이에서 움직이는
진자(진자)의 움직임을 목격하여 왔다.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연합
이 깨지고 연합을 너무 강조할 때 순결에 오염이 온다.
민중 신학 비판
민중 신학과 해방 신학은 신학이 계시에 의하여 출발하지 아니하고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하에서 출발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 운동의 요구에 부응하여 전통적 기독교를 수정하여 재
해석하려는 노력 속에서 완전히 탈기독교적 인본주의의 신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중 신학은 비신학화(비신학화)를 주장하여 모든 신학적 전제를 부인한
다. 기독교의 수직성이나 초자연성을 부인하고 모든 기독교 진리를 정치
적 차원에서 평면화(평면화)시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 아
니라 정치적 동기에서 살해 되었다고 보고 그의 부활도 민중의 인권 회복
과 관련시켜 해석되어지고 있다.
성경을 전체적, 구속사적 조명 아래 보려하지 않고 민중 신학 확립을 위
하여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콘텍스트(Context)를 위하여 텍
스트(Text)를 끌어들이려는 오류를 범한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
김의환 편저
생명의 말씀사,
1990년 10월 30일 발행
장로교 총회는 1922년 교회당 34개처, 목사 5인, 장로 8인, 소학교 6처,
야학교 35처, 주일학교 15처, 등록 교인 1,935명이 넘는 교세를 얻게 되
어 드디어 시베리아 노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장로교 총회는 1912년 총회 조직을 기념하여 중국 선교를 결의하고 그
다음해에 김영훈(1877-1939, 평북 의주) 사병순(1878- ?, 평남) 박태로
(1870- ?, 황해도 황주) 세목사를 선교사로 중국 산동 지방에 파송하였다.
선교 30년이 지난 1942년 통계에 의하면 교회 36처, 세례 교인 1,716명으
로 증가하여 중국 선교 사상 큰 기적을 낳았다. 1917년엔 방효원
(1886-1953, 평북 철산, 산동성 선천 부산서 목회) 홍승한(1881-1958, 평
북 철산, 대구 산동성 철산 만주 부산 목회) 두 목사를 증파하고 1918년에
는 박상순 목사(1887- ?평양, 해방후 기독교도연맹 위원장)를 다시 파송하
였다. 1923년에는 이대영 목사(1887-1968, 1956년 예장 총회장, 나중 합
동측에 가담)를, 1931년에는 김순효 여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37년에는
방지일 목사를 파송하였다.
부정적인 면은 소명감만 있고, 선교 지원만 하면 받아서 지원비만 마련
되면 파송을 하므로 선교지에 가서 많은 시행 착오가 있었다.
미국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두 개의 교파가 그들의 선교 예산을 1971년
이후 매년 25% 이상씩 삭감시킨 것이다. 미국 연합장로 교회 총회는 선교
부 자체를 없애 버렸고 하트포드에 있는 케네디 선교 대학원은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이 된다. 미국 N.C.C. 산하의 선교 인원은 지난 5년 동안에
9,298명의 선교 인원 중 그 절반 이상을 철수시켰다.
서울의 교회는 지난 29년 동안에(1973년 기준) 120배로 성장했다. 16개
교회에서 2,000 교회가 넘었다. 서울 교회의 자연 증가율은 일년에 13%를
넘는다. 그것은 3일만에 교회가 두개씩 늘어 간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신학자 수는 아시아 전체의 신학자 수보다 많다.
1957년 미국 연합 장로교 총회 선교부가 한국에 송금한 선교비 총액은
636,923불이었는데 그 중 465,243불(73.0%)이 선교사의 생활비와 그들의
한국 사무실 경비로 사용되었으며,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60,175불, 신학교
를 위하여 24,900불, 의료 사업을 위하여 23,000불이 지불되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한 지출은 총예산의 0.8%인 단 4,800불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
지 선교비의 운영 실태는 우리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 정책 수립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 주는 부정적 실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교회 성장률은 인구 성장률을 600% 앞지른다. 한국의 신학생 수
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신학생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많다.
대형화 치닫는 한국교회
교인수 세계50위에 26개 올라
1890년 불과 265명의 교인으로 출발한 한국개신교는 이제 1천만명을 헤
아리는 엄청난 교세로 성장해 있다. 대개 10년단위로 배가되던 교인수는
70년대 와서는 220만명에서 7백20만명으로 무려 세배를 웃도는 폭발적 증
가세를 보였다.
1984년 통계의 교인수기준 세계20대교회에는 1위인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한국교회가 6개나 포함돼 있었다.
교단을 무시한 개교회의 독주, 물량주의, 신비주의에의 함몰, 기업화,
목회자와 교인간의 인격적 만남이 결여되는데서 오는 교육훈련의 부실화등
을 대형교회가 부를수 있는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dusonma/3DfZ/656
1957년 1월에 한국 개혁주의 신행협회가 탄생하였다. 근 30여 년 동안
이 신행협회가 자라오는 어간 약 100종의 책을 출판하였고, 학술 강연과,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급여하며, 멀리 인도에까지도 개혁주의 문서 출판
을 위해서 기금을 보내 주기도 하였다.
1978년도에는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회자와 선교사 등 59명을 동원해서
'신학사전'을 출판하여 개혁주의 신학 운동에 이바지하였다. 이 책이 호
평리에 널리 보급되는 결과를 보고 힘을 얻어, 본 신행협회에서는 한국 신
학계에 신학 교재의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고 신학 교재 출판을 위해서 노
력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신학 교재들이 많이 출판되었으나 주로 번역물
이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신학 교재의 출판이 크게 요청되었다.
신학 교재 편집위원 3인(오병세, 차영배, 전호진)이 여러 방면으로 검토
한 결과 제목, 집필자, 출판에 관한 제반 사항을 확정지어 21명의 한국 신
학자들로 하여금 21개 교재에 대해서 집필하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개혁주의 신행협회'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안
심하고 읽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책들은 신학 교재로 출판되
었으나 표현을 비교적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신
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이나 성경학교, 그리고 각 교회의 교회학교의 교재
로서도 사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개혁주의 신학 교재의 제6권으로 김의환 박사님의 '현대신학개설' 책
이 출판된 것을 독자들과 함께 기뻐한다.
고신대학에서, 편집 위원장 오병세
예수 지상주의적 성격이 특히 Moravian 경건주의 운동에 두드러지게 나
타났다. 예수 체험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 운동을 H. Richard
Niebuhr는 "삼위일체 중의 제2위에 대한 Unitarianism"으로까지 불렀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구속의 적용자로서의 성령님은 거의 도외시된 채 구
주 예수에 대한 관심 일변도의 신앙 체계를 확립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의 미덕이 아니요
우리를 어둠에서 영광스런 빛으로 인도하신 그 분의 미덕을 예찬하는 책이
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을 담은 책이다."
Barth는 이러한 신본주의적 입장(신본주의적입장)을 점차 성경 연구와
설교를 통하여 발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일대 폭탄적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로부터 Barth의 신학은 '말씀의 신학'이 되었
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관주의적 계시관에 반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
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
한 증거이다"라고 한바,
"예수의 부활을 신문 기자가 취재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믿느냐?"
고 물을 때 Barth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그로서는 예수의 부활이
Historie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역사성의 강조는 Barth로 하여금 노스틱주의 (Gnosticsm)의
문제점이었던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의 교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
를 초래하였다.
Barth는 하나님의 초월과 자유를 강조함으로 직접 계시를 부인하였다.
그 결과 그는 자연 계시의 타당성이나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성경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계시에 대한 증거요, 지표에불과하며, 하나
님은 절대자이시요, 자유로우시므로 성경에 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통
주의가 성경을 계시와 동일시함으로 성경을 Paper Pope로 모시는 성경 우
상주의(Bibli- cism)에 빠져 있다고 비난한다. 그가 자연 계시를 인정한
Brunner는 비판하면서도 비신화화론을 주장한 Bultmann에게 관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신학적 천재성이 인정되어 1930년 그가 24
세때 Berlin 대학 조직 신학 교수로 발탁되었다. 옥중 서신에 부각된
Bonhoeffer 상은 인본주의적 신학자, 그외에 아무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자유주의가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고 부흥회 운동이 인간의 감정을 강조
하는 주관적인 신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양자는 일치한다. 그러나 교리
적 확신이 없는 체험만의 강조가 위험한 신앙임을 깨달은 후에 신앙적 체
험을 척도로 바로잡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Hodge는 신학의 합리성을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은 조직 신학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진리를
주셨다. 그 진리는 합당하게 이해되고 체계화되면 신학의 과학(the
science of theology)을 성립시킨다. 자연 사물이 물리적 법칙에 의하여
서로 연관되고 결정되는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의 본성에 의
하여 서로 연관되고 결정된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된 만물을 연구하여 그
들의 놀라운 유기적 관계와 조화를 발견하도록 원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워서 진리란 끝없는 조화와 장엄함 속에 엮어
지는 조직이요 체계란 사실을 깨달을 것을 원하신다."
예수의 초자연성만이 한 인간의 자연성보다 믿기는 어려워도 반드시 믿
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연인 그리스도에게서는 구원의 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는 항상 순결(Purity)과 연합(Unity)의 긴장 속에 발전되어 왔
을진대 양자의 조화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전자를 택한 Machen을
분열주의자로 정죄하는 교회사적 무분별은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Machen은 자기의 소속 교회였던 미국 장로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축출
되어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축출된 이유는 오직 교회 내의 자유주의 신
학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입장 때문이었다.
Berkhof의 20여권의 신학 서적 중에서 특히 '조직 신학'은 미국 복음주
의 신학교에서 가장 널리 쓰여지고 있다.
Francis Schaeffer의 저서들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2백만권
이상이 지난 10 년간에 팔릴 만큼 선풍적 인기를 모은 이 시대의 선지자로
알려지고 있다.
John A. T. Robinson의 'Honest to God'는 Harvey Cox의 'The Secular
City'와 함께 세속화 신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들은
교회와 세속의 구별을 거절하고 초월적인 신 존재를 믿는 신앙을 경멸한
다.
먼저 기독교는 초자연주의를 배제하는 체질 개선을 통해 이 시대에 적응
하는 작업을 하여야 된다고 한다.
거룩한 소재는 지성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 속의 한복판에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웃을 위한 봉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리스챤의
생활은 세속적 성결(Worldly Holiness)의 삶이요 그러므로 우리 때에 할
일은 과거의 신화적인 미신 신앙을 버리고 과감하게 생활 속에서 신과 만
나는 신앙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활 전체가 신을 만나는
생활 신학이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천국의 실재성을 일괄적으로 부인하고 이 모든
것을 다만 상징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만 이해하여야 된다고 한다.
개관해 볼 때 신에 대한 솔직한 신앙으로 동기된 'Honest to god'는 '솔
직한 불신앙'으로 일관된 세속화 신학의 한 장을 이루고 말았다.
급진신학은 현세주의적이며 합리적이다. 신학에는 반드시 성경적 전제
가 선행되어야 하며 거기에 대한 신앙 다음에 오는 이성을 통한 사색은 어
디까지나 계시 의존 사색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진신학은 역사적 기독
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경험적인 기독관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이웃을 향
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노래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그리스도의 주체성
(Identity)은 불문에 붙인다.
급진신학은 낙관주의로서 Teilhard의 진화적 비전에는 죄악의 뿌리가 경
시되고 있다. 과학적 발달에서 오는 인간 가능성의 과신이 죄로 말미암아
입고 있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점을 외면케 하고 있다. 좋은 침대에 누웠
다는 사실이 결코 병자를 저절로 낫게는 할 수 없다. 급진 신학의 결정적
약점은 죄의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한데 있다. 창조계의 조화와 완
성은 죄에 대한 심판 다음에 올 것을 알아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주
님이 가지고 올 것을 약속하였다. 성경은 하늘나라의 현재성과 내세성을
동시에 가르치며 구원과 심판을 가르친다. 성경과 교회사는 지상 유토피
어의 약속이 없다.
신복음주의 비판
신복음주의는 어느 극단의 보수 신학자가 말한대로 이단에 가까운 것인
가? 아니면 이단은 아닐지라도 길을 잘못 든 탈선된 복음주의 운동인가?
오늘날 신복음주의 운동은 일부 보수 교회에서 거의 타부시되고 있는 실정
이나 그 운동의 성격과 한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따르고 있다.
미국의 Bob Jones 대학교에서는, 그 대학교가 소재하여 있는 Greenvile
도시에서 1966년에 Billy Graham 박사의 전도 집회가 개최되었을 때 대학
생들에게 전도 집회 참석은 물론 그 전도 운동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엄
금하였다. 그 대학교 총장인 Bob Jones 박사는 반대의 변을 "Billy
Graham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대하여 생존한 어느 사람보다도 더 손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Graham and Greenville", Christianity
Today, Vol. X. No.13, April, 1966, p.44.)
Ashbrook은 신복음주의의 네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다. 그 잘못이란 첫
째로 자유주의(자유주의)와 협력, 둘째로 지적(지적)인 교만, 세째로 죄
(죄)에 대한 관용, 네째로 말씀에 의한 심판을 자초(자초) 등이라고 한다.
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은 오늘의 근본주의의 정신 구조에서 소아병
적(소아병적)인 부정주의(부정주의)를 염려하고,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부정'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모색하기에 힘썼다. 지난날 자유
주의의 탈선과 더불어 싸워 온 가운데 이러한 부정주의가 하나의 '멘탈리
티'로 체질화 되어버린 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Ockenga는 이와 같은 오늘의 근본주의가 근본적인 자체 개혁이 없는 한
미국 교회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빌리 그래함적인 협력 전도가 성경적 방법인지에 대하여 학자들에게 크
게 의심과 도전을 받고 있다.(Gary G. Cohen, Biblical Separation
Defended, Cohen은 본서에서 협력 전도에 대한 10가지 반론을 펴고 있다.
한글 번역판 "신복음주의 비판", 김효성 역, 성광문화사, 요약자)
신복음주의는 성경관에 있어서 근본주의가 믿어 온 축자 영감설(축자영
감설)에 동의하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유신적인 진화론을 주저없이 따름
으로써 과학적인 결론 앞에 성경적 창조설을 쉽사리 던져 버리고 만다.
Westminster 신학교의 대부분의 교수들이 종말론에 있어서 무천년설을
주장하고 주초(주초)와 극장 출입 문제에 자유로 규범화하는 것에 반대하
므로 1939년에 Carl McIntire, A.Mac Rae등이 중심이 되어 성경 장로 교회
를 세워 따로 분리하여 가면서 Faith 신학교를 세웠다. 20년이 채 못가서
Faith 신학교는 행정 문제로 분리되어 Saint Louis에 Covenant 신학교가
세워지면서 복음장로교회가 따로 생겼다. 남북 장로교회의 총회 합동을
계기로 남장로 교회에서 분리한 미국 장로 교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와 합동하여 Covenant 신학교는 P.C.A. 직영신학교가 되었다.
장로 교회의 경우보다 침례 교회의 경우, 근본주의를 따르는 목사들은
침례 교회의 독립주의적 정치 원리에 따라 더 많은 분리 현상을 빚었다.
그 대표적인 교단으로 The General Association of Regular Baptist
Church는 1932년에 세워졌고, The Conservative Baptist Association of
America는 1947년에 세워졌다.
이렇게 하여 '싸움과 분리'가 1930년대 이후의 근본주의 운동의 특징처
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분리로 이루어진 '분산된 힘'의 결속을 위하여 조
직적 연합체의 구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1941년에 America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여 조직되었다. C. MacIntire
의 주도 아래 W.C.C.를 대항하기 위하여 I.C.C.C.(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1948년 Amsterdam에서 조직되었다.
McIntire가 지도자로 부상된 근본주의 운동은 Bob Jones University와
Faith 신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상의 근본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여 갔
다.
그들은 완전 분리주의를 주장하여 W.C.C.계에 속하여 있는 목사들이 관
계한 어떠한 회의나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것은 그들의 완전 분리 원칙에
위배되므로 Billy Graham 전도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뿐아
니라 Billy Graham의 모교인 Wheaton 대학이나 Graham을 지원하는 Fuller
신학교 및 Christianity Today 등의 모든 기관을 정죄하였다. 1974년에
Billy Graham이 주최한 Lausanne 대회에 Mc Intire는 몇 사람과 함께 직접
피켜을 들고 반대 시위하였다.
완전 분리를 최대의 미덕으로 내세운 전기 신근본주의와 달리 1970년대
에 들어와서 정치 참여에 적극성을 띠고 분리와 함께 참여를 강조하는 운
동이 일어났다. 배도 교회(배도교회)에서 분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
라 세속 사회에 기독교 원리를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하여 조직과 매시
미디어를 동원하여 공격의 고지를 점령하자는 선교 전략을 활용하는 운동
이다. Jerry Falwell의 Moral Majority 등.
근본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전체 미국의 사분의 일이 넘는 실정에서
이들의 사회적 공헌은 기대하여 볼만하다. 그러나 정교 분리가 헌법으로
규정된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는 낙관을 불
허한다.
신근본주의 운동의 약점은 부정적 사고 방식으로 오늘날 I.C.C.C. 운동
이 현기증이 나리만큼 자체 분열을 거듭하는 현실에서 신근본주의의 파선
현장을 보게 된다. "신학적인 깡패, 연합운동의 방해자, 문화의 낙후자,
반과학, 반지식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지을 수 없게 한다.
항상 성경을 자기편에 두고 상대방을 비성경적인 이유로 비판한 습성이
어느덧 체질화 되어 자신의 비성경성을 돌아보는 자기반성의 결핍을 가져
오게 하였다. 자기반성의 결핍은 자기편에 속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수정
과 개혁의 대상이 되지만 자기편에 속하면 그것으로 벌써 자기 수정의 필
요성을 상실하여 버린 것이다.
자유 신학 자체를 신학 발전의 결과로 보고 신학 연구를 멀리 하거나 아
예 신학 교육을 포기한 채 성경학교(Bible Institute)를 많이 세워 전도
자 양성에만 더 주력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20세기 후반기의 싸움터에서 제1차 대전의 무기만을 가지고 싸우려
는 자기 어리석음에 비유할 만하다.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적이 누구인지
를 아는 것도 중요하나 적이 쓰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박형룡의 신학과 사상
이성의 한계성은 인간의 피조성 때문이다. 계시는 마음에게 진리의 시
달이다. 그러나 그 진리의 시달은 그것을받을 재량을 추상한다. 계시는
짐승에게나 백치에게 주어지기는 불가능하다. 진리들은 신앙의 대상들로
수납되기 위하여 반드시 지성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앙은 상당한 이유에 의하여 진리를 이지적으로 수납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도무지 '상당한 이유 없이' 신앙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
의 증언에 의하여서만 이러한 이성의 인식 작용이 가능한 사실을 지적한
다.
오늘날 신학자의 병(병)은 자신의 학적 우위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교회
와 상관없는 신학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신학 운동을 하는데 있다. 자기의
신학적 주장이 교회에 미치는 해독을 전혀 생각지 않고 창의성(창의성)<신
학은 발명해 내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다>의 이름으로
교회에 함부로 소개될 때 결국 신학의 이질적 타락이 교회의 쇠퇴를 가져
오고 만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독일 교회에서, 그리고 미국의 기성 교단에
서 뼈아프게 보고 있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학적 실험(실험)대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신학자의 사명은 오직 주어진 Text를 가지
고 교회의 유지와 성장을 위하여 바로 가르칠 것밖에 없다. Context가
Text를 고치게 <로마서 1장의 동성애 문제 등>할 아무런 권리도 주어 있지
않다. 신학자들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위한 신학자이어야 한다. 이종성에
게 취약점으로 보인 박형룡의 신학은 바로 그의 강점이었을 뿐이다. 박박
사가 기독교 변증을 위한 설교를 할 때는 조국 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며 우
시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현재 합동측 교단이 민족 복음화라는 전도적 차원에서 WCC계의 교회들
과 조직적이 아닌 기능적 연합 사업을 찬송가 공회나 '여의도 전도 집회'
나 장로교 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것은 박형룡의 척도대로 하면
다 정리받을 일들이다.
박형룡은 그의 '현대 신학 비평' 하권에서 "빌리 그래함 전도 운동의 비
참한 결과들"이란 제하에 Billy Graham 운동은 1)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
이의 역사적 분계선을 파괴하려는 고의적, 조직적 시도이다. 이 전도 운
동은 헤겔의 정(정), 반(반), 합(합)의 원리에 따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의 종합의 상징이다. 2) 빌리 그래함의 정책은 모든 분리 운동에 직접적
반항이 되어 왔다라고 비판하였다.
교회사는 항상 교회의 순결(Purity)과 연합(Unity)의 사이에서 움직이는
진자(진자)의 움직임을 목격하여 왔다.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연합
이 깨지고 연합을 너무 강조할 때 순결에 오염이 온다.
민중 신학 비판
민중 신학과 해방 신학은 신학이 계시에 의하여 출발하지 아니하고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하에서 출발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 운동의 요구에 부응하여 전통적 기독교를 수정하여 재
해석하려는 노력 속에서 완전히 탈기독교적 인본주의의 신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중 신학은 비신학화(비신학화)를 주장하여 모든 신학적 전제를 부인한
다. 기독교의 수직성이나 초자연성을 부인하고 모든 기독교 진리를 정치
적 차원에서 평면화(평면화)시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 아
니라 정치적 동기에서 살해 되었다고 보고 그의 부활도 민중의 인권 회복
과 관련시켜 해석되어지고 있다.
성경을 전체적, 구속사적 조명 아래 보려하지 않고 민중 신학 확립을 위
하여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콘텍스트(Context)를 위하여 텍
스트(Text)를 끌어들이려는 오류를 범한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
김의환 편저
생명의 말씀사,
1990년 10월 30일 발행
장로교 총회는 1922년 교회당 34개처, 목사 5인, 장로 8인, 소학교 6처,
야학교 35처, 주일학교 15처, 등록 교인 1,935명이 넘는 교세를 얻게 되
어 드디어 시베리아 노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장로교 총회는 1912년 총회 조직을 기념하여 중국 선교를 결의하고 그
다음해에 김영훈(1877-1939, 평북 의주) 사병순(1878- ?, 평남) 박태로
(1870- ?, 황해도 황주) 세목사를 선교사로 중국 산동 지방에 파송하였다.
선교 30년이 지난 1942년 통계에 의하면 교회 36처, 세례 교인 1,716명으
로 증가하여 중국 선교 사상 큰 기적을 낳았다. 1917년엔 방효원
(1886-1953, 평북 철산, 산동성 선천 부산서 목회) 홍승한(1881-1958, 평
북 철산, 대구 산동성 철산 만주 부산 목회) 두 목사를 증파하고 1918년에
는 박상순 목사(1887- ?평양, 해방후 기독교도연맹 위원장)를 다시 파송하
였다. 1923년에는 이대영 목사(1887-1968, 1956년 예장 총회장, 나중 합
동측에 가담)를, 1931년에는 김순효 여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37년에는
방지일 목사를 파송하였다.
부정적인 면은 소명감만 있고, 선교 지원만 하면 받아서 지원비만 마련
되면 파송을 하므로 선교지에 가서 많은 시행 착오가 있었다.
미국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두 개의 교파가 그들의 선교 예산을 1971년
이후 매년 25% 이상씩 삭감시킨 것이다. 미국 연합장로 교회 총회는 선교
부 자체를 없애 버렸고 하트포드에 있는 케네디 선교 대학원은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이 된다. 미국 N.C.C. 산하의 선교 인원은 지난 5년 동안에
9,298명의 선교 인원 중 그 절반 이상을 철수시켰다.
서울의 교회는 지난 29년 동안에(1973년 기준) 120배로 성장했다. 16개
교회에서 2,000 교회가 넘었다. 서울 교회의 자연 증가율은 일년에 13%를
넘는다. 그것은 3일만에 교회가 두개씩 늘어 간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신학자 수는 아시아 전체의 신학자 수보다 많다.
1957년 미국 연합 장로교 총회 선교부가 한국에 송금한 선교비 총액은
636,923불이었는데 그 중 465,243불(73.0%)이 선교사의 생활비와 그들의
한국 사무실 경비로 사용되었으며,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60,175불, 신학교
를 위하여 24,900불, 의료 사업을 위하여 23,000불이 지불되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한 지출은 총예산의 0.8%인 단 4,800불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
지 선교비의 운영 실태는 우리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 정책 수립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 주는 부정적 실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교회 성장률은 인구 성장률을 600% 앞지른다. 한국의 신학생 수
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신학생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많다.
대형화 치닫는 한국교회
교인수 세계50위에 26개 올라
1890년 불과 265명의 교인으로 출발한 한국개신교는 이제 1천만명을 헤
아리는 엄청난 교세로 성장해 있다. 대개 10년단위로 배가되던 교인수는
70년대 와서는 220만명에서 7백20만명으로 무려 세배를 웃도는 폭발적 증
가세를 보였다.
1984년 통계의 교인수기준 세계20대교회에는 1위인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한국교회가 6개나 포함돼 있었다.
교단을 무시한 개교회의 독주, 물량주의, 신비주의에의 함몰, 기업화,
목회자와 교인간의 인격적 만남이 결여되는데서 오는 교육훈련의 부실화등
을 대형교회가 부를수 있는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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