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인물

19세기 신학-(에큐메니칼 운동/사회복음주의-칸트,슐라이어마허,헤겔)

19세기 신학1-에큐메니칼운동-사회복음(경건주의,합리주의)
 
19세기는 가시적 선교 확장의 시기요,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복음이 강조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19세기에 영향을 준 18세기의 두 사상 : 경건주의와 합리주의인데, 경건주의는 화석화되고 경직화된 교리에 대한 반항으로 회개와 기도가 중심이 된 헌신적 생활을 강조하고, 열광적이고 인격적인 종교 체험과 엄격한 도덕적 통합성에 큰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심을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강조하여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었다. 합리주의는 희랍사상과 르네상스 사상의 재현으로써, 이신론으로 기울어졌고, 인간의 이성이 진리의 원천이므로 죄와 구원의 교리는 불필요하게 되었다(계몽주의).
 
 
19세기의 사상가 : 칸트-슐라이어마허-헤겔

칸트(1724-1804)는 19세기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서, 이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 이성의 유한성을 인정하였고, 도덕법을 강조하여 양심의 직관적 통찰인 지상 명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신앙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부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순수이성비판 서문). 칸트는 신앙과 이성이 아니라 신앙과 경험 지식을 서로 대비시키고, 합리적 인간이 경험적 분석에 함축된 적을 인식하게 되는 합리적 신앙의 형식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근대 신학에서 차지하는 칸트의 중심 역할은 그가 종교적 신앙의 합리성을 주장하면서도 신학을 고전적 경험론의 침식으로부터 구했다는 데 있다. 칸트는 "도덕성이 불가피하게 종교로 인도되고,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에" 도덕적 필연성이 주관적인 것 곧 '요청'이지 객관적인 것 곧 '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우리의 모든 의무를 신적 명령으로 인식하는 것"과 동일하다.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는 종교를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고 하면서, 종교 경험을 강조하고 신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 낭만주의의 창시자, 자유주의 신학의 효시라고 불린다. 그는 칸트의 합리주의와 도덕주의에 반대하여 반이성주의와 반도덕주의를 말한다. 그의 종교적 주관주의는 신이 단지 감정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본질 그대로의 신을 알 수가 없고 신은 단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은 "종교를 멸시하는 교육받은 자들"에게 한 연설이다. 형식상으로는 낭만주의 시대의 정신 속에서 쓰여진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문학적으로 쓰여지고 철학적으로사회 일부 계층을 향한 "고백"이며, 따라서 전문적인 신학 용어가 아닌 낭만주의 문학의 용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며, 형이상학이나 도덕도 아니고, 또 양자의 합성물도 아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슐라이에르마허 자신의 사상적 편력이나 경험에서 나온 개념(개념이라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라비안의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의 사상조류를 모두 경험한 후에 '종교론'을 썼다. 따라서 그는 심하게 이성에 치우쳐 있거나 종교를 도덕적으로만 이해하려는 데에 반대하고 "종교는 감정이므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구별된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직관이며 감정, 즉 무한에 대한 지각과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는 자연과 인간의 사건의 다양성과 대조되는 불변성과 전체성을 말하는 것이고, "모든 특수한 것을 전체의 일부분이며, 한정되 모든 것을 무한한 것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그의 종교론에 있어서 '초자연주의, 자연주의적 범신론, 자아철학'이라는 말로 평가, 혹은 비판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그의 종교론이 나의 종교에 대한 한편의 개념, 혹은 감정에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한 하느님의 형상에 대한 감정만을 갈취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한계, 자신의 온 형태의 우연성, 그리고 자신의 온 존재가 무한 속으로 소리없이 소실되어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적당한 선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원하는 역할을 할 수가 없다"라는 말에서처럼 인간은 유한함이 분명한데, 자기 스스로는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무한과 전체에 자신의 감정을 일치시키기 위해 내어 맡기는 것이 종교이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서 '직관'은 유한에 작용하기 위하여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무한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감정'은 인간 정신 자체의 본래적인 행위로서, 한 인간이 우주와의 조우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실존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그라스도교 신앙은 정확한 신학적인 이해나 형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과 신앙의 확실성이 계시에 대한 실존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거이다. 즉 그 신앙은 정확한 교리와 죽은 문자 속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현존하는 관계에 있다.
 
종교 강화론을 통하여 슐라이에르마허는 스피노자와 같이 이단이라는 격렬한 비난과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신비주의자, 범신론 옹호, 그리고 예술과 종교,신앙과 심미적인 영상이나 예술적인 직관을 혼동'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신비주의는 하느님에 대한 경험의 직접성(실존성)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특수한 것들을 받치고 있는 단일체이며, 세계는 이 단일체에 의존된 양심이다"라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이신론적이며 초자연주의적인 계몽주의의 관념을 부정하는 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는 칸트가 이미 매장시켜 버린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새로운 초월적-철학적인 형이상학을 받아들였으며,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하느님과 세계, 무한과 유한 사이의 관계를 단일성과 전체성으로 해석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예술은 종교의 표현 양식에 불과히지 종교의 근원은 아니며, 예술과 종교의 관계는 사상과 언어가 가지고 있는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헤겔(1770-1831)은 철학적인 종합을 시도한 합리주의자로서 변증법을 주장하고,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은 세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자신을 실현시킨다. 이 과정이 역사이며, 역사는 한 목표를 향해 필연적으로 진행한다.
 
 

Hegel의 철학체계와 역사관

① 精神辨證法的 歷史觀 : 활동성을 그의 본질로 갖고 있는 정신은 먼저 자기를 대상으로 外化시킨다. 그 과정에서 순수한 자아가 자기 외부에 있는 시간으로 外化된 정신을 역사라 부르며 공간으로 外化된 정신을 자연이라 한다. 자연은 그의 생동적이고 직접적인 형성임에 반하여 역사는 알면서(wissende) 자신을 중재하는 형상이다. 역사는 그 자신에 의하여 정립된 대상에 대하여 자기를 하나의 대상으로 外化시키고 더 높은 것, 미래의 것으로 이 대상자체 속에 존재하면서 이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부정하고, 이를 더 높은 단계에로 지양시키며 자신의 완전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이다.
 
 ② 理性的인 것은 現實的이요, 現實的인 것은 理性的이다 : 모든 정신적인 것은 정신에 의하여 정립된 것으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 필연성을 가지며 보편적인 것, 완전한 것으로 고양되는 한에서만이 이성적이다. 물론 불완전한 것은 그 자신 속에 있는 그의 반대(Gegenteil)로서 실존하지만 그러나 止揚되고 해소될 수 밖에 없는 모순이며 自然性과 感性과 자기 자신의 異質性(Fremdgert)을 깨트리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모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그 논리적인 필연성으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 하나의 보편적인 목적을 가지게 된다.
 
精神의 自己現象으로서의 歷史 -- 정신의 卽者(An-sich)가 外化되어 정립되는 가장 보편적인 대상세계는 인간의 의식이다. (정신은 그 자신을 사고함으로써 그 자신을 규정하고 (bestimnen), 그 자신을 자기에 대한 대상으로 정립시킨다. 이 대상이 인간의 의식이다. 여기에서 인간의식의 본질은 사고에 있다. 보편적 정신은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한다. 이 정신 곧 보편적 정신이 그 자신을 外化시켜서 형성되는 결정적인 대상세계는 개인의 정신을 그의 전체성에 속한 유기체적 계기로 포함하는 民族精神이다. 보편적인 정신의 여러 상이한 규정들은 역사에 있어서 특수한 민족정신으로 나타난다. 이 민족정신이 하나의 정치적 행태로 구체화된 것이 국가이다.
 
국가는 곧 개인의 정신적 삶의 총체, 윤리적인 전체(das sittliche Ganze), 현존하는 신적의지이며 세계의 현실적인 형태와 조직으로 전개되는 정신이다. 모든 영역들은 한 공통된 정신의 顯現體로서 한 공통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종교, 예술, 철학 등 모든 분야는 그들이 속한 국가와 동일한 원리, 공통된 근거를 가지고서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들은 국가가 지닌 보편적 이념을 실현시키는 구체적 형태들이며, 국가의 현실이다.
 
더 나아가 Hegel의 역사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 화해의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에서 계시된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한 구체적 인격,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속에서 서로 화해된 것이다. 이 화해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수단과 형태가 곧 국가이다. 그러나 국가는 보편적 정신 앞에서 제한된 것에 불과하여 그의 현재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지와 동일시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새로운 민족정신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향한 발전, 즉 역사의 질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역사의 목표인 절대정신으로의 도달은 정신이 그 자신을 정신으로 완전히 인식하는 세계, 정신의 절대자의 의식에 도달한 세계, 그리하여 모든 것이 절대자의 의식에 따라 갖추어져 있으며 이 의식이 세계사를 지배하며 또 지배하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19세기신학2
 
19세기신학의 인간이해 -- Hegel과 Schleiermacher의 인간이해와 그 문제성
 
문제성과 범위 : 신학사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에르마허(1768 - 1834)로부터 시작하여 칼 바르트를 중심한 변증법적 신학 이전까지를 지배해 온 일련의 신학사조, 곧 19세기의 리츨, 하르낙 등의 신학자들이 대변하는 신학사조를 말한다. 이 시대의 사조를 지배한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는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강의하고 있으면서, 학문의 방법적인 면에서, 즉 사고의 틀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의 신학사조 및 철학사조를 지배해 온 것은 헤겔이었으며, "헤겔주의"가 19세기 사조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를 파악해야하며 그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를 파악하는 것이다.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 :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사고의 틀은 "화해의 원리"에 입각하여 있다. 이 원리는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유한과 무한, 신앙과 이성의 이원론, 철학적 개념으로써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면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적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고 양자를 화해시키고자 함에 있다.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인식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단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이성과 신앙은 서로 분리되며 하나의 신학적 이원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여, 하나님을 인간과 그의 세계 안에서, 인간과 그의 세계를 하나님 안에서 인식하며, 유한을 무한 안에서, 무한을 유한 속에서 인식함으로써  양자의 이원론적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고, "하나님 없는 세게"와 "세게 없는 하나님"의 상태를 상호 화해 시키려 하는 것이 19세기 사조 일반의 공통적인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모든 것 안에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이 가진 화해의 원리의 목적이었다.
 
헤겔의 인간이해 : 헤겔의 철학체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화해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현시켜 나가는 변증법적 방법은 하나님과 세계, 하나님과 인간, 보편자와 특수자, 주체와 객체를 화해시키는 원리를 형성한다. 헤겔에게서 인간의 중심은 정신이며, 이 정신은 신적 정신으로서 하나님의 정신의 실현체이다. 즉 하나님의 정신이 그 자신을 사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규정하며, 자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대상으로 정립시키는데, 이 대상이 인간의 의식 내지 사유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유는 하나님의 정신이 그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현실, 하나님의 존제양식이다.
 
사유는 보편자의 활동성이며, 보편자 일반을 의미한다. 정신과 사유는 부정의 방법으로 발전하는데, 대상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의식함으로써 정신과 그의 대상은 괴리되며, 이 괴리를 통하여 정신은 이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참된 자기 자신, 즉 "자기를 정신으로 아는 정신"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언제나 다시금 부정하고 이 대상을 고양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유는 이미 주어진 것, 유한한 것을 넘어서서 무한한 것에로의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헤겔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의 주어진 현실 속에 안일하게 안주하여 있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현실과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여 나가는 인간을 말한다. 즉 인간은 이러한 변증법적 운동이고, 이 변증법적 운동으로서의 사유가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다.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이러한 사유의 변증법적 사유를 통하여 서로 화해되어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인 사유는 변증법적 운동 내지 활동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이 사유 안에 이 사유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현존한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인간이해 : 하나님과 인간, 무한과 유한의 화해를 헤겔은 사유에서 찾았다면,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경건한 의식,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님의 현실을 이 세계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인식하려는 문제의 해결을 인간의 종교적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은 직관과 감정에 있다.
 
 "모든 개체적인 것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제한된 것을 무한한 것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우주적 직관을 통하여 인간은 종교적 감정을 얻게 된다. 이 감정은 "지식도 행동도 아니요, 오히려 감정이나 혹은 직접적 자기의식의 특수성"인 종교적 경건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인간은 그 속에 그가 속한 우주, 곧 신의 존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있다는 절대의존의 감정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직관으로부터 시작되는 절대의존의 감정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기의식이 "가장 높은 본질의 의식"과 결합된 것이 종교적인 감정의 상태인 경건성을 의미하며, 이 경건성의 감정의 상태를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경건한 절대의존의 감정 속에 이미 주어져 있으며, "이 감정 속에 있는 공동결정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 있으며, 인간의 자기의식은 하나님 의식의 현실화이다. 절대의존의 감정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보편적 구성요소이므로, 인간은 자기의식 속에 하나님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다. 헤겔에 있어서 사유가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라면, 슐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는 인간의 절대의존의 감정이 하나님의 존재 현실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신학의 인간이해에 있는 문제성 :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는 데카르트 이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를 중심한 근대 합리주의와 독일 관념주의의 인간이해에서도 나타난다. 칼 바르트가 "동일성의 철학자"라고 말한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사고 혹은 감정 안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이해에 내재하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성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성서적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은 창조자요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요 인간은 그 거룩한 분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절대적 타자이며, 인간의 힘으로 도달될 수 없는 초월자이다. 성육신의 사건도 하나님의 인간화나 인간의 하나님화를 의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 곧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으로 머물러 계신다. 그러나 헤겔과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인간과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구분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전체성에 속한다.
 
②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하나의 인격적인 대상이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적 인간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대상성 내지 객체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주체성만이 남을 위험성이 있으므로, 인간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서 신적 존재 내지 신적 본질을 그 속에 가진 자로서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신격화 될 위험성이 있다.
 
③ 만일 인간의 정신이 신적인 절대정신의 존재양식이라든지, 혹은 인간의 자기 의식은 더 완전한 하나님의 의식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보자 없이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 직접 알 수 있다. 브루너도 하나님의 형상이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형식적으로는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연인도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하고, 틸리히도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 근거 헉은 인간의 존재의 깊이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은 부인될 수 있고, 인간의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일 수 있고, 인간의 자기인식은 하나님 인식일 수 있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인 본질의 연관성을 말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이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앎과 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의 어떤 존재론적인 상관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적인 사고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 계시와 이성, 나아가서 기독교와 일반종교 혹은 문화 사이에 존재론적 연관성 내지 상관관계를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할 수 있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기독교의 참된 중심점과 규범이 어디에 있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변증신학의 영적 창시자), 합리주의의 객관성에 반대하여 실존적 주관성을 강조했다(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 그의 저작은 칸트주의자들의 도덕적 관념론이든 헤겔주의자들의 절대적 관념론이든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합리적 신학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개인적이며 실존적인 인격적 헌신을 통한 그리스도의 경험을 주장하기 때문에 지식의 객관적인 측면을 무시하였다. 즉 신앙의 실존적 영역과 실존적 선택을 위한 이성의 부재나 불확실성을 강조하였다. 신학에 있어서 그는 신정통주의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다.
 
그와 신정통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부르조아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초월적이고 불가지한 신과 유한하고 죄악된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주목했다. 그들은 신의 내재성과 계시의 직접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로부터 돌아서서 신앙의 위기와 믿음의 역설성과 부조리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신앙은 "객관적 불확실성"이라는 것,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자연적 "증명"은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역사적 예수 연구를 용어적으로도 모순인 "객관적 계시"에 대한 무익하고 불신앙적인 탐구로 간주했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은혜로운 선물로써 각 신자들에게 임하는 계시를 벗어나서는 기독교에 관한 합리적인 변증은 없었다. 유한하고 죄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곤경을 타개할 자격이 조금도 없었다. 구원은 오직 전적 타자인 신으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xingyuanxiaoqu/1ZNN/284?docid=uMDr|1ZNN|284|20071019001426&q=%BD%B6%B6%F3%C0%CC%BE%EE%B8%B6%C7%E3%20%C0%CC%B4%DC&srchid=CCBuMDr|1ZNN|284|20071019001426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