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듣기 비성경적
하나님의 음성 듣기 비성경적
자료출처 http://ewoot.or.kr/bbs/zboard.php?id=vision1&no=290
제 2 장 신사도운동에 대한 이해
2.1 신사도운동의 명칭
2.1.1 명칭의 배경
1990년대 교회성장이론으로 발생한 신사도운동은, 한국장로교회와 정통 교단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아직 신학적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와 일반 목회자들에게 있어서는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상을 주도하여 이끌어 가거나, 영향을 받은 국내외 종교지도자들의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성도들이나, 기성교회에서 신앙적 회의를 느끼거나, 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성도들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상은 교회성장을 연구하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부흥하는 특정 교회들의 역사와 흐름들을 연구하던 중, 그 안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patterns)들을 찾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피터 와그너가 발견했다는 공통된 특징 안에서 일어나는 교회성장운동을 “신사도적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 ation Movement )”이라 이름 하였다. 또한 그 흐름 속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을 “신사도적 개혁교회들(NRA: New Apostolic Reformed Church)”이라 부르게 되었다.
피터 와그너는 20세기 들어 기독교 안에 세 가지 성령운동의 물결이 일어났다고 본다. 제1의 물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일어났던 “오순절 운동”이라 하고, 제 2의 물결은 1960년대에 개신교 여러 교파로부터 일어나서 천주교까지 영향을 끼친 “은사 운동”이며, 제3의 물결은 존 윔버에 의해 발생한 “빈야드 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피터 와그너는 1997년, 오순절 은사운동뿐만 아니라 빈야드 운동을 주도하는 교회들의 세계적인 연합을 촉구하며, 자신이 “신사도적 개혁 운동”으로 정의한 새로운 교회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신사도운동은 1세기 사도들이 활동하였던 사도행전의 역사를 근거로 활용 하면서, 현대적 사도의 직분과 은사를 규정한다. 이 운동은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고 권능을 받은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 교단의 전통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체제를 이루는 것이 목표이다.
피터 와그너는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약 30년간 오순절 교회의 성장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1990년대 오순절적교회를 능가하여 영적, 기술적, 양적, 질적 성장을 보이는 교회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들을 사용하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탈 교파운동”(Postdenominationalism)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교파 친구들의 여러 비난에 직면하자 “독립 카리스마운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명칭도 교회의 상호 의존성과 신사도주의 교회들이라고 해서 모두 카리스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사도 개혁운동”으로 다시 명명하게 되었다.
2.1.2 명칭의 의미
이 명칭에 대한 정의는 오경근의 나사렛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에 잘 나타난다. 오경근은교회성장연구소와국제 영적 추수 사역회(Harvest Interna tional Min istries) 주관으로 2002년 9월 3-6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21세기 신사도적 교회부흥 세미나”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때 강사였던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운동에 대한 용어 정의를 하였다 한다. 또한 피터 와그너의 저서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라는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개혁(Reformation)”이라는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500년 전의 프로테스탄트의 개혁만큼 이 시대에 급진적이며, 급속한 교회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은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할 만한 개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신학적 개혁”이 아니고, 교회에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의 변화”로서 놀라운 개혁이라는 것이다. 즉 종교개혁 시대 이후 부패한 신앙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시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방식의 개혁으로,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사도”(Apostle)라는 말로서, 이 운동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 바로 “사도직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한다. 교회 내에서 사도의 직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또한 교회들이 목회사역에 있어서 전도에 대해 지대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현재 사도사역의 인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신사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사도”란 넒은 의미로서의 사도라는 주장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사도는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로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좁은 의미로서의 사도란 예수님의 12제자가 주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파송된 12사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서 사도의 직분은 ,예수님의 12제자 외에 사도라 부르는 안드로니고, 아볼로, 바나바, 에바브로 디도, 야고보, 유니아, 맛디아, 바울, 실라, 디모데 등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 사도라 불리는 직분자처럼 현재에도 사도는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것이다. 와그너는 “사도은사”뿐만 아니라 “사도직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New)”이라는 단어는 미국 교단 연감에 수록된 교회 가운데 사도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전통적 교단이 31개나 되었고, 옛 사도운동과 구분하는 의미로 이 운동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첨가한 것이라 한다. 옛 사도운동이란 로마 카톨릭교회의 정식 명칭이 “거룩한 카톨릭 사도 로마교회”이며, 18세기 초 “신사도교회”라고 불렸던 에드워드 어빙의 운동과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교단의 이름이 “사도교회”이며, 한국의 성결교회 모체도 “만국 사도 성결교회”였다는 것이다. 와그너는 이러한 것을 제시함으로 “사도”라는 명칭을 보편화된 것으로 인식시키고자함을 볼 수 있다.
2.2 신사도운동의 9가지 특징
피너 와그너는 지금은 제2의 사도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괄목하게 성장하는 교회들의 특징적인 공통점이 있는데, 그러한 흐름을 신사도운동으로 규정하고, 기존교회와는 다른 그 특징들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새로운 명칭에 있다. “새로운 사도 개혁운동”이라는 이름이다. 피터 와그너는 2001년도를 제2의 사도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해였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운영되고 사역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새로운 교회”, “차세대교회”,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 또는 “탈교파적 교회”라 부르기도 한다.
둘째, 새로운 권위 구조의 변화이다. 영적인 권위의 일부가 성령에 의해 개인들에게 위임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관료적인 권위에서 개인적인 권위로, 법적인 구조에서 관계적인 구조로, 통제에서 조정으로, 합리적인 지도력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변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의 당회나, 제직회, 위원회 등에서의 결정을 신뢰하나, 신사도교회들은 목사(사역자)의 권위에 절대 순종한다는 점이다. 신사도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교회의 방향을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하나님께 여쭈고,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만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응답해 주실 것과 비전을 심어줄 것을 확신한다. 이들은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디로 가서 풀을 먹을지는 양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닌 목자가 결정을 내리고 양들은 따라가는 형태이다.
셋째, 새로운 리더십 훈련이다. 신사도교회는 목회자들의 열성적 헌신이 있다. 동시에 교인들이 자신들의 영적은사와 일반적인 재능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가르침을 따라 자원하여 섬긴다는 점이다. 또한 유무급 직원들은 거의 자기 교회 출신(Homegrown)이라는 점이다.
넷째, 새로운 목회초점이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현재 상황에서 항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식의 과거유산에 초점을 맞추어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는다. 신사도 교회들은 현재 상황에서 미래의 비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주장이다. 또한 “교회의 비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옮겨가는 단계로 본다. “교회 중심적 사고”가 “하나님 나라중심의 사고”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은 집단적 종교의 영으로부터의 벗어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섯째, 새로운 예배스타일이다. 모두가 실제적 예배참여자로서 다양하게 행동한다. 앉은 사람, 서서 예배하거나, 손뼉 치거나,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배인도자는 현대음악 인도자들로 대처된다.
여섯째, 새로운 기도형태이다. 기도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기도합주회(prayer concert)의 형태이다. 통성기도, 방언기도, 찬양, 통속적인 언어, 기도로 노래하는 크고 조화로운 기도형태이다.
일곱째 새로운 재정이다. 헌금에 대한 관대한 태도와 헌금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유익만이 아니라, 개개인들과 가정들의 축복의 씨앗으로 보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는 것이다.
여덟째, 새로운 전도형태이다.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복음화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축복을 받아야 할 목적도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원한다. 이들은 선교에 있어서도 선교단체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교인들이 참여시키고 영향을 끼치는 자체선교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소외되고 약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짐과 동시에, 그들을 위해 직접 실제적인 일들을 시행한다.
아홉째, 새로운 능력방향이다. 성령의 역사에 열려있어서 모든 신약성경의 영적 은사들은 오늘날도 역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임하셔서 각종 은사예언 , 방언, 치유, 예언, 쓰러짐, 중보기도 등이 흔히 일어난다.
2.3 신사도교회들의 현황
피터 와그너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괄목할 만한 교회성장운동 가운데 나타난 공통된 특징(patterns)들을 가진 교회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 교회들을 신사도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는 1970년경에 발생한 미국의 독립적 은사주의 교회는 현재의 신사도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보고 있다.
먼저, 아프리카 독립교회(African indepen dent Church)라 주장이다. 이 교회는 토착화로 인한 혼합주의 적 요소가 있지만 수많은 아프리카 인들을 복음화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하라 남부지역은 이 교회들의 영향으로 복음화 율이 50%를 넘고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만 아프리카 독립교단이 16,000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 문화혁명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가정교회가 여기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가정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불신자들의 회심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거의 매일 평균 25,000에서 35,000명씩 거듭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1949년 300만명 신자에서 현재 6,000만~1억 5천명의 신자가 가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라 주장한다. 지난 20년간 실제적으로 남아메리카의 모든 도시지역(남미 도시화 88%)에서 시작된 교회들이 수년 내에 수천명 이상씩 모이는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다. 그 숫자는 6천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오순절 계통이거나 은사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에서의 성장하는 교회들이라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운동 사전』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 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교회 리서치(research)에 참여하면서, 미국에 있는 독립 카리스마 교회들이 그리스도교중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체임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터 와그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신사도주의 교회들을 말하고 있다.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데이빗 바렛(David B. Barret)의 1996년도 『세계 그리스도교 백과사전』에 보면 1,000곳의 사도 네트워크, 1억명 이상의 신사도 신봉자들이 세계적으로 있을 것으로 평가 한다 (바렛의 2000년 통계는 오순절, 카리스마, 신사도교인이 개신교 5억, 카톨릭 1.3억 합계 6.3억 명으로 나왔다).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교회 범주에 두는 교회를 살펴보면 아프리카의 나이제리아의 라고스에 있는 “더 깊은 생명의 교회(Deeper Life Church)"는 쿠우무이 목사가 담임이며, 현재 7만 4천명의 장년과 4만명의 어린이들이 매주 출석하고 있다. 같은 나이제리아 “하나님의 구속교회(Redeemed Church of God)”는 애더보이(Adeboye)목사가 개척한 교회로서, 기둥과 지붕만 있는 1킬로 곱하기 5킬로의 야외성전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는데, 매달 첫 금요일에는 50만명 이상이 회집하여 “성령의 밤(Holy Ghost Night)” 로 부르는 철야기도 모임을 하고 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사랑과 화평의 물결교회”(Waves of Love and Peace Church)는 헥토르 이메네즈 목사가 담임으로 개척 십년 만에 15만 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성장하였다. 브라질의 “하나님 나라와 우주교회(Universal Church)”는 3백만 명이 넘는 성도들과 적어도 5천개의 성전을 확보하고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라미송 국제 은사교회(Lamision Carismatia international)”도 14년만에 3만개의 구역을 가진 교회로 성장하였다. 태국의 “하나님의 소망교회”는 죠셉 웡삭(Joseph Wongsak) 목사가 담임으로 7백개의 교회를 세웠고, 그중 가장 큰교회는 6,000명의 성도로 모이고 있다. 태국은 47개의 선교 기관이 150년간 선교하여 150개의 교회밖에 없었고, 평균 성도도 백명이하 였다.
복음의 불모지인 네팔의 카두만드에서도 한국인 여의사와 결혼한 록마니 반다라 목사가 베델교회를 세워 현재 1,500명이 상이 출석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로는 포루투칼의 “리스본의 만나교회(Manna Church)” 요르게 따두(Jorge Tadeu)목사가 담임으로 2만 5천 성도가 모이고, 22개의 지교회를 합치면 7만 5천성도가 모인다.
영국 런던의 킹스턴 성전(Kensington Temple)은 콜린 다이(Colin Dye)목사가 런던에 사는 110개의 소수민족 그룹으로 구성된 성도는 1만명 정도라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믿음의 교회(Faith Church,일명 하트교회)”는 산도르 네메스(Sandor Nemeth) 목사가 헝가리 공산주의 시절 세웠는데 자유화 된지 10년 만에 전체 15,000명의 성도들이 모인다한다.
국내에서 신사도 운동에 동참하는 대표적인 그룹은, 빌 해몬(Bill Hamon)이 이끄는 C.I(Christian International)와 피터 와그너가 이끄는 WLI(Wagner Leadership Institute), 그리고 예영수가 대표로 있는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C. I. Korea는 아가페신학연구원(원장 김태진), 한국WLI(새서울교회 홍정식이 학장)이다(한국 WLI 홍정식은 확인결과 소속 교단인 예장 합신의 노회로부터 2004년 사도운동과 관련된 신학적인 이유로 제명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에 신사도운동과 예언사역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 가운데 하나가 서울서초동의 큰 믿음교회이다. 이 교회 인터넷 카페에는 아래와 같이 신사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교회로 서며 믿음 뿐 아니라 회개, 칭의 뿐 아니라 중생, 죄 사함 뿐 아니라 거룩함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알곡성도를 만드는 교회입니다. 교리가 아닌 성경의 원래의 의미를 가르치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고 강한 용사를 길러내는 교회입니다. “종교의 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어 곧 도래할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예비하는 교회입니다. 단순히 “성령운동” 혹은 “영성운동”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을 신부로 준비시키는 “신부운동”을 펼치는 교회입니다.
신사도운동에 대표적 선지자인 릭 조이너의 예언사역에 맥을 같이하는 현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하이디 베이커(Heidi Baker), 슈프레자 싯홀,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 샨 볼츠(Shawn Bolz), 강금성, 루 잉글(Lou Engle), 예수 파담(Yesu Padom), 크리스티 김, 스캇 브레너(Scott Brenner), 질 오스틴(Jill Austin), 버논 오웬즈(Vernon Owens)등 은사 사역자들을 대거 강사로 초청하여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큰믿음교회의 변승우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란 책으로 널리 알려졌고, 서울에서 개척 4년 만에 2008년 5월 현재 주일 낮 예배에 청장년 1,529명(지성전 포함:1,839명)이 출석한다고 한다. 큰믿음교회는 울산, 부산, 벤쿠버, 인도네시아의 버까시 등에 지교회를 두고 있다. 특히 변승우의 저서인 『주여』라는 책은 주안장로교회 나겸일의 추천과『꺼져가는 등불, 양심』이라는 책은 연세중앙교회 윤석전의 추천으로 출판됨으로 이들이 일반 성도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교회확장에 더욱더 힘을 얻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며 교회부흥을 꿈꾸는 부천 중동에 열방추수교회가 있다. 담임 김주성은 서울대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예장통합 교단에서 안수 후 교단을 탈퇴하고 독립교단에 가입하여,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며 열방추수교회를 개척 목회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에게 수학한 홍용표 한영신학대 선교학 교수는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교회』(The New Apostolic Churches)를 번역하면서 부록으로 한국형 신사도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그 교회들은 개혁주의 교회인 목동 지구촌교회(2008년 현, 출석 등록교인 3,000여명, 출석 4,000여명)와 부천 삼광교회(2008년 현, 4,000명 등록신자, 출석 2,000명)이다. 그러나 이 교회들은 개혁교회로서 신사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오중직임, 예언사역, 오늘날 사도의 존재, 예언자의 존재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와그너가 제시하는 사회학적 통계들은 정확한 형태의 신사도 교회를 평가한 것이라 할 수 가없다. 전통적인 교회들 중 성장하는 교회들을 신사도교회들의 입장에서 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서 정장하는 비 카리스마적인 교회인 세들백 교회도 신사도 교회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 신사도교회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2.4 신사도운동의 오중사역과 사도직
신사도주의자들은 에베소서 4장 11절의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는 바울의 교회론을 근거로 하여, 소위 “교회의 5대 직분 체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도”, “선지자(예언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는 오중사역 은사(The five fo ld ministry Gifts)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올바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교회가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님은 교회 행정을 위해 5중 사역(fivefold ministries)을 주셨고, 모든 성도들에게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각양 은사들(gifts)을 주셨다(12절, 롬12:4-6)는 주장이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 4장 8절-11절에 기록되어 있는 오중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몸소 이 오중사역을 실천하시면서 모범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사도라는 말로 번역된 희랍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의 의미인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니 사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4:24)”는 말과 수가성 여인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 소이다(요4:19)”라는 고백을 볼 때 선지자라는 주장이다. 예수가 목사의 직임을 가진 이유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4)”는 말에서 찾는다. 이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목사(pastor)”라고 번역된 단어는 목자(shepherd)란 단어와 같은 단어라는 이유로 예수를 목사라고 본다. 또한 예수의 사역이 가르침과 복음을 전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이기에 각각의 직분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원리를 보면 5중 직분자들이 팀으로 사역을 한다. 개교회 또는 네트워크(Network)안에 5중 사역이 일어날 것을 추구하고, 지도자들을 통해서 흘러 나가는 팀 정신(Team spirit)은 성도들의 생활과 기본정신이 된다. 그래서 평신도들 개개인이 각종 은사로 사역한다. 소그룹을 통해서 양육 받으며 성도들의 은사와 지도력을 개발하여 세우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5중 사역에 은사들이 더해짐으로 신약성경적인 교회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이 은사에 대해 달라스 신학교의 조직신학 학장 존 윌브어드(J. Walvoord)는 오중직과 관련 있는 은사의 시효성에 의하여 영구적인 은사와 일시적인 은사로 분류하고 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직분은 일시적인 은사로서 영구적인 은사에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피터 와그너는 약 1600년 동안 교회의 직분체제가 비성경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신사도운동에 대해 1517년 루터와 칼빈 등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보다 더 큰 개혁운동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와그너는『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의 저자인 데이빗 바렛(David Barret)의 통계를 인용하며 현재 기독교내의 가장 큰 그룹을 가톨릭으로, 그 다음을 신사도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로, 그 다음을 개신교회로 언급하고 있어 신사도 운동을 가톨릭과 개신교가 아닌 제 3의 기독교 그룹임을 암시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고, 선지자는 예언하는 은사를, 사도는 사도라는 영적 은사(gift)를 받는 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도라는 영적은사를 받은 까닭에 사도라는 직임(office)도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도는 항상 교회에 존재했지만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1825년에서 75년까지 사역했던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가 처음 “부흥사” “전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 때 신학자들과 교계에서의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사도직”에 대한 갈등도 언젠가는 자동적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사도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게네스 헤긴(Kenneth E. Hagin)은 『나는 환상을 믿습니다』란 책에서 환상 중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에 대해서 에베소서 4:11-12을 근거로 직접 가르쳐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12제자들만 사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비판하며, 사도라 불리는 사람은 신약에 23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예수께서 직접 나타난 사도가 있음을 들려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갈라디아서 1:17-19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게네스 헤긴은 여기서 바울이 야고보가 12사도 중의 하나가 아니었는데도, 그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로 “보냄 받은 자”였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야고보가 성경에서 언급된 16번째 사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로마서 16:7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17번째와 18번째 사도이며,
데살로니가전서 서두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시작한 바울이 2장 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라는 구절을 근거로 그들 세 사람 중 바울을 제외한 뒤의 두 사람이 19번째와 20번째 사도라고 주장한다.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라는 구절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형제들이 “사자”라고 불리는 것을 근거로 22번째 사도로 보고 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이르기를 “그러나 에바브로 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빌립보서 2:25)고, 사용된 “사자(messenger)”라는 그리스어는 다른 곳에서는 “사도”라고 번역되어 있다하여 23명의 사도들이 신약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한 개인이 교회의 '보냄 받은 자'가 되거나 사자가 될 수 있고 정당하게 교회의 사도로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바울이나 바나바도 처음부터 사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라 모두 선지자나 교사였던 사람들이었으나(행 13:1). 그들은 나중에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3:2-4 에는 바울과 바나바는 “보냄 받은 자”로 소개되나 시도행전 14: 14에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되어 있음을 볼 때 바나바는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방사람들에게 “보냄 받은 자” 또는 사도였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가르침은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환상 가운데 내게 가르치신 후에, 사도와 선지자의 사역은 여전히 오늘날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여주셨다” 는 주장이다. 게네스 헤긴,『기름부음의 이해』라는 책에서도 바나바, 바울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에서는 오늘날에도 사도는 존재합니다.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주홍근(은진교회 담임, 오메가선교훈련원 원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도 사역이나 예언 사역은 원시적인 교회가 점차로 교권화하면서 사도적 직임은 특권화 되었고, 예언 사역도 교회의 권위가 대신함에 따라서 소멸되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말씀 사역만 활성화시켰고 성령의 은사나 교회의 5중직임 중에 사도 사역이나 예언 사역은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령 세례로 인하여 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 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사도 사역과 예언 사역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김홍근은 스스로 중세 교회사 시대에는 사도적직임과 예언사역이 중단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교권화와 교회의 권위 때문에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신사도운동을 통해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2.5 신사도주의자들의 하나님 음성에 의한 직통계시론
피터 와그너는 오늘날 모든 신자들은 “사도적 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계 2:7)”는 성경을 인용하며, 모든 신자는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 목사는 교회에 대해서 성령이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사도주의자들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신앙행위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섭리나 뜻을 찾아간다는 등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직통 대화라도 하듯 독특한 신앙행위다. 예언사역도 이런 행위들의 한 단면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행위를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활용된다는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루는 사무실에 있다가 그 펜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온 데를 다 뒤졌다. 하나님께도 그것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다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전지하신 하나님! 당신은 그 펜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죠? 그리고 당신은 그 펜을 찾는 일이 제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고 계시죠? 제게 그 펜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난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즉시 한 문장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사무실 화장실 안에 있단다”.
잃어버린 펜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브래드 저삭(Brad Jersak)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에서도 그와 같은 실례들이 잘 나타난다.
어느 아침 나는 그동안 잘 가지 않던 한 북 카페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느꼈다. 그래서 즉시, 그곳으로 갔다. ..., “주님, 오늘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때 맞은 편 탁자에 한 젊은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님, 저 여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려 하십니까?” 그때 주님의 응답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만성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 드디어 나는 결심하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임종천의 『하나님의 음성을 확실히 듣는 법』 책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타난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나요?” “얘야, 손바닥을 쭉 펴봐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엄지손가락이 제일 밑에 있지? 자연히 키도 제일 작고.” “네, 그러네요.” “지도자란 제일 밑에서 섬기는 것이란다. ..., 이제 최고라고 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봐라” 나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아들아, 반지는 엄지손가락에는 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신사도주의자들은 율법의 시대에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이라며, 성령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의 비법(?)도 소개하고 있는데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조이 도우슨(Joy Dawson)은 하나님의 음성을 구할 때 질문을 간단히 그리고 한 가지씩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질문을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통한 응답들이 서로 혼동을 일으켜서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임종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도문까지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보다는 “나의 영과 눈과 귀가 열려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 하는 것이 더욱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종엽은 의견을 달리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방법이 각자 다르고 또한 상반된 모습까지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쓴 지종엽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신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며, “성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 밖에 있는 것일 수 있으며, 또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브래드 저삭(Brad Jersak)은 “성경 밖 계시의 개념은 의심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사이비라고 여겨졌다”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과거와 달리 성경 밖의 계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행위를 성경을 통한 신앙 행위 안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닌, 그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성경이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조이 도우슨의 성경 이해와 해석 접근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일상생활 중에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성경과 연결시켰다. 그 체험했다는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성경의 몇 장 몇 절에 나타나 있다며 종종 소개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성경 속에 있다는 말에 하나님께 물었다. “좋아요, 하나님. 제가 어디 배운 대로 한 번 해볼께요. 제가 눈 화장을 너무 짙게 하는 것인가요?” 즉각적으로 어떤 인상이 떠올랐다. ‘예레미야 4장 30절’이였다. ..., “네가...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정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통해 자신들이 행하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소위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받았다는 예레미야 4장 30절이 오늘날 눈 화장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성구인가 하는 데 문제가 있다. 성경을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는 자신의 경험을 위한 보조 재료와 같은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예들이다.
다음은 어떤 부인이 열쇠를 잃어버린 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기도하여 음성을 듣고 찾았다는 간증이다.
그녀는 말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 열쇠가 어디 있어요?” 그리고는 법석대거나 걱정하는 대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 가운데 말씀하셨다. “네 성경책에서 레위기 14장 47절을 펴라” 거기에는 이와 같이 쓰여 있었다.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 있고 역사하는 말씀이 말하는 대로 침대에 가서 그 개켜 놓은 옷들을 다 들춰보았다. 바로 거기 열쇠가 있었다.
과연 구약성경의 레위기 14장 47절은 ‘빨래 감 속에 열쇠가 있다’는 의미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조이 도우슨은 자신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실패로 돌아간 사건을 소개하기도 했다. 즉, 친구의 불치병을 살려달라고 한 자신에게 ‘고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결국 그 친구는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불치의 병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실지 말씀을 통해 알려달라고 부지런히 구했다. 성경 구절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명확히 주어졌는데, 그분의 응답은 “고치리라”였다.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난 크게 충격을 받았고 혼란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놓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실패를 이해하기 위해 또다시 그 행위를 반복했다. 그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구했을 때 “내가 네게 말한 이후 네 친구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는 알지 못하잖니”라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고 한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자료출처 http://ewoot.or.kr/bbs/zboard.php?id=vision1&no=290
제 2 장 신사도운동에 대한 이해
2.1 신사도운동의 명칭
2.1.1 명칭의 배경
1990년대 교회성장이론으로 발생한 신사도운동은, 한국장로교회와 정통 교단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아직 신학적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와 일반 목회자들에게 있어서는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상을 주도하여 이끌어 가거나, 영향을 받은 국내외 종교지도자들의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성도들이나, 기성교회에서 신앙적 회의를 느끼거나, 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성도들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상은 교회성장을 연구하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부흥하는 특정 교회들의 역사와 흐름들을 연구하던 중, 그 안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patterns)들을 찾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피터 와그너가 발견했다는 공통된 특징 안에서 일어나는 교회성장운동을 “신사도적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 ation Movement )”이라 이름 하였다. 또한 그 흐름 속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을 “신사도적 개혁교회들(NRA: New Apostolic Reformed Church)”이라 부르게 되었다.
피터 와그너는 20세기 들어 기독교 안에 세 가지 성령운동의 물결이 일어났다고 본다. 제1의 물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일어났던 “오순절 운동”이라 하고, 제 2의 물결은 1960년대에 개신교 여러 교파로부터 일어나서 천주교까지 영향을 끼친 “은사 운동”이며, 제3의 물결은 존 윔버에 의해 발생한 “빈야드 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피터 와그너는 1997년, 오순절 은사운동뿐만 아니라 빈야드 운동을 주도하는 교회들의 세계적인 연합을 촉구하며, 자신이 “신사도적 개혁 운동”으로 정의한 새로운 교회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신사도운동은 1세기 사도들이 활동하였던 사도행전의 역사를 근거로 활용 하면서, 현대적 사도의 직분과 은사를 규정한다. 이 운동은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고 권능을 받은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 교단의 전통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체제를 이루는 것이 목표이다.
피터 와그너는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약 30년간 오순절 교회의 성장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1990년대 오순절적교회를 능가하여 영적, 기술적, 양적, 질적 성장을 보이는 교회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들을 사용하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탈 교파운동”(Postdenominationalism)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교파 친구들의 여러 비난에 직면하자 “독립 카리스마운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명칭도 교회의 상호 의존성과 신사도주의 교회들이라고 해서 모두 카리스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사도 개혁운동”으로 다시 명명하게 되었다.
2.1.2 명칭의 의미
이 명칭에 대한 정의는 오경근의 나사렛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에 잘 나타난다. 오경근은교회성장연구소와국제 영적 추수 사역회(Harvest Interna tional Min istries) 주관으로 2002년 9월 3-6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21세기 신사도적 교회부흥 세미나”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때 강사였던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운동에 대한 용어 정의를 하였다 한다. 또한 피터 와그너의 저서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라는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개혁(Reformation)”이라는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500년 전의 프로테스탄트의 개혁만큼 이 시대에 급진적이며, 급속한 교회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은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할 만한 개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신학적 개혁”이 아니고, 교회에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의 변화”로서 놀라운 개혁이라는 것이다. 즉 종교개혁 시대 이후 부패한 신앙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시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방식의 개혁으로,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사도”(Apostle)라는 말로서, 이 운동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 바로 “사도직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한다. 교회 내에서 사도의 직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또한 교회들이 목회사역에 있어서 전도에 대해 지대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현재 사도사역의 인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신사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사도”란 넒은 의미로서의 사도라는 주장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사도는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로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좁은 의미로서의 사도란 예수님의 12제자가 주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파송된 12사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서 사도의 직분은 ,예수님의 12제자 외에 사도라 부르는 안드로니고, 아볼로, 바나바, 에바브로 디도, 야고보, 유니아, 맛디아, 바울, 실라, 디모데 등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 사도라 불리는 직분자처럼 현재에도 사도는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것이다. 와그너는 “사도은사”뿐만 아니라 “사도직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New)”이라는 단어는 미국 교단 연감에 수록된 교회 가운데 사도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전통적 교단이 31개나 되었고, 옛 사도운동과 구분하는 의미로 이 운동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첨가한 것이라 한다. 옛 사도운동이란 로마 카톨릭교회의 정식 명칭이 “거룩한 카톨릭 사도 로마교회”이며, 18세기 초 “신사도교회”라고 불렸던 에드워드 어빙의 운동과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교단의 이름이 “사도교회”이며, 한국의 성결교회 모체도 “만국 사도 성결교회”였다는 것이다. 와그너는 이러한 것을 제시함으로 “사도”라는 명칭을 보편화된 것으로 인식시키고자함을 볼 수 있다.
2.2 신사도운동의 9가지 특징
피너 와그너는 지금은 제2의 사도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괄목하게 성장하는 교회들의 특징적인 공통점이 있는데, 그러한 흐름을 신사도운동으로 규정하고, 기존교회와는 다른 그 특징들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새로운 명칭에 있다. “새로운 사도 개혁운동”이라는 이름이다. 피터 와그너는 2001년도를 제2의 사도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해였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운영되고 사역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새로운 교회”, “차세대교회”,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 또는 “탈교파적 교회”라 부르기도 한다.
둘째, 새로운 권위 구조의 변화이다. 영적인 권위의 일부가 성령에 의해 개인들에게 위임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관료적인 권위에서 개인적인 권위로, 법적인 구조에서 관계적인 구조로, 통제에서 조정으로, 합리적인 지도력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변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의 당회나, 제직회, 위원회 등에서의 결정을 신뢰하나, 신사도교회들은 목사(사역자)의 권위에 절대 순종한다는 점이다. 신사도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교회의 방향을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하나님께 여쭈고,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만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응답해 주실 것과 비전을 심어줄 것을 확신한다. 이들은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디로 가서 풀을 먹을지는 양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닌 목자가 결정을 내리고 양들은 따라가는 형태이다.
셋째, 새로운 리더십 훈련이다. 신사도교회는 목회자들의 열성적 헌신이 있다. 동시에 교인들이 자신들의 영적은사와 일반적인 재능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가르침을 따라 자원하여 섬긴다는 점이다. 또한 유무급 직원들은 거의 자기 교회 출신(Homegrown)이라는 점이다.
넷째, 새로운 목회초점이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현재 상황에서 항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식의 과거유산에 초점을 맞추어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는다. 신사도 교회들은 현재 상황에서 미래의 비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주장이다. 또한 “교회의 비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옮겨가는 단계로 본다. “교회 중심적 사고”가 “하나님 나라중심의 사고”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은 집단적 종교의 영으로부터의 벗어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섯째, 새로운 예배스타일이다. 모두가 실제적 예배참여자로서 다양하게 행동한다. 앉은 사람, 서서 예배하거나, 손뼉 치거나,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배인도자는 현대음악 인도자들로 대처된다.
여섯째, 새로운 기도형태이다. 기도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기도합주회(prayer concert)의 형태이다. 통성기도, 방언기도, 찬양, 통속적인 언어, 기도로 노래하는 크고 조화로운 기도형태이다.
일곱째 새로운 재정이다. 헌금에 대한 관대한 태도와 헌금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유익만이 아니라, 개개인들과 가정들의 축복의 씨앗으로 보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는 것이다.
여덟째, 새로운 전도형태이다.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복음화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축복을 받아야 할 목적도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원한다. 이들은 선교에 있어서도 선교단체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교인들이 참여시키고 영향을 끼치는 자체선교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소외되고 약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짐과 동시에, 그들을 위해 직접 실제적인 일들을 시행한다.
아홉째, 새로운 능력방향이다. 성령의 역사에 열려있어서 모든 신약성경의 영적 은사들은 오늘날도 역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임하셔서 각종 은사예언 , 방언, 치유, 예언, 쓰러짐, 중보기도 등이 흔히 일어난다.
2.3 신사도교회들의 현황
피터 와그너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괄목할 만한 교회성장운동 가운데 나타난 공통된 특징(patterns)들을 가진 교회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 교회들을 신사도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는 1970년경에 발생한 미국의 독립적 은사주의 교회는 현재의 신사도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보고 있다.
먼저, 아프리카 독립교회(African indepen dent Church)라 주장이다. 이 교회는 토착화로 인한 혼합주의 적 요소가 있지만 수많은 아프리카 인들을 복음화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하라 남부지역은 이 교회들의 영향으로 복음화 율이 50%를 넘고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만 아프리카 독립교단이 16,000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 문화혁명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가정교회가 여기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가정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불신자들의 회심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거의 매일 평균 25,000에서 35,000명씩 거듭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1949년 300만명 신자에서 현재 6,000만~1억 5천명의 신자가 가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라 주장한다. 지난 20년간 실제적으로 남아메리카의 모든 도시지역(남미 도시화 88%)에서 시작된 교회들이 수년 내에 수천명 이상씩 모이는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다. 그 숫자는 6천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오순절 계통이거나 은사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에서의 성장하는 교회들이라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운동 사전』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 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교회 리서치(research)에 참여하면서, 미국에 있는 독립 카리스마 교회들이 그리스도교중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체임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터 와그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신사도주의 교회들을 말하고 있다.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데이빗 바렛(David B. Barret)의 1996년도 『세계 그리스도교 백과사전』에 보면 1,000곳의 사도 네트워크, 1억명 이상의 신사도 신봉자들이 세계적으로 있을 것으로 평가 한다 (바렛의 2000년 통계는 오순절, 카리스마, 신사도교인이 개신교 5억, 카톨릭 1.3억 합계 6.3억 명으로 나왔다).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교회 범주에 두는 교회를 살펴보면 아프리카의 나이제리아의 라고스에 있는 “더 깊은 생명의 교회(Deeper Life Church)"는 쿠우무이 목사가 담임이며, 현재 7만 4천명의 장년과 4만명의 어린이들이 매주 출석하고 있다. 같은 나이제리아 “하나님의 구속교회(Redeemed Church of God)”는 애더보이(Adeboye)목사가 개척한 교회로서, 기둥과 지붕만 있는 1킬로 곱하기 5킬로의 야외성전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는데, 매달 첫 금요일에는 50만명 이상이 회집하여 “성령의 밤(Holy Ghost Night)” 로 부르는 철야기도 모임을 하고 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사랑과 화평의 물결교회”(Waves of Love and Peace Church)는 헥토르 이메네즈 목사가 담임으로 개척 십년 만에 15만 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성장하였다. 브라질의 “하나님 나라와 우주교회(Universal Church)”는 3백만 명이 넘는 성도들과 적어도 5천개의 성전을 확보하고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라미송 국제 은사교회(Lamision Carismatia international)”도 14년만에 3만개의 구역을 가진 교회로 성장하였다. 태국의 “하나님의 소망교회”는 죠셉 웡삭(Joseph Wongsak) 목사가 담임으로 7백개의 교회를 세웠고, 그중 가장 큰교회는 6,000명의 성도로 모이고 있다. 태국은 47개의 선교 기관이 150년간 선교하여 150개의 교회밖에 없었고, 평균 성도도 백명이하 였다.
복음의 불모지인 네팔의 카두만드에서도 한국인 여의사와 결혼한 록마니 반다라 목사가 베델교회를 세워 현재 1,500명이 상이 출석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로는 포루투칼의 “리스본의 만나교회(Manna Church)” 요르게 따두(Jorge Tadeu)목사가 담임으로 2만 5천 성도가 모이고, 22개의 지교회를 합치면 7만 5천성도가 모인다.
영국 런던의 킹스턴 성전(Kensington Temple)은 콜린 다이(Colin Dye)목사가 런던에 사는 110개의 소수민족 그룹으로 구성된 성도는 1만명 정도라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믿음의 교회(Faith Church,일명 하트교회)”는 산도르 네메스(Sandor Nemeth) 목사가 헝가리 공산주의 시절 세웠는데 자유화 된지 10년 만에 전체 15,000명의 성도들이 모인다한다.
국내에서 신사도 운동에 동참하는 대표적인 그룹은, 빌 해몬(Bill Hamon)이 이끄는 C.I(Christian International)와 피터 와그너가 이끄는 WLI(Wagner Leadership Institute), 그리고 예영수가 대표로 있는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C. I. Korea는 아가페신학연구원(원장 김태진), 한국WLI(새서울교회 홍정식이 학장)이다(한국 WLI 홍정식은 확인결과 소속 교단인 예장 합신의 노회로부터 2004년 사도운동과 관련된 신학적인 이유로 제명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에 신사도운동과 예언사역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 가운데 하나가 서울서초동의 큰 믿음교회이다. 이 교회 인터넷 카페에는 아래와 같이 신사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교회로 서며 믿음 뿐 아니라 회개, 칭의 뿐 아니라 중생, 죄 사함 뿐 아니라 거룩함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알곡성도를 만드는 교회입니다. 교리가 아닌 성경의 원래의 의미를 가르치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고 강한 용사를 길러내는 교회입니다. “종교의 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어 곧 도래할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예비하는 교회입니다. 단순히 “성령운동” 혹은 “영성운동”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을 신부로 준비시키는 “신부운동”을 펼치는 교회입니다.
신사도운동에 대표적 선지자인 릭 조이너의 예언사역에 맥을 같이하는 현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하이디 베이커(Heidi Baker), 슈프레자 싯홀,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 샨 볼츠(Shawn Bolz), 강금성, 루 잉글(Lou Engle), 예수 파담(Yesu Padom), 크리스티 김, 스캇 브레너(Scott Brenner), 질 오스틴(Jill Austin), 버논 오웬즈(Vernon Owens)등 은사 사역자들을 대거 강사로 초청하여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큰믿음교회의 변승우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란 책으로 널리 알려졌고, 서울에서 개척 4년 만에 2008년 5월 현재 주일 낮 예배에 청장년 1,529명(지성전 포함:1,839명)이 출석한다고 한다. 큰믿음교회는 울산, 부산, 벤쿠버, 인도네시아의 버까시 등에 지교회를 두고 있다. 특히 변승우의 저서인 『주여』라는 책은 주안장로교회 나겸일의 추천과『꺼져가는 등불, 양심』이라는 책은 연세중앙교회 윤석전의 추천으로 출판됨으로 이들이 일반 성도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교회확장에 더욱더 힘을 얻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며 교회부흥을 꿈꾸는 부천 중동에 열방추수교회가 있다. 담임 김주성은 서울대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예장통합 교단에서 안수 후 교단을 탈퇴하고 독립교단에 가입하여,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며 열방추수교회를 개척 목회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에게 수학한 홍용표 한영신학대 선교학 교수는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교회』(The New Apostolic Churches)를 번역하면서 부록으로 한국형 신사도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그 교회들은 개혁주의 교회인 목동 지구촌교회(2008년 현, 출석 등록교인 3,000여명, 출석 4,000여명)와 부천 삼광교회(2008년 현, 4,000명 등록신자, 출석 2,000명)이다. 그러나 이 교회들은 개혁교회로서 신사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오중직임, 예언사역, 오늘날 사도의 존재, 예언자의 존재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와그너가 제시하는 사회학적 통계들은 정확한 형태의 신사도 교회를 평가한 것이라 할 수 가없다. 전통적인 교회들 중 성장하는 교회들을 신사도교회들의 입장에서 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서 정장하는 비 카리스마적인 교회인 세들백 교회도 신사도 교회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 신사도교회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2.4 신사도운동의 오중사역과 사도직
신사도주의자들은 에베소서 4장 11절의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는 바울의 교회론을 근거로 하여, 소위 “교회의 5대 직분 체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도”, “선지자(예언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는 오중사역 은사(The five fo ld ministry Gifts)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올바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교회가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님은 교회 행정을 위해 5중 사역(fivefold ministries)을 주셨고, 모든 성도들에게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각양 은사들(gifts)을 주셨다(12절, 롬12:4-6)는 주장이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 4장 8절-11절에 기록되어 있는 오중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몸소 이 오중사역을 실천하시면서 모범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사도라는 말로 번역된 희랍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의 의미인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니 사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4:24)”는 말과 수가성 여인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 소이다(요4:19)”라는 고백을 볼 때 선지자라는 주장이다. 예수가 목사의 직임을 가진 이유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4)”는 말에서 찾는다. 이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목사(pastor)”라고 번역된 단어는 목자(shepherd)란 단어와 같은 단어라는 이유로 예수를 목사라고 본다. 또한 예수의 사역이 가르침과 복음을 전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이기에 각각의 직분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원리를 보면 5중 직분자들이 팀으로 사역을 한다. 개교회 또는 네트워크(Network)안에 5중 사역이 일어날 것을 추구하고, 지도자들을 통해서 흘러 나가는 팀 정신(Team spirit)은 성도들의 생활과 기본정신이 된다. 그래서 평신도들 개개인이 각종 은사로 사역한다. 소그룹을 통해서 양육 받으며 성도들의 은사와 지도력을 개발하여 세우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5중 사역에 은사들이 더해짐으로 신약성경적인 교회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이 은사에 대해 달라스 신학교의 조직신학 학장 존 윌브어드(J. Walvoord)는 오중직과 관련 있는 은사의 시효성에 의하여 영구적인 은사와 일시적인 은사로 분류하고 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직분은 일시적인 은사로서 영구적인 은사에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피터 와그너는 약 1600년 동안 교회의 직분체제가 비성경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신사도운동에 대해 1517년 루터와 칼빈 등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보다 더 큰 개혁운동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와그너는『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의 저자인 데이빗 바렛(David Barret)의 통계를 인용하며 현재 기독교내의 가장 큰 그룹을 가톨릭으로, 그 다음을 신사도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로, 그 다음을 개신교회로 언급하고 있어 신사도 운동을 가톨릭과 개신교가 아닌 제 3의 기독교 그룹임을 암시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고, 선지자는 예언하는 은사를, 사도는 사도라는 영적 은사(gift)를 받는 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도라는 영적은사를 받은 까닭에 사도라는 직임(office)도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도는 항상 교회에 존재했지만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1825년에서 75년까지 사역했던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가 처음 “부흥사” “전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 때 신학자들과 교계에서의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사도직”에 대한 갈등도 언젠가는 자동적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사도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게네스 헤긴(Kenneth E. Hagin)은 『나는 환상을 믿습니다』란 책에서 환상 중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에 대해서 에베소서 4:11-12을 근거로 직접 가르쳐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12제자들만 사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비판하며, 사도라 불리는 사람은 신약에 23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예수께서 직접 나타난 사도가 있음을 들려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갈라디아서 1:17-19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게네스 헤긴은 여기서 바울이 야고보가 12사도 중의 하나가 아니었는데도, 그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로 “보냄 받은 자”였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야고보가 성경에서 언급된 16번째 사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로마서 16:7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17번째와 18번째 사도이며,
데살로니가전서 서두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시작한 바울이 2장 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라는 구절을 근거로 그들 세 사람 중 바울을 제외한 뒤의 두 사람이 19번째와 20번째 사도라고 주장한다.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라는 구절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형제들이 “사자”라고 불리는 것을 근거로 22번째 사도로 보고 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이르기를 “그러나 에바브로 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빌립보서 2:25)고, 사용된 “사자(messenger)”라는 그리스어는 다른 곳에서는 “사도”라고 번역되어 있다하여 23명의 사도들이 신약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한 개인이 교회의 '보냄 받은 자'가 되거나 사자가 될 수 있고 정당하게 교회의 사도로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바울이나 바나바도 처음부터 사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라 모두 선지자나 교사였던 사람들이었으나(행 13:1). 그들은 나중에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3:2-4 에는 바울과 바나바는 “보냄 받은 자”로 소개되나 시도행전 14: 14에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되어 있음을 볼 때 바나바는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방사람들에게 “보냄 받은 자” 또는 사도였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가르침은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환상 가운데 내게 가르치신 후에, 사도와 선지자의 사역은 여전히 오늘날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여주셨다” 는 주장이다. 게네스 헤긴,『기름부음의 이해』라는 책에서도 바나바, 바울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에서는 오늘날에도 사도는 존재합니다.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주홍근(은진교회 담임, 오메가선교훈련원 원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도 사역이나 예언 사역은 원시적인 교회가 점차로 교권화하면서 사도적 직임은 특권화 되었고, 예언 사역도 교회의 권위가 대신함에 따라서 소멸되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말씀 사역만 활성화시켰고 성령의 은사나 교회의 5중직임 중에 사도 사역이나 예언 사역은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령 세례로 인하여 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 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사도 사역과 예언 사역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김홍근은 스스로 중세 교회사 시대에는 사도적직임과 예언사역이 중단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교권화와 교회의 권위 때문에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신사도운동을 통해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2.5 신사도주의자들의 하나님 음성에 의한 직통계시론
피터 와그너는 오늘날 모든 신자들은 “사도적 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계 2:7)”는 성경을 인용하며, 모든 신자는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 목사는 교회에 대해서 성령이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사도주의자들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신앙행위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섭리나 뜻을 찾아간다는 등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직통 대화라도 하듯 독특한 신앙행위다. 예언사역도 이런 행위들의 한 단면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행위를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활용된다는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루는 사무실에 있다가 그 펜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온 데를 다 뒤졌다. 하나님께도 그것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다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전지하신 하나님! 당신은 그 펜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죠? 그리고 당신은 그 펜을 찾는 일이 제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고 계시죠? 제게 그 펜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난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즉시 한 문장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사무실 화장실 안에 있단다”.
잃어버린 펜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브래드 저삭(Brad Jersak)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에서도 그와 같은 실례들이 잘 나타난다.
어느 아침 나는 그동안 잘 가지 않던 한 북 카페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느꼈다. 그래서 즉시, 그곳으로 갔다. ..., “주님, 오늘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때 맞은 편 탁자에 한 젊은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님, 저 여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려 하십니까?” 그때 주님의 응답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만성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 드디어 나는 결심하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임종천의 『하나님의 음성을 확실히 듣는 법』 책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타난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나요?” “얘야, 손바닥을 쭉 펴봐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엄지손가락이 제일 밑에 있지? 자연히 키도 제일 작고.” “네, 그러네요.” “지도자란 제일 밑에서 섬기는 것이란다. ..., 이제 최고라고 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봐라” 나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아들아, 반지는 엄지손가락에는 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신사도주의자들은 율법의 시대에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이라며, 성령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의 비법(?)도 소개하고 있는데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조이 도우슨(Joy Dawson)은 하나님의 음성을 구할 때 질문을 간단히 그리고 한 가지씩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질문을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통한 응답들이 서로 혼동을 일으켜서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임종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도문까지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보다는 “나의 영과 눈과 귀가 열려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 하는 것이 더욱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종엽은 의견을 달리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방법이 각자 다르고 또한 상반된 모습까지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쓴 지종엽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신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며, “성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 밖에 있는 것일 수 있으며, 또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브래드 저삭(Brad Jersak)은 “성경 밖 계시의 개념은 의심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사이비라고 여겨졌다”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과거와 달리 성경 밖의 계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행위를 성경을 통한 신앙 행위 안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닌, 그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성경이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조이 도우슨의 성경 이해와 해석 접근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일상생활 중에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성경과 연결시켰다. 그 체험했다는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성경의 몇 장 몇 절에 나타나 있다며 종종 소개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성경 속에 있다는 말에 하나님께 물었다. “좋아요, 하나님. 제가 어디 배운 대로 한 번 해볼께요. 제가 눈 화장을 너무 짙게 하는 것인가요?” 즉각적으로 어떤 인상이 떠올랐다. ‘예레미야 4장 30절’이였다. ..., “네가...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정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통해 자신들이 행하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소위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받았다는 예레미야 4장 30절이 오늘날 눈 화장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성구인가 하는 데 문제가 있다. 성경을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는 자신의 경험을 위한 보조 재료와 같은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예들이다.
다음은 어떤 부인이 열쇠를 잃어버린 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기도하여 음성을 듣고 찾았다는 간증이다.
그녀는 말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 열쇠가 어디 있어요?” 그리고는 법석대거나 걱정하는 대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 가운데 말씀하셨다. “네 성경책에서 레위기 14장 47절을 펴라” 거기에는 이와 같이 쓰여 있었다.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 있고 역사하는 말씀이 말하는 대로 침대에 가서 그 개켜 놓은 옷들을 다 들춰보았다. 바로 거기 열쇠가 있었다.
과연 구약성경의 레위기 14장 47절은 ‘빨래 감 속에 열쇠가 있다’는 의미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조이 도우슨은 자신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실패로 돌아간 사건을 소개하기도 했다. 즉, 친구의 불치병을 살려달라고 한 자신에게 ‘고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결국 그 친구는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불치의 병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실지 말씀을 통해 알려달라고 부지런히 구했다. 성경 구절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명확히 주어졌는데, 그분의 응답은 “고치리라”였다.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난 크게 충격을 받았고 혼란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놓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실패를 이해하기 위해 또다시 그 행위를 반복했다. 그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구했을 때 “내가 네게 말한 이후 네 친구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는 알지 못하잖니”라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고 한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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