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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요약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jkkhh2232?Redirect=Log&logNo=50034834198

  http://cafe.daum.net/kwmi/8ZI9/93

  - 옥성호 신앙독서자료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지음 옥성호 (부흥과 개혁사, 2007)
요약 권영배 (2008.06.29 ~ 07.22)

C O N T E N T S

글을 열며

02 마케팅 교회의 시대적 배경 :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래그머티즘
03 마케팅 교회의 교회적 배경 : 부흥주의, 자유주의, 신복음주의
04 마케팅 교회와 복음의 상품화
05 마케팅 교회의 모델 1 : 빌 하이벨스와 윌로우크릭 교회
06 마케팅 교회의 모델 2 : 릭 워렌과 새들백 교회
07 마케팅 교회와 교회 컨설팅
08 마케팅 교회와 숫자 우상
09 마케팅 교회 극복을 위한 복음의 능력 회복
글을 닫으며

 


06 마케팅 교회의 모델 2 : 릭 워렌과 새들백 교회


1. 릭 워렌과 목적 열풍
2. 새들백 교회의 핵심 :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라
3.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한 평가

 
 


1. 릭 워렌과 목적 열풍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은 없고 완전한 이론은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이론 중 99%가 옳고 1%가 틀린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면 우리는 그 1%에 대해서까지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게다가 그 1%가

매우 중요한 부분에 관련되었다고 한다면 그 1%는 더 이상 숫자1%에 그치치 않습니다. 제가 이 장에서 하는 릭 워렌

목사에 대한 비판을 그런 차원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릭 워렌 목사에 대한 저의 비판은 앞서 빌 하이벨스 목사에

대한 비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하는 비판입니다.

제가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서 비판한 조엘 오스틴(노먼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에 대한 비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윌로우크릭과 새들백 접근의 차이


빌 하이벨스 목사는 릭 워렌 목사와 한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릭 워렌 목사와는 달리

자신의 신학과 목회 철학에 대해 본격적인 저술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의 신학과 목회 철학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그의 설교들, 그의 많은 책속에 단편적으로 흩어진 정보들,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도 1995년에 나온

G.A.프리차드가 논문 차원에서 쓴 후 출판한 『윌로우크릭 구도자 예배』를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릭 워렌 목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목회 철학과 신학을 그의 두 권의 메가 베스트셀러인 『새들백

교회 이야기』와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완전히 공개했습니다. 그렇기에 빌 하이벨스 목사에 비해 릭 워렌 목사는

오늘날 휠씬 더 철저하게 검증받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닙니다. 특히 『목적이 이끄는 삶』이 출판된 이후부터

나오기 시작한 릭 워렌 목사에 대한 비판서들을 읽어 보면 그의 구체적인 신학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의 메시지가 포함

하고 있는 뉴 에이지 성향에 대한 비판이 매우 많은 양을 차지합니다. 뉴 에이지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충분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여지가 그의 책에서는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새들백 교회 이야기』는 사실 그 전에 수도 없이 나온 교회 성장 관련 도서들과 이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릭 워렌 목사에 대한 비판들은 대부분이 『목적이 이끄는 삶』의 내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장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 집중할 것입니다. 『새들백 교회 이야기』가 교회 마케팅의

원칙에 매우 충실한 대표적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장에서 릭 워렌 목사를 주제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교회의 본질이 윌로우크릭 교회

와 더불어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한 마케팅 교회의 모습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람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그들을 이끌고

유지시켜야 한다는 그의 목회 철학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펴보는데, 첫 번째 이유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마케팅

요소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워낙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우리가

과연 바른 복음을 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2. 새들백 교회의 핵심 :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라


『새들백 교회 이야기』는 왜 교회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뿐 아니라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들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느끼는 필요felt needs를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이 책의

전반에 걸쳐 강조됩니다.


①‘종교’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 :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점에 중점을 두고 성경을 접근하는 많은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은 그들이 가진 ‘종교’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그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로 ‘분열’을 의미

   하며, ‘기독교 진리’라는 말 대신 ‘기독교 영성’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 종교는 ‘삶’이다라는 주장은 듣기에 따라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 속에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종교에는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지만 삶에는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②위협과 경고를 혼동
   릭 워렌 목사의 기존 전통적인 교회들에 대한 반감은 그의 책 많은 곳에서 등장합니다. 그는 기존 전통 교회의 복음 전파

   를 사람들에 대한 ‘위협’ 내지 ‘협박’으로 인식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메시지를 위협으로 생각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런 협박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예수님처럼 ‘지옥’에 대해 자주 그리고 자세히 말씀하신 분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계신 것인가요? 우리는 위협이라는 단어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협과 경고를 혼동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의 모든 가르침 속에 경고를 봅니다. 경고해야 할 때 경고하지

   않는  것처럼 큰 죄가 없습니다. 릭 워렌 목사는 이런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듯 합니다.


③삶으로서의 기독교
   종교라는 단어 대신 삶으로 인식되는 기독교에 있어서 삶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들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각종 방법에게 그 자리를 내줍니다.  
    그러나 릭 워렌 목사가 필요를 채움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독교의 복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릭  워렌목사에게 필요 충족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낙관론적 사고입니다.

    릭 워렌목사는 인간은  당장 급박한 삶의 문제가 기독교의 방법들을 통해 해결되면 자연히 기독교의 진리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필요를 먼저 채우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릭 워렌


이 장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책 전반에 걸쳐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

이라고 강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는 것이 성경의 방법이고 또한 예수님이 사역하신

핵심방법이었습니까?


①성경은(예수님은) 사람의 필요(이스라엘 민족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당시 상식에 가까운 민족의 가장 큰 필요(로마의 압제 속에서 고통 받는 동족의 아픔을 생생히

   보면서 자라나심. 로마의 꼭두각시인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민족적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도

   잘 알고 계심)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바로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맞섰듯이 로마의 황제 앞에서 그를 굴복시키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이 진정

   예수님께 원했던 것은 독립이었고 선민 이스라엘의 자존심의 회복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당신의 공생애를 통해 이스

   라엘 전체가 원하는 이 필요를 채우는 데 열중하셨다면 오늘날 교회도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필요를 채워 주는 데 모든

   사역의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②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의 즉각적 필요를 채우는 데 민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필요를 채워 주시기는커녕 당신을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보신 후 도리어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보리떡과 물고기로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배고픔을 해결할 희망을 보았습

   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6:15).

   또 하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배고픔을 해결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 이제는 배가 안 고픕니다. 그러니 진리를 알려 주세요. 배고플 때는 그 문제가 너무 급박해서 진리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진리를 알고 싶네요.” 필요가 채워지는 순간 진리를 갈급하기는커녕 올챙이적 시절을 까맣게 잊는 것

    이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릭 워렌 목사의 목회 철학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입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진리를 가르칠 때 불신자들이 “고맙습니다! 그 책에는 또다른 진리

    가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왔다.

    릭 워렌 지음, 김현희.박경범 옮김, 『새들백 교회 이야기』, 디모데, 2006, pp. 256~257.


③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구약시대의 대표적 기적들은 모세 시대와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집중됩니다. 왜냐하면 그 두 시대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가장 집중적으로 주어지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특별한 시대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를 위해 기적이라는 수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이 초대 교회에 기적들

   을  허락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핍박 속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데 필요한 권위를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의 가장 큰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

   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요한복음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바로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과는 관계 없이 더욱더

   자신의 필요만을 찾는 사람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들을 자세히 살펴볼 때 예수님의 모든 기적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의 필요를 향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게 될 때 드러나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영혼 구원입니다. 릭 워렌 목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다 동일하게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릭 워렌 목사 말대로 일단 필요를 먼저 충족

   시켜 준 후 그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나서 복음을 전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채워 주지 않으셨는가


①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인간의 한계는 사마리아 여인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당장 느끼고 있었던 필요는 단지 자신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항상

   먼저 느끼는 필요는 자신의 욕망에 대한 충족입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의 필요를 모르는 이유를 성경은

   인간이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이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먼저 살리시기 전에는 결코 그 사실을 스스로 먼저 깨달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십자가의 거친 복음이 그 완강한

   마음을 때려 부수기 전에는 결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시53:1~3).


②필요의 충족이 진리에 대한 관심으로 유도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일차적인 필요가 채워지면 자연히 진리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릭 워렌 목사의 생각은 너무 순진한 발상

   입니다. 인간에 대한 너무 낙관적인 사고입니다.


③인간의 필요를 채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④필요를 추구하는 순간 기독교는 프래그머티즘의 함정에 빠진다
    진리의 여부가 충족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⑤얼마든지 거짓 필요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⑥사람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채우는 것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마케팅은 하나님이 구원사역에 있어서 그토록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하신 인간의 지혜 속으로 끌어들이는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마케팅 교회의 주장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자랑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줍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3.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한 평가


앞서 저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 중요한 마케팅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릭 워렌 목사가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한 필요 충족의 목회 철학이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꽃을 피웠습니다. 새들백 지역을

넘어 인류 전체가 가장 갈구하는 필요를 찾아 낸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 말입니다.

생존이 아닌 삶을 영위하고 싶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그 필요말입니다. 그들이 상실한 단어 ‘목적’을 제시함으로

그는 인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온 세상이 ‘목적’이라는 단어에 환호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프랜차이즈화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은 ‘목적이 이끄는 40일’이라는 이벤트를 탄생시켰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40일’은

교회 마케팅을 최초로 본격 프랜차이즈화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속에는 목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속에 과연 바른 목적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다른말로 하면

『목적이 이끄는 삶』속에 바른 복음의 메시지가 있는지를 묻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인간의 목적을 “인간의 제일 되며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인생의 어떠한

목적도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바른 복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자로 거듭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목적’이라는 말은 사치일 뿐입니다. 따라서 『목적이 이끄는 삶』속에 복음이 재대로 선포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 이끄는 삶』속에 제대로 된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참고부분>Day 7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 와 Day 10"예배의 중심“
① Day 7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남은 삶 동안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요1:12).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첫째, 믿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믿으라…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둘째, 받아들이라. 예수님을 삶의

    주인과 구원자로 받아들이라. 우리의 죄 릭 워렌 목사는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단어로 ‘sins'라는 복수형을 사용함.

    인간의 죄성의 상태를 말하는 셀 수 없는 ’sin'이라는 단어 대신 행위에 근거한 ‘잘못들’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sin을

    복수가 가능한 가상 명사 ‘sins'로 바꾸었다.가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라.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힘을

   부어 주시는 성령을 받아들이라…어디에서 이글을 읽고 있든지 지금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조용히 하기 원한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지금하라. 당신이 그 기도를 진심으로 했다면, 축하한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당신을 환영한다.

     릭 워렌 지음, 고성삼 옮김, 『목적이 이끄는 삶-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 특별판』, 디모데, 2002, pp. 78~79.

위의 글에서 가장 먼저 지적할 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제안offer'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무슨 세일즈의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십자가를 제안하고 인간이 받아들일지 말지를 애태우고 기다

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 때문에 죽었다는 것인지 도통 위의 글만 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갑자기 무턱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

보다도 ‘왜 죽으셨는지’에 대한 부분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릭 워렌은 너무 쉽고 너무 피상적으로 복음을 제시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이 책에 따르면 세상에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구원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사랑을 너무 갈구하다 못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의

희생에 가깝습니다. 십자가가 등장하는 다음 부분을 보면 제 말의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이것을(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고 싶다면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팔을 벌리고

계시면서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너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라

   릭 워렌 지음, 고성삼 옮김, 『목적이 이끄는 삶-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 특별판』, 디모데, 2002, p. 105.

우리가 하나님께 그토록 중요한 존재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없으면 하나님이 살수도 없을 만큼요?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라고 하는데 우리 없이 살 수 없는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는커녕 대단히 결핍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고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교리다


릭 워렌 목사는 종교 또는 교리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는 교리라는 단어가

 단 네 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네 번 등장하는 교리도 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교리를 떠나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1:9).

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훈”은 영어 성경에 보면 the doctrine of Christ(KJV), 즉 그리스도의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가 바른 교리 속에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구원의 문제를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차원으로 끌어내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는 대신 인간의 결정에 구원이 달려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마케팅 교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집니다. 인간이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분위기와 기법들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마케팅 교회가 지향하는 신학은 인간 중심의 신학man-centered theology이며 동시에

결정중심의 신학decision-based theology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크리스천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말은 다 맞는 것 같고 다 좋은 말인데 어딘지 허전해…왜 그렇지?”
제가 생각하기에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본질상 하나이지만 편의상 두 가지로 구별하겠습

니다. 첫째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부분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바로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목적을 얘기

하고 있지만 목적 전에 다루어져야 할 주제인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적은 본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본질이 망각되거나 왜곡될 때 역시 그 자체가 결함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 충족을 약속하는 교회가 약속하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새들백 교회를 통해 필요 충족을 통해 복음 전파하고자 하는 마케팅 교회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를 살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필요 충족을 가장 중요시하는 교회는 하나님이 약속하시지 않는 것을 주겠다고 한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물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약속해야 하는 것은

비록 고통스러운 삶이 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저는 릭 워렌 목사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노먼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과 다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필요를 먼저 채움으로 사람들을 복음으로 인도하려는 목회 철학을 고수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부담감 없게 기독교를 접하도록 하기 위한 그의 열정과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그 방향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저는 릭 워렌 목사가 그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향력을 하루라도 빨리 바른 방향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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