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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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인물

현대신학(전광식 교수님)

1750~
경건주의 운동 Herzreligion(가슴종교)
헤론후트, 보헤미얀 형제들
문제점:신앙이 감정위에 세워짐 슐라이어 마허의 등장배경이 됨 “종교란 신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다.”라고 정의
(종교의 심리화, 인간주의화, 내재주의화)
 
Friedrich Ernst Daniel Schleiermacher
18C후~19C초 독일신학자
Barby신학교의 편협한 지성에 갈등을 느끼고 Halle대학에서 신학을 마침
베를린에서 병원목회를 시작
Athenaum이라는 낭만주의 지성파들의 사교클럽에 가입
이 사교클럽의 구성원들의 종교관은 “종교는 신화적인 사상을 지녔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눈에는 내세관이 맹목적이고 비계몽적으로 비취어서 기독교를 조소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슐라이어마허는 그들에게 기독교변증을 위하여 1799년 ‘종교론’을 저술
본제: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교양인에게 고함 (익명으로 저술)
그 당시 가장 영향력이 많았던 책으로 하나님대신 우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므로 범신론적인 경향이 있으나 슐라이어마허 본인은 범신론자는 아니었다.
“종교란 개인정서의 문제”
“종교란 우주(하나님)에 대한 의존의 감정” 이라고 정의
신학을 마치고 교수생활 중 프랑스 나폴레옹군의 베를린 침입으로 베를린으로 가서 1809년 베를린대학이 설립되자 그곳의 신학교수로 들어감
1811년 “신학연구개요” 출판
세계 처음으로 신학책 발간
처음으로 발간된 실천신학
신학을 나무에 비유해서 철학신학을 뿌리로 역사신학을 줄기 실천신학을 잎으로 비유했다.
성경신학과 교의학을 역사신학으로 분류했다.
실천신학을 신학의 왕관으로 분류했다.
1822년 “기독교 신앙” 발간
기독교 교리를 적은 책임 교리를 신앙으로 표현 신앙을 감정으로만 이해
신론=내가 하나님에 대해 갖는 신 의식
주관적 감정에 의지한 신앙을 강조
교육학 이론 개발
해석학 창시
최초로 신학을 분류함
 
근,현대 신학의 창시자로서 슐라이어마허
슐라이어마허의 문제점
심리적 방법의 관점에서 신학에 접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의식하는 하나님 죄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죄의식에 대한 문제 등 신학을 의식신학으로 변질되게 함
신학과 교육학 해석학에 업적을 남김
자기 관점 속에서 신학으로 접근한 효시 (인본주의적 신학)
하나님의 말씀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버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객체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모순을 범함
 
自由主義 神學=Liberalism
主意的 神學
G.Machen 自由主義와 基督敎 자유주의 비판에 매우 탁월한 책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19C 중후반 독일에서 나타남
Ritschlians들을 통칭하는 말
상황을 중심으로 본문을 끄집어내는 자들
당시의 문화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문화화 시키는 자들
죄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음
구원을 인정하지 않음
1차 대전을 기점으로 끝남
주창자 Albrecht Ritschl
Will Herrmann
Adolf von Harnack
Ernst Treltsch (기독교의 종교상대주의 주창자)
 
Ritschl의 저서
“고대 카톨릭 교회의 성립”(1850)
“기독교 칭의론과 화해론”
“경건주의의 역사”
*경건주의는 종교 개혁전통에서 벗어나 카톨릭화 하는 것이다.
*경건주의는 거짓된 부흥이다.
*지나친 주관주의 심리주의였다.
*브라만과 차이가 없다.
 
Ritschl의 신학방법
분리-헤겔의 종합과 반대개념
*신학을 철학으로부터 분리
*신학을 교의학과 실천적 신학으로 분리
*실천적 신학에 역점을 둠
*기독교 본질은 형이상학적 사실이 아니라 윤리적 삶에 있다고 주장(칸트의 윤리주의 영향)
 
Ritschl의 사상
종교의 본질은 교제와 관계라고 봄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바른 교제에 있다.
*인간과 관계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윤리적 속성을 강조
1) 사랑, 정의, 부성애를 강조
2) 윤리적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가지고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성립
2. 죄론
1) 원죄 부정
2) 죄란 개별적인 선에서의 일탈이다.
3. 예수론
1) 예수님은 상징적 의미에서만 하나님이라 부른다.
2) 예수님을 신으로 보는 근거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에 있다.
3) 긴밀한 교제의 근거는 절대적 순종에 있다.
*우리에게의 의미 예수님의 깊은 교제의 모범을 보인 점에서 우리에게 모범이 되었다.
대속의 고난이란 있을 수 없다.
진노 보복 심판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위반된다.
처벌과 징계는 교육적 차원에서 한다.
*비판
의지 윤리적 차원에서 기독교 교리에 접근하여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전락을 시켰다.
하나님의 속성을 편향적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개념을 희박하게 했다.
만인구원설을 주장하여 믿지 않는 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사회복음주의에 흐르게 했다.
원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지 못했다.
 
Adolf von Harnach(1851-1930)
 
루터교 신학자의 아들 도르팔 대학에서 공부하고 라이프찌히에서 교회사 공부 베를린에서 공부
당대 독일의 목사들에게 견제를 당하여 Adolf Schlatter를 보냈으나 그를 이김
 
저서
“교의사 교본”
“교리사 연구”
*기독교가 초기에 많은 적들과 투쟁 속에 있었다.
*그 적들이란 자연종교 정치종교 영지주의 이원론 등이었다.
*그들을 모두 이겼으나 헬레니즘을 이기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받아들였다.
*헬레니즘화 된 기독교는 지나친 주지주의 지성주의가 되어 교리논쟁에 빠졌다.
*의식주의 전통주의에 빠짐
*헬라적 카톨릭주의 형성
“기독교 본질”(1899-1900)
베를린 대학 겨울학기 강의를 엮은 것
“사도들의 신앙고백”(1892)
예수님의 복음은 단순 명료한데 희랍주의가 복잡하게 만들었다.
“고대 기독교 문헌사”
초대교회-유세비우스
“기독교 신학과 교회교의의 성립”(1922)
밖으로 부터의 신학-학문화 된 신학-변증가들로부터 이루어짐
안으로 부터의 신학-카리스마틱한 신학-바울로부터 시작
 
사상
현기독교는 본래의 기독교로부터 많이 떨어져있다.
본래의 기독교란 예수님의 원시복음이다.
산상보훈이 핵심이며 요한복음은 4세기 누군가에 의해 쓰여 진 허구적 작품이다.
공관복음에도 예수님의 복음과 예수님에 관한 복음이 있다.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종말론, 귀신, 이적등이다.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틀에 불과하다.
하르낙이 이해한 예수님이 가르친 핵심내용
*하나님의 나라가 심령에 임함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랑
*모든 인간영혼은 무한가치를 지닌다.
*이웃 사랑과 형제사랑의 계명과 삶
초자연, 원죄, 십자가, 부활, 심판, 천국이 사라짐
문화적이고 비교리적인 기독교
요한복음 사본이 2세기 전에 것이 발견됨으로 그의 요한복음에 대한 주장이 잘못되었음이 역사적으로도 드러남
인간 이성의 범주를 넘는 것을 믿지 못함
미국에서 사회주의 복음이 등장하는데 기여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서 안에서 핵심
*하나님 나라는 두가지가 대립된다
1.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외적통치
2.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내적통치
3. 유대인들은 1번을 추구했으나 예수님은 2번을 선택했다.
*F.F 브루스등 개혁주의자들도 인용
*전광식교수의 반론
1.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희석시킨다. 
2.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 구속으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이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세상
*예수님은 금욕적 도피주의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기부정 자기희생의 사랑을 가르쳤다.
*예수님은 돈, 세상염려, 이기심등 싸워야 할 세가지를 말씀하셨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가난한 자
*교회역사에서 예수님을 너무 위대한 사회개혁자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성경에 가난한자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고대하는 자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법률
*예수님은 정치 혁명가가 아니다.
*정의는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오직 선에대한 복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노동
*노동은 문명발전에 좋으나 인류 최고의 이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것은 신비이다.
하르낙이 이해한 복음과 교리
*복음은 교리나 철학이 아니고 바른 삶을 가르치는 실천적 교훈이다.
 
하르낙이 이해한 교회역사
사도시대 중세카톨릭시대 개신교시대로 구분했다.
교회가 본질에서 떨어지는 퇴락역사라고 보았다.
 
사도시대
긍정적인 것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것
성령 안에서의 살아있는 인격적 교류
정결함과 형제 사랑의 삶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한 삶
기독교를 탈 율법 화하여 세계적인 종교를 만들었다.
부정적인 것
여전히 구약성경을 도입했다. (그는 ‘Marcion'이란 책에서 구약에서는 그리스도가 예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독론에 대한 지나친 강조
제도화된 예배수립
헬레니즘의 도입 (그 영향으로 주지주의 의식주의 전통주의가 생겨났다.)
 
중세 카톨릭 시대
헬레니즘의 도입으로 생겨남 희랍 자연종교의 기독교화였다.
어거스틴의 열정주의를 교황의 권위주의가 눌러서 교회가 권위주의에 빠짐
 
개신교 시대
긍정적인 것
기독교의 본질로 귀환
외적권위와 성례권위를 물리치고 본질을 찾음
부정적인 것
국가교회를 세워서 정경의 결탁을 부름
지성을 배격하여 감성과 결탁
수도원을 폐지한건 좋았지만 수도원 정신마저 잃었다.
 
하르낙의 문제점
십자가의 메시지가 부각되지 못함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구약을 거부
기독교 복음을 윤리로 전락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 공의와 심판은 무시
인본주의적 역사낙관론
만인구원설
 
Ernst Treltsch (1865~1923)
사회분야에 Marks Wewer의 칼빈주의 윤리가 있는 곳에 건전한 자본주의가 형성된다는 주장의 영향을 받음
“근세의 성립에 대한 개신교의 의미”를 저작
중세는 권위적이고 금욕적이었다.
근세에 와서 합리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근세의 흐름 내세에 대한 현세중심주의 과학적 세계관 진보적 낙관주의 초기 개신교(루터파)는 교리변혁에도 불구하고 중세교회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17세기 이후 종교적 개인주의가 근대 개인주의의 바탕이 되었고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저항권이 나왔다.
검소하고 절제하고 청빈한 자본주의 윤리관이 성립되었다.
하르낙의 기독교본질이란 있을 수 없다고 비판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인데 역사적 종교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기에 본질이 없다.
“기독교의 절대성과 종교사”
“기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세계종교 가운데서의 기독교의 위치”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이므로 실증적이긴 하나 시대에 따라 변질되는 유동성이 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내세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독교를 최고로 보는가?
그것은 기독교는 우리 서양인의 종교이고 우리가 서양인이라서 그렇다.
 
비판
종교 다원주의 상대주의에 빠져 기독교의 절대성을 무시했다.
기독교가 역사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기독교는 분명한 본질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성경말씀 속에 있다.
철저한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의존했다.
 
1차 전쟁으로 자유신학 몰락
철학은 실존주의(하이데거, 야스퍼스등) 철학이 신학은 신정통주의가 등장
 
신정통주의 등장(칼 바르트) Neo-Orthodoxy
대표적 인물
Karl Barth
Emil Brunner
Edward Thurneysen 
 
루터와 칼빈의 형태를 따르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준 합리성과 과학주의를 벗어나지 못함
의도는 하나님의 말씀중심으로 하려고 하나 부활, 종말 등을 받아들이지 못함
 
Karl Barth
스위스 Basel에서 출생
아버지는 Fritz 어머니는 Anna 아버지는 교수에서 신학자가 됨
베를린에서 하르낙에게 배우고 다시 Will Hermann에게 배움
자유신학 대변지인 기독교계 신학잡지 부편집장을 지냄
부목으로 있으면서 넬리 호프만을 만나 결혼
탄광촌 Safenwill에서 담임목회를 함
산업혁명의 여파로 근로자들이 기업에게 착취 당하는 것을 봄
이 당시 Rosaluxemburg라는 공산주의자 등장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짐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남(Kutter, Ragaz)
여기에 빠진 칼 바르트 왈 "성령은 사회주의 영이다"라고 주장
Thurneysen과 같이 크리스토 불루마운틴을 방문 '임박한 종말' '성령의 강력한 운동' '새로운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음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산행하는 자이다.
신학자는 하나님의 산에 거하는 진정한 산악인이 된다.
1차대전 이후 “로마서 강해”를 저작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하나님이 나라가 이루어진다.
독일 윈스터 대학 명예교수로 초빙
본에서 교수사역중 히틀러 등장
히틀러 왕정에서 시민사회로 오는 과도기중 공산주의와 대립하다가 1933년 정권을 장악함
기독교는 히틀러가 위험했으나 공산주의는 더 위험했으므로 히틀러를 옹호하다.
칼바르트의 히틀러 비판을 많은글을 통해 시작하다
히틀러 선서 거부로 추방당함
교회는 제국주의 교회와 고백교회(한국의 고신)로 나뉨
고백교회 선언문에 칼 바르트가 동조
고백교회의 Barmen 신학선언 발표 7개항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외에 하나님 말씀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권위에도 순복할 수 없다.
58세의 나이로 스위스를 지키기 위한 군대에 자원
"악에 대해 총을 드는 것은 선한일이다"라고 주장
고백교회가 투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백교회와 결별
1948년 W.C.C에 참석 이후 교황의 초빙에 응대 "교황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주장
 
교회 교의학 저서
교의학의 순서=하나님의 말씀론, 신론, 창조론, 화해론등 4가지로 분류
서론: 신학입문, 신학방법론 제시
 
바르트 신학의 흐름
 
학창시절~목회기간 1910년대 신학
문화적 개신교
슐라이마허, 리첼, 하르낙, 헤르만의 영향을 받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중심적, 인간중심적
 
로마서를 펴낼때 1920년대 신학
변증법적 신학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하나님과 인간간의 무한한 질적차이를 내세움
하나님중심적
 
교회 교의학기간 1930~40년대 신학
하나님 말씀의 신학
루터, 칼빈, 안셀무스의 영향을 받음
안셀무스의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었는가?"의 영향을 받아 기독론 저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과 화해 저술
그리스도 중심적
 
말년기 "하나님의 인성" 1950년대
대화의 신학
인격적 철학과 신학
성령안에서의 인간현실의 변혁
성령중심적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자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출발이 바르지 않았다.
신학자로서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감히 하나님에 대해 말할수 없는 한계성을 지님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말할수 있는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신학이다.
 
칼 바르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삼중형태로 이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성경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설교(설교, 교육내용, 성경동화)
 
로마서 강해 서문에 나타난 바르트의 성경관
"사도 바울은 당시 뿐만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말한다. 그때와 지금의 갭은 메꾸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성경연구법인 역사비평적 관점은 학문성이 있고 말씀에 대한 바른 前이해를 한다. 축자영감설은 정통기독교가 표방하는 것으로써 설교와 강단에서 좋다. 이 두가지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라면 나는 축자영감설을 택하겠다. 그러나 이 두가지 가운데 어느 한가지를 택하지 않아야됨을 기뻐한다. 나의 모든 관심을 역사적인 것을 통하여 영원한 영이신 성경이 영안으로 들여다 보는 것이다.(역사비평적 영감설)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 수용
*모세의 오경저작설 부인
*종말론 부인 (종말이란 1차대전, 2차대전과 같은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는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
*성경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는 것은 우상숭배요 종이교황을 숭배하는 것이다.
*성경이 완료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의 자유는 없다.
*계시는 현재에 일어나기 때문에 성경은 완료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과거이다.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고자 하지 않는다.
*성경은 다만 간접적 계시역할만 한다.
*창세기의 역사성 부인 "원역사"
*타락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지 않음
 
브룬너와의 논쟁
브룬너가 "자연가 은총"이라는 책을 폄
자연: 성경을 통하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이성으로 하나님을 아는것
여기에 대해 칼 바르트가 "Nein!"을 저술
브룬너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알수 있다."
칼 바르트 "만일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신적인 것을 깨닫는 것은 우상과의 접촉이다."
 
Emil Brunner
"신학자는 전방에 적을 둔 초소부대의 부대장이다."
"변증이 없는 교의학은 게으른 교의학이다."
기도, 선교, 복음의 변증을 강조
"교의학" 저술
신학=투쟁학
 
1889년 출생
긴투투에서 출생 쿠트이 조카딸과 결혼
베를린 뉴욕에서 수학
뉴욕, 프리스턴, 동경에서 강의
"교회에 대한 오해" 저술
"만남으로서의 진리" 저술
"모순 속에서의 인간" 저술
 
브룬너 신학
인격주의적 신학
당시 Ferdinand Edner, F.Gogarten, Martin Buber등이 인격적인 교육과 관계에 관한 관심을 가졌음
마틴 부버의 영향을 받아
"나와 그것" "나와 너"를 정리하였다.
"나와 그것"이란 나는 주체이나 그것은 객체로써 문화와 학문의 대상이요 "나와 너"는 인간관계로써 서로가 주체가 된다.
이것을 신학과 신앙에 대입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너와 나의 관계'이다"라고 1938년 "만남으로서의 진리"라는 책을 통해 주장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하나님만 존재하고 인간은 없다 그래서 그 신학은 신학적 객관주의이다.
슐라이마허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인간만 있고 하나님은 없다 그것은  신학적 주관주의이다.
따라서 이 두 신학은 편향주의 신학이다.
올바른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이 똑 같이 인정되고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서 이루서진다 이것이 인격주의적 신학이다.
 
브룬너의 신앙관
교의 신앙과 인격신앙이 있다.
교의신앙이란 I Believe That God....으로 That이하의 문장을 믿는 신학이다.
인격신앙이란 I Believe in God이다
인격적 신앙교류를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브룬너의 기독론
하르낙의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는 예수님의 말씀 사역 인격 등을 저버리고 논리적으로만 접근했다"고 주장
교회 주관주의가 있는데 교회를 사회적 기관으로 인정하는 Troeltsch가 대표적이다
교회 객관주의가 있는데 Augustinus가 대표적으로 교회를 하나님의 한 기관으로 인정하는 부류이다.
교회 객관주의는 너무 교회를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주관주의는 너무 인간중심이어서 둘다 편향적이다.
이 두가지 교회관은 편향되어서 제도화된 교회를 이루어왔다.
본래 교회는 에클레시아였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교류 성도간에는 수편적교류가 있었다.
주후 2C 희랍적 논리에 의해 교회가 제도화되었다.
제도가 지배할 때 법이 지배하고 인격적교회는 사랑과 인격이 지배한다.
<반문>초대교회에도 집사등 제도가 있었다.
<대답>초대교회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 교회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볼트만
"공관복음 전승사" "신약과 신화" "역사와 종말론"을 통해 탈신화화와 케리그마신학 강조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2000년전 언어와 세계관으로 포장되었기에 20C의 과학세계에서는 맞지 않다.
정통주의는 성경을 그대로 믿고 자유주의에서는 이성에 맞지 않는 성경을 아예 배격하는데 정통주의는 이성을 포기하고 있고 자유주의는 윤리만 있을 뿐 믿음이 없다.
성경에 나와있는 신화를 버리고 신화의 내용이 강조하는 케리그마만 찾아서 20C에 맞는 사상으로 포장하면 된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에 입각한 신학전개
인간은 자기의 자리로 부터 이탈되어 있다.
복음의 핵심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판
인간이 성경위에 있음
 
영향
토착화 신학
문화적 토착화
신학적 토착화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지게 되는 근본이 됨
 
자료출처
http://cafe.daum.net/TTISA/4dMO/23?docid=17dhK|4dMO|23|20061214151122&q=%BD%B6%B6%F3%C0%CC%BE%EE%B8%B6%C7%E3%20%B9%AE%C1%A6%C1%A1&srchid=CCB17dhK|4dMO|23|20061214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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