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주의를 몰아내자 (마 13:24-30)
혼합주의를 몰아내자 (마 13:24-30)
자료출처http://tauranga.org/gnuboard/bbs/board.php?bo_table=sermon&wr_id=259
천국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께서 비유로 계속 설명을 하시는 중에, 이번에는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자기 밭에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고, 밭은 세상이라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자기 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의 근본적인 성격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제 2위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천지창조의 당사자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요 1:3)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피조세계의 모든 것 중에 그가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까, 성자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지창조가 성자 하나님의 독자적 행위는 아닙니다. 천지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이 모두 참여하신 공동의 사역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기사에 바로 그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각종 피조물로 채우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세 분 하나님 사이의 합의에 의해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복수형이 두 분 이상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할 때는 단수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복수형이 사용되었을까요? 이것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하나의 관용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에서도 나를 표현할 때 우리라는 복수형을 많이 쓰잖아요? 우리 집, 우리 마누라…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에도 그런 용법이 있을까요? 우리 마누라 같은 표현은 없지만, 히브리어 어법에는 장엄복수(pluralis majestaticus)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대한 것, 위대한 것 등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사용해서 그 장엄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왕도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복수로 표현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빅토리아 여왕이 도둑에 관한 농담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We are not amused.”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로힘이라는 단어도 복수형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우리라는 복수형도 장엄복수의 용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은 또 회의를 하십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The man has now become like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창 3:22). 그렇게 되면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실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지창조의 당사자로서 이 세상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그러니까 예수께서 천국을 가져오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은 마치 밭 주인이 자기 밭에다 자기가 원하는 좋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이,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방해할 권리가 없고, 반대할 명분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몰래 숨어들어왔습니다. 밤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들 몰래 나쁜 일을 하려는 것이지요. 옳지 않은 일, 떳떳하지 않은 일은 어둠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름 하나는 빛의 자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의 자녀는 남 몰래 숨어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이 정당하고 깨끗하다면 어둠 속으로 숨어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은 악한 일을 의미합니다. 물론 선행을 하고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좋은 일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런 은밀한 선행을 우리가 지금 어둠 속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들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원수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잘 때, 밤에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곡식을 뿌려놓은 자리에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낮에 그랬다가는 잡혀서 안 죽을 만치 두들겨 맞을 일이지요. 그러니까 밤에 하는 것입니다. 이 원수가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그 밭을 망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불러모으시는데, 그것을 방해하고 망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단어가 눈에 띕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했는데, 덧뿌렸다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곡식을 뿌려 놓은 곳에 나쁜 가짜 씨앗을 덧뿌렸습니다. 가라지는 독보리입니다. 생긴 것은 밀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는데, 독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설사와 구토가 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좋은 곡식과 악한 가라지가 한 곳에 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밭을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원수 마귀는 교회를 붕괴시키기 위해 교회 안에 가짜 복음을 뿌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덧뿌려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혼합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과 가짜 복음이 혼합되어 있어서, 어떻게 보면 복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진짜의 탈을 쓰고 가짜가 주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책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데, 그분의 설교는 매우 유익한 심리학 강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는 설교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자기가 말한 것과 연결을 시켜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이게 설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립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지요? 그런데 이 조엘 오스틴 목사가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을 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롬니 후보는 몰몬교도거든요. 몰몬교는 미국에서 생겨난 이단인데,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이 천사의 계시를 받고 황금 서판을 발견했고, 그것이 몰몬경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과 몰몬경을 동등한 권위의 두 경전으로 믿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5대5로 섞은 전형적인 혼합주의입니다.
그런데 조엘 오스틴 목사의 다음 말이 또 가관입니다. 몰몬교에서는 성경 이외의 몰몬경도 믿고 하나님도 사람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이단성이 많은데 어떻게 진정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 신학적인 문제는 깊이 공부한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롬니 전 주지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한다고 다 기독교인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보세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요 4:24)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in truth예요. ‘우리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한다고 하더군요. 뭐가 맞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예배하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하는지, 즉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엉뚱하게 믿으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혼합주의는 새로운 문화에 복음이 전해질 때 발생하기 쉽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기존의 문화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린 비기독교적 또는 반기독교적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고 기독교 신앙과 병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천주교에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허용한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조상 제사는 세상을 떠난 조상의 영혼을 신적 존재로 믿고 제사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기독교 신앙에 어긋나는 관습입니다. 조선 말에 들어온 천주교가 그토록 심하게 박해를 당한 것은 제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조상도 모르는 배역무도한 집단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사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조상을 기리는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하면서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은 정말 납득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혼합주의를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되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 했었는데, 그들이 우상을 섬기느라고 하나님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다른 민족들의 신을 섬긴 것입니다. 이러한 혼합주의의 위험을 바울 사도도 경고했습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오늘도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끊임없이 가라지를 뿌려댑니다. 복음 아닌 것을 복음처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단이나 문화적 혼합주의처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각자의 삶에서 나만의 혼합주의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생기기는 밀이나 보리처럼 생겼는데 사실은 독이 들어 있는 가라지처럼, 얼핏 보면 복음처럼 보이는데 우리의 예배가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리 밖의 가짜로 드리는 것이 되게 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위험들을 우리는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아직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개인적인 혼합주의도 우리가 단호히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는 가라지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함께 담아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나 생활 속에 그런 가라지들이 섞여 있다면 과감하게 뽑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좋은 곡식을 병들게 하고 예수님의 소유인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말입니다. 뽑아내는 것은 물론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 우리 믿음에 독소처럼 작용하는 가라지들을 뽑아냈을 때, 우리에게 천국이 더 가까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순전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날마다 천국을 살아가는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글쓴이 : 이정선목사
자료출처http://tauranga.org/gnuboard/bbs/board.php?bo_table=sermon&wr_id=259
천국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께서 비유로 계속 설명을 하시는 중에, 이번에는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자기 밭에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고, 밭은 세상이라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자기 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의 근본적인 성격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제 2위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천지창조의 당사자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요 1:3)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피조세계의 모든 것 중에 그가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까, 성자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지창조가 성자 하나님의 독자적 행위는 아닙니다. 천지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이 모두 참여하신 공동의 사역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기사에 바로 그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각종 피조물로 채우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세 분 하나님 사이의 합의에 의해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복수형이 두 분 이상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할 때는 단수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복수형이 사용되었을까요? 이것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하나의 관용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에서도 나를 표현할 때 우리라는 복수형을 많이 쓰잖아요? 우리 집, 우리 마누라…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에도 그런 용법이 있을까요? 우리 마누라 같은 표현은 없지만, 히브리어 어법에는 장엄복수(pluralis majestaticus)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대한 것, 위대한 것 등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사용해서 그 장엄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왕도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복수로 표현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빅토리아 여왕이 도둑에 관한 농담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We are not amused.”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로힘이라는 단어도 복수형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우리라는 복수형도 장엄복수의 용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은 또 회의를 하십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The man has now become like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창 3:22). 그렇게 되면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실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지창조의 당사자로서 이 세상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그러니까 예수께서 천국을 가져오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은 마치 밭 주인이 자기 밭에다 자기가 원하는 좋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이,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방해할 권리가 없고, 반대할 명분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몰래 숨어들어왔습니다. 밤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들 몰래 나쁜 일을 하려는 것이지요. 옳지 않은 일, 떳떳하지 않은 일은 어둠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름 하나는 빛의 자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의 자녀는 남 몰래 숨어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이 정당하고 깨끗하다면 어둠 속으로 숨어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은 악한 일을 의미합니다. 물론 선행을 하고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좋은 일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런 은밀한 선행을 우리가 지금 어둠 속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들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원수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잘 때, 밤에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곡식을 뿌려놓은 자리에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낮에 그랬다가는 잡혀서 안 죽을 만치 두들겨 맞을 일이지요. 그러니까 밤에 하는 것입니다. 이 원수가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그 밭을 망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불러모으시는데, 그것을 방해하고 망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단어가 눈에 띕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했는데, 덧뿌렸다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곡식을 뿌려 놓은 곳에 나쁜 가짜 씨앗을 덧뿌렸습니다. 가라지는 독보리입니다. 생긴 것은 밀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는데, 독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설사와 구토가 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좋은 곡식과 악한 가라지가 한 곳에 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밭을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원수 마귀는 교회를 붕괴시키기 위해 교회 안에 가짜 복음을 뿌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덧뿌려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혼합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과 가짜 복음이 혼합되어 있어서, 어떻게 보면 복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진짜의 탈을 쓰고 가짜가 주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책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데, 그분의 설교는 매우 유익한 심리학 강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는 설교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자기가 말한 것과 연결을 시켜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이게 설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립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지요? 그런데 이 조엘 오스틴 목사가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을 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롬니 후보는 몰몬교도거든요. 몰몬교는 미국에서 생겨난 이단인데,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이 천사의 계시를 받고 황금 서판을 발견했고, 그것이 몰몬경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과 몰몬경을 동등한 권위의 두 경전으로 믿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5대5로 섞은 전형적인 혼합주의입니다.
그런데 조엘 오스틴 목사의 다음 말이 또 가관입니다. 몰몬교에서는 성경 이외의 몰몬경도 믿고 하나님도 사람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이단성이 많은데 어떻게 진정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 신학적인 문제는 깊이 공부한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롬니 전 주지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한다고 다 기독교인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보세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요 4:24)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in truth예요. ‘우리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한다고 하더군요. 뭐가 맞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예배하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하는지, 즉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엉뚱하게 믿으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혼합주의는 새로운 문화에 복음이 전해질 때 발생하기 쉽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기존의 문화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린 비기독교적 또는 반기독교적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고 기독교 신앙과 병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천주교에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허용한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조상 제사는 세상을 떠난 조상의 영혼을 신적 존재로 믿고 제사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기독교 신앙에 어긋나는 관습입니다. 조선 말에 들어온 천주교가 그토록 심하게 박해를 당한 것은 제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조상도 모르는 배역무도한 집단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사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조상을 기리는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하면서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은 정말 납득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혼합주의를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되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 했었는데, 그들이 우상을 섬기느라고 하나님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다른 민족들의 신을 섬긴 것입니다. 이러한 혼합주의의 위험을 바울 사도도 경고했습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오늘도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끊임없이 가라지를 뿌려댑니다. 복음 아닌 것을 복음처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단이나 문화적 혼합주의처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각자의 삶에서 나만의 혼합주의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생기기는 밀이나 보리처럼 생겼는데 사실은 독이 들어 있는 가라지처럼, 얼핏 보면 복음처럼 보이는데 우리의 예배가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리 밖의 가짜로 드리는 것이 되게 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위험들을 우리는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아직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개인적인 혼합주의도 우리가 단호히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는 가라지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함께 담아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나 생활 속에 그런 가라지들이 섞여 있다면 과감하게 뽑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좋은 곡식을 병들게 하고 예수님의 소유인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말입니다. 뽑아내는 것은 물론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 우리 믿음에 독소처럼 작용하는 가라지들을 뽑아냈을 때, 우리에게 천국이 더 가까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순전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날마다 천국을 살아가는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글쓴이 : 이정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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