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트만의 역사관 비판
불트만의 역사관 비판
불트만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하나님의 계시,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행위에 대한 지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선구적으로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이미 <그에 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에 대한 추구>에서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 삶은 항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자신의 실존에 관한 물음>에 의해서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물음과 인간 자신에 관한 물음은 동일하다.
역사의 의미는 항상 당신의 현재 속에 놓여 있어서, 당신은 그것을 관객으로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책임있는 결단 속에서 그 의미를 볼 수 있다. 종말론적 순간이 될 가능성이 매 순간 속에 잠자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불러 일으켜야만 한다.
Ⅰ. 서 론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서의 불트만 자신의 고뇌에 찬 학자적 양심과,정직하고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 많은 부정적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적 업적이 참신(?)한 만큼 그의 주장이 신학계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심지어 그의 제자들까지도 스승인 불트만을 비판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적으로 불트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상당히 빛나가 버린 그의 신학적 방법론에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그가 역사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하이데거의 실존적 철학체계에 그가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에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로부터 기독교의 메시지를 보호 하고자하는 생각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대속사상을 버리고 말았으며, 아울러 사실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인간역사에의 개입과 섭리를 부인하고 말았다. 따라서 불트만 식으로 하다보면, 예수가, 실존적 판단자에 따라 변형되는 하나의 조각품이 되어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불트만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오직 이성적 인간의 이해의 범주 내에서는 합리적인 것 같으나 사실은 극히 주관적인 결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것은 마치 흔들리는 추 위에서 평행을 유지하고자 하는 게임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 불트만의 기독교 신학체계는, 불트만 자신의 「신앙」, 「케리그마」, 「역사」, 「탈 신화화」, 「성서해석학」 등에 관한 견해 및 논리 전개 방식과 필연적인 관련을 맺게 된다. 이 모든 문제들이 불트만을 이해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항목들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불트만의 역사관의 문제점을 주로 점검하고자 한다. 이러므로 불트만의 허와 실을 어느 정도는 밝혀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Ⅱ. 본 론
1. 불트만식 성서해석 방법
역사와 과학 및 철학은 17세기를 들어서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성경과 교회의 권위로부터 해방, 자율적인 학문분야가 되었다. 이제 이성이 학문에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도구(기준)가 되어 가고 있다. 영국의 자연신론, 프랑스의 회의주의, 독일의 합리주의 등은 역사와 학문에 있어서 이성의 절대 우위를 주장하였으며, 1820년-1920년 사이는 「역사적 방법론의 해방시기」로 기존의 방법과 권위는 무시되고, 모든 면에서 회의적인 태도가 판을 치게 되었고, 특히 지질학 또는 진화론 체계의 이론적 발전은 사상계를 포함해서 전반에 걸쳐서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같은 유물론적 학문 도입에 따른 학계의 동향변화에 따라 마침내는 신학계에 일각에 있어서도 성경계시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19세기말 Troeltsch 같은 이는 “역사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망언을 내뱉게 까지 되었다. 이같은 시대적 조류(배경) 속에서 불트만의 신학체계도 나름대로의 위상을 정립하게된 것으로 생각된다. 불트만은, 현상과 본체를 구분하는 칸트의 차원주의로부터, 역사를 Historie와 Geschichte로 구분하는 이중적 역사관의 골격을 빌어왔다. 이와 같은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트만의 해석방법이 실존주의에서 유도된 철학적 관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실존주의에서 끌어낸 첫째 관념은 의식의 성질의 문제를 가지고 응용한 것이다. 사실상 모든 인식행위는 언제나 의식적인 것이다. 모든 주관적인 의향은 객관적인 상호연관을 지향 한다. 그러나 오성의 행위에 있어서 주로 탐구된 것은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이다. 객체의 실존에 대한 문제는 제2차적으로 취급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제2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 객체의 의미에 대한 문제만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그 의미의 문제는 의식 그 자체를, 관찰된 객체와 결합시키는 접촉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바로 의미」이다. 의미는 주관(자신이 느끼는 것)이나 객관(본연의 상태)에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관과 객관(그것이 의미하는 것)의 교차 속에 있다.
둘째로 불트만의 해석방법의 배경이 되는 것은 실존주의적 시간관념에서 취해진 것이다. 실존주의에 있어서의 「현재란 인간이 실생활하는 범위이며 인간의 의미있는 생의 영역」이다. 또한 현재는 과거에서만 생활하는 상태에서 인간을 구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존주의에 있어서 과거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즉 과거란 단순히 결정적으로 발생하는 일회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란 비확실한 영역으로 그곳에는 결단이 없고 자유가 없고 또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과거는 언제나 「생명 없는 과거」이다. 그러면 인간이 생명없는 과거에서 구원을 받아 가치있는 현재의 생활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미래이다. 미래는 소망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미래가 미래인 까닭으로 가능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미래는 가능할 뿐이므로 우리는 미래에 관하여 「결단」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를 아는 것처럼 미래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지식에 대한 거룩한 사건은 언제나 미래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바 「종말론적 사건」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계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시 자체는 언제나 나타나고 있는 사건이다. 그것이 나타남으로써 인간을 생명없는 과거에 대한 근거없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여 우리의 생을 의미있는 현재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불트만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의 역사관은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인 이론과 시간에 대한 실존적인 견해와 관련되어 있다.
2.불트만의 역사관의 핵심과 문제점.
불트만의 해석학에 있어서 신학적 뿌리가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현대 신학계에까지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 비평적 방법이다. 불트만이 사용하는 역사비평방법은 성경본문을 역사탐구의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서로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연결시키며, 각종 증거들로부터 결론을 끄집어낸다. 트뢸취의 역사비평원리를 원용하는 불트만의 성서해석방법은 다른 한편으로는 변증법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한다. 이것은 그의 본질적인 목적이 역사적 사실성에 있지 않고 케리그마적인 효과와 실존적인 의의를 찿는 데에 있음을 암시한다. 기본적으로 불트만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일」과 「이해하는 일」을 구분한다. 이렇게 해서 불트만은 철저한 역사비평방법을 케리그마 신학에 통합시킴으로써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에 합류하게 된다. 불트만은 역사적인 방법론을 신학해석을 해방시키는 목적 자체로 단순히 생각하기보다는 신학적인 도구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평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만듦으로써 역사비평은 “신앙을 궁극적으로 스스로에 의지하도록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불트만이 기독교 신앙을 과거 역사적인 사건들에 기초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시종일관 거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볼트만의 변증법적 해석에는 몇 가지 약점들이 있다. 먼저, 케리그마의 자율성은 역사비평을 통해 내버리는 객관적 사실들을 희생시켜야만 확보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급진적인 역사비평의 형이상학적 개념에 무릎을 끓음으로써, 불트만의 변증법적 해석학은 “19세기 실증주의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둘째로, 역사비평적인 방법 자체가 오늘날 매우 의문스럽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선입견이나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시킬 수 있는 역사가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비평은 중립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비평방법은 「가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임을 양식있는 사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세째로, 역사문제에 대한 변증법적인 접근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방법과 케리그마의 신학적 해석간의 존재론적인 균열을 초래하게 된다. 불트만의 방법에서는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해석을 구성하는 데에 오용되고 있는 그리고 오늘날 매우 의문시 되고있는 인과 법칙」이 상당히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비평에 대한 불트만의 변증법 접근방식 자체의 불합리성이 이미 분명해진 만큼 그의 방법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존재론적 균열을 극복하고 역사적 방법과 신학적 진리를 다시 연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3.복음주의적 입장에서의 역사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⑴ 역사의 본질, ⑵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의 문제, ⑶ 역사(자연)와 초자연의 관계, ⑷ 신앙과 역사와의 관계, ⑸ 역사와 케리그마와의 관계 등을 다루어야만 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역사와 초자연의 관계,역사와 케리그마의 관계만을 다루기로 한다.
⑴ 역사(자연)과 초자연과의 관계
불트만 신학의 역사비평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약성서의 역사적 사건들 배후에 놓여 있는 가장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초자연성」을 취급하는 방법인 것 같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크게 몇 가지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로 어떤 신학자들은 초자연적 사건들은 결코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과거에도 발생한 일이 없다고 단호히 주장한다.
둘째로 어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어떤 사람이 신자로서는 초자연적인 사건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역사가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태도는 기독교 사가들에게 바람직하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불트만은 자연과 초자연이 섞여 있는 기독교사를 이런 방법(태도)을 가지고 기술하려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그의 신학체계에 많은 모순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가는 자연적 성격을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사건들을 자연적인 사건들과 아울러 다룰 수 있는 제3의 태도(방법)를 취해야만 한다. 그 제3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떠하던 간에 우리가 분명히 강조해 두어야만 하는 것은 부활사건과 같은 것들은 「자연적인 역사이면서도 초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독특한 역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독교 사가들이 자연적인 영역 안에서만 작업을 하는 일반사가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포함하여서 역사들을 설명하게 된다.
⑵ 역사와 케리그마와의 관계
그리스도의 행적이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역사관은 신앙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의 일부라고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역사관을 진술하는 태도를 볼 때 누가는 진실한 역사를 쓰기를 원했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수와 관련된 사건에 관한 정확한 정보 였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된 것은 초대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케리그마 속에 선포된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트만은 더더욱 가르치는 행위로서의 케리그마 안에만 그리스도가 존재하며 그러한 케리그마 속에서 그리스도가 실존적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월적인 역사를 인정할 수 없는 일반사가들이나, 불트만처럼 역사와 초자연적인 역사를 함부로 분리해 버리는 사람들이 동의를 하든 하지않든 간에 케리그마와 복음 (초월적인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은 그 성격상 모두 역사적이다. 불트만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메시지의 선포에 강화체의 역사적 옷을 입히는 행위가 모두 역사화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역사화 작업은 기독교의 본질과 긴밀히 연관된 형식으로 누가의 기록 이전부터 계속 진행되어 왔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기록 당시까지의 교회의 짧은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생각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불트만은 함부로 복음의 내용을 가리켜 「역사화」 운운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Ⅲ. 결 론
불트만의 신학사상이 잘못된 이주적 역사관에 기초함으로써 그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그가 기독교 신학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았다.
첫째로는 그의 실존적인 성경해석에 의해 세계관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신앙이라는 걸림돌을 처리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둘째로는 그는 기독교 실존을 철학적 실존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 실존의 가능 근거로서 「신의 행위」를 주장함으로써 그의 탈신화화 작업을 철저히 수행하지 못했다.
셋째로는 그는 역사적 비평방법을 이용하여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다소라도 재건하기는 했지만, 이는 묵시적 유대교의 범주 안에서 만 일뿐이다.
넷째로는 그의 신학구조는 그의 이중적 역사관에 근거한다.
다섯째로는 그의 성경해석 방법론과 이중적 신학구조는 결국 계시의 주체성 문제와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역사적 사건과 인격을 통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게 되고 이로써 케리그마라는 역사적 뿌리 즉 기독교의 뿌리가 흔들리는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불트만이 역사성을 무시하는 사상은 본래 계시의 객관적 진리 내용을 거부하는 사상과 그 결과로 계시를 주관적으로 보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기독신앙의 역사성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에 본질적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 주장으로 “예수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전 15:3)”는 주장 속에 「역사와 신학이 종합」되어 있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신 복된 소식(임마누엘)에 초점이 있다.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들과 동일하시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동기가 어떠하건 결국 하나님의 계획을 왜곡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나사렛 예수 속에 사람이 되지 않으셨고 십자가에서 잔인한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구원계획은 한낱 허무맹랑한 공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 존재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 자기 자신을 잠그셔야 했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에서 성경사건들의 역사성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특별계시란 것은 역사적 상대주의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불트만이 이점을 간과함으로써 그의 신학체계에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