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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의 덫을 조심하라"

"'긍정의 힘’의 덫을 조심하라"
자료출처http://blog.daum.net/kkho1105
 
2009년 01월 12일 (월) 07:19:13양봉식 sunyang@amennews.com
<시크릿> 문제점 지적한 이지성 작가의 <노시크릿>
교계이든 일반이든 잘 팔리는 책의 주제들은 자기계발서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은 기독교에서 출판된 책이지만 일반인들도 많이 사서 본 책이다. 어려울수록 자기에게 긍정적인 힘을 갖게 하거나 성공을 도전하는 책이 잘 팔린다. 작년의 경우 <시크릿>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은 침체된 출판시장에서도 여전히 2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시크릿>은 종교분야의 책이다. 하지만 뉴에이지적 성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힌두교와 관련된 출판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시크릿>의 경우 기독교적인 서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노시크릿>을 통해 <시크릿>의 문제를 제기한 이지성 작가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시크릿>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지성 작가는 <시크릿>이 힌두교 사상에 근거를 둔 ‘끌어당김의 법칙’이 성경의 뒷받침을 받아 ‘성공을 위한 절대 비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을 염탐한 10명의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보고를 두고 ‘긍정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긍정적인 시각과 이들의 긍정은 다르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긍정적인 보고를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출발점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인생의 실패와 성공에 관심이 많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공을 하고 싶어 하는 이면에는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메시지가 있다. 새마을 운동처럼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전체적인 공동체의 틀에서 옳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은 누군가가 꼴찌가 되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경쟁의 결과 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1등을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성공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 그럼에도 자기계발서와 긍정의 힘, 그리고 시크릿은 이런 성공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가치와 다르다.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긍정적인 생각에 초점을 맞춰 할 수 있도록 의식을 조정하는 것이다.

‘100억을 벌고 싶다면 100억이 그려진 수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꿈꾸라’는 식이다. 우리는 꿈을 꿀 수 있고 상상을 할 수 있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긍정적으로 찾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우리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구하고 찾는 것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만약 우리 인생이 우리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시크릿>이 성경을 인용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교회의 성장,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성숙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일까? 우리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기억한다. 그 구절은 ‘나는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구원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적인 모든 정황이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성공을 이루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다. 그런 점에서 긍정의 힘의 초석은 그리스도여야 한다. <시크릿>의 문제는 미국식 힌두교 전도운동이라는 것이 이지성 작가의 주장이다. ‘시크릿’이 힌두교 교리를 전파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우주가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개념 자체가 고대 브라만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독교에서 긍정적인 가능성 신학의 목회자로 알려진 인물은 노만 빈센트 필와 로버트 슐러 같은 목사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목회에 도입에 큰 교회를 이룬 곳이 강남의 감리교 교회이고 여의도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다.

성공철학, 잘 되어야 한다는 성공신학, 혹은 가능성 신학에 대해 한국교회가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자기계발은 있어야 한다. 자기 성장과 성숙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기계발이 왜곡되어 ‘돈’ ‘명예’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첫째 소명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인격과 성화에 대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기 최면이나 자기 긍정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생명으로 사는 믿음을 통해 긍정의 힘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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