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복음주의가 변질된 결정적 계기 - 이안 머레이
영국 복음주의가 변질된 결정적 계기 - 이안 머레이
자료출처http://blog.daum.net/kkho1105
이안 머레이가 추적해 낸 복음주의 변질의 역사적 계기는 1967년 키엘 대회 -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변질되는 원인을 제공한 시기
: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의 오판 -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더라도 신학적 중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에 대해 뒤늦게 오판을 인정한 것으로 이안 머레이는 밝히고 있다.
- 머레이에 따르면,
패커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키엘 대회가 아닌 그 이후 2차, 3차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에서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친 포용적 태도로 복음주의 신학을 타협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키엘 대회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가 유지하고 싶었던,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던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성,
"스토트-패커 노선"이라고 불리는, 이런 노선이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스토트와 패커는) 믿었으나,
실제로 신학적 포용성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자 후세대들은 엄격한 복음주의적 교리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신학적 중심을 주장했던 제임스 패커를 늙은 원로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패커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에서 소외되었고, 캐나다로 (쫓겨나듯) 옮겨가게 되었다.
:: 존 스토트는 이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했는지, 상술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아마도 키엘 대회와 복음주의 그룹의 포용주의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 제임스 패커기 때문에
스토트는 이와 같은 설명에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키엘 대회 이전에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원인들을 추적해 보자면,
영국 성공회에 미친 "빌리 그래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지적하고 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복음전도"를 추구했던 빌리 그래함의 태도 때문에
영국 성공회 및 복음주의자 또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외로운 광야의 목소리"의 입장을 취했다.
빌리 그래함식의 복음 전도를 거의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했고(지도급 인사 중에서),
이후 키엘 대회의 포용정책 노선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1966년의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의 분열은
분리주의자였던 로이드 존스의 '극단적인 순결주의적' 태도에 대해
존 스토트의 '균형있는 대응'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안 머레이는 철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스토트와 패커가 오판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66년의 결별 사건과 관련해서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평가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안 머리. <분열된 복음주의>(부흥과개혁사)
자료출처http://blog.daum.net/kkho1105
이안 머레이가 추적해 낸 복음주의 변질의 역사적 계기는 1967년 키엘 대회 -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변질되는 원인을 제공한 시기
: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의 오판 -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더라도 신학적 중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에 대해 뒤늦게 오판을 인정한 것으로 이안 머레이는 밝히고 있다.
- 머레이에 따르면,
패커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키엘 대회가 아닌 그 이후 2차, 3차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에서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친 포용적 태도로 복음주의 신학을 타협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키엘 대회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가 유지하고 싶었던,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던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성,
"스토트-패커 노선"이라고 불리는, 이런 노선이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스토트와 패커는) 믿었으나,
실제로 신학적 포용성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자 후세대들은 엄격한 복음주의적 교리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신학적 중심을 주장했던 제임스 패커를 늙은 원로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패커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에서 소외되었고, 캐나다로 (쫓겨나듯) 옮겨가게 되었다.
:: 존 스토트는 이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했는지, 상술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아마도 키엘 대회와 복음주의 그룹의 포용주의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 제임스 패커기 때문에
스토트는 이와 같은 설명에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키엘 대회 이전에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원인들을 추적해 보자면,
영국 성공회에 미친 "빌리 그래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지적하고 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복음전도"를 추구했던 빌리 그래함의 태도 때문에
영국 성공회 및 복음주의자 또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외로운 광야의 목소리"의 입장을 취했다.
빌리 그래함식의 복음 전도를 거의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했고(지도급 인사 중에서),
이후 키엘 대회의 포용정책 노선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1966년의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의 분열은
분리주의자였던 로이드 존스의 '극단적인 순결주의적' 태도에 대해
존 스토트의 '균형있는 대응'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안 머레이는 철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스토트와 패커가 오판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66년의 결별 사건과 관련해서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평가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안 머리. <분열된 복음주의>(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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